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중독

우리의 죄, 하나님의 샬롬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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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out
복음반 토요집중반 2주 21, 28일/ 세례반
교육부서 여름성경학교 보조교사
Numbers 11:4–6 NKRV
4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5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6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우리의 죄 하나님의 샬롬’ 8번째 시간, “죄와 중독”이라는 제목으로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으로 가는 길에 광야에서 불평을 토로하는 부분입니다.
4절을 보면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었다” / 여기서 다른 인종들이란 다른 종족을 말하는 건데, 이들이 애굽의 노예였을 때, 먹었던 음식에 대한 그리움과 탐욕을 품었다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탐욕이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불평으로 퍼져 나갑니다. / 죄가 얼마나 공동체를 빨리 오염시키는지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울며 이렇게 불평합니다. “애굽에 있을 때에는 공짜로 생선과 오이, 참외, 부추, 파와 마늘을 먹었는데, 지금 고작 만나 밖에 먹지 못하니, 식욕도 잃고 기력도 잃었다”
여러분, 만나는 하나님께서 광야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매일 내려주시는 하늘의 양식이죠. / 그런데, “그거 필요없다, 먹기 싫다, 질렸다”/ “애굽의 노예였을 때 음식이 훨씬 맛있었는데, 우릴 왜 끌고 나왔냐’ 라고, 불평하는 겁니다.
우리가 들어도 고구마 100개 먹은 기분인데, 이 말은 들은 모세의 기분이 어떠했을까요? / 고생고생해서 애굽에서 끌고 나왔는데, 오히려 애굽이 좋았다니, 아마 환장할 노릇이었을 것입니다. / 목숨 살려준 사람한테, 왜 살려줬냐라고 불평하는 것과 다를 것 없죠.
심각한 것은 이 불평과 원망이 모세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기도 하였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후의 이야기는 진노한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양의 메추라기 떼를 보냅니다.
그러자, 이들은 신나서 배를 채우기 시작하는데, 금새 음식이 질리기 시작합니다. / 그리고, 메추라기를 필요 이상으로 긁어 모으기 시작합니다. / ‘내가 내 미래를 준비해야지, 내일은 메추라기를 안 보내실수 있어’ / 하나님을 향한 불신의 행동이죠.
이로 인해 하나님의 재앙이 임하게 되고, 백성들은 병들어 죽게 됩니다. / 성경학자들은 전염병으로 추정하는데요. / 성경은 이 사건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Numbers 11:34 NKRV
34 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으니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기브롯 핫다아와”“욕망의 무덤”이라는 뜻입니다. / 굉장히 우울한 사건이죠. / 어떤 희망적인 이야기가 안나옵니다 /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이 이야기를 눈여겨 봐야 할 이유는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지 / 인간의 죄에 대해서 적나라하게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인슈타인이 이러한 말을 했다고 하죠.
“똑같은 일을 반복하며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 그런데, 여러분 인간은요. 이것을 알면서도 그 미친짓을 반복합니다. / 단적인 예를 들자면, 야식 먹으면 안되는 줄 알면서도 야식을 먹죠.
여러분, 우리는요. 무엇이 옳은 행동이고, 무엇이 나쁜 행동인지를 압니다. / “거짓말은 나쁜 것이고, 약속을 어기고, 남을 미워하고, 해를 가하면 안된다. 서로를 존중하고 살아야 한다” / 모든 종교와 모든 문화에서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보편적인 합의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라는 것이죠. / 오늘날 세상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문제는 하지 말아야 할 걸 하고, 해야할 것을 안하기 때문이라는 걸 모두가 동의할 것입니다.
왜 그런걸까 / 왜 인간은 옳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지 않는걸까요? /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굳이 그 일을 하는 걸까요?
