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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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Transcript
  여러분은 맛집을 고르실 때에 어떤 기준이 있으신가요? 저는 맛있는 식당을 정할 때에 저만의 기준이 있습니다. 
  우선은 다양한 메뉴에 손대지 않는 집이어야 합니다. 메뉴가 단촐할수록 그 메뉴에 자신이 있는 집일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야기가 있어야 합니다. 가게나 사장님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내어놓는 음식들에도 연관성과 이야기가 있는 집이면 맛있는 식당은 물론 요리에 많은 연구를 한 고급스러운 식당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기억에 남는 기분 좋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속에는 예수님의 기적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이 기적은 단순히 한 사람의 질병을 치유하는 것을 넘어 그 사람의 삶을 바꾸어 냅니다. 함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길 소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두로와 시돈, 데가볼리지역을 지나 갈릴리로 돌아오십니다. 갈릴리로 돌아왔을 때에 사람들이 한 사람을 예수님 앞에 데려오며 그 사람에게 손을 얹어 치유해달라고 간구합니다. 그 사람은 귀가 먹고 말을 더듬는 혹은 말을 거의 하지 못하는 장애인이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나와서, 손가락을 그 사람의 귀에 넣고 침을 뱉으셔서 그의 혀를 만지셨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후에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고는 에바다! 하고 외치심으로 이 사람은 귀가 열리고 혀가 풀리는 치유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 치유의 기적이 제게는 다소 의식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그저 말씀만 하시면 나을 수 있게 하실 수 있으신 분이신데 왜 굳이 치유에 관련된 행동을 하셨을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상황을 아신다.

  본문을 다시 한 번 곱씹어볼 때에 저는 예수님의 인격적이심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을 무리에서 따로 데리고 나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개적으로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공간과 시간을 만드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개적으로 그를 치유하셨다면 분명 예수님의 이름은 더욱 멀리 퍼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으로 유명해지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나아온 이 사람을 구경거리나 능력을 행사하는 도구로 쓰시지 않으셨음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셨던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기적이 아닌, 그 사람만을 위한 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통하여 우리를 만나주시는 예수님은 우리의 아픔, 문제를 자신을 드러내는 도구로, 공개적으로 사용하시는 분이 아니심을 봅니다. 본문을 통해 만나는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인격적으로, 지극히 개인적으로 우리의 아픔와 문제를 다루어 가시며 한 사람만을 위한 기적, 한 사람만을 위한 회복을 위해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통하여 우리를 부르십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때에 우리는 나와 예수님만의 공간과 시간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나를 위해 역사하시는 예수님을 경험하고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역사하신다.

  이어서 예수님의 행동에 대해서 살펴보길 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에 손가락을 넣으시고 침을 뱉어 혀를 만지셨습니다. 예수님 당시 이방인들의 문화에는 우리도 그렇듯이 침에는 치유하는 효능이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해석보다 두 사람의 상황에 집중해 보겠습니다. 이 사람은 귀가 들리지 않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온전하게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묻는 말에도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사람이 알고 있는 것은 눈앞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병을 고치려고 온 사람이라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이 사람에게 예수님의 행동은 의사소통의 하나였습니다. “내가 지금 너의 귀를 고칠 것이다. 내가 지금 너의 혀를 고칠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만으로도 고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그의 눈높이에 맞추어 다가가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각 사람에게 꼭 맞는 방식으로 몸과 마음을 고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분이신 줄로 믿습니다. 상하고 닫혀버린 몸과 마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이상 직접적인 말씀을 들을 힘이 없는 것을 아십니다. 그럴 능력이 없는 것을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과 눈높이에 맞추어서 우리의 상함을 만지시고 고치시겠다고 알려주십니다. 
  때로는 우리가 예수님 앞에 아무 말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때가 있습니다. 마음의 문을 닫고 심지어는 소통의 끈조차 닫아버리는 상황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의 상황을 알고 우리에게 딱 맞게 일하시며 우리의 아픔을 회복시켜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미 우리의 삶의 부분에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역사하시는 예수님의 회복의 손길을 경험하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탄식하시며 선포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이 사람을 치유하기 직전에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십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향하여 탄식하였다, 신음하였다, 괴로워하였다 등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단순히 아픔을 치유하는 것만을 넘어 이 사람의 상황과 처지 그리고 느끼고 있었던 아픔과 어려움을 함께 느끼고 아파하셨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탄식의 기도 뒤에 예수님의 에바다! 하는 선포와 함께 그의 귀와 입이 열렸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최고의 의사라 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단지 눈에 보이는 표면적인 상처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상처와 마음의 상처까지도 만지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손길은 그저 고통을 끝내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만 집중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상황과 아픔에 탄식으로 ‘함께 하십니다.’ 그럴 필요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의 연약함을 이해하시고 동정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임마누엘의 참된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들을 수 없음과 말할 수 없음에 또 많은 사람들의 볼 수 없음과 걸을 수 없음에, 묶여있음에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귀와 입을, 눈을 고치시고 걷지 못하는 자를 걷게 하셨고 갇힌 자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이는 이사야 35장 5-6절의 예언을 성취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도 동일하게 탄식하십니다. 우리에게도 눈과 귀와 입이 있으나 제기능을 하지 못할 때가 여전히 많기 때문입니다. 눈으로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고 귀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입으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우리의 본분인데, 반대로 눈으로는 이 땅을 바라보고 귀로는 달콤한 말들을 듣길 즐기며 입으로는 거짓과 불평불만들을 늘어놓습니다. 두 다리로는 하나님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데 죄를 짓는 데에 바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이러한 연약함에 말할 수 없는 슬픔으로 탄식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고쳐주시지 않으면 우리 힘으로는 이것을 이겨내기는커녕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셨고, 단순히 함께 아파하는 것을 넘어 해결해주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몸을 찢으심으로, 닫혀 있던 우리의 길을 여시고, 휘장을 가르시며 우리 모두에게 ‘에바다’—열릴지어다 외쳐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누구든지 하나님께 나아가고 예수님을 보고, 듣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를 가장 잘 아는 예수님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과 함께 우리를 향하여 에바다! 하고 선포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복음의 선포로 말미암아 우리 삶에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고 향하지 못했던 것들이 회복되고 열리는 기적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열린 이후의 이야기

