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업적보다 하나님 앞에 정결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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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왕상 16:15-28절
말씀 : 왕상 16:15-28절
제목 : 위대한 업적보다 하나님 앞에 정결함을
오늘은 ‘위대한 업적보다 하나님 앞에 정결함을’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겠습니다. 우리는 종종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삶을 위대하다고 평가합니다. 건물을 세우고, 회사를 일으키고, 큰 돈을 벌고, 이름을 날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죠. 심지어 정치 지도자들도 전쟁에서 승리하고 국토를 넓힌 사람들을 ‘위대한 왕’이라 칭합니다. 우리나라 역사에 광개토대왕 같은 인물을 대단하고 평가하지요.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참된 왕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사실 세상의 기준과는 전혀 다른 기준을 제시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이 위대한 사람입니까? 어떤 경우 아무리 세상에서 칭송받는 삶을 살았다고 할지라도요, 하나님 앞에 인정받지 못하는 삶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성도의 삶은 더욱 그러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어차피, 그것에 관심이 없으니 말입니다. 우리는 누구의 인정을 받는 삶이 중요할까요? 하나님께 인정 받는 삶이 중요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그 기준을 함께 살펴보길 원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북이스라엘의 여러 왕들이 등장합니다. 바아사의 아들 엘라가 술에 취해 신하 시므리에게 암살당합니다. 그리고 시므리라는 왕은요 15절 말씀에 보면, 단 7일을 왕노릇을 합니다. 그는 암살을 성공해서 왕이라는 자리를 쟁탈했지만, 이 소문을 들은 오므리라는 인물은 이 사실을 이용하여 왕위를 빼앗습니다. 시므리라는 사람이 배신과 암살로 왕위를 탈취했다는 명분이었죠. 오므리는 군대장관이었고요, 군사를 데리고 왕궁을 에워쌉니다. 그리고 죽을 것을 예감한 시므리는 왕궁에 불을 지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오므리라는 원래는 군대장관이었던 자가 왕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근데 정치라는게 복잡한 이유가 뭐냐면요, 오므리가 왕이 되었으면, 그가 왕임을 모두가 인정했을까요? 아니지요. 그는 군대장관이었던 사람입니다.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존재했어요. 21절에 보면, 백성들이 둘로 나뉘었다. 절반은 오므리를 지지했고요, 절반은 디브니라는 사람을 지지하게 됩니다. 참 어렵죠. 7대 3도 아니고 반반이 서로 다른 사람을 지지하니깐 말입니다.
그런데 둘을 지지하는 백성들 중에 누가 이기게 되냐면요, 오므리를 지지하는 백성들이 이기게 되요, 그리고 디브니라는 사람이 죽게 됩니다. 그리고 오므리가 정식적으로 북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참 이런 정치의 모습을 보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별다르지 않는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남유다와 나뉘었던 나라긴해도요. 북이스라엘의 정체성은, 그래도 하나님으로부터 세워진 나라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정치적 암투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죠. 술에 취한 왕을 암살을 하지 않나, 그것을 명분삼아서 군대장관이 군대를 끌고 가서, 그 사람을 죽이려하고 왕위를 쟁탈합니다. 또 그 안에서도 반반으로 나뉘어서 서로를 죽고 죽여 권력을 빼앗는 행태를 보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나라로서 어떠한 태도와 기준으로 나아갔어야 했을까요? 사실 이 왕궁의 모습은요 어떻게 보면 이스라엘 전체의 모습을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거에요. 이스라엘이라는 한 나라의 참 왕은 하나님이신대요. 그들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태도로 정치싸움을 벌이며 권력을 손에 쥐려는 패악한 모습을 보여요.
이게 참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에 찌든 모습입니다. 그들의 정체성은 하나님 나라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인데요. 거기에는 하나님의 가치와 말씀과 뜻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 나라를 어떻게 하실까요?
오늘날 교인의 삶도 비슷하다 할 수 있습니다. 나름 믿음이 있다고 세례를 받고요, 일주일에 한번씩은 꼬박꼬박 교회에 다닙니다. 그런데 정작 삶의 모습과 살아가는 태도와 따르는 가치를 보면요, 세상 사람과 똑같다면 그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신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대부분 이 나라에 교회에 대한 실망은 누구로 부터 비롯되었을까요? 하나님이 못해서요? 예수님이 못해서요? 아닙니다. 그분을 따른다고 말하는 사람들이요. 말로만 교인이지, 말로만 성도지, 말로만 집사고 권사고 장로고 목사지 전혀 말씀을 쫓는, 하나님의 뜻을 삶이 없기 때문입니다.
바라기는 우리의 삶이 이러한 삶이 아니길 소망합니다. 우리의 가치와 인생의 목적이, 세상과 같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우리의 삶이되어, 세상과는 전혀 다른 거룩한 공동체로, 거룩한 삶으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두번째로 볼 부분은요, 본문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오므리입니다. 그는 강력한 이스라엘의 왕 중의 하나였고요, 정치적 업적을 보면요, 나라에 안정을 가져왔고요, 도시 건설을 했고요, 사마리아를 수도로 세우는 일까지 감당했습니다. 그는 세상적 기준으로 본다면 유능한 지도자이자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단 한구절로 그를 평가합니다. 25절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였다”라고 기록합니다. 그는 그 다음에 보면요, 그 다음 왕인 아합에게 왕위를 성공적으로 물려줍니다. 그러나 아합 역시 우리가 알다시피 30절에 보면요, 그는 오므리의 아들로서 이전의 모든 왕들보다 더 악하게 행하였다 평가합니다. 아버지의 죄악이 아들의 삶에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부모와 기성세대로서 어떠한 믿음을 우리 후세대에게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있습니까? 부모들은 늘 그것을 생각합니다. 우리 애들은 힘들게 살면 안되라면서, 재산을 물려주려 합니다. 더 낫고 좋은 교육을 시키려 합니다.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더 나은 조건을 만들어 주려고 합니다. 이런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요, 바로 신앙의 유산입니다. 우리의 다음세대들이 왜 점점 더 교회를 떠나고 있을까요? 우리의 자녀들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는 일에 우리가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더 나은 환경과 풍요로운 삶이 주어졌을 지라도요, 신앙의 유산을 남기는데 실패했다면, 그것은 실패한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므리는 자신이 세운 도시와 정권을 자랑스럽게 여겼을지 몰라도요, 아들에게 이어진 것은 믿음이 아니라 더 큰 악함이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우리는 우리 자녀들, 후세대에게 정말로 숭고한 믿음의 유산을 물려줄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그것을 물려줄 수 있는 방법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 어떤 것보다 믿음과 신앙을 소중히 여기며, 그러한 가치로 우리가 삶을 살아갈 때에, 이 아름다운 유산이 물려질 수 있는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말을 듣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삶을 보고 배웁니다. 우리가 세상 성공보다 하나님 앞에서 정결함을 추구한 삶을 살아갈 때에, 우리 광혜교회가 이 믿음의 유산을 후세대들이 받아 이끌어갈 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 일을 위해 우리의 삶을 두고, 우리 자녀들과 다음세대들을 두고 기도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길 소망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저희의 삶을 돌아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사람의 칭찬보다 하나님의 인정을 더 소중히 여기게 하시고,
세상의 성공보다 주님 앞에 정결한 인생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자녀들도 이 믿음의 길을 따라가게 하시고,
우리 가정이 하나님의 뜻 안에 바로 서는 가정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살게 하시고,
언제나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겸손한 종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