아인슈타인이 말했듯 인류는 어떠한 결과가 일어날지 뻔히 알면서도 그 미친짓을 반복합니다. / 어느 시대든 어느 문화든 마찬가지였어요.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오늘 주제죠. 바로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죄에 대한 특징을 또 다른 시각으로 우리에게 보여주는데, 세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1) 죄는 우리를 노예로 만든다 2) 죄의 파괴성 3) 죄로부터의 탈출

1. 죄는 우리를 노예로 만든다

첫번째 죄는 우리를 노예로 만듭니다.
성경은 모든 인간이 죄인일 뿐만 아니라, 죄의 노예라고 말합니다. / 단순히 죄가 나쁜 행동이 아니라 어떠한 힘을 가지고 있다라는 것이죠. / 이 힘은 인간을 파괴시키는 힘인데요.
이런 겁니다. / 내 생각과 판단으로 죄를 지으면, 내 생각과 판단이 오염되고, 감정으로 죄를 지으면, 감정이 망가지게 됩니다. / 의지로 죄를 지으면 내 의지와 자제력에 문제가 생깁니다. / 죄는 이렇게 우리를 노예로 만들고, 우리의 내면을 망가트리는 파괴자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애굽 때가 참 좋았지? 거기로 돌아가자.” / 여러분, 이게 처음은 아닙니다. / 이들은 자주 이러한 말을 했는데요.
여러분 아시다시피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의 노예였습니다. /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들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죠 /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출애굽 사건입니다. / 이제 이들은 노예가 아니었어요. 자유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하는 얘기를 보세요. / “생각해보니 지금보다 애굽이 더 낫지 않아? 애굽의 그 화려한 문명.! 피라미드 간지였는데, 피라미드 그늘이 그리워”
여러분, 이건 우리가 일제 강점기 때를 그리워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때 나라가 빼앗기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낭만은 있었지.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여러분, 이 장면을 보면 어떠한 생각이 듭니까? “제정신이야? 미친거 아냐?” / 이해가 가지 않죠.
가족들이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채찍에 맞고. 죽고, 아무런 희망도 없엇는데, ‘아 그렇지! 생선은 공짜로 먹을 수 있었잖아” 고작 그 이유로 애굽을 그리워하는 겁니다. / 공짜 생선 때문에 출애굽 사건을 부정하는 겁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 지금 애굽으로 돌아가면 다 죽을 수 있습니다 / 아무리 맛이 없고 질리더라도 만나를 먹으면서 약속의 땅, 자유가 있는 땅으로 가야죠. / 그게 최선이고, 옳은 행동입니다. / 5살 애들도 그게 맞다라는 걸 알아요.
근데, 그걸 알면서도 하지 않습니다. / 죽을 줄 뻔히 알면서 계속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하죠/ 왜 그런걸까요?
몸은 애굽의 노예상태에서 벗어났을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영적으로 노예상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 옳은 일을 할 수가 없는 거죠.
영적으로 무기력해서 선을 행할 수 없는 상태. / 성경은 이것을 죄의 노예된 상태라고 말합니다. / 바울은 말합니다.
Romans 7:19 NKRV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으나, 그것을 하지 못하고, 하지 말아야 될 것을 알면서도 악을 행한다” / 왜 그런 것일까? 23절은 말합니다.
Romans 7:23 NKRV
23 …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죄가 나를 사로 잡았다” / 공동번역은 “죄의 종이 되었다. 죄의 노예가 된 내 모습을 본다”라고 말합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내가 선을 행하면 행할수록, 내 안에 선을 행할 힘이 없다는 것을 더 깊이 깨닫는다. 죄가 나를 사로잡아 노예로 만드는 것을 더 분명히 인식하게 된다”라는 말입니다.
만약 이 말에 동의하기 힘들다라는 분들이 있다면, 이렇게 한번 해보시기 바랍니다.
내일부터 철저하게 말씀대로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보십시오. / 딱 일주일만 한번 그렇게 해보세요. /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C.S. 루이스가 순전한 기독교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을 행하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기울여 보기 전까지는 자기가 얼마나 악한 인간인지 깨닫지 못한다”
경험해 보신 분들은 알겁니다. /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지 않는 여러분 자신을 발견할 겁니다. / 말씀을 봐야 하는지 알면서도 말씀 보기 싫어하고, 기도를 해야 하는지 알면서도 기도하지 않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할수록, 그것을 하기 싫어하는 악이 내 안에 있구나” 바울과 똑같은 고백을 할 겁니다.
