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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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299장
호주 백준호, 캄보디아 김수연, 네팔 신기도, 몽골 최용현, 요르단 황선국
교회학교 하나님 사랑을 많이 받는 아이들 되게 하소서.
성경봉독 고린도전서 13:1-13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사랑엔 낭비가 없다
더 많이 주었다면
그 풍요로 이미 보상받았다
그 사람 있었기에
불 꺼진 한 세월이 밝고 따뜻했다고
그리 알 일이다
사랑엔 계산법이 없고
순수와 관용이라는
열쇠가 있을 뿐이다
오늘 나눌 고린도전서 13장 말씀은 다른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말씀입니다. 오히려 제가 설명할수록 더 효과적이지 않은 내용입니다. 그저 사랑하라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가장 위대한 말씀이고 아름다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말씀에는 원어적 의미나 분석을 하고싶지 않습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읽고 싶고 말씀 그대로 살고 싶을 뿐입니다.
여러분도 저와 같은 마음인 줄 압니다. 사랑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이 사람만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만 사랑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입니다. 구별은 할 수 있지만 분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우리가 방언과 아름다운 말을 잘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꽹과리가 됩니다. 반대로 방언을 못하고 말이 어눌해도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와 눈빛과 마음은 아름다운 소리가 됩니다. 복음의 소리가 됩니다. 제가 찬양집회에 많이 다녀봤는데요. 수도권에 살면 찬양집회에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갑니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많이 다녔습니다.
제가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찬양집회가 부흥했을 때입니다. 그런 집회를 교회 친구들이나 선후배들과 같이 가곤 했습니다. 때론 혼자 가기도 하고요. 그런데 어떤 사람이 있었냐면요. 목동이었습니다. 맨 앞자리에서 찬양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맨 앞에 맨 가운데 서서 두 팔을 벌리고 아주 은혜롭게 찬양합니다. 기도할 때도 큰소리로 기도하며 방언으로 기도합니다.
그런데 예배가 끝나고 집에 가는데요. 사람들이 많다보니까 조금 붐볐습니다. 그 사람이 뒤돌아서 밖으로 나가는데 어떤 사람과 어깨를 부딪혔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아이씨’라고 하면서 짜증을 내면서 나가는 것입니다. 이거 참 어려운 상황입니다.
예배 때는 은혜롭게 찬양하고 큰 소리로 찬양과 기도를 하고 두 팔 벌려 예배에 임하지만 정작 그 마음에는 아무것도 없던 것입니다. 은혜가 없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향한 사랑은 커녕 예의도 없던 사람이죠. 그 다음부터 그 사람을 보면 은혜가 안 됩니다. 그 사람의 높이 벌린 팔은 거슬리는 손이 되었고요. 그 사람의 찬양소리와 기도소리는 꽹과리와 같이 불편한 소리가 되었습니다.
물론 나중에는 그 사람도 변화되길 바라는 긍휼한 마음을 가지게 됐지만요. 이처럼 사람 안에 사랑이 없으면 그 사람이 아무리 은사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방언을 하고 큰 소리로 기도하고, 말을 잘 할지라도 인상을 찌푸리게 되는 소리가 되고 듣기 싫은 소리가 됩니다.
또한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비밀 곧 복음과 모든 성경 지식을 알고, 산을 옮길만한 기적과 간증을 많이 가지고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일에 쓰이지 않으면, 교회의 덕과 사람들을 세우고, 사람들과 사랑의 관계를 맺는 일에 쓰이지 않으면 어디다 쓰느냐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셔서 죽으신 사건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사랑을 위한 일이었기 때문에 복음이자 진리인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이 그냥 죽으신 일이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오직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하신 일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모든 은사와 봉사는 사랑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쓰여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열심히 가난한 자를 돕고 다른 사람을 도와준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하는 것이 우리의 모든 목적이자 본질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사랑은 무엇이냐,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 즉 자기 것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드니라
이것을 행하는 사랑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승우 작가의 ‘사랑의 생애’를 보면요. 사랑은 숙주입니다. 마치 성령이 우리 안에 사랑을 보내서 살아가게 하십니다. 우리 안에 사랑이라는 숙주가 살아서 사랑하게 하신다는 거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 사랑의 숙주가 우리 안에 살기를 구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사랑을 주셔서 사랑이라는 아이가 우리 안에서 오래오래 살아가게 해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사랑하게 하십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성령의 열매에서도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을 구한다는 것은 방언이나 예언이나 어떤 신비한 능력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그 사랑의 충만인 것입니다.
저도 성령의 은사들을 많이 구해왔습니다. 어릴 때는 여러 은사들이 내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것들을 간절히 구하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13장 말씀을 깊이 깨닫게 되고, 인생을 경험하게 되면서 제가 구하는 것은 한 가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다른 은사들 말고, 사랑의 은사를 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지금도 늘 기도합니다. ‘사랑의 은사’ 하나님을 사랑하는 은사, 사람을 사랑하는 은사, 하나님을 사랑하는 능력,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달란트를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30대 중반에 접어든 제가 가장 많이 구하는 기도는 ‘사랑의 은사’입니다. 이제 목사로 살아갈텐데 다른 욕심 버리고 이 은사 하나만 주시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방언도 아니고 예언도 아니고 기적도 아니고 오직 사랑의 은사 하나만 있으면 목사로 살아갈 수 있겠다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서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사람을 향해 오래 참고, 온유하고, 성내지 않고, 악한 것을 꾸미지 않고, 축복하고 격려하며 살아가는 그 능력만 있으면 되겠다는 마음입니다. 사실 이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죠.
그래서 이것만 구해야 합니다. 제게 가장 필요한 은사이자 능력입니다.
마지막으로 더 살펴볼 것은 9절부터 끝까지의 말씀인데요. 우리는 부분적으로 압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그렇고요. 사람에 대해서도 완전히 다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쉽게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잘 판단해요. 그런데 또 사랑하지 못한다고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정죄의 반복입니다. 나 자신이라도 정죄와 판단을 멈추고 사랑하면 되는데 또 잘못된 사람을 향해 사랑하지 못한다고 또 지적합니다. 자기자신은 못 참고 다른 사람만 사랑해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생각에 잘못된 것 같고 판단하고 싶고 이해되지 않지만 잘 인내하면 주님께서 주시는 온전함이 올 때에는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향한 판단도 이해로 바뀌고 온전한 이해와 지식으로 온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지식이자 이해이고요. 마지막 때에는 그 모든 판단이 무너지고 희미한 것도 사라지고 온전히 다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 넓은 여유와 승리자의 마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들도 사랑의 은사를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내 안에 사랑이 있기를 그리스도의 사랑, 성령께서 살아가게 하시는 사랑이가 우리 안에 살아서 사랑으로 살고 사랑하며 사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에게 사랑을 보내주옵소서.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하게 하옵소서. 사랑이면 충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