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4장 8-17,25,27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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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신앙
■말씀: 요한복음 14:8-17, 25-27
■주제: 성탄의 삶을 사는 성도는 경건함으로 본이 되는 삶이다.
■교리: 변화와 성장,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
■필요: 성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거룩한 백성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이미지: 본이 되는 삶, 성화
■미션: 성도는 거룩한 삶을 통해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고 그러한 삶을 통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명이 있다. 
■설교 형태: 이야기 중심의 귀납적 설교
8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25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본문배경
오늘 말씀은 지난 5월 25일 말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13장에 시작하여 16장까지 이어지는 예수님의 고별설교, 즉 십자가 고난 전날 밤인 목요일 밤에 최후의 만찬을 전후하여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보도한 가사의 연속되는 부분이다. 실제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이 내일로 다가온 시점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떠남으로 인해 남게 될 제자들의 두려움과 혼란에 대해서 위로하고, 더욱 강한 믿음으로 이를 잘 대처하도록 교육하고자 했다. 사실 예수님은 고별설교를 시작하시면서 13장에서는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가룟 유다의 배반과 베드로의 부인에 대해서 예언하셨고 14-16장은 십자가 수난 및 부활 승천 이후 세상에 남게 될 제자들을 향한 위로의 약속, 핍박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다.
요한복음 14장은 5절에 도마, 8절에 빌립, 22절 유다 등이 제기한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5절을 보면, 도마가 예수님께 “주님,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 못하는데, 저희가 그 길을 어떻게 알겠습니까?”라고 묻고 있고, 8절을 보면, 빌립이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보여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라고 질문하고, 22절에 그때, 가룟 사람이 아닌 다른 유다가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나타내지 않으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라고 묻고 있다. 이러한 질문의 형식을 따라 두려움 속에 남게 될 제자들을 향하여, 더 나아가 공중권세 잡은 자들이 득세하여 고난과 핍박이 더욱 거세지는 세상에서 복음 사역을 감당해야 할 모든 세대의 성도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말씀을 주고 있다. 
조금 더 세분해서 살펴보면, 1-7절의 말씀은 앞장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의기소침해진 제자들에게 진리의 말씀으로 위로하고 용기를 심어주는 장면이다. 예수님은 불안해하는 제자들에게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라는 말씀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라는 위로의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다. 그럼에도 도마가 “주님,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 못하는데, 저희가 그 길을 어떻게 알겠습니까?”라고 묻자 예수님께서 “내가 바로 그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8-15절은 예수님의 자기 선언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수님의 그 신성을 믿지 못하는 빌립이 아버지를 보여 달라는 요청에 예수님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있었는데, 아직도 너는 나를 모른단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것이나 다름이 없는데, 어떻게 네가 '저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라고 말하느냐?”라고 말씀하셨다. 빌립은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몰이해로 인한 질문이었고 예수님은 예수님을 본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속성, 성품, 뜻, 계획 등을 알 수 있다고 하셨다(10절). 이 말씀은 하나님은 영으로 존재하시면서 다양한 신의 성품으로 나타내신다는 사실이다.
이어서 예수님은 두 가지 차원에서 약속의 말씀을 하시는데, 하나는 “믿는 사람은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을 그 사람도 행할 것이고 심지어 이보다 더 큰 일들도 행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이 일은 보혜사 성령을 통해서 권능을 받고 그 힘을 받아 담대히 복음 전파 사역을 감당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과 일맥상통한다(행 1:8; 2:1-13). 그 일을 행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도 그 영광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한다(12절). 두 번째는 누구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무엇이든지 응답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14절). 그뿐 아니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즉 사랑의 계명을 지키면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구하겠고, 영원히 함께 있을 보혜사를 보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15-16절). 그리고 그분이 오시면 모든 것을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실 것과 평안을 주신다고 말씀한다(17, 25-27).
