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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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론
신정론
오늘 함께 읽은 예언자, 하박국은 사실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는 사람입니다. 살았던 시대, 지역 등등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알 수 있는 정보는 굉장히 적은 사람인데요. 저희가 알 수 있는 것 하나는 바벨론과 관련된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이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가 아닌 거처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
저희가 앞서서 예레미야 말씀을 살펴봤을 때도 여러 번 등장했는데요, 갈대아 사람이라는 표현은 오늘날의 이라크 쪽에 위치한 바벨론 제국 남동부에서 사는 셈족들을 지칭하는 말로, 대체로 바벨론 사람을 표현할 때 쓰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박국에게 내가 바벨론 사람을 일으켰다!라고 말씀하신 점에서 대체로 사람들은 하박국이 바벨론이 막 부흥하기 시작한 기원전 612년 이후에 쓰여졌다는 것을 가정해서, 하나님 앞에 나름 종교개혁을 강행했던 요시야 그리고 석달만에 이집트로 끌려간 여호아하스 이후에 기원전 609년에 왕이 되었던 여호야김 왕 시대에 유다에서 활동했던 예언자다, 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하박국이라는 선지자가 무슨 말씀을 전했는가? 보시면요,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
하박국은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며 한탄하는 말로 시작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 때에 말씀드렷던 것처럼 여호야김 왕은 이집트에 막대한 배상금을 바치려고 백성들에게서 은금을 착취하면서도 자기 왕성을 증축하려고 품삯도 안주면서 백성들을 강제 노역을 시킨 아주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런 악한 왕 때문에 백성들이 고통을 받는데, 백성들 중에는 물론 나쁜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의인들도 많이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유다 왕국을 보아하니 악한 왕과 악한 지도자들이 일부 선한 백성들, 의인들 조차도 억압하고 부려먹고 착취하는 모습만이 널려 있고, 하나님께 아무리 부르짖어도 도저히 이것이 해결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박국은 부르짖습니다. “하나님!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것입니까? 대체 왜 의인들이 고통받고, 악인들이 잘 살고, 그런 악인들의 악한 행동을 하나님께서 왜 대체 내버려두시고 구원하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사실 하박국이 호소하는 것은 굉장히 정당한 의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이죠.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
이처럼 신명기에도 나오는 순종은 복, 불순종은 저주라고 하는 개념이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기본적인 상식이고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이자 말씀인데, 실상은 어떻죠? 백성들을 압제하고 착취하는 여호야김은 무려 11년이나 통치하면서 자기 집을 열심히 쌓아올리고 여전히 건재하기만 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호세아가 제기하는 것은 바로 신정론 문제입니다. 혹은 악의 문제라고도 불리는데요, 신정론이라고 함은 과연 신이 정의로운가? 에 대해서 다루는 이론입니다.
쾌락주의로 알려진 에피쿠로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하는데요,
신이 악을 막을 의지는 있지만 능력이 없는가?
그렇다면 신은 전능하지 않다.
신이 악을 막을 능력은 있는데 의지가 없는가?
그렇다면 신은 선하지 않다.
신이 악을 막을 능력도 있고 의지도 있는가?
그렇다면 이 세상의 악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
신이 악을 막을 능력도 없고 의지도 없는가?
그렇다면 왜 우리가 그를 신으로 불러야 하는가?
쉽게 이야기하면 하나님이 선하시고, 선을 행할 의지가 있으신 분인데, 대체 이 세상에 악이 왜 존재하냐는 것입니다.
수많은 학자들이 이 신정론에 관해서 토론하고 비판하고 쌓아올렸지만 사실 이론적으로 완전한 해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도 욥이라고 하는 인물이 왜 자신에게 그런 고난이 닥쳤는지에 대해서 친구들과 그렇게 열심히 토론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답변은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감히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서 무엇을 논할 수 있겠느냐는 말로 침묵을 시키시죠.
그렇다면 하박국의 호소에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답변하셨을까요?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이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가 아닌 거처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
왕들을 멸시하며 방백을 조소하며 모든 견고한 성들을 비웃고 흉벽을 쌓아 그것을 점령할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아주 사나운 백성인 바벨론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일으키셔서 왕들과 통치자들과 모든 성들을 점령하게 만드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박국이 호소한 내용, 왕들과 지도자들의 불의와 악함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해결하시는 방법은 그들보다도 더 사나운 백성들인 바벨론을 일으켜서 점령시키신다고 하시는데요. 그런데 이것이 과연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정의롭고 옳은 방법일까요? 바벨론도 굉장히 억압하고 백성들을 포로로 끌어가고 하지 않나요? 결국 억압하고 불의를 행하는 주체만 바뀌는 것이지 똑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박국도 다시 하나님께 호소하기를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
하나님! 주님께서는 선하신 하나님이시고 악을 미워하시는 하나님이신데, 어찌 저 거짓되고 악한 민족인 바벨론이 이 나라안에 있는 의로운 백성들조차 삼키려고 하는데 거기엔 잠잠하십니까? 저 악한 여호야김 왕을 물리치겠다고 또한 의로운 백성들을 삼킬만한 바벨론 왕을 일으키시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입니까? 라고 하나님께 묻습니다.
