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서 나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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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자유"라는 말을 너무 자주 듣습니다. 자유로운 사회, 자유로운 표현, 자유로운 선택... 자유는 인류의 오랜 갈망이자 권리입니다.
역사적으로도 자유는 수많은 투쟁을 낳았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1789년부터 1799년까지 약 10년에 걸쳐 프랑스에서 일어난 시민혁명, 즉, 프랑스 혁명입니다. “자유, 평등, 박애(형제애, 연합)freedom equality fraternity (Liberté, Égalité, Fraternité)”라는 구호 아래, 프랑스 국민들은 왕정과 불평등한 특권을 타파하려고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 혁명은 억압적인 체제에 대한 분명한 도전이었고,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롭다는 사상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프랑스 시민혁명의 영향으로 자유주의가 확대되어 왔고, 사람들은 이전 세대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자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가치와 의미를 폄하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류의 발전과 평화, 오늘 날 우리의 자유로운 삶에 큰 역할을 한 것이 프랑스 시민혁명입니다.
그러나, 다시 우리의 삶을 생각해보고 질문을 해보아야 합니다. 2가지 질문이 가능합니다.
첫째, 과연 인간은 자유로워졌습니까? 과연 나는 자유로운가?
둘째, 그 자유가 우리에게 유익했는가? 왕정은 무너졌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돈, 욕망, 명예, 죄의 사슬에 묶여 살아갑니다. 자유를 외쳤지만, 또 다른 형태의 억압과 혼란을 경험한 것이 인류의 역사입니다.
사실 자유라는 것은 우리들에게 불안을 가져다주는 원천이 되기도합니다. 왜냐하면, 자유는 책임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자유롭게 선택한 것에 대해서 책임을 지라는 것이지요.
사르트르라는 실존주의 철학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자유를 추구하는 철학자였습니다. “존재가 본질에 앞선다”라는 문구를 내세워서, 우리 인간에게는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목적이 없고, 그냥 던져진 존재이므로, 우리 스스로 무엇이 되어야겠다고 결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것이 자유입니다. 자신이 자신의 삶의 목적과 의미를 결정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곧이어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은 자유롭도록 저주받았다” 그 자유에 대한 책임을 버릴 수 없으므로, 인간은 늘 불안하다는 것입니다.
자유만을 주장하고 책임을 져버리는 것은 자유의 본 의미를 모르고, 자기 중심적인 해석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유를 추구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안전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한 울타리 안에 갇혀 지내다가 자유를 소망하여 울타리 밖으로 나가면 우리는 불안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우스갯 말도 있지요.
“이불 밖은 위험해” 이불 밖으로 나가서 자유롭게 다니고 싶은 마음과 또 그렇게 나갔다가 당할 위험에 대한 걱정이 드러나는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자유를 추구하지만 또한 안전을 추구하게 되므로, 자신의 안전과 자유를 보장해줄 대상을 찾게 됩니다. 그것이 돈과 명예와 권력과 같은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원래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 자유롭도록 지음받은 존재입니다. 에덴동산에서 그들은 얼마나 자유로웠습니까? 동산의 모든 실과는 먹되, 단 하나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는 먹지 말라는 것이었지요.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권위 아래에서 보호받아 안전하다는 것을 알게해주는 상징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 보호막, 안전을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자유를 추구하다가 결국 불안한 삶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자신을 편안하게 해줄 무엇인가를 찾아나서게 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실제로 우상을 만들어 섬기고, 어떤 사람은 돈과 명예를 우상으로 삼는 것이지요. 사탄과 계약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나의 영혼을 당신에게 줄테니, 나에게 이 땅에서의 평안과 번영을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잠시 잠깐이면 지나가고 사라질 돈과 명예를 위하여 자신의 영혼을 팔아버리는 어리석은 선택을 한 것이지요.
결국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자유라는 것은 우리에게 저주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확실합니다. 우리는 한 국가 안에서 법이라는 테두리 속에서 자유롭습니다. 그것은 안전과 자유를 보장받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자유를 추구하면 할 수록 자신의 안전을 보장해줄 무엇인가가 더욱 필요한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는 존재입니다.
자유를 말하지만, 하나님을 떠난 그 자유가 우리를 더욱 우상으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이 바로 종교권력이라는 우상에 매인 자들이어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자유로워보였습니다. 그들은 감옥에 갇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우상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거기서 절대로 자유함을 온전히 누리지 못합니다. 불안을 느끼면 느낄 수록 자신의 안전을 위하여 더욱 우상과 헛된 것을 추구합니다.
17절에서 말하는 그들이 시기가 가득하였다는 말이 바로 그들이 우상의 노예가 되었다는 것, 세상 권력의 감옥에 갇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우상과 세상의 것들에게 갇힌 자들은 사람들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는 행복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참된 자유란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바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유,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자유입니다.

I. 억압 속에서도 빛나는 자유 (17–26절)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이 사도들을 시기하여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억압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감옥 안에서도 자유를 주셨습니다. 19절에 보면 주의 사자가 옥문을 열고 이렇게 말합니다.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감옥은 자유를 빼앗을 수 있는 공간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가두어질 수 없습니다. 사도들은 매인 몸이었지만 영혼은 자유로웠고, 그 자유로 다시 복음을 전하러 나갑니다.
이것이 참된 자유입니다. 환경이 자유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명령 앞에 순종할 수 있는 능력, 그 내적 자유가 진짜입니다.

II.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유 (27–32절)

공회 앞에 선 사도들에게 대제사장은 묻습니다. “우리가 이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명령하지 않았느냐?”
그러자 베드로는 담대히 대답합니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29절)
세상은 복종을 요구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선택합니다. 무엇에, 누구에게 순종할 것인가?
성도 여러분, 진정한 자유는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세속은 자유를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자유를 하나님께 기꺼이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이라 말합니다.

III. 고난 속에서도 기뻐하는 자유 (33–42절)

공회는 사도들을 죽이려 했지만, 가말리엘의 중재로 풀려났습니다. 그들은 채찍질을 당하고 풀려났지만,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41절)
기쁨은 상황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에서 오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가? 나는 복음을 위해 고난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 이 자의식이 자유입니다.
사도들은 그 이후에도 성전과 집에서 쉬지 않고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며 전파합니다. 자유롭지 못한 세상에서, 그들은 누구보다 자유로운 자였습니다.

결론

프랑스 혁명은 외쳤습니다. “자유, 평등, 박애!” 그러나 인간의 자유는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자유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방해받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자유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기쁨으로 행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셨기에,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13 “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 속에서 진정 자유로운 사람들입니까? 혹은 겉으로는 자유로운 것 같지만, 여전히 세상과 죄의 종으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시간 사도들처럼 자유의 본질을 회복합시다. 복음 안에서 주어지는 자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자유, 고난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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