■신학적 메시지
오늘 말씀에서 발견하게 되는 신학적 메시지는 “불가능한 가능성”이다.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는 방식에 있어서 그 주된 열쇠는 바로 삼위일체 신앙에 있다. 오늘 말씀에는 성부(아버지), 성자(예수님), 성령님이라는 삼위 하나님의 관계성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원리를 제시해 주고 있다. 예수님은 자신과 아버지가 하나님을 강조하고(동등성), 아버지가 아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신다고 말씀하신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자신이 떠나신 후 아버지로부터 보내실 성령님을 약속하시고 성령님께서 제자들 안에 영원히 내주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사실 기독교 교리(신학) 중 가장 이해하기 어렵고 신비스러운 내용 중의 하나가 바로 삼위일체에 관한 내용이다. 이 내용 중에서 “하나의 실체”(una substantia) 안에 세 위격(tres personae)라는 내용이 있다. 여기서 “실체”는 하나님의 본질에 관한 내용이다. 삼위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이라는 신성을 가진 실체라는 말이다. 또한, 세 위격은 세 분의 인격성 또는 독립성을 가진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성부 하나님의 인격성, 성자 예수님으로서의 인격성, 성령의 하나님으로서의 인격성으로 구분된다는 의미이다. 이 세 위격은 서로 구분되지만, 본질에 있어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서로 구분되지 않고 서로 깊은 관계성 속세 존재한다. 예를 들어 성자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을 통해서, 성령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성자 예수 안에서, 성부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서 성자 예수 안에서 존재한다. 
이러한 가르침 초대교부 터툴리안이 처음으로 ‘삼위일ㅊ’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양태론과 종속론에 반대하는 가르침이었다. 니케아 공의회(325년)와 콘스탄틴노플(381년) 횡의에서 삼위일체 교리를 확립하게 되었다. 아리우스는 “성자는 창조된 존재이며, 성부와 동일한 본질이 아니다(there was a time when the Son was not)”라는 주장을 펼치면서 성장의 신성을 부정하고 성자를 피조물로 격하시키는 종속론적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이에 반대하여 아타나시우스는 “성자는 성부와 동일본질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이 정통 교리로 채택되어 니키아 신조로 발표되었다. 그후 성령의 신성에 대한 논쟁도 일어났는데, “하나의 본질에 세 위격”이라는 공식을 발전시켜 삼위일체를 명확히 했다.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이 주장이 채택되어 니케아-콘스탄니노플 신경이 확립되었고 성령의 신성이 공식화되면서 삼위일체 교리의 최종적인 틀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서방 교회 삼위일체론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하나의 신성 안에서 세 위격이 존재한다.”라고 주장했다. 필리오케 논쟁에서 성령이 성부에게서뿐만 아니라 성자에게서도 출발한다는 내용이 지지를 받았다. 그 이후 많은 학자가 삼위일체에 관한 주장을 펼쳤는데, 위르겐 몰트만은 “사회적 삼위일체론”을 강조했다. 성부, 성자, 성령은 세 분의 독립된 위격으로서 서로 간에 사랑과 교제의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러한 관계적 존재 방식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삼위일체 내적 관계는 인간 사회의 공동체성, 정의, 해방을 위한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삼위일체 교리는 단순한 이성적인 이해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계시와 교회 공동체의 신앙 체험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에서 출발해야 한다. 삼위일체론은 삼위 하나님의 관계가 우리의 신앙생활, 교회공동체, 그리고 사회적 삶에 어떤 의미와 함의를 가지는지 분명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삼위일체가 하나님의 존재 방식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 방식을 통해서 도저히 불가능한 일처럼 보이는 일들을 이루어가시겠다는 선언이다. 이는 맡은 자가 하는 것이 아니라, 맡은 자를 통하셔 성령의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의미이다. 
설교문
서론(불가능성에 대한 공감)
여러분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일이나 사건 그리고 환경’을 만나 보신적 있습니까? 그런 일을 날 때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우리가 보통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할 때는 ‘내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거나, 어떤 노력을 해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전혀 찾을 수 없을 때’ 그렇게 말합니다. 사전적으로 보더라도, 불가능(不可能)은 ‘이루거나 실현할 수 없는 상태, 어떤 일이 현실적으로 또는 이론적으로 일어날 수 없다고 판단되는 상태’라고 정의합니다. 어쩌면 이러한 불가능하다고 느끼는 감정은 그 일 자체보다 우리의 심리 안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안돼.’, ‘나는 뭘 해도 안 돼’, ‘나는 절대 그 일을 해낼 수 없어’,‘저건 나같은 사람에게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야.’라는 표현은 사실 현실보다 내면의 연약함으로 인한 토설이기도 합니다. 심리적으로 보면, 불가능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실패할까 봐, 거절당할까 봐, 손해 볼까 봐 시도조차 하지 않는 두려움인지 모릅니다. 이러한 모습은 실패라는 고정 관념에 자신을 가두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나는 원래 수학을 못 해, 나는 원래 성격이 그런 사람이야.’라는 말은 자신을 불가능한 사람으로 가두는 심리적 연약함입니다.
