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4-9 < 분명히 비치어진 빛 2025.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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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론 >
요약: 요한복음 1:4-9는 예수님을 생명과 빛으로 소개하며, darkness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구원의 과정을 강조한다.
적용: 이 말씀은 우리의 인생에 자주 찾아오는 어둠과 고난 가운데에서 예수님이 우리의 출구가
되심을 알려준다. 우리의 약함을 인정할 때, 예수님은 그 빛으로 고난의 터널을 밝히시며
평안을 주신다.
교훈: 빛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 믿음과 신뢰의 대상을 포괄적으로 제시하신다.
그의 빛이 우리를 인도하고, 어둠 속에서도 소망을 전해준다.
이 본문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킬 수 있는지: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과 상징을 통해 계속해서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의 빛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한다.
큰 아이디어: 우리의 고난과 약점을 통해 빛이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 열쇠가 된다.
추천 연구: 설교 준비를 위해 개별 구절의 신학적 깊이를 탐구하고, 요한복음 1장 전체와 그 문맥을 Logos를 통해 연구하여 저자의 의도와 역사적 배경을 보다 명확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크리스천 삶에 영향을 미치는 빛과 어둠의 주제를 깊게 분석하는 것이 유익할 것입니다.
1. 빛과 생명의 선물
요한복음 1:4
요한복음 1장 4절에서는 예수님이 생명이자 빛으로 오셨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때로 어둠 속에 갇히고 절망할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예수님을 통해 새로운 생명과 희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각자에게 진정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예수님을 바르고 진실하게 따름으로 자신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습니다.
2. 어둠 속의 빛
요한복음 1:5
요한복음 1장 5절은 어둠 속에서도 빛이 계속해서 비추고 있음을 말합니다. 우리의 삶에도 다양한 도전과 아픔이 있을 수 있지만, 예수님은 그러한 고난 가운데에서도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의 빛을 통해 여러분은 어려움 속에서도 소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빛은 어둠 속에서도 우리에게 희망과 평안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3. 증거자의 부름
요한복음 1:6-9
요한복음 1장 6절에서 9절에서는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 보내진 세례 요한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우리 각자는 예수님의 빛을 나타내고 전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주위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의 어둠 속에서 전하는 빛,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역할입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진리를 더 많은 이와 나누도록 노력해 보십시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복음 1장 4-9절 말씀입니다.
< 서론 >
여러분은 빛이 좋으신가요? 어둠이 좋으신가요?
보통의 사람들은 빛을 좋아 힙니다. 밝은 낮에 많은 것들을 할수 있습니다. 많은 것들을 볼수 있고,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둠을 좋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둠을 좋아하는 사람은요. 보통 숨고 싶고, 다른 사람들 눈에 띄기 싫어 하는 사람입니다.
어둠은 자신을 숨기려고 하는 자가 좋아합니다.
빛과 어둠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요?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기고 지는 것보다 작은 것에서 눈에 띄느냐 띄지 않느냐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정말 밝은 빛안에 작은 어둠은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런데요. 반대로 정말 어두 컴컴한 밤에
있을 때 작은 빛은 정말 밝게 빛난다는 것입니다.
어둠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작은 빛은 더욱 크게 밝게 빛날 것입니다. 우리는 어둠이 있던 빛
가운데 있던 밝은 빛을 비추어야 하는 빛의 자녀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누가 빛인지, 그리고 이런 빛의 자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본론 >
첫 번째는 우리의 선물로 오신 예수님 이십니다.
4절에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
예수님이 생명이자 빛으로 오셨음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선물을 받기 전에 그 선물에 가치를 알 때 그 선물을 귀하게 여깁니다.
선물의 가치와 진가를 알지 못하면, 어쩌면 낮고 천한 선물로 여길 수 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저는 다이아몬드랑 큐빅이랑 구분하지 못합니다. 다이아몬드를 아무 말없이 저에게 주어진다면 저는 그것을 큐빅으로 여기고 가치를 알지 못한채 아무대나 놓아 두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다이아몬드를 감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다이아몬드를 받자 마자 귀하다는 것을 알게 될것입니다. 그래서 저와는 반대로 선물을 준 사람에게 감사하며, 어느 선물보다 귀하게 대접하여 줄 것입니다.
상은 어떤 댓가가 있습니다. 노력에 댓가죠 하지만, 선물은요 댓가 없이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댓가 없이 구원의 은혜에 선물로 받았습니다.
선물로 주신 예수님을 어떤분이지 어떤 능력이 있는 분인지 요한 복음 1장을 통해 알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신성을 가진 분으로 매우 귀한 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그 신성으로 자신을 높이고, 우리를 억지로 굴복 시키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으로 죄인인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과 희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귀한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는 빛으로 오셨고,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어떤 빛일까요?
예수님은 빛으로 / 어둠에 갇힌 자를, 절망 속에 빠진 자를 구원하여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으면 어둠에 갇혀 지낼 수 밖에 없습니다.
