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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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

“우리는 교회를 왜 다닙니까?”

한번은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나는 왜 교회를 출석했을까?” 여러분은 어쩌다가 교회를 출석하게 되셨나요? 우리나라에는 절도 있고 성당도 있는데, 왜 하필 우리는 교회를 출석하게 된 것일까요? 아마도 저마다 교회를 출석하게 된 계기는 다를 것입니다. 우연히 어릴적 친구를 따라서 교회를 출석한 성도도 있을 것이고, 삶에 지쳐서 의지할 곳을 찾다가 교회를 출석하게된 성도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사연과 상황에 따라 교회를 출석하게 되었지만, 결국에는 우리 영혼의 구원의 길되신 예수님을 믿게 되어서 계속해서 교회를 출석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상황이 우리를 교회로 인도했지만, 결국에는 모든 상황을 넘어 구원을 주시는 예수님이 정말로 믿어졌기 때문에 교회를 계속해서 출석하는 것입니다.
출석뿐이겠습니까?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섬김과 봉사도 구원의 주 예수님을 진심으로 믿기 때문에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서 예수님이 중심이 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교회를 출석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예수님 때문이라면, 더 나아가 우리 신앙생활의 중심도 예수님이 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생활 가운데 어떤 것보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 그분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현대 교회는 다른 이벤트에 힘을 쏟다가 예수님을 믿는 일에서는 힘이 다빠져서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달라야 합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중심이 되는 예수님에 대해서 바로 알고,날마다 기억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전환) 이런 점에서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를 알 수 있는 확실한 말씀인줄로 믿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고, 우리는 그분을 따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2. 본론

요한복음14장 6절의 문맥”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요한복음 13장에서 17장 사이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고별담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다시말해, 예수님께서십자가 사역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남기는 가르침 중에 하나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은 요한복음 14장 5절에서 제자 도마가 묻는 물음에 대한 답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함께 14장 5-6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요한복음14:5-6
요한복음 14:5–6 NKRV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5절에서 도마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 우리는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 못하는데, 그 길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도마는 예수님이 가시는 길이 어떤 길인지 몰랐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6절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하나님께 이르는 유일한 길로서 자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대지1) 예수님은 길이 되십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이 길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길이라고 했을 때, 그길의 끝은 하나님의 구원이 기다리고 있는 길입니다. 그렇다면, 구원에 이르는 예수님의 길은 과연 어떤 길일까요?

소지1) 예수님의 길: 좁고 협착한 길

첫째, 예수님이 길이라고 했을 때, 그 길은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을 말하는 것인데, 특별히 “좁고, 협착한 길”입니다. 마태복음 7장 14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마태복음 7: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구원으로 인도하는 문을 말하는 것이며, 그 문은 좁고 그 문을 통과하여 가는 길은 협착한 길입니다. 그래서 그 길을 아는 사람이 많아도 그 길로 가는 사람이 적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구원에 이르는 길이 되십니다. 하지만, 그 길이 너무 좁고 협착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길을 걸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넓고 안정적인 길을 걷고자 합니다.
길 끝에 있을 구원을 보기보다 길의 모습과 과정 속에 있는 것에 시선이 있다보니 그 길 자체를 꺼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길되신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좁은 길이지만, 반드시 그 끝에 구원이 있는 길이라는 것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소지2) 예수의 길: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

둘째로, 예수님의 길이라고 했을 때, 그 길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입니다. 마가복음 8:34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가복음 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께서 구원의 길이라고 했을 때, 그 길은 “룰루랄라”콧노래 부르며 걸어가는 길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 길은 분명히 앞서 읽은 말씀에서 나온 것처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길입니다. 자기 십자가는 자신의 죽음 곧, 자기 부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길을 따르기 위해서 이기적인 자기 욕구와 세상적인 가치관을 버리고 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전에 가지고 있는 습관과 죄된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걸어가는 길은 예수님의 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듯 우리도 우리 십자가를 지고 그 길을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소지3) 예수의 길: 유일한 길

셋째로, 예수님의 길이라고 했을때, 그 길은 유일한 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자가 없다”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유일한 길입니다. 구원을 향한 유일한 길입니다.
세상에는 예수님의 길을 흉내내는 길이 참 많습니다. 마치 구원을 줄 것처럼 유혹하는 길이 많습니다. 물론 그길은 좁지도 않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줄것처럼 유혹하는 길이 많다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죄악에서 우리를 건질 구원을 향한 유일한 길이 예수님의 길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믿고 따르며, 걸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도 걷지 않는 길이라도 그 길을 기억하고 걸읍시다.”

이처럼 예수님 자신이 길이라고 했을 때, 그 길은 세상적으로 편하고 좋은 길이 아니라는 사실과 구원을 위한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울더라도 그 길을 걸을 수 있어야 하고, 삐걱거리더라도 그 길을 걸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니… 기어서라도 그 길을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길을 걸을 때는 여러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나, 그 길 끝에는 영원한 구원이 있기에… 우리는 그 사실을 믿으며 예수님의 길을 걸을 수 있어야 합니다.