왜 그런걸까요? / 죄가 우리를 노예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 우리를 끌고 가려는 힘이 있는 겁니다.

2. 죄의 파괴성

그렇다면, 두번째 죄의 파괴성인데요. / 죄는 우리를 속박함으로 참된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선을 원하고자 하는 자유, 선을 행하고자 하는 자유를 빼앗습니다. / 더 나아가 우리의 생각과 판단을 흐리게 하고, 감정를 왜곡시키고, 의지를 마비시킵니다. /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자신이 시키는 대로만 하는 노예로 만드는 것이죠.
먼저 4절을 보면 “탐욕을 품었다”라고 하는데, 애굽을 향한 그리움이죠. / 여러분, 애굽은 어떠한 곳입니까? 자신들과 가족들이 학대를 받은 곳입니다. 그런데, 애굽을 그리워하는 겁니다. / 비정상적인 감정입니다.
또 5절에서는 “우리가 애굽에서 공짜로 음식을 먹던 걸 기억한다” / 지금 온 민족이 고통받아 죽게 생겼는데, 공짜 생선을 생각하고 있다니? / 정상적이지 않은 생각과 판단이죠.
그 결과 만나조차 먹기 싫다고 말합니다. / “이제 더 이상 순종할 수 없고, 먹을 수도 없고, 가나안 땅으로 가기도 싫다” / 의지조차 사그라들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그렇게 원하는거 실컷 주마. 그게 과연 너희를 행복하게 하는지 봐라. 냄새도 맡기 싫어할 것이다”
여러분 이 모습은요. 마치 중독과 비슷한데요.
여러분 아시다시피 중독은 무엇입니까? / 어떤 물질이나 대상한테 완전히 종속 당하는 것이죠. / 거부할 수 없게 철저하게 의존하게 만들어서 신체적, 심리적, 행동적으로 지배하고 파괴합니다. / 중독은 노예 상태입니다.
죄가 우리를 노예상태로 만들어 파괴하는 방법이 이겁니다. / 중독에 빠트려 삶을 망가트리는 것이죠.
그래서 일반적으로 알콜중독, 포르노중독, 약물중독, 도박중독 같은 것들은 / 죄가 우리들의 인생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축소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중독에 걸린 사람들은 보세요. / 그게 자신을 파괴하는 줄 알면서도 벗어나질 못하죠. / 신체적, 정신적, 심리적으로 완전히 지배를 당한 겁니다.
중독은 보통 이렇게 시작합니다.
삶의 고통이나 상처, 결핍이 찾아오게 되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어떠한 대상을 선택합니다. / 그게 어떠한 대상일 수도 있고, 도박, 성, 약물, 그 어떤 것일 수 있습니다.
이 대상들은 언제나 우리에게 이렇게 약속하죠. / “네가 이것을 하면 자유로워질거야. 너의 허무함이 채워질거야.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해질거야”
처음엔 달콤하게 들립니다. / 그래서, 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 독을 삼키게 되는거죠. / 중독이라는 치명적인 덫에 걸리게 됩니다.
이 중독의 덫은 세가지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합니다. 내성, 부정, 의지파괴
첫번째는 내성인데요. / 여러분 내성이 뭐죠?
처음에는 이 정도의 알코올과 약물, 성적 자극으로 충분했지만, 다음에는 만족이 안됩니다. / 내성이 생기게 된거죠 / 그래서 다음에는 더 많은 양, 더 많은 자극이 필요하게 됩니다. / 어제 만족했던 걸로는 부족하죠. / 계속해서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됩니다 / 이렇게 중독은 내성으로 우리를 망가트립니다.
두번째는 부정입니다.
