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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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왕상 15:25-34절
제목 : 나의 이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찬송 95장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신 주
도입: 한국 역사에서 본 이름과 가문의 비극
도입: 한국 역사에서 본 이름과 가문의 비극
오늘 새벽에 나눌 말씀의 제목은 **“나의 이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입니다.
우리나라 역사 가운데 조선 시대의 이야기를 한 가지 떠올려 보게 됩니다.
세조라는 수양대군이라고 불렸던 왕은요, 왕위를 차지하기 위하여, 형인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 단종을 복권시키려 했던 사육신과 많은 충신들을 처형하고,
그 가족들까지도 가차 없이 숙청했던 안타까운 역사가 있습니다.
왕이 된 뒤 자신의 왕위에 위협이 될 만한 모든 이들을 없애는 일은, 인간의 권력에 대한 탐욕과, 권력에 눈이 멀어, 자신의 가족까지도 가차없이 처단하는 인간의 불안과 죄성이 얼마나 잔인한 방식으로 드러나는지를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여로보암의 가문 역시 그러했습니다. 지금 본문의 시점이 남유다에서 북이스라엘로 넘어왔는데요.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누누게요? 바로 여로보암이라는 왕이죠.
여로보암은 하나님을 떠나고 자신의 정치적 안정만을 꾀했습니다. 여로보암이 왕이 된것은 하나님의 은혜였고요, 하나님이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잘 다스리면, 복을 주겠다 말씀하셨는데, 그는 왕이 되자마자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우상을 세워놓고요, 자신의 백성들이 혹시나 남유다 예루살렘에서 제사를 드리다가 자신을 떠날까봐 하나님 앞에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결국 그의 집안 전체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살당하는 비극을 맞이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는요 여로보암의 뒤를 이은 아들 나답 왕이 등장합니다. 그는 2년간의 짧은 통치 가운데, 역시 아버지의 죄를 따라 행했습니다. 그는 2년만에, 다른 가문 반역자 바아사에 의해 살해되고, 여로보암 집안은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여로보암이라는 이름을 잘 떠올려보세요. 그는 처음에는 하나님께 택함받은 자였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을 떠난 왕, 우상을 세운 자,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자라는 이름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름이라는게 정말로 중요합니다. 어떤 한 사람이 그 이름을 가지고 어떤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 그 이름에 대한 이미지가 새겨지게 됩니다. 속담 중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합니다. 이 말이 정말로 맞습니다. 이순신이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나라를 지켰던 위대한 장군, 세종이라는 이름을 떠올리면요, 우리나라에 훈민정음이라는 것을 창시한 위인, 김태희, 전지현, 이런 사람의 이름은요? 지금은 나이가 많이 들었어도, 아름다움의 대명사라고 불리는 이름들이 있어요. 유명한 사람의 이름만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이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송호정하면, 저를 아는 사람들은, 이 사람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이야기할거에요. 우리가 사람 앞에서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이름이 하나님 앞에, 믿음있는 자로 기억되는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들 되길 바랍니다.
🔵 첫째, 여로보암이라는 이름이 의미하는 것 – 하나님을 떠난 왕 (25-26절)
🔵 첫째, 여로보암이라는 이름이 의미하는 것 – 하나님을 떠난 왕 (25-26절)
25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유다의 아사 왕 제이년에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이스라엘 왕이 되어…”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왕위를 이어받습니다.
하지만 26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의 아버지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그 죄중에 행한지라.”
여로보암이라는 이름은 이스라엘의 초대 북왕국 왕으로 처음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세움받은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름은 곧 금송아지를 만들어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떠나게 한 자,
제사장을 멋대로 세운 자, 정치적 안정을 위해 신앙을 버린 자로 기억됩니다.
그리고 그의 길을 아들 나답이 그대로 따랐습니다. 이 표현을요, 성경은 그의 아버지의 길로 행했다라고 표현해요. 어떻게 보면 나답이 죄악된 인생을 산건데요. 아버지의 길을 걸었대요. 이후에도 보면요, 쭉 여로보암의 길로 행했다라는 말은요, 믿음대로 잘 살았다가 아니라, 죄악을 행했다는 표현으로 계속 사용합니다. 이와 반대되는 표현은 뭐에요? 조상 다윗이 행했던 길로 행했다. 이것은 죄악된 삶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았다는 표현인거죠. 이와 같이 여로보암이라는 이름이 주는 죄악된 삶을, 그의 아들 나답이 따랐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어떠한 이름으로 기억되고 있습니까? 누가 내 이름을 떠올리면, 어떠한 마음과 생각이 들까요? 오늘도 우리는 우리의 이름에 책임을 지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한걸음, 하루, 매순간 내딛는 발걸음과 삶의 발자취는 우리의 이름에 대한 의미와 인상들을 만들어갈 것입니다.