또한, 현대인들을 불가능하게 느끼게 하는 문제들을 살펴보면, 경제적인 어려움입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또 다른 가능성을 제로-베이스로 만들게 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또 다른 도전 자체를 하지 못하게 만드는 불가능의 함정입니다. 그리고 건강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이 불편하고 건강이 좋지 못하면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 자체가 두렵습니다.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그밖에도 관계의 단절로 오는 불가능성, 불확실한 미래로 인한 희망을 꿈꾸지 못하게 하는 불가능성 등이 우리의 발목을 잡아 우리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요소들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일로 불가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판단하고 규정하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은 그런 불가능성의 우상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에게 불가능을 가능성으로 바꾸어 가는 신앙 원리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과연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는 일이 가능할까요?
2. 성경 속 불가능에 관한 하나님의 개입하심
 a. 성경의 이야기
  오늘 말씀은 빌립의 질문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고별설교를 하셨습니다. 고별설교는 요한복음 13자에서 시작해서 16장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중 13장에서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가룟 유다의 배반과 베드로의 배반에 대해서 예언하셨습니다. 그 후 이어지는 14장에서는 도마의 질문에 이어서 빌립의 질문에 관한 이야기가 기록되고 있습니다. 빌립은 도마가 “주님,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 못하는데, 저희가 그 길을 어떻게 알겠습니까?”라는 질문에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셨고 이어서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라고 말씀하시자, 빌립은 그 말씀을 듣고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라고 요청합니다. 
예수님은 빌립의 이 요청을 듣고 9절에서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라고 말씀하셨고, 10절에서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랴”라고 반문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11절에서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그 일을 믿는 자는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할 수 있고 큰일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12절).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난 후 두 가지 약속을 하십니다. 하나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는 모든 것에 응답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또한, 또 다른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b. 문제 상황(불가능)
예수님의 이러한 약속과 위로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신적 능력을 이해할 수 없었기에 예수님의 그 같은 말씀을 이해할리 만무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확신이 가득했습니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가치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오랫동안 기대했고 고대했던 로마로부터의 독립을 쟁취할 꿈이 예수님에게 그대로 반영되었기에 그들의 기대와 예수님의 기대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렇게 학수고대하며 따랐던 예수님과 이별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 가룟 유다의 배반과 베드로의 배신 등에 관한 이야기는 제자들을 더욱 두렵게 만들었습니다. 
제자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단서는 요한복음 20장 19절에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라는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다음날 예수님이 잡히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을 보았던 제자들은 두려움이 더 크게 엄습해 왔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이 자신들에게도 해를 끼칠까 봐 무서워서 숨었던 것입니다. “문들 닫았더니”라는 표현은 단순히 닫은 것이 아니라 문을 잠가서 외부와 완전히 차단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렇게 두려움은 스스로 가두게 하고 불가능한 사람으로 가두어 버립니다. 
 c. 하나님의 개입과 명령
하나님은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찾아오시고 그 문제를 해결할 말씀을 주십니다. 14절을 보면,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원리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바로 우리 주님께서 직접 일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기도는 내가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하실 공간을 만드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33장 3절에서도 “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절박한 마음으로 부르짖는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상황과 그 시간 속에서도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이 모든 일이 가능한 신앙의 원리를 알려 주시는데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실 보혜사 성령님, 진리의 영을 우리에게 보내 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와 함게하시면서 세상이 주시 못하는 평은 우리에게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이 평안이 곧 이 모든 일을 감당하게 하는 능력이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소유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합니다(27절)
  d.순종과 기적 
이제 이 명령 앞에 우리의 자세입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받을 것인가? 제자들처럼, 예수님에 대한 몰이해 속에서 그냥 흘려보내는 말씀으로 들을 것인지, 아니면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들고 순종할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여전히 나의 가치관, 나의 인생의 목표와 확신이 예수님을 오해하게 하고 있지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제자들은 지금 당장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들은 이 말씀을 수용했습니다. 그리고 순종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52절 이하에 보면, 그들은 49절에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라는 말씀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늘 성전에 머물면서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 결과 사도행전 2:1절 오순절 날이 이르렀을 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2절과 3절은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한 마디로 “성령 충만함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모이기를 힘씀고 기도와 찬양을 멈추지 않았을 때, 하나님의 정하신 그 때, 그 장소에 하나님의 놀라운 임재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성령 충만함은 이제 불가능을 가능게 하는 신앙의 원리를 보다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베드로의 오순절 날 설교를 통해서 예수님을 믿게 된 숫자가 삼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4장에 의회 앞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서 믿는 사람이 오천 명이나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나아갈 때 우리가 알 수 없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3.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신앙원리