화있을 진저
화있을 진저
본문말씀 1절을 보시면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하였더니
하박국이 하나님께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과연 하나님께서 어떻게 대답하실지 내가 지켜보겠어! 하고 하나님께서 하박국의 질문에 답하시는 것으로 오늘 본문말씀이 시작되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먼저 앞으로 하나님께서 하실 말씀이 모든 이들이 영원히 볼 수 있도록, 심지어 달려가면서도 볼 수 있도록 석판에 명백히 새기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정한 때가 있다, 즉 정한 때가 되어야만 이루어질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 당장 바로 이루어지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래서 비록 더디다고 할지라도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느 때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하나님은 아시는 때이고 그것은 반드시 이루어질 테니 그것을 기다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럼 어떤 것들이 이루어지겠는가? 하는 말씀이 5절 이후로 등장하는데요, 히브리어 원문은 5절부터 20절 까지의 말씀에 호이(הוֹי)라고 하는 감탄사가 들어갑니다. 이 히브리어는 오호라! 슬프도다! 화 있을진저! 와 같은 슬픔을 표현하거나 분노를 표현하는 격렬한 감정을 나타내는 감탄사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 사람들아! 화 있을 진저!”라고 하시면서 말씀하시는 내용이죠.
그 무리가 다 속담으로 그를 평론하며 조롱하는 시로 그를 풍자하지 않겠느냐 곧 이르기를 화 있을진저 자기 소유 아닌 것을 모으는 자여 언제까지 이르겠느냐 볼모 잡은 것으로 무겁게 짐진 자여
네가 여러 나라를 노략하였으므로 그 모든 민족의 남은 자가 너를 노략하리니 이는 네가 사람의 피를 흘렸음이요 또 땅과 성읍과 그 안의 모든 주민에게 강포를 행하였음이니라
화 있을 진저! 바벨론 사람들아! 남의 것을 모아다가 제 것으로 삼은 자들아! 빼앗은 것으로 부자가 된 자들아! 너희가 언제까지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여러 나라를 노략해서 빼앗았으니 그 노략당한 민족의 남은 자들이 너를 노략할 것이다!
하박국이 전하는 첫번째 화는 빼앗은 자들이 다시 도로 빼앗길 것이다 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재앙을 피하기 위하여 높은 데 깃들이려 하며 자기 집을 위하여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네가 많은 민족을 멸한 것이 네 집에 욕을 부르며 네 영혼에게 죄를 범하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화있을 진저! 바벨론 사람들아! 스스로를 부유하게 만들기 위해서 부당한 이득을 탐내는 자들아! 그 욕심이 네 집에 화를 불렀고 그 영혼에 죄를 짓게 만들었구나!
두번째 화는 바벨론 사람들의 탐심이 그 스스로의 집과 영혼에 화를 부르고 죄를 짓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피로 성읍을 건설하며 불의로 성을 건축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민족들이 불탈 것으로 수고하는 것과 나라들이 헛된 일로 피곤하게 되는 것이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음이 아니냐
화있을 진저! 바벨론 사람들아! 피로 마을을 건설하고 불의로 성읍을 건축하는 자들아! 백성들을 잡아다가 너희들이 부려먹었지만 그 애써 한 일들이 다 헛수고가 될 것이고, 그 세운 것들이 다 불타게 될 것이니 바로 나 만군의 여호와가 행할 것이다!
세번째 화는 바벨론 사람들이 살인과 폭력으로 나라를 세웠지만 그것이 모두다 헛수고가 될 것임을 나타냅니다.