대지2) 예수님은 진리가 되십니다.

다음으로 본문은 예수님께서 진리가 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진리를 세상에 가져오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통해서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눈에 보이는 사람의 모습을 입고 오셨고, 그분의 입술과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실 뿐만 아니라, 직접 살아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어떻게 사랑하시는 지를 보여주셨고, 하나님 나라가 어떤 곳인지, 누가 그 곳에 갈 수 있는지를 자신의 목소리로 선포하셨습니다. 변하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사실과 구원에 대한 방법을 진리로서 말씀하셨고, 살아내셨던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진리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살아내야 합니다. 그렇다면, 진리되신 예수님을 닮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요?

소지1) 진리되신 예수님을 닮는 것: 진리를 말함

첫째로, 진리되신 예수님을 닮는 삶은 “진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진리, 곧 구원에 이르는 진리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 그리고 구원 받은 자의 삶을 우리가 배운대로 이웃들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 진리를 말하고 이웃이 그 진리의 말씀을 들을 때, 그들에게 “믿음”이 생기는 것이고, 그 믿음이 그를 구원에 이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가르쳐 지켜 행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할 것이 “진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진리를 가르치고, 진리를 전하는전도의 삶을 수 있어야 합니다.

소지2) 진리되신 예수님을 닮는 것: 진리를 살아내라

둘째로, 진리되신 예수님을 닮는 삶은 진리를 살아내는 것입니다. 진리를 말할 뿐만 아니라, 살아내신 예수님을 본받아 진리를 살아낼 때,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라고 말은 하지만, 말하는 사람의 삶 속에서 사랑이 전혀 없다면 누구도 말하는 사람의 모습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구원이 우리 영혼의 기쁨이 됩니다.”라고 말하지만,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삶 속에서 구원으로 인한 기쁨이 하나도 나타나지 않고 매일 슬픔과 우울 가운데 있다면 그 누구도 그 사람의 삶을 통해서는 구원을 기대하거나 갈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진리를 말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처럼 진리를 살아내야 합니다.

“진리를 살아낼 때 변하지 않는 사람과 변하는 사람”

이처럼 우리는 진리를 말하고 살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삶을 살아낼 때, 변하지 않는 사람과 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먼저 변하지 않는 사람은 진리를 말하고 살아내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진리가 기준이 되기 때문에 그 사람의 삶과 신앙은 변함 없이 하나님을 향하게 됩니다. 다음으로 변하는 사람은 바로 진리를 듣고, 진리를 살아내는 사람을 본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듣고, 본 진리로 인하여 믿음이 생길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 속에 하나님을 주인공으로 모실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대지3) 예수님은 생명이 되십니다.

마지막으로 본문은 예수님께서 자신이 생명이 되신단고 말씀하십니다. 생명은 살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살아 있음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생명이 되신다고 했을 때, 우리가 그 예수님과 함께 하면 생명을 얻고,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상태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모든 것을 우리는 한 단어로 무엇이라고 말합니다. “구원”이라고 합니다. 결국 생명이신 예수님, 그분과 함께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생명되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소지1)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사람들의 삶: 두려움이 없는 삶

첫째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삶은 “두려움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삶을 살아갑니다. 생명이 있는데, 그것도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으니 이 세상에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몸은 죽여도 내 영혼을 누구도 죽일 수 없음에 우리는 두려움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소지2)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사람들의 삶: 여유로운 삶

둘째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삶은 “여유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여유가 돈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 그 안에서 여유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가지면 가질 수록 여유보다는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이 심각할 정도로 증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음으로 생명을 소유한자는 진정으로 “여유로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 누구도 줄 수 없는 생명이 그에게 있고, 죽어도 다시 살아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하는 구원이 그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땅에서 살아갈 때, 조금 없고, 조금 부족해도 그 사람의 삶에서는 여유가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진짜 믿음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세요. 조급함이 없습니다. 걱정꺼리가 있어도 그것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영원한 생명되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붙잡고 우리 삶에도 생명되신 예수님이 함께하심으로 두려움없고,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결론

말씀의 결론을 맺습니다.

“오직 한 길입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자신이 구원의 유일한 통로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으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다른 문제와 염려 때문에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어떤 염려와 걱정 앞에서도 오직 한 길 되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서 상황을 초월하는 능력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뻔한 사실에 능력이 있다.”

어쩌면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뻔한 사실일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본문의 말씀이 말하는 예수님과 그 예수님을 닮아서 살아가는 삶들이 우리에게 누구도 줄 수 없는 능력이 됨을 믿고 살 수 있기를 원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 예수님! 이 분을 따라서 살아가야 구원이 있고, 그 구원이 우리에게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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