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내 신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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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왕상 15:1-15절
제목 : 결국은 내 신앙이다.
찬 357장 주 믿는 사람 일어나
오늘 새벽에 나눌 말씀의 제목은 ‘결국은 내 신앙이다’입니다. 사람들은 신앙을 이야기할 때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부모님이 권사님이셨어요.” “우리 집안은 대대로 장로님 가문입니다.”
물론 믿음의 가문에서 태어나는 것이 귀한 복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오늘 본문을 보면 깨닫게 됩니다.
신앙은 결국 ‘내 것’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부모의 믿음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물론 부모의 깊은 기도의 응답이 우리의 열매일 수도 있지요. 또 교회의 분위기만으로는 견고한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물론 건강하고 좋은 교회에서 믿음이 바르게 자라는 것도 맞지만요,
결국은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떤 믿음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유다의 두 왕, 아비얌과 아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사람들은 남과 북으로 나뉘게 되었던, 남유다의 왕 르호보암의 아들과 손자입니다. 르호보암은 솔로몬의 첫째 아들이자 분열왕국에서 남유다의 첫번째 왕이었는데요, 하나님과 백성 앞에 지극히 악한 왕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모습은요 르호보암의 아들 아비얌에게도 이어집니다.
3절 말씀 보세요. “아비얌이 그의 아버지가 이미 행한 모든 죄를 행하고 그의 마음이 그의 조상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나”
어떻게 보면 아비얌 왕은 아버지의 르호보암의 악에서 더 강화되는 모습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아비얌 왕은 짧은 3년의 통치기간을 가집니다. 그런데 놀랍게도요 이 아비얌의 아들은, 아사라는 사람이었는데, 그가 왕이 되었을 떄에는요, 그의 아버지가 했던 모든 악행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거룩한 개혁을 단행합니다. 아버지의 어둔 그늘, 여전히 힘이 있는 태후의 어둔 그림자를 단호히 거두어냅니다.
이 모습은요, 아버지 아비얌과 아들 아사의 믿음이 전혀 달랐다는 것을 오늘 본문 말씀은 이야기해줍니다. 이게 참 신기한거죠. 보통은 자녀들은 부모를 닮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신앙에도 굉장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믿음이 좋다고 해서 꼭 자녀들이 믿음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반대로, 아버지가 믿음이 좋지 않다고 해서, 그 자녀들이 꼭 믿음이 좋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물론요, 자녀는 부모를 통해 배우기에, 부모가 하나님을 어떻게 믿고 섬기는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요, 우리는 가정 환경만은 탓할 수 없다는거에요.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실패를 다른 환경들을 탓합니다. 내가 이만큼 되지 못한 것은, 우리 부모 탓이었고, 나의 환경 탓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영향이 있었겠지요. 그런데 꼭 그런것은 아닙니다.
신앙도 비슷합니다. 우리는 만약 우리의 부모가 우리에게 좋은 믿음을 물려주지 않았다는 것만을 탓할 순 없습니다. 어떠한 사람들은 좋지 않은 환경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잘 믿고, 섬기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우리 부모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떠한 믿음과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아사왕은 그랬습니다. 악을 따르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지만, 그는 왕이 되었을 때, 그의 할아버지 다윗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러한 신앙인으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우리의 환경을 탓하고, 내 자라온 태생과 내 가족을 탓하는 사람이 아니라요. 내 스스로라도 하나님 앞에 결단하고 믿음으로 바로 설 수 있는 은혜가 있길 바랍니다. 이 새벽시간도 하나님께 이런 은혜를 구할 수 있는 복된 기도 시간 되길 바랍니다.
두번째 우리가 이 본문을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은요, 아사의 믿음의 결단은, 그의 가문과 나라를 살렸다는 것입니다. 9-14절의 내용을 보면요, 아비얌의 아들 아사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죠. 11절에 보면 아사에 대해 이렇게 평가합니다.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다” 그는 정직하게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행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행동으로 증명해 냅니다. 아사는 나라에 퍼져 있던 우상들을 제거합니다. 심지어 자기 어머니 마아가가 아세라 우상을 만들자, 태후의 자리에서 폐위시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진짜 믿음입니다.
인간적으로 보았을 때, 자기 어머니의 일인데, 그것도 태후라는 자리에 있는 마아가를 폐위시키는 것이 쉽겠습니까. 그럼에도 아사 왕은요,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보다 우선하지 않는 믿음의 태도를 보였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때로는 아픔을 동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때로는 타협을 거부해야 할 때도 있고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결단이, 그 가문을 새롭게 하고 나라를 회복시키는 길이 됩니다.
물론 아사 왕이 예수님과 동급은 아니지만요, 예수님의 길이 바로 그러한 길이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믿음의 선택과 순종을 통하여, 모든 죄인을 구원하셨습니다. 사람을 살리고, 가정을 살리고, 나라를 살리는 길은 다른 길이 없습니다. 사람의 만족을 채우는 일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믿음의 삶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결단을 하는 믿음의 사람을 통하여, 그 사람의 주위에 있는 자들을, 공동체를 살리실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믿음의 순종을 통하여, 우리의 이웃과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복의 통로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아비얌은 다윗의 후손이라는 가문의 영광을 가졌지만
하나님의 마음에는 합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사 왕은 같은 집안, 같은 환경에서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신앙은 전수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경험되고, 선택되고, 순종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환경은 우리에게 영향을 줄 수 있지만,
내가 지금 하나님 앞에서 어떤 결단을 하며 살고 있는가
그것이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습니다.
오늘 이 아침 우리는 분명히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결국은 내 신앙입니다.
부모의 믿음이 아니라,
교회의 분위기가 아니라,
내가 지금 하나님 앞에 어떤 태도와 중심으로 서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가 있는 환경이 혹 어렵고 복잡하다 할지라도,
믿음은 환경을 뛰어넘는 결단의 선택입니다.
아사 왕처럼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사람의 눈이 아니라 여호와 보시기에 합당하게 살기를 결단합시다.
그리고 그 믿음이 우리 가정과 교회, 나라를 살리는 믿음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이 새벽,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하나님 앞에 믿음의 고백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주님의 말씀 앞에 우리의 삶을 비추어 봅니다.
아비얌의 길을 따르지 않고,
아사 왕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믿음으로 결단하며 살아가는 자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출신과 환경을 핑계 삼지 않고,
오늘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떤 믿음을 가지고 서 있는지 돌아보게 하시고,
이 아침에도 다시 한번 믿음의 길을 선택하게 하옵소서.
타협보다 순종을, 안락함보다 정결함을,
사람의 인정보다 하나님의 기쁨을 선택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향한 고백이 되게 하시고,
가정과 교회와 이 나라를 살리는 믿음의 씨앗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