아까 말했듯이 중독은 우리의 생각과 판단을 흐리게 만듭니다. / 현실을 부정하게 만들죠 / 그래서 나빠지는 걸 알면서도 계속 그 행동을 하는 겁니다. / 계속해서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것이죠. / 그러니깐 판단이 흐려지는 겁니다.
세번째, 중독은 의지를 파괴합니다.
중독에 걸리면 더 나아지기 위해 붙잡는 것이 무엇입니까? / 날 중독에 걸리게 한 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죠. / 고통을 피하기 위해 고통의 원인을 붙잡는 겁니다.
계속 악순환인 것이죠. / 그렇게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겁니다.
물론, 여러분들 중에 이러한 중독자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성경은 모든 인간은 이러한 죄의 파괴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라고 말합니다. / 왜 그런 것일까요?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것,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더 갈망하는 것. / 하나님을 삶의 중심으로부터 주변으로 밀어내는 것, 이게 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내 만족으로 삼는 것이 처음에는 자유롭고, 좋아 보입니다.
하지만, 죄는 우리를 노예로 만들어 자유를 빼앗아 갑니다.
내가 내 인생의 운전대를 잡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운전대에서 밀려나 죽음의 길로 끌려가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잘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도 죄의 중독으로 인한 내성효과를 경험하고 있지 않나요?
“내가 이 학교만 가면 행복할거야” / 그런데 막상 그 학교를 가면 어떻습니까? / 처음에는 너무 설레고 좋지만 금새 내성이 생겨서요. 만족이 되지 않습니다. / 오히려 학교를 불평하죠.
“하나님, 제가 이 회사만 간다면, 제가 정말 하나님 열심히 섬기겠습니다” / 막상 그 회사 가면 어떻습니까? / 그 간절함은 금새 사라지고, 하나님 왜 이런 회사에 보내셨나며 불평하죠.
여러분, 결혼도 마찬가지입니다. / “내가 저 사람과 결혼하면 정말 행복할텐데” / 화려한 조명과 결혼식이 끝나고 시간이 흐르면요. / 그 멋지고 매력적인 사람이 내 옆에 있는데도 내성이 생겨 무뎌지게 됩니다. / 그래서 만족하지 못하면 또 다른 사람을 찾아 헤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왜 이렇게 쉽게 공허하고, 쉽게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물론 좋은 학교, 좋은 직장, 멋진 배우자를 원하는 것이 나쁘다는게 아닙니다. / 문제는 하나님보다 그것들을 더 사랑하고, 갈망하는 것이죠. / 그게 죄입니다. / 그리고 죄는 중독의 메커니즘을 따라 우리 삶을 파괴시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하는 겁니다. / “너희가 그토록 애굽의 공짜 음식이 그립다면 좋다. 내가 공짜 메추라기를 하늘에서 질리도록 먹여줄테니 함 봐봐라 / 그것이 얼마나 너희에게 만족을 가져다 줄지”
얻으면 얻을수록 만족을 줄어들죠 / 불안해질 뿐만 아니라 감정도 생각도 마음도 불행해 질 뿐입니다. / 더 이상 그게 여러분의 삶의 즐거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 가운데에는 항상 이러한 외침이 있습니다. / “만약에 내가 그렇게 했더라면, 만약에 내가 애굽의 고기를 먹을 수만 있다면”
그래서, 조나단 에드워즈는 죄는 인간의 마음을 불처럼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끊임없이 타오르는 불은 항상 무엇을 원합니까? / 연료를 원하죠. / 충분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 계속해서 더 많은 연료를 원할 뿐입니다.
죄에 물든 마음도 이와 같다라는 것이죠. / 연료를 넣으면 불이 더 활활 타오르며, 더 많은 연료를 원하듯이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 “나는 이미 충분해, 감사해. 행복해”라고 절대 말하지 않습니다. / “더 많은 행복, 더 많은 성공”의 연료를 요구할 뿐이죠.
여러분에게 있어서 만약은 무엇입니까?
“내가 이것만 있으면 행복할 텐데” /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주인입니다.