이웃에게 술을 마시게 하되 자기의 분노를 더하여 그에게 취하게 하고 그 하체를 드러내려 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네게 영광이 아니요 수치가 가득한즉 너도 마시고 너의 할례 받지 아니한 것을 드러내라 여호와의 오른손의 잔이 네게로 돌아올 것이라 더러운 욕이 네 영광을 가리리라
화있을 진저! 바벨론 사람들아! 홧김에 이웃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하고는 그 알몸을 헤쳐보는 자들아! 너는 영광은 커녕 실컷 수치나 당하게 될 것이다! 여호와의 심판의 잔이 너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네번째 화는 바벨론 사람들이 마치 술에 취하게 만든 것처럼 이웃 나라들을 기만하고 속임수를 써서 나중에는 알몸을 드러내게 만드는 것처럼 배신하고 홀랑 벗겨먹은 일로 인해서 도리어 바벨론이 알몸이 된 것처럼 배신당하고 수치만 가득하게 될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긴 우상은 그 새겨 만든 자에게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스승이라 만든 자가 이 말하지 못하는 우상을 의지하니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나무에게 깨라 하며 말하지 못하는 돌에게 일어나라 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그것이 교훈을 베풀겠느냐 보라 이는 금과 은으로 입힌 것인즉 그 속에는 생기가 도무지 없느니라
화있을 진저! 바벨론 사람들아! 나무더러 깨어나라라고 외치며 말도 못하는 돌들에게 일어나라 라고 외치는 자들아! 너희들이 스스로 부어 만든 거짓말만 가득한 우상이 대체 너희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앞선 네 가지의 화는 바벨론이 그 이웃국가들에게 행한 죄를 낱낱이 고한 것이었다면 마지막 화는 우상을 가지고 거짓말 한 것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기만한 자들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을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의인들이 물이 바다 덮음같이
믿음으로 사는 의인들이 물이 바다 덮음같이
이것이 앞으로 이루어질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박국은 기록하여 선포합니다. 앞서서 알아본 바와 같이 하나님께선 악한 자들을 무너뜨리시고 저주하시는 분이십니다. 저희는 실제로 바벨론이 페르시아에 의해서 무너지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벨사살 왕이 그의 귀족 천 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고 그 천 명 앞에서 술을 마시니라
그 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하박국 선지자가 예언한 그대로 바벨론이 취해있을 때 마치 알몸이 드러난 것처럼 연회를 베풀어 술취한 그날 밤에 살해당하고 바벨론은 무너지게 됩니다.
사진을 보시면, 실제 바벨론이 멸망을 당할 때 있었던 일이구요,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 아마 여러분에게는 바사왕 고레스라는 이름으로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기원전 539년에 키루스 2세에 의해서 바벨론의 수도의 이름도 바벨론인데요 바벨론이 너무나도 쉽게 함락이 됩니다.
사실 수도 바벨론은 굉장히 튼튼하고 견고한 성이었습니다. 사진을 보시면 실제 바벨론의 수도의 모습인데요, 겉에 빨간줄로 꽤 넓은 부분에 외벽이 있구요 내부에는 빨간 점선으로 된 내벽이 있는데요, 이 견고한 성을 고레스는 저 중간에 흐르는 유프라데스 강의 물줄기를 다른 곳으로 돌려서 수심을 얕게 만든 다음에 강에 뛰어들어서 강을 타고 성을 침입해서 바벨론을 함락시킵니다. 정말 연회를 베풀어서 술에 취해있었다면 그걸 알아차리고 대응하기가 힘들었겠죠?
또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바벨론은 멸망 당시에 정치적 종교적으로 불안한 상황에 있었습니다. 사실 다니엘에 등장하는 벨사살 왕은 진짜 왕이 아닙니다. 당시 바벨론 왕은 나보니두스라고 하는 왕이었는데요, 아까 보셨던 지도를 다시 보시면 이 나보니두스 왕이 저 멀리 아라비아에 있는 사막으로 수도를 이전해버려서 원래 수도인 바벨론이 취약해지니까 자기 아들인 벨사살이 자신을 대신해서 통치하게끔 한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바벨론에서 왕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는데 이것을 내팽개치고 가서 백성들의 원한을 샀구요, 또한 바벨론은 마르둑이라고 하는 우상 신을 섬겼는데, 나보니두스 왕은 자기 어머니가 믿는 씬이라고 하는 달의 신을 섬기게 되면서 마르둑 신전의 제사장들에게도 미움을 샀습니다.
그래서 사실 바벨론에 고레스가 침투했을 때 바벨론 백성들이 반발하고 저항했으면 사실 페르시아가 정권을 잡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고레스 왕은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성전을 건축하게끔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내기도 했을 정도로 백성들의 문화와 삶을 존중했던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하박국이 기록한대로 바벨론은 자기 백성들에게 배신당해서 멸망하게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저희는 지금 이 역사를 알고 있으니까, 그 때가 어느때였는지 역사적으로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가 어느 때가 될지는 적어도 하박국 예언자가 살던 당시에는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박국 예언자가 보는 상황은 여호야김 왕이 유다 왕국의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고 하박국이 듣는 상황은 수많은 민족들을 처부수며 유다로 다가오는 바벨론의 소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다 한들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말씀 3-4절 말슴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신약 성경에서 너무나도 자주 인용되는 말씀입니다. 비록 하나님의 말씀의 때가 다가오는 것이 더딘 것처럼 느껴질 지라도, 그리고 실제로 더디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결코 거짓이 없는것, 하나님의 선하심에 결코 의심할 일이 없는 것, 하나님께서 의인들에게 복을 주시고 악인들을 벌하시리라는 그 말씀을 의지하는 것, 바로 의인들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아까 신정론에 대해서 말씀드렸죠. 세상이 이렇게나 악하고 고통으로 충만한데 하나님이 과연 정말 선하신 하나님인가? 이 논란은 욥기에서도 보이는 것처럼 백날 이야기해도 명확하게 결론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논리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선하신 분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신정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하신 분임을 반드시 믿고, 그 믿음으로 살아가는 의인으로서, 악하고 고통스러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인정론입니다.
