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보다 아름다운 신뢰(대상 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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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보다 아름다운 신뢰

역대상 4:9–10 NKRV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사역
9. 그리고 야베스는 그의 형제들보다 존귀한 자였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내가 고통으로서 낳았다”고 말하면서 그의 이름을 ‘야베스’라고 불렀다.
10. 그리고 야베스는 이스라엘 하나님께 “만일 당신이 나에게 복주신다면, 또한 나의 지경을 더 넓혀주소서. 그리고 당신의 손이 나와 함께 하옵소서. 내가 ’라고 말하면서 불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가 구하는 모든 것들을 인도하셨다.
‘천국보다 아름다운’이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인생의 반을 불구로 살아야만 했던 남편을 평생을 돌보면서, 일수로 돈을 벌면서, 평생을 다른 사람에게 모욕을 받아야만 했던 한 여인이, 먼저 하늘에 간 남편을 따라 천국에 가서, 남편과 함께 살아가는 내용을 담은 드라마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 아내가 환생을 하는데, 남편은, 평생 자신이 그 아내를 힘들게 하는 존재임을 깨닫고, 아내만 환생하게 합니다.
그리고 환생한 아내가 또 세상에서의 삶을 살아가다가, 마지막 죽는 순간에, 이 남편이 죽음을 앞둔 아내에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 둘이 서로 대화를 하는데, 이 대화가 저한테 뭔가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이렇게 말해요.
“나 어땠어요?”
남편은 아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기대 이상이었어. 수고 많았네 당신. 이번 생애도.”
그런데, 마지막 아내가 남편에게 하는 이 말이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그래도 당신 없인 안 되겠어요. 난.”
이 드라마의 메시지가 아주 분명해보였습니다.
우리가 천국을 살아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지 않는 천국은 무의미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지옥같은 인생을 살아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그곳이 천국보다 아름다운 곳이라는거죠.
이스라엘 민족은,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당하고, 지옥과 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그들의 왕은 두 눈이 뽑혀 포로로 사로잡혀갔고, 왕의 아들들은 모두 처형당했습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은 철저히 짓밟혔고, 그들을 영원히 보호해줄 것이라 믿었던 성벽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솔로몬의 영광을 보여주던 이스라엘의 왕궁조차 모두 무너졌고, 그들의 모든 금은 보화는 바벨론의 재물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을 호령하던 귀족들과 많은 사람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사로잡혀갔습니다.
그리고 47년이 지나서 그들을 괴롭히고 짓밟았던 바벨론이 멸망당했지만, 여전히 이스라엘은 페르시아라고 하는 나라의 지배 아래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들의 삶은, 마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신 것처럼 고통스러운 시간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페르시아의 지배 아래 살아가던 바로 그 시기에, 역대기서의 저자는 펜을 들어 역대기서를 기록했습니다.
그 지옥과도 같은 삶을 살아가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서, 역대기의 저자는, 역대기서의 첫 시작을 어떻게 보면 조금 지루한 족보들을 기록함으로써 시작합니다.
이 족보들은 무려 9장까지 지속됩니다.
역대기의 저자는, 왜 역대기의 첫 시작을 이렇게 긴 족보로 시작하고 있을까요?
아담부터 시작하는 이 긴 족보를 통해서, 역대기서의 저자는 바벨론의 포로로 사로잡혀가는 바로 이 고통의 상황 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역사는 단 한순간도 실패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멸망과 함께 끝나지 않았고, 포로기의 상황 속에서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호서대학교의 기독교학부 교수인 임태수 교수는, 역대기의 족보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포로 후 공동체에 이르기까지 구약성서 전체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사의 요약이다. 이 족보에 나타난 이름들을 떠올리게 되면, 이 인물들과 연결된 하나님의 구원사가 떠오르게 된다… 그러므로 이 족보는 역사를 대신한 일종의 역사요약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독자들은 이름만 들어도 그 인물과 관련된 구약의 역사를 떠올릴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역대기서의 족보는, 포로기와 같은 절망적인 순간의 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언제나 함께 하셨고,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인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라고 하는 그 말씀을 신실하게 이루어가고 계셨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족보의 말씀 정 한 가운데, 야베스의 기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베스’라고 하는 이름은, 9절에서 그 의미가 설명되고 있는데,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개역개정 성경에는 ‘수고로이’로 되어 있지만, NIV 성경에서는 “I gave birth to him in pain”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내가 고통 가운데 낳았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야베스의 이름은 ‘고통’, ‘수고’, ‘근심’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야베스는 고통 가운데 있는 자신의 인생에 복을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야베스가 구하는 복은, 자신의 지경을 넓히는 것이고,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근심이 없어지게 해달라는 간구는, 자신의 이름, 즉 자신의 삶을 역전시켜달라는 간구였습니다.