만족하지 못하게 만드는 그것 /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게 만드는 그것 / 아닌 줄 알면서 계속해서 그것을 하게 만드는 그것. / 그것이 여러분을 노예로 만들어버리는 겁니다. / 죄의 힘이죠.
따라서 우리 모두는요. 죄의 중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라는 것입니다.

3. 죄로부터의 탈출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이 죄의 노예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첫번째, 진짜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직면해야 합니다.
민수가 11장 20절에서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Numbers 11:20 NKRV
너희가 너희 중에 계시는 여호와를 멸시하고 그 앞에서 울며 이르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가 함이라 하라
이스라엘 백성은 “고기를 달라”했을 뿐인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죠. “너희는 나를 멸시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너희들의 진짜 문제는 단지 고기를 탐한게 아니다. 나를 버린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때로는 뺨을 쳐서라도 정신을 차리게 만들 필요가 있죠. / 하나님께서는 지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빰을 치면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 “고기 때문이 아니라 너희들은 나를 버린 것이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 모든 죄의 문제는 영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가 문제의 원인인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실지 모릅니다. / “지금 너의 진짜 문제는 너의 삶의 중심에 내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 삶에 중심 가운데 있지 않다면, 그것이 죄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그것은 인정하냐 안하냐에 있다라는 것이죠.
여러분, 아시겠지만, 중독에 걸린 사람들이 모든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회복의 첫걸음을 띠는 때가 언제입니까? / 자신이 지금 심각한 상황에 빠져 있다라는 것을 인정하고, 도움을 구하는 그 순간입니다/ 그때부터 치유가 시작되는 겁니다.
그런데, “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괜찮아”라고 말한다면, 나아질 가망성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영적으로 적용한다면 이런거에요.
“나는 괜찮아. 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나는 그렇게까지 죄를 짓지 않았어. 중독에 걸렸다는 기분 나쁜 말 하지 마”
만약 여러분이 이렇게 말한다면, 여러분은 이미 심각한 노예가 되어있는 상태입니다. / 왜냐하면, 자신이 노예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병에 걸렸다는 진단이 나왔음에도 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라고 부정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
따라서, 죄의 중독으로부터 벗어나는 첫걸음은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두번째,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는 겁니다.
20절을 히브리 원문으로 보면 “너희가 여호와를 멸시했기 대문에 고기를 싫어하게 될 것이다”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멸시한 결과 고기 뿐 아니라 삶의 모든 좋은 맛을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것을 다시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을 맛보지 못하면, 삶의 모든 곳에서 쓴 맛을 맛보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맛보지 못했기 때문에 애굽의 고기 타령을 한 것이고, 그토록 원했던 고기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고통의 쓴 맛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삶의 참맛을 회복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봐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무슨 말이냐면,
여러분이 지금 어떤 중독가운데 있는데, “난 이제부터 중독을 끊을거야”라고 아무리 결심한다고 해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회복하는 겁니다. / 하나님을 맛보는 겁니다. / 하나님을 알고 믿는다라는 말로 부족해요. /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경험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한 예배입니다. /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한 예배가 우리를 죄의 중독으로부터 자유케 합니다.
여러분, 그래요. / 영광스럽고, 충만한 예배,
하나님이 누구시고, 그분이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하셨는지에 대한 가슴이 벅찬 예배,
그 임재로 인해 눈물이 날 수 밖에 없는 예배,
우리의 모든 수치와 죄악을 녹이고도 남을 영광스러운 예배가 우리를 죄의 속박에서 자유롭게 할 줄로 믿습니다.
햇빛이 어둠을 쫓아내듯, 계속해서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한 예배 가운데 우리 영혼이 노출되면 어둠이 떠나가는 것입니다.
극단적인 예이기는 하지만, 새롭게 하소서의 래퍼 사츠키(김은지)의 간증을 들어보신 적 있을 겁니다.
