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Notes
Transcript
서론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예배드릴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지난주 우리는 우리의 언어 생활에 대해 함께 나누었습니다. 말은 참 쉬운 것 같지만, 실은 우리의 내면을 가장 잘 드러내는 도구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도우심 없이는 참으로 선한 말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덕을 세우는 말로 서로를 세우고, 듣는 자에게 은혜를 끼치는 자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도 지난주와 같은 본문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특별히 에베소서 4장 30절,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함께 묵상하겠습니다.
1.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 성령의 슬픔
1.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 성령의 슬픔
‘근심하다’라는 단어는 원어로 보면 ‘슬퍼하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걱정이나 염려가 아니라, 사랑하는 자의 잘못을 보고 가슴 아파하는 깊은 슬픔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계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거룩하지 못하게 살고,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릴 때, 성령님은 슬퍼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성령 안에서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성령님으로 인해 구원을 확증받았다는 선언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공로에 달린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에 의해 안전하게 보증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시기에, 우리가 새 사람답게 살지 못할 때, 성령께서는 슬퍼하십니다. 그리고 그 슬픔은 우리를 책망하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다시 세우시기 위한 마음의 움직임입니다.
마지막 날 하나님 나라가 완전히 회복될 때에는 슬픔도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는 온전한 새사람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땅을 사는 동안 우리가 끊임 없이 죄로 물든 우리의 본성과 싸움을 하는 동안에는 성령께서 슬퍼하실 것입니다.
성령님의 근심, 슬픔은 정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 일을 피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성령을 슬프게 하는 삶 – 버려야 할 것들
2. 성령을 슬프게 하는 삶 – 버려야 할 것들
사도 바울은 이어서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삶의 모습들을 아주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31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새 사람의 삶은 옛 사람의 행위를 버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악독: 타인을 향한 미움과 화해를 거부하는 마음입니다. 쓸개, 쓰다, 이것은 피하고 싶은 것이지요. 양약고구(양약은 입에 쓰다)의 의미와는 다른 것이지요. 다른 사람에게 쓴 마음이 들게 하는 것으로서,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일, 다른 사람과 화해를 거부하는 마음,
노함과 분냄: 통제되지 않은 분노로 인해 상대방을 상하게 하는 말과 태도입니다. 앞에서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는 것을 참고로 보았을 때에,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외부로 표출하여 상대방을 힘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견책과 권면과는 다릅니다. 노함과 분노는 내가 중심인 것입니다. 내가 노와 분노를 터뜨리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견책과 권면, 즉 징계는 내가 중심이 아니라, 상대방이 중심입니다. 그 대상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인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서 거기에는 사랑이 바탕이 됩니다.
떠드는 것: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려고, 상대의 감정과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큰소리를 내는 태도입니다. 자신의 불평을 알리려고 작정하여 큰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학교 다닐 때에 친구들과 이야기 하는 것을 떠드는 학생이라고 칠판에 이름을 적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큰소리를 내는 자입니다. 이것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자기의 뜻을 관철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가 통제하려는 마음입니다.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고,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하여 설교를 이용한다면 아무리 조곤조곤 이야기 해도 그것은 떠드는 것이 됩니다.
비방(훼방): 사실이 아닌 말로 타인을 깎아내리는 것, 신성모독까지 포함될 수 있습니다. 거짓을 버리는 것과 연결이 됩니다. 신성모독도 같은 단어입니다. 신을 왜곡하는 것이 신성모독입니다. 계시는 하나님이 없다고 하거나, 하나님을 우리의 주인이 아니라 우리의 종이라고 하는 것들이 모두 신성모독이지요. 그것은 거짓말을 두루두루 퍼뜨리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다른 사람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작은 것 하나를 보면서 전체를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 모두 그런 것입니다. 실제로 사람과 만나서 대화하고 시간을 보내다보면 다른 사람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악의: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을 해치려는 마음입니다. 복수심과 증오의 뿌리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더욱 강조하여 모든 악의를 버리라고 합니다. 악한 의도를 버리라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하려는 마음으로 하는 모든 시도를 말합니다. 다른 사람을 괴롭게 하려는 것이지요.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복음의 진수가 바로 악의로 인하여 더럽혀지고 포기되는 것이지요.
이 모든 것은 성령님을 슬프게 하는 삶의 열매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다.
3. 성령을 기쁘시게 하는 삶 – 갖추어야 할 것들
3. 성령을 기쁘시게 하는 삶 – 갖추어야 할 것들
그렇다면, 무엇을 대신 채워야 할까요?
에베소서 4장 32절 말씀입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서로 친절하게 하며: 누구에게나 부드럽고 온화하게 대하는 태도입니다. 나에게 좋은 사람에게만 그렇게 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모두에게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며: 타인의 아픔과 실수에 공감하는 마음입니다.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와 변명을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C.S.루이스 “진정한 용서란 모든 정상이 참작되고도 변명의 여지 없이 남아있는 죄를 그 속의 모든 섬뜩함과 더러움과 비열함과 악의까지도 똑바로 응시하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해자와 온전히 화해한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도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최고의 방식입니다.
성경은 반복해서 말합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리라” (마 6:14)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 18:3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막 11:25)
우리가 받은 용서를 생각할 때, 우리는 결코 용서하지 못할 사람이 없습니다.
4. 맺음말 – 성령을 기쁘시게 하라
4. 맺음말 – 성령을 기쁘시게 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은 단지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기뻐하시는 삶, 즉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말을 바꾸고 태도를 바꾸는 것이 단지 도덕적 삶을 살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슬퍼하지 않도록,
또한 우리가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함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 오늘도 우리를 변화시키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그 음성에 순종하여, 악을 버리고 선을 선택하며,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아갈 때,
우리 공동체는 더욱 아름답게 세워질 것입니다.
성령님을 기쁘시게 하는 여러분의 삶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