야베스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는 이유는, 주님의 손이 함께 하지 않으면, 자신의 삶을 바꾸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야베스의 기도 가운데에는, “주의 손으로 도우사”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대기에서의 기도는,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철저하게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겸손의 태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역대하 7:13-15의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역대하 7:13–15 NKRV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이제 이 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역대상 5:20에서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역대상 5:20 NKRV
도우심을 입었으므로 하갈 사람과 그들과 함께 있는 자들이 다 그들의 손에 패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싸울 때에 하나님께 의뢰하고 부르짖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응답하셨음이라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주님을 붙들고, 주님의 도우심과 구원을 간절히 바라는 기도가, 바로 역대기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기도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역대기에서는, 항상 이러한 기도 속에는 하나님의 응답이 이루어짐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앞서 읽은 두 절의 말씀 속에서도, 하나님의 응답이 이루어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시 역대기서의 관점으로 돌와와서 생각해봅시다.
역대기서의 저자가, 바벨론과 페르시아의 지배 속에서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신 것과 같은 상황 속에서도, 족보를 통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함께하심과 약속은, 여전히 폐기되지 않고, 신실하게 이루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야베스의 기도를 넣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시며, 하나님을 구하는 구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낸다는 것”입니다.
야베스의 기도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귀환자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도록 격려하고,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그들과, 또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상기시키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포로 후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왕정의 상실을 경험했고 심지어 가뭄까지 발생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가난과 토지 몰수를 겪었으며, 목숨을 위협하는 이방인 지도자들의 반대에 직면하기도 했습니다.
야베스의 기도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원했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우리가 고통의 정 한 가운데를 지나간다 할지라도, 그 모든 순간 속에서도, 역사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은 단 한치에 실수 없이, 하나님에 의해 운행되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고든콘웰 신학교의 구약학 교수인 캐롤 카민스키는 역대기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역대기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이야기다. 주 하나님은 영광스럽게 하늘 보좌에 오르셨고 모든 열방의 왕으로 통치하신다. 그분은 창조주이시고 모든 찬양을 받으실 유일한 하나님이시다. 영예와 위엄은 오직 그분의 것이며, 역대기는 분명 그분의 백성 이스라엘 안에서 또한 이스라엘을 통해서 행하신 그분의 위대한 행적에 관한 그분의 이야기다. 역대기의 풍경을 가로지를 때, 이 이야기의 목표는 개인의 삶과 환경 너머로 눈을 들어 영광스럽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을 포착하고, 상황은 다르게 보일지라도 그분이 어떻게 섭리 가운데 역사하시고 세상에 현존하시는지를 분별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실입니다.
우리에 눈에 보이는 현실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것과 같고, 때로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그 자체로 하나님이시며,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그렇기에 기도는, 자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착각하며 하나님 없이도 충분하다고 안주하기 쉬운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 없이는 안 된다고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며, 하나님께 우리의 필요와 염려를 가지고 나아가는 행위입니다.
그렇기에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눈에 보이는 세상에 대해서 눈을 감게 하는 것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행위입니다.
그렇기에 기도하는 자는,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 안에서 우리가 구하는 것들에 대해서 응답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야베스의 기도는 재정적 성공이나 사역의 성공을 보장하기 위한 것도 아니며, 고난 없는 삶을 보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우리 자신의 번영과 승리주의를 보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본문의 야베스의 기도에서 개역개정에서는 ‘주께선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으로 되어 있는데, 70인역에서는 이 앞에 ‘만일’이라는 가정 접속사가 들어가 있습니다.
이 기도는 자신의 뜻을 하나님께 관철시키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야베스의 기도는, 자신의 뜻을 아뢰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자신을 맡기는 기도였습니다.
기도는, 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하는 것이 기도하는 자의 참된 모습입니다.
비록 내가 구하는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지라도, 또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응답되지 않을지라도,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신뢰하고, 그분에 뜻에 맡기고, 그와 함께 나의 모든 근심과 염려도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것이 기도하는 자의 참된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의 마지막 말씀에서도, 야베스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언제 어떻게 응답하셨는지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야베스의 기도는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점을 보면, 비록 야베스의 기도가 그 당시에는 부분적으로 응답되었을지 모르지만, 결국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완전하게 응답되었다는 것입니다.
절망적인 상황을 지나갈 때에도,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을 기도로 붙들고,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으로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언제나 선합니다.
내가 믿던지, 믿지 않던지, 그분의 계획은 항상 선합니다.
19세기 영국의 조지 뮐러는 1844년부터 다섯 명의 친구가 기독교 신앙을 갖게 해달라고 매일 쉬지 않고 기도했지만, 3명은 그의 생전에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나머지 2명의 친구는 그의 생전에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아직 그들이 회심하지 않았지만, 나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계속 기도하고 응답을 기대한다”
그리고 결국, 조지 뮐러가 세상을 떠난 후에, 2명의 친구들마저도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전에 그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셨는지 우리는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우리는 그저 그분의 계획은, 우리가 다 헤아리지 못하는 부분에 있어서 항상 선하다는 것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계획을 신뢰하는 순간부터, 그리고 그분이 언제나 우리의 삶 속에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갖는 순간부터, 아무리 지옥과 같은 삶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삶은 천국보다 아름다운 곳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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