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영광

고린도후서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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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고린도후서 4:17-18
“영원한 영광”
찬송가 436장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2025. 6. 13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영원한 영광”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지난 본문에 이어서, 환난이 올 때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가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요.
지난 시간에는 겉사람과 속사람을 대조하면서 우리의 겉사람, 우리의 육신은 날마다 낡아져 가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의 속사람, 우리의 거듭난 영은 날마다 새로워져 간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환난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우리의 속사람이 새로워지는 좋은 기회로 여기면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할 것을 촉구했죠.
그리고 이어서 오늘은 두번째 대조입니다. 환난과 영광, 이 두 가지를 대조하면서 우리에게 메세지를 주고 있어요. 자, 오늘 본문 17절을 다시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아멘.
환난과 영광을 대조하는데요. 각각 그 특징이 다르죠. 먼저 환난은요, 잠시 받는 겁니다. 환난은 잠시잠깐,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받아요. 하지만 영광은 영원하죠. 환난이 우리에게는 길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영원에 비하면 지극히 짧아요. 우주가 흘러가는 시간에 비하면 한 인간의 인생은 얼마나 짧습니까? 내가 당하는 환난이 아무리 길고 힘들게 느껴지더라도, 영원한 영광과는 비교할 수가 없어요.
또한 환난은 경한 것입니다. 경한 것, 가볍다는 말이죠. 환난은 가벼운 것이에요. 반면에 영광은 중한 것, 무거운 겁니다. 이때 당시에 로마나 고린도를 비롯해서 거의 대부분의 나라는 무게를 잴 때 양팔저울을 사용했거든요. 이 양팔저울에 환난과 영광을 나란히 올리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무거운 쪽으로 기울겠죠. 뭐가 더 무겁습니까? 영광이 더 무거워요.
저울이 거의 비슷하게 맞춰지는데, 영광 쪽으로 살짝 더 기우는 게 아닙니다. 아예 그냥 올리자마자 영광 쪽으로 팍 가라앉는 거예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영광이 무거운 거죠.
그래서 종합해 보면, 영원하고 무거운 영광에 비하면, 환난은 하찮은 겁니다. 환난이 비록 우리를 고통스럽게 해도, 그 고통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금방 끝나요. 물론 나에게는 길게 느껴질 수 있겠죠. 또 그 고통의 무게가 나에게는 너무 무거울 수 있어요. 그래서 내 겉사람을 더 빨리 낡아지게 만어요. 안 그래도 하루하루 낡아지고 있는데, 환난이 오면 폭싹 낡아지고 닳아져 버려요.
그러나 아무리 환난의 고통이 길고 무겁게 느껴진다 할지라도, 영광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 환난은요, 단순히 영광에 비해서 짧고 가볍기만 한 것이 아니에요. 17절을 다시 보면, 환난에 아주 중요한 역할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하면, 환난이 영광을 우리에게 이루게 해준다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우리가 환난을 통해서 영광을 이룰 수 있다는 겁니다.
‘왜 우리 인생에 쓸데없이 환난이 올까? 그냥 영광만 오면 좋겠는데.’ 이렇게 불평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알고 봤더니, 환난이 있어야만 우리가 영광을 이룰 수 있다는 겁니다. 겉사람이 낡아져야 속사람이 새로워지듯이, 그리고 예수의 죽음을 짊어져야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듯이, 환난을 경험해야만 우리가 영원한 영광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난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예요. 오히려 환난을 반겨야 돼요. 환난을 당할 수록 우리가 더욱 영광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우리를 불로 연단하사 정금과 같이 만드시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젠가 우리에게 이루어질 영광을 기대하면서 살아야 돼요. 그런데 그것은 지금 당장 우리 눈에 보이지 않죠. 그래서 진짜 있는 건지 의심이 될 때가 많습니다. 뭐가 보여야 믿지. 안 보이는데 어떻게 믿어요? 희미하게 끄트머리라도 보이면 그거라도 의지하고 버텨볼 텐데, 안 보인단 말이에요.
그런데 놀랍게도 바울은 그 안 보이는 것을 주목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 오늘 본문 18절이죠. 18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아멘.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있다는 겁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있다. 말이 안 맞죠.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볼까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이것들은 우리 눈에 보이는 것과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에요.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삽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봐야 돼요. 이것을 오늘 본문에서는 주목하라 그랬죠. 보이지 않는 것에 주목하라.
개인적으로 주목하라는 말이 참 번역을 잘 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헬라어 원문에 보면, 주목한다는 말이 헬라어로 “스코페오” 라는 말인데요. 스코페오, 이 말은 “주의를 기울이다,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다” 이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단순히 눈으로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관심을 가지고 집중하는 거예요.
보이지 않는 것에 집중하라. 자, 그러면 보이지 않는 것이 뭘까요? 이것을 17절에서는 영원한 영광이라고 그랬어요. 그리고 오늘 본문 밑에 5장 1절에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 천국이죠.
그러니까 여러분, 보이지 않는 것은 천국을 의미하는 겁니다. 우리는 지금 눈으로 천국을 볼 수 없어요. 하지만 천국이 있음을 믿고, 천국 시민으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은 보이는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그러나 우리가 세상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천국에 속한 자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땅의 보이는 모든 것은 다 낡아집니다. 육체도 낡아지고, 건물도 낡아지고, 태양도 낡아져요. 모든 것은 다 수명이 있어요.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천국이 영원하고, 영광이 영원하고, 그리고 우리 속사람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환난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을 수 있는 거예요. 이 땅이 전부가 아니라, 영원한 천국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잠깐의 환난쯤이야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는 겁니다. 지금은 비록 고통스러울지라도, 이 고통이 영원하지 않아요. 이 고통 뒤에 영원한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당하는 환난과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기쁨, 영원한 영광이 있음을 믿고, 더욱 주님을 의지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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