오늘 말씀에서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신앙의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는 신앙의 원리에 대해서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a.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신뢰
첫째는 하나님 능력에 대한 신뢰입니다. 이 신뢰는 기도로 나타납니다. 기도는 연약한 자의 몸부림이 아니라,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공간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사도들은 이 믿음이 있었기에 기도하기 힘썼습니다. 기도에 힘썼을 때에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놀라운 이적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42-43은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도했을 때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놀라운 기사와 표적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원리는 언약의 말씀에 따라 순종할 때 기름 부음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채움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성령 충만 받았을 때 불가능을 가능한 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8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이라고 말씀하고 있고,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복음 전파 사명을 잘 감당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0:38에도 보면,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부으심을 받았을 때 마귀를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는 능력을 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방식이 바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방식입니다. 사도행전 10:44에도 보면, 베드로가 말씀을 전할 때, 성령이 말씀 듣는 자들에게 임하셨고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놀라게 되었습니다. 복음의 확장은 이렇게 성령 충만한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b. 언약의 말씀에 대한 순종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반응한다는 것은 말씀을 내 말씀으로 받들고 그 말씀에 순종하고 실천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에 대한 응답도, 성령 충만함도 언약하신 말씀에 순종한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믿음 안에서 자발적인 순종은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이적과 표적을 나타내는 신앙의 중요한 원리입니다. 
 c. 하나님 중심(영광을 위한 목적)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기도할 수 있는 믿음과 성령 충만을 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우리가 하는 모든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나의 나된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라는 바울의 고백처럼, 나의 나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이기 때문에, 내가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게 되는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위임되고 맡겨진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사역을 통해 주님의 그 인격이 드러나고 주님의 그 성품이 드러날 때 우리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이 증명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신앙의 원리가 바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입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입니다.
4. 결론 및 적용(우리의 삶에 적용하기)
a. 구체적인 적용점 제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의 두려움은 무엇입니까? 불가능하게 만드는 환경은 무엇입니까? 질병입니까? 경제적인 문제입니까? 아니면 관계의 문제입니까? 
만약 절망이 나를 짓누르고, 불가능한 일로 인해 삶의 무게를 느끼신다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기도하기를 힘쓰십시오.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일하실 줄 믿습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서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은 불가능한 일을 만나더라도 우리는 결코 포기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여 간절히 기도할 때 성령 충만 받고 능력 받아서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는 주님의 그 놀라운 이적을 보게 될 줄 믿습니다. 믿음의 기도로, 성령 충만함으로 모든 두려움과 절망을 이겨내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b. 마무리 멘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 앞에 불가능한 일이 놓여 있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가능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시길 바랍니다. 절망적인 상황이 나를 짙게 짓누르고 있다고 할지라도 언약의 말씀에 순종하여 기도할 때 모든 두려움을 이기게 될 줄 믿습니다. 만약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느껴진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나를 두려워하게 하는 악한 마음은 내게서 빠져나갈지어다’라고 믿음으로 선포하시길 바랍니다. 믿음으로 선포할 때, 모든 두려움과 절망, 그리고 우울감이 사라질 줄 믿습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는 능력이 나타날 줄 믿습니다. 이런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
우리를 위대한 사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여서 우리의 눈을 열어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시고, 믿음이 있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드리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보게 하옵소서. 우리를 통하여 일하심을 보게 하옵소서.
성령님, 무엇보다도 우리의 심령 가운데, 우리 삶 가운데 충만하게 임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존재 방식을 통하여 우리에게 계시하시고 증명하듯이 우리의 삶의 방식을 통하여 하나님 되심을 증명하게 하옵소서. 무엇보다도 우리의 인격이 하나님 닮은 성품되게 하시고, 우리의 사역이 오직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사역이 되게 하옵소서.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하셨으니 순종하며 헌신하며 충성하는 삶을 통하셔 하나님의 그 놀라운 구원의 신비가 드러나게 하옵소서. 그러한 삶되게 하시고, 그러한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를 통하여, 우리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더욱 확장되는 은혜가 있게 하옵소서. 위대한 우리의 사역을 통하여 더욱 확장되는 은혜가 있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작성자 김성우 목사
대전신학대학교 예배·설교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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