  본문의 끝에는 예수님을 통해 열림을 경험한 이 사람의 뒷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일어난 일을 이르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천국을 전파하는 복음이 아닌 기적이 드러나는 것을 싫어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하여 회복을 경험한 사람들은 더욱 널리 예수님과 그분께서 행하신 일들을 퍼트립니다. 그들은 전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문득 좋은 교회와 맛집에는 의외로 닮은 점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맛집은 신선한 재료와 이를 잘 다룰 줄 아는 요리사가 필요하듯, 좋은 교회 역시 신선한 말씀과 그 말씀을 올바르게 해석하여 전할 수 있는 설교자가 필요합니다. 또한 좋은 교회는 다양한 것에 손대지 않으면서, 담임목사님께서 인터뷰에서 말씀하셨듯이 예수님께서 하라 하신 일에만 집중하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또한 예배와 교제를 통하여 예수님을 경험하고 그 예수님이 각자의 삶에 특별한 이야기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말씀 하나로 승부를 보는 교회, 교회를 통해 신앙의 이야기가 쓰여지는 교회가 우리 교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이러한 교회가 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맛집처럼, 좋은 교회도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입소문이 납니다. 위치나 여건, 상황도 물론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입소문입니다. 아무리 접근이 어려운 곳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은 즐겁게 찾아가 줄을 섭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만난 예수님과의 이야기, 내가 경험한 회복의 이야기, 내가 들은 복음 또한 오늘 본문과 같이 입소문이 나야합니다. 예수님께서 나와 하나님 사이의 막힌 담을 헐어주셔서, 이제는 하나님과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목마름과 갈망을 하나님께서 만족시켜주셨습니다. 나의 문제를 하나님께서 선하심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라는 에바다를 경험한 고백들이 우리 삶에 넘치고, 그 이야기들이 세상으로 전해지는 일들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나만 알고 싶은 맛집이 있듯, 나만 알고 싶은 교회도 있습니다. 그러나 소중한 사람들에게 한 끼를 대접하고 싶을 때에 꼭 그 맛집을 데려가는 것처럼 소중한 사람들에게, 열림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복음 한 끼를 대접하고 싶을 때에 복음 맛집인 교회로 인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결론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사람의 귀와 입을 열어주신 사건을 통하여 예수님의 인격적이심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개인적이시고 우리의 눈높이에 맞춰주시며 또한 우리의 상황과 환경, 아픔과 답답함에 함께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닫히고 묶인 부분들을 열어주십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예배 가운데 묶인 부분이 있다면,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닫힌 부분이 있다면 오늘 예수님의 치유의 역사가 우리의 삶에 묶이고 닫힌 부분에 동일하게 역사하여 열리고 회복되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삶 가운데 에바다의 기적을 경험한 우리는 이제 우리가 경험한 복음의 이야기, 예수님 이야기를 전해야 한다는 것도 나누었습니다. 자신에게 행하신 놀라운 일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자 하는 이 사람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삶 가운데에 열어주시는 예수님을 경험한 이야기를, 그리고 열림을 기대하는 믿음을 많은 이들과 나누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를 통해 예수님이 드러나고, 우리를 통하여 교회를 찾는 이들이 말씀 속에서 열림의 은혜를 누리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세상은 “그분의 하시는 일은 참으로 훌륭하다!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다!”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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