하박국은 3장에서 하나님을 향한 기도 내지는 시편을 써 올립니다.
3:16
성경전서 새번역 3장
그 소리를 듣고 나의 창자가 뒤틀린다. 그 소리에 나의 입술이 떨린다. 나의 뼈가 속에서부터 썩어 들어간다. 나의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러나 나는, 우리를 침략한 백성이 재난당할 날을 참고 기다리겠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소리, 바벨론에 대한 멸망의 말씀을 듣고 나의 창자가 뒤틀리고 입술이 떨리고 뼈가 썩어들어가고 나의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럼에도 나는 잠잠히 우리를 침략한 바벨론이 재난당할 날을 참고 기다리겠다!
이것이 의인의 자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들에 대해서 먼저 참고 기다릴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악한 일을 저지르고 배신하고 탐욕을 부려 남의 것을 빼앗고 도둑질할 때에 그들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잘 아시는 말씀이죠, 시편 1편의 말씀에도 복 있는 사람, 의인들은 악인들의 꾀와 죄인들의 길과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가지 않는 것이 첫번째입니다. 오히려 악인들과 죄인들과 오만한 자들이 있을 지라도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는 것이 두번째 의인의 자세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무화과 나뭇잎이 마르고~ 라는 찬양으로도 유명하죠? 비록 무화과 나무, 포도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없고 밭에 먹을 것이 없고 양떼가 우리에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는 것처럼 이 세상에 하나님의 선하심이 보이지 않고 세상에 황량하고 가뭄이 든것처럼 악한일이 가득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으로 인해서 즐거워하는 것,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기뻐하는 것이 의인입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악인들, 즉 사람들은 우리로 하여금 약하게 만들고 어렵게 만들고 힘들게 할 지 모르지만, 저희들을 즐겁게하고 기쁘게 만드시는 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저희들의 힘의 근원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믿는 의인들은 하나님의 힘으로 죄로 인해서 즐거워 하는게 아니라 정의를 행함으로 즐거워하는 사람들입니다.
마지막 세번째 의인의 자세는 이것입니다. 준비찬양 때도 같이 불렀던 찬양의 가사인데요, 함께 읽겠습니다.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
원문을 그대로 표현하면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아는 지식이 온 땅에 가득할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지금은 여호야김이 백성들에게 폭정을 행하고 바벨론이 침략하지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하나님으로 인해서 기뻐하는 의인들은 죽지 않고, 여전히 남아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을 전하기 때문에, 의인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바로 의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의 지식이 이 땅에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하나님의 영광의 지식을 세상의 전하는 것이 악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의인들의 자세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세상은 신정론을 이야기하며 악한 세상에 선한 신 따위는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저희가 하나님을 믿고, 저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또한 저희로 일하게 하시는 성령님을 믿는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하나님의 의로우심, 하나님의 선하심이 나타나는 복음을 믿음으로 믿음에 이를 수 있도록,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의인으로서 이 믿음을 세상 가운데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할 때까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
결론
오늘 말씀을 통해서 기억해야할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악한 세상에서 저희가 살아가는 방법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악한 자리에 가지 않으며 믿음으로 의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에 의심을 품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기 때문에 그 믿음대로 저희 또한 선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살기 위해서 애쓰는 것이 의인의 모습입니다.
둘째, 의인은 비록 세상에 고통이 가득할 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항상 기뻐하는 이들입니다. 주일 말씀에서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성령을 소멸하지 않고 도리어 충만한 이들의 모습은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 성령을 통해서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고 그를 통해 기뻐하는 이들이 의인입니다.
마지막으로, 믿음으로 사는 의인은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르도록, 하나님의 영광이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세상 가운데 충만하도록 복음을 전하기를 멈추지 않는 이들입니다. 나만 의롭게 살겠다고 하는 것은 의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하박국에게 기록해서 달려가면서도 읽게하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최대한 많은 이들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전하는 것이 의인의 모습입니다.
이처럼 악한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없이 믿고,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기뻐하며, 이 기쁜 소식을 바다처럼 넓고 먼 곳까지 전하기 위해 애쓰는 의인으로서 살아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