죽음의 마약이라는 펜타닐에 중독되어 완전히 삶이 피폐해졌다가 기적적으로 회복한 이야기인데요. / 다른 약보다 펜타닐 중독에서 벗어나는 경우는 매우 어렵다고 하죠. / 회복된다고 해도 긴 치료 과정을 거쳐야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츠키 같은 경우는 어떠했냐면, 약물 중독으로 완전히 삶이 피폐해졌던 그 시기에 절박한 심정으로 어느 교회 수요예배를 찾아갔다고 하죠.
거기서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시다가 갑자기 찬양을 하기 시작했다고 해요 / “찬양하라 내 영혼아”
갑자기 그 찬양이 울려퍼지는 순간, 영혼 깊숙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 “내가 너를 환영한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 그 순간 눈물이 터지기 시작합니다. / 이때부터 회복이 시작되는데요.
이후에 기도하다가 “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신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경험합니다. / 그리고, 경험이 모든 것을 변화시키게 됩니다.
예배 가운데 만난 하나님의 임재의 경험이 죄의 중독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게 만든 것입니다.
[반주] 또 다른 예가 있습니다.
스탠리 존스라는 선교사의 이야기입니다. / 스탠리 존스는 감리교 출신의 미국 선교사인데, 인도에서 성공적으로 사역을 한 선교사이자 저술가이기도 합니다.
선교사로써 많은 열매를 거두었지만, 스탠리 존스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심각한 영적 침체와 번아웃을 경험하게 되고, 신경쇠약에 걸리게 됩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예배를 드리던 중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는데요. / 이러한 음성을 듣습니다. “스탠리, 내가 너를 사랑한다”
뭔가 특별하고 대단한 음성이 아니죠. / ‘왜 너 사역을 열심히 하지 않니?’라는 비난도 아니었고, ‘너는 빨리 회복해서 나의 일을 하라”는 명령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내가 너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라는 단순한 음성이였습니다. / 하지만, 이 단순하고도 강력한 음성이 스탠리 존스의 영혼을 터치하게 됩니다. / 그 경험을 이렇게 썼습니다.
“그 음성은 나의 내면 깊은 곳을 뚫고 들어왔다. 나는 갑자기 자유로워졌고, 그 사랑이 내 온 존재를 감쌌다. 나는 회복되었다. 나는 다시 살게 되었다”
여러분, 예배가 우리를 죄와 중독로부터 자유케하는 능력인 줄로 믿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오늘 여러분이 예배의 자리에 있지만, 그런 특별한 순간이 바로 오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사람과의 만남에도 내가 의도하고 기획해서 특별한 시간이 오는게 아니죠.
제가 아내와 3년 연애해서 결혼했는데, 매번 만남이 기억에 잊히지 않을 만큼의 특별한 만남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 어떤 만남은 그냥 일상적이고도 평범한 만남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다보면 / 특별한 대화가 오가고, 특별한 순간이 오기도 하는 겁니다. / 물론 결혼한 이후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특별한 시간을 경험하기 위해선, 그만큼 자주 만나고, 자주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 아이들과의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격적이신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찾는데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 말씀을 읽고, 기도를 하는데, 시간을 투자해야 되고, 예배를 위해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보면, 어느 순간 눈물이 터지고, 기쁨이 넘치는 예배를 경험하게 되는 겁니다.
저도 지금까지 수많은 예배를 드리고, 또 예배를 인도했지만, 이러한 순간은요. 한 두번? 손에 꼽습니다. / 하지만, 그 임재의 경험이 나를 옭아매는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케 만듭니다. / 하나님의 임재가 그 무엇으로도 만족하지 못했던 내 심령을 만족케 하고, 그 무엇보다 달콤하다라는 걸 맛보기 때문입니다.
Psalm 84:1 NKRV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이 하나님의 사랑에 완전히 압도될 때 내 안에 있는 모든 중독과 죄악이 떠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 가운데 이러한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를 경험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계속해서 만족하지 못해서 연료를 필요로 하는 불 같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한 임재의 갈망으로 타오르게 될 때, 진정한 자유가 찾아오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이 갈망은요 오직 예배로만 타오를 수 있습니다. /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 예배의 임재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맛보십시오.