지하 깊숙한 곳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의 삶이 어두움에 갇힌 삷입니다. 내면에 평안과 기쁨이 없습니다. 세상의 어려움 속에서 쉽게 흔들리게 될 것입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의 복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으면 절망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사랑과 희망이 넘치는 삶을 살아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데 그에게 어떤 사랑이 있을까요? 우리는 사랑을 경험해 봤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보여주신 귀한 사랑은 오래 참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사랑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진가를 알고 있는 우리는 사랑을 실천할 수 있씁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새로운 생명의 희망을 발견하게 해줄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믿는 사람에게만 허락된 새로운 생명의 희망을 이야기 한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삶 구원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주신 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이만큼 우리에게 가치 있는 분입니다. 너무나도 귀한 이 분이 선물처럼 아무 댓가 없이 우리에게 와 주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의 삶은 빛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5절에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
우리의 삶은 이미 어둠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두움은 인간의 죄와 무지로 나타납니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죄의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교만함을 가지고 있구요.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하기도합니다. 또 우상 숭배를 하려고 합니다.
보여지지 않는 하나님이 아니라, 보여지는 우상을 쫓게 됩니다. 그것 뿐인가요? 결국 앞에 것들의 결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죄를 사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세상적 결과 중심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이러한 죄악만 있는냐 아닙니다. 진리에 대한 의식의 상실함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칼빈은 무지라고 했습니다.
칼빈은 “무지”를 단순히 정보 부족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을 거부하고 스스로 속는 상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대한 무지로 하나님의 거룩함과 정의, 자비를 왜곡합니다. / 자신의 죄인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합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필요성과 복음의 진리를 거부합니다. 결국 도덕적 판단이 왜곡되어서 선과 악의 기준을 허물어져서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여서 살아감에 선과 악이 기준이 없어지는 것을 보여줍니다.
결국 무지는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도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에 주변에 일어난 모든 죄를 정당화하거나 미화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원래 이런 어두움 안에 살아가는 존재인데, 예수님을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 주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예수님은 빛을 계속해서 비추고 있으십니다.
예수님을 우리에게 빛를 비추어 주시기에 우리는 죄와 무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살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다양한 도전과 아픔이 찾아옵니다.
그때에 우리에게 예수님의 빛이 없다면 우리는 죄와 무지안에 잠식대어서 어둠안에서 살아가서 하나님을 떠나 사는 죄악을 짖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고난 가운데에 예수님을 우리를 인도하시어서 내가 죄인임을 깨닫게 하시고, 또 회개하게 하시어 하나님의 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려움 가운데 소망을 찾고 있으시다는 것이 예수님으로 인해서 우리가 빛을 받고 있다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로 6-9절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사명입니다.
6절에 말씀을 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본문에 말씀을 통해서는 세례요한의 역할에 대하여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자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회개하게 하고 그리스도께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역할을 맡은 자입니다.
요한은 요. 빛이 아니라 빛에 대해 증언하는 자였습니다. 예수님을 빛이시고, 빛이신 예수님을 미리 전하는 자가 요한이였습니다. 요한은 하나님께로 보냄을 받은 예언자적 소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한이 자신의 무슨 역할을 감당하는지 잘 아는 자였습니다. 요한은 “ 자신이 빛이 아님을 분명히
드러냄으로써” 오직 그리스도를 높이고 자신을 낮춘 참된 종으로 그려집니다.
칼빈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고려하사, 빛 자체만 보내지 않으시고,
그 빛을 가리키는 사람도 보내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엄청난 배려입니다. 복음이 하늘에 온
것을 더 확실하게 증거하기 위하여 요한을 세운 것입니다.
예수님의 빛 대신 역할을 증언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빛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빛대신 하나님을 믿어 빛을 잘 증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우리 나눔과섬김의교회 성도님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빛을 잘 비추며 살아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나의 나됨을 나타내기 보다 나의 모습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날 수 있게 겸손과 온유아 절재를 통한 사랑으로 빛을 비추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진리를 더 많은 이와 나누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죄악속에 살아감으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빛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빛을 가운데로 인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합니다.
< 결론 >
직장에서는 주님이 주신 빛을 사랑하고 겸손으로 드러내십시오.
남을 비방하고 책임을 전가하며, 무리지어 누군가를 괴롭히는 죄악의 속에 살아가기 보다 그곳에서도 밝게 빛날 수 있는 빛의 자녀의 길을 걸어가시기를 바랍니다.
혹여 동료가 실수를 했을 다면 그를 책망하며, 혼내기보다, 오히려 실수한 것을 도와서 해결하기를 힘쓰시시고, 사랑으로 감싸주시기 바랍니다.
일하는 중에는 정직함과 성실함을 항상 유지하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그것이 진리라면 우리는 진리의 말씀대로 살아가서 어둠가운데 빛을 발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가족간에도 서로 사랑하고 아껴줌으로도 빛의 가정으로 살아가시를 바랍니다.
부모가 자녀에 축복하여 주고, 자녀는 부모에게 감사하는 가정으로 살아가시를 바랍니다.
처음에 말씀 드렸던 빛과 어둠에 대하여서 생각나시나요?
빛은 어둠 가운데 있어도 알수 있다는 사실과 어둠은 빛가운데 있으면 잘 보이지 않게 된다고 했습니다.
빛 가운데 둘러싸인 어둠은 빛을 쫓아가게 될 것입니다. 또 어둠 가운데에서 빛은 다른 어둠을 밝확장 될 것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한가지는 우리는 어느때나 빛을 증언하는 자가 되어야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진리를 더 많은 이와 나누도록 노력하시는 사랑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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