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관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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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26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27 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조하구나
찬송가 160장 “무덤에 머물러”
🕊️ 설교 제목:
🕊️ 설교 제목:
"살아 계신 구속자, 그날 우리는 다시 보리라"
1. 인간의 종착점에서 신앙은 무엇을 말하는가
1. 인간의 종착점에서 신앙은 무엇을 말하는가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지금 한 생명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죽음을 마주해야 합니다.
장례식은 그 사실을 냉정하게 확인시키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장례는 죽음의 침묵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욥은 모든 것을 잃고, 병든 몸으로 땅바닥에 엎드린 상태에서도,
죽음을 앞둔 이의 입에서 나올 수 없는 선언을 합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이 말은 신앙의 가장 본질적 고백입니다.
삶이 깨어지고, 육체가 무너지고, 죽음이 임박한 그 순간에도
나의 구속자, 나의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는 믿음이 욥을 붙들고 있습니다.
2. 죽음은 끝이 아니라, 부활을 위한 ‘씨 뿌림’입니다
2. 죽음은 끝이 아니라, 부활을 위한 ‘씨 뿌림’입니다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이 고백은 단지 영혼의 존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욥은 몸이 다 망가지고도 ‘하나님을 뵐 것’을 확신합니다.
여기에는 신약의 부활 신앙이 이미 담겨 있습니다.
죽음은 인생의 파산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파종’**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오늘 우리가 이 몸을 흙에 묻는 것은
단지 한 존재의 종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키실 그날을 기다리는 신앙의 표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죽은 자를 땅에 묻되, 씨를 심듯 묻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고인의 몸을 부활의 믿음 안에서 땅에 맡깁니다.
3. 구속자 예수, 죽음을 넘어 우리와 함께 서실 이
3. 구속자 예수, 죽음을 넘어 우리와 함께 서실 이
욥의 고백은 단지 막연한 신앙이 아닙니다.
그는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먼 훗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이 땅에 오셔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실 사건을 예언처럼 선포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수는 우리의 구속자이십니다.
그분은 죽음을 피한 분이 아니라, 죽음을 지나 부활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그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
예수 안에 있는 모든 자들도 다시 살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날,
고인은 하나님 앞에서 다시 설 것이며,
그때 우리도 함께 그 영광의 자리에 설 것입니다.
4. 오늘, 우리는 무덤 앞에서 부활을 노래합니다
4. 오늘, 우리는 무덤 앞에서 부활을 노래합니다
욥은 말합니다:
“내가 그를 친히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리라.”
죽음은 단절이 아닙니다.
그날이 오면, 사랑하는 이를 다시 만날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하나님을 친히 뵙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장례에서 울려야 할 참된 복음입니다.
우리는 오늘 눈물로 이 몸을 흙에 묻지만,
이 무덤 위에서, 우리는 소망으로 선언합니다:
“살아 계신 구속자가 나를 기억하신다.
그날, 나는 다시 일어나 그를 뵐 것이다!”
🔚 결론
🔚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고인의 삶을 추모하고, 그 몸을 흙에 맡깁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에는 욥의 고백처럼 불타는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살아 계신 구속자가 이 모든 죽음을 기억하시며,
그날, 우리와 함께 영광 중에 서실 것입니다.
그 소망 안에서 우리는 다시 삽니다.
그리고 오늘 흙에 묻는 이 몸 역시, 하나님의 날에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찬송가 491장 “저 높은 곳을 향하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