여러분이 계속해서 세상에서 쓴 맛을 경험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커스 1집에 “주의 장막에서”라는 찬양이 있는데요. / 무려 2008년도 찬양입니다.
주의 장막에서 한날이 궁정에서 천 날보다 좋사오니 나의 영혼 주님을 기뻐해 주의 사랑 날 완전케하네 주의 사랑 날 새롭게하네 끝이 없는 주의 사랑만이 내 영혼 자유케하시네
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면, 누가 날 무시하든, 어떻게 보든, 내 삶이 지금 어떠하든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날 완전케하고 새롭게 하고 자유케 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은혜는 날마다 새롭기 때문에 ‘내성’이 없습니다. / 성경은 “주의 인자하심이 아침마다 새롭다”라고 말하죠. / 어제 좋았던 것들은 오늘 시들해지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날마다 새롭습니다. / 그분의 임재는 언제나 우리 영혼의 만족을 가져다 줍니다.
우리를 절대로 속박하지 않는 진정한 주인, 용서하시고, 안아주시고 치유하시는 유일한 주인이신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에겐 모세보다 더 큰 분이 필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불평하자 하나님과의 이스라엘과의 중재의였던 모세는 말하죠. / “차라리 저를 죽여주십시오. 이 백성은 나에게 무거운 짐과 같습니다. 제가 이들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서 3장에서 말하는 모세보다 더 큰 분이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들의 죄악과 짐을 감당하겠다. 내가 그들을 위해 죽겠다” 완고하고 불순종하였던 이들을 위해.
예수님은 죄의 노예된 우리를 자유케 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자유를 잃으셨습니다. / 그분이 우리의 중보자이고 인도자이시고 구원자이십니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지만,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찬양

주의 성산에서 한날이 궁궐에서 천 날보다 좋사오니 나의 영혼 주님을 기뻐해
주의사랑 날 완전케 하네 주의 사랑 날 새롭게 하네 끝이 없는 주의 사랑만이 내영혼 자유케 하시네
주의사랑 날 완전케 하네 주의사랑 날 새롭게하네 오 주님 나의삶을 통해 주사랑 나타내소서
영과 진리로 예배하네
나의 눈 열어 주를 보게 하소서 정직한 예배 순전한 맘을 드리네 빗나간 나의 소망 주께로 돌이키며 오직 주님만 사랑하게 하소서
기도제목
하나님,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여겼던 내 삶의 우상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만 예배하게 하옵소서
빗나간 나의 소망이 하나님을 소망으로 여기는 삶 되게 하옵소서. 주님만 사랑하게 하옵소서.
주의 사랑으로 나를 옭아매고 있는 죄로부터 자유케 하옵소서.

봉헌기도

우리에게 인생의 참 맛과 자유를 주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우리가 세상의 만족이라는 메추라기를 탐하지 않고, 오직 주님을 구하고, 예배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닌 다른 것들로부터 만족을 구하려다가 우리의 마음은 더 메마르고, 옹색해지고, 자유롭지 못하고 불안하고 두렵고, 의지마저도 사라져 갑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님보다 더 귀한 것이라면, 그것은 빗나간 소망입니다. 우리의 소망을 주께로 돌이키고 하나님의 임재 안에 충만한 만족을 누리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안에 뚜아리를 틀고 있는 모든 우상들로부터 자유케 하옵소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볼수록, 우리에게 씁쓸한 맛을 주었던 인생의 맛이 천국의 맛으로 변화될줄로 믿습니다.
오늘 목장모임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이 시간 하나님이 내 삶과 소유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며 예물을 올려 드립니다.
우리의 신앙 고백을 담은 이 헌금을 통해 이 헌신을 통해 교회가 든든히 세워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지심으로 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신 참된 모세이신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축도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하나님을 예배함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기를 원하는, 그래서 참된 자유를 누리기를 원하는
이곳에 모인 청년들에게 항상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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