내 이름은 믿음의 이름인가, 아니면 세속적인 욕망을 쫓았던 이름인가?
오늘 아침,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믿음의 이름으로 남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간구하는 이 시간 되길 소망합니다.
🟡 둘째, 여로보암 집안의 말살은 아히야 선지자의 예언의 성취이다 (27-30절)
🟡 둘째, 여로보암 집안의 말살은 아히야 선지자의 예언의 성취이다 (27-30절)
27절을 보면 바아사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는 나답을 반역하여 그를 살해하고 왕위에 오릅니다.
그리고 29절에 보면 무서운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로보암의 집에 속한 자를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다 멸하되,
여호와께서 그의 종 실로 사람 선지자 아히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으니…”
여로보암 가문의 몰락과 나답의 죽음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한 결과였고, 선지자를 통한 심판의 말씀이 성취된 것이었습니다.
아히야 선지자는 이미 여로보암이 처음 죄를 지었을 때 경고했습니다.
**“네가 여호와를 떠났으므로, 네 집은 똥에 버려지는 집처럼 되리라”**는 무서운 심판의 예언이 주어졌던 것입니다.
하지만 여로보암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의 자녀들도 그 길을 따랐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 가문 전체를 몰락시켜버리셨습니다.
여로보암왕은 자신의 딴에는, 그럼 범죄를 저지른 것이 자신의 가문을 지키는 일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왕위를 견고하게 할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그의 가문을 몰락시켜버렸구요, 그 가문에서 왕권이 떠나게 되는 심판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게 참 아이러니한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안타깝게도요. 자신이 소망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역시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늘, 세상의 가치나, 세상의 논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 때에 복된 삶을 약속하는데요. 늘 우리는 그것을 믿지 못합니다. 여로보암뿐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그 가나안 땅에 그들이 정말로 잘먹고 잘살 수 있는 방법은요,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면 되는 거였어요. 그럼 천지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요. 모든 것을 주시며 지키시며 그들을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늘 착각하는거에요. 가서 보니깐 이방 민족들이 섬기는 우상들이 좋아보이는거에요. 왜요 눈에 확실히 보이잖아요. 그래서 그걸 섬기면 눈에 보이는 것들이, 이 땅에서의 잘먹고잘삶이 따라올지 아는데요. 전혀 아니에요. 복된 삶을 살고 싶은데, 복되지 않는 삶으로 그들은 나아가게 된거에요.
성경의 가르침은 분명합니다. 믿음대로 사는 이가 복을 받고요, 죄악된 길로 행하는 자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에 속지 마세요. 사탄이 주는 잘못된 가르침에 속지마세요. 믿음대로 사는 인생이 복된 인생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무겁게 듣는 귀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구별된 교회로, 말씀 앞에만 순종하여, 불순종의 심판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 셋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떠난 삶은 결국 비참하다 (31-34절)
🔴 셋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떠난 삶은 결국 비참하다 (31-34절)
오늘 말씀에서 31절부터는 나답과 바아사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됩니다.
여로보암의 아들은 짧은 2년의 통치 끝에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고, 그를 죽이고 왕이 된 바아사 역시 여로보암의 죄를 반복하게 됩니다.
34절을 보세요.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그의 죄 중에 행하였더라.”
왕이 바뀌었지만, 길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변해도 죄의 패턴을 반복하면 결국 같은 결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인도하심 없이 살아가는 인생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봅니다.
왕이 되어도, 권력을 가져도, 이름을 남겨도
하나님을 떠난 이름은 결국 사라지고 지워지는 이름이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깊이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가?
사람들은 나를 어떤 직분으로 부르지만,
하나님은 나의 삶 전체를 보고 내 이름을 정의하십니다.
오늘 아침, 여로보암의 길을 따르지 말고,
믿음의 사람 다윗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이름을 남기는
그런 인생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를 말씀 앞에 세워주시니 감사합니다.
여로보암의 이름처럼 하나님을 떠나 자기 길을 간 자의 끝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우리의 이름이 이 땅의 명예나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기억될 믿음의 이름이 되게 하옵소서.
죄의 길을 반복하지 않게 하시고,
주의 경고의 말씀을 두려움으로 받으며
날마다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오늘도 내 삶의 중심이 주님께 있기를 원합니다.
주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하루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