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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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인 구제, 기도, 금식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이것들이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신다.
마태복음 6:1 NKRV
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예수님은 “사람에게 보이려고”라는 표현과 “그들 앞에서”라는 표현을 반복해서 사용하셔서 사람들 앞에서 인정과 칭찬을 받고자 하는 모습이 잘못되었음을 강조하신다. 당시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찬양 받기 위해서 선한 일을 드러나게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즉 구제와 기도, 금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다.
마태복음 6:2–4 NKRV
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구제는 유대인들의 경건생활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다. 그들은 가난한 자들을 돕는 것을 대단히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다. “외식하는 자”를 가리키는 헬라어 휘포크리테스는 고대 그리스에서 연극 배우를 뜻했다. 그들은 다양한 역할을 연기하기 위하여 다양한 가면을 썼다. 예수님은 외식하는 자들이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연기자와 같다고 말씀하신다.
(고대 그리스 가면 사진)
예수님은 구제할 때에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나팔을 불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이는 예수님께서 과장해서 말씀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 구제하면서 나팔을 부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외식하는 자가 선을 행할 때에 사람들이 자신을 보아 주기를 원하는 그들의 마음을 잘 나타내는 표현이다. 슈퍼카를 타는 사람들 중에는 차량을 불법으로 개조해서 엄청나게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지나가는 차들이 있다. 이러한 차들이 지나갈 때 깜작 놀라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자들이 씨그러운 소리를 내면서 지나가는 이유는 자신이 비싼 차를 타고 있으니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봐 주기를 원해서 이다.
예수님은 외식하는 자눈 이미 “자기의 상”을 이미 받았다고 하신다. 그들이 선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칭찬을 받는 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을 받기 위함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로부터 보상을 바라는 그들에게 큰 실망감과 충격을 가져다 주었을 것이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상을 받기 위하여 살아가는 자들이다. 그럼으로 우리는 받기 외식함으로 사람으로부터 오는 상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을 오해하므로 구제활동을 활발히 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이 말씀을 잘 못 이해한 것이다. 예수님의 의도는 구제할 때에 남들에게 자랑하려고 해서는 안 되다는 것이지, 남들에게 나의 선행이 절대로 드러내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니다.
마태복음 6:5–8 NKRV
5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예수님은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고 하신다. 기도 역시 구제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된다. 당시에 유대인들은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하루에 세 번 기도했는데 오전 9시, 낮 12시 오후 3시에 기도했다. 이렇게 하루에 세 번 기도하는 것은 다니엘이 하루에 세번 기도했던 것을 그들도 따라서 기도한 으로 보인다.
유대인들은 대체로 서서 하늘을 쳐다보며 소리를 내어 기도했다. 예수님 역시 그렇게 기도하셨다.
마태복음 14:19 NKRV
19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여기서는 그러한 행동 자체를 비판하시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하여 기도하는 즉 중심이 하나님께 맞춰져 있지 않고 사람들에게 맞춰져 있는 기도를 비판하시는것이다. 이는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자신의 의로움을 자랑하여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하여 종종 기도를 한 것에 대한 예수님의 날카로운 지적이다. 그들은 겉으로만 사람들에게 의롭게 보이기 원했고 그들의 삶은 그러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그들이 자기 상을 이미 받았다고 하심으로 그들의 기도가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임을 분명히 하신다.
예수님은 오히려 “너는 기도할 대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예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이 말은 실제 창고나 밀실로 가라는 뜻이 아니라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하게 기도하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으라’고 하심으로 기도의 은밀성을 강조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의도는 비록 사람들이 보이는 곳에서 서서 기도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기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자신의 개인적인 교제이므로 하나님께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도 잘 못 이해하여 남들이 보는 자리에서 기도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다. 골방에 들어가서 몰래 기도하는 것맛 옳은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예수님은 또한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리라”고 말씀하신다. 중언부언이란 동일한 말을 의미없이 되풀이 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방인들은 기도할 때에 자신들의 신의 이름을 반복해서 부르거나 아무런 생각 없이 같은 말을 반복하곤 했다. 예를 들어 바알의 선지자들은 아침부처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부르면서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라고 하였다.
열왕기상 18:26 NKRV
26 그들이 받은 송아지를 가져다가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이르되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그들이 그 쌓은 제단 주위에서 뛰놀더라
그리고 바울을 대적하는 무리들은 에베소 극장에서 두 시간이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이여”라고 해였다.
사도행전 19:34 NKRV
34 그들은 그가 유대인인 줄 알고 다 한 소리로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간이나 하더니
예수님은 간절한 마음으로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같은 내용의 기도를 세번이나 반복하셨다. 예수님은 다만 아무런 생각 없이 자기의 감정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기계적으로 반복하여 말하는 것을 금하신다.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이와 유사하게
전도서 5:2 NKRV
2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미 다 알고 게신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기도할 때 아무것도 구하지 말하는 말은 아니다. 하나님이 다 아시더라도 우리는 구체적으로 필요한 것을 구해야 한다. 다만 어떤 마음으로 구하느냐가 중요한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의지하는 자세로 구해야 한다.
마태복음 6:9–13 NKRV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 부분은 주기도문이다. 예수님은 주기도문을 말씀하시기 전에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너희”가 문장 전체에 힘을 준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방인들 구별된 기도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첫 번째 간구는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이다. 고대인들은 이름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름은 존재 자체를 의미하며, 인격과 속성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보여준다. 예수님의 사역은 이러한 하나님의 이름을 알게 하는 사역이다.
요한복음 17:26 NKRV
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앞으로 제자들이 해야할 사역 역시 하나님의 이름을 알리는 사역이어야 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사역이어야 한다. 제자들은 결코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
두번째 간구는 “나라가 임하시오며”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특징은 의와 평강과 희락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을 통하여 임하여 복음 전파를 통하여 확장된다. 이 기도는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확장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세번째 간구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진다. 하늘 나라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이미 온전히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는 아직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탄이 이 세상을 다스리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기도는 이 땅에서 사탄의 세력이 완전히 물러가고 불의와 죄와 고통과 슬픔이 물러가는 것을 바라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예수님의 재림으로 온전히 성취될 것이다.
네번째 간구는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이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간구해야할 “양식”은 현실적인 양식이다. 양식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그러나 이 양식에 대한 간구는 현실에서만 머물지 않고 마지막 때의 잔치에 대한 기대로 나아간다. 우리의 근원적인 양식은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생명의 떡이기 때문이다. “일용할”이라는 용어는 하루를 의미한다. 신자들은 하루 먹을 양식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뜻힌다.
다섯번째 간구는 “오늘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이옵고”이다. 여기서 “죄”는 빚을 의미한다. 하지만 여기서의 빚은 단지 경제적인 빚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갚을 수 없는 엄천난 빚이나 의무를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우리가 성도로서 만일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우리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영적으로 성장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것은 자신의 영적 성장을 위하여 필요한 일이다.
여섯번재 간구는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이다. 그런데 야고보서 1:13
야고보서 1:13 NKRV
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하나님이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을 감아할 때 이 단어를 유혹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합하다. 유혹은 죄를 짓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유혹이 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상황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이 구해 주시기를 간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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