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되지 않은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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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르는 삶

성경 구절: 사사기 9:7–15

오늘은 ‘왕이 되지 않은 나무들’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여러분 삼일간 평안하셨습니까? 우리 옆에 있는 지체와 이렇게 한번 인사할까요? ‘우리가 교회입니다’ 누가 교회에요 우리가 교회입니다. 이번 전교인수련회 주제였습니다. 은혜 가운데, 우리가 교회됨을 다시금 확인하는 시간이어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이제 날씨가 여름이 된 것 같습니다. 무척 더운 여름이 될 것 같은데요. 덥기만 한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뜨거운 여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름하면요, 무엇보다 교회에서는 중요한 계절인 것 같습니다. 우리 다음세대들이 세대별로 여러 수련회들이 계획되어 있고요, 이번에는 여름성경학교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 다음세대를 향한 뜨거운 마음을 품고, 이 여름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광혜교회 되길 그러한 은혜에 모두가 동참하는 우리 교회되길 소망합니다.
우리는 흔히 그런 생각을 합니다. ‘자리’가 중요하다는 생각말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를 얻기위하여 달려갑니다. 어제 쿠웨이트와 축구를 보셨나요? 뭐 4:0으로 이겼다고 합니다. 요즘 초등학생들이 꿈꾸는 가장 선망하는 직업이 뭔지 아세요? 예 1등이 운동선수입니다. 바로 손흥민 같은 세계적인 운동선수를 꿈꾸는 아이들이 많아졌대요. 또 저 어렸을 때랑, 여러분들 어렸을 때랑 꿈이 많이 다른 것 같긴 합니다. 그런데 참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런 것 같아요. 어떤 그 자리를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목표로 하고 살아갑니다. 그 자리가 운동선수일 수도 있고요, 의사 일수도 있고요, 아니면 어떤 특정 직업이나 회사의 직원이라는 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또 이번에 우리나라에 큰 변화가 있었죠. 대한민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습니다. 저 어렸을 때는 대통령이 꿈이라는 것이 간간히 나오곤 했는데요. 요즘은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대통령이라는 자리는요, 어떻게 보면 이 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가장 특별하고 높은 자리라 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되면 청와대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국가의 모든 행정 권한을 가집니다. 심지어 그 자리는 국제 사회에서도 영항력을 끼치는 위치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중요한 것은 그 자리가 주는 권력이나 혜택이 아닙니다. 권력과 혜택이 왜 주어질까요? 그 자리에서 해야되는 일에 무게가 막중하기 때문이에요. 대통령은요 권력을 휘두르는 자리가 아닙니다. 권력을 지키기 위해 나를 반대하는 세력들을 척결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이 나라에 정의와 공의를 세우고요, 백성을 위해 헌신하는 지도자, 소명을 감당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것이죠.
이것은 대통령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요? 자리가 아니라 부르심을 위하여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부모로, 자녀로, 교사로, 학생으로, 교회의 직분자로, 세상에 여러 직종에 종사하며 살아갑니다. 그 모든 역할은 단지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부르심’임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에 믿음으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누가 등장하냐면요, 기드온의 아들인 아비멜렉이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사사 기드온에 대해서 계속했었죠. 기드온은 미디안의 손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한 사사였습니다. 물론 그가 한게 아니지요.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구원해주셨어요. 그런데 그는 이 미디안의 승리를 어떻게 합니까? 결국은 자신의 영광으로 돌리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 대표적인 모습 중 하나가 뭐냐면요, 그의 아들 이름이 바로 ‘아비멜렉’이었다는거에요. ‘아비멜렉’의 뜻이 뭐라고요? ‘나의 아버지는 왕이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드온은 백성들이 자신을 왕 삼으려고 할 때에, 내가 왕을 어찌합니까. 이 나라의 왕은 하나님이라고 대답했지만 아들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는 것은요, 사실 말만 그랬지 자기가 왕대접 받고 싶고요, 왕자리에 오르고 싶었던 거에요.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요, 그는 왕 자리에 오를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미디안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한게 아니기 때문이에요. 거짓의 고백처럼 말했을지 몰라도요, 사실 그 고백이 참 고백이 되었어야 했던 거에요. 하나님이 나의 왕이시다라는 고백이 정말로 참된 고백이자 진실이었던 거에요.
이제 기드온이 죽고, 그 아들 아비멜렉이 오늘 본문에 등장합니다. 아비멜렉은 어떠했을까요? 그는 아버지와 닮은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읽었듯이 그는 왕이 되고자 하는 야망을 드러내게 됩니다. 왕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왕이 되려면요, 왕이 될만한 자리에 있던지, 없으면, 지지하는 세력, 즉 지지자들의 기반을 만들어야 합니다. 아비멜렉은 기드온의 정실 아내가 낳은 아들이 아닙니다. 아비멜렉은 8장 31절에 보면, 첩의 아들입니다. 첩의 아들이면 왕이 될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그 자리만 보면 되기가 어렵겠죠. 왜냐하면 정실 아내들의 아들들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비멜렉은 자신의 엄마가 세겜 사람이었습니다. 세겜에 가면요 엄마 친척들이 있는거에요. 그래서 거기서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의 기반을 만드려고 합니다. 그 내용이 9장 1절 2절 말씀입니다. 2절 말씀 함께 읽어볼까요. 세겜은 아비멜렉의 어머니의 고향일뿐더러, 세게임이라는 도시는요, 상업과 종교, 가나안 지역에서의 중요한 도시였기 때문에, 그곳 사람들의 지지를 얻는 것은 왕이 될 기반을 튼튼히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가 왕이 되기 위하여 또 한 가지 한 일은 4절 5절에 등장하는데요, 은 70개를 가지고요, 방탕하고 경박한 사람들을 고용합니다. 쉽게 말하면 돈에 움직이는 용병이나 건달같은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 사람들을 돈으로 사서 어떻게 해요? 5절에 보세요, 오브라에 있는 그의 아버지 집, 즉 기드온의 집으로 가서요, 여룹바알의 아들, 여룹바알은 기드온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의 아들들, 즉 배다른 형제들 70명을 다 죽여버립니다. 참 악랄하죠. 왕위 될만한 경쟁자들, 아버지의 아들들을 싸그리 없애버린거에요.
아비멜렉은 그 왕의 자리를 얻기 위하여서요, 철저하게 인간적인 논리와 계산으로 모든 일을 진행합니다. 혈연, 폭력, 그리고 돈을 사용해서 그 자리를 얻어내려고 한거에요. 여러분 이게 세상 이야기라고 해도 정말로 무서운 일인데요. 하나님의 공동체인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라는거에요. 세상과 별반 다를게 없는 모습이 아비멜렉의 모습 가운데 드러난거에요.
이게 권력과 자리만을 위한 사람이 모인 곳에서 벌어지는 죄악된 행태인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이런 정치의 모습을 보며 혀를 끌끌 찹니다. 어찌 저럴 수 있나, 사람이 자리를 위해서 어떻게 불법과 죄악된 저런 모습들을 저지를 수 있는가. 라면서 비판을 막 쏟아내죠. 사실 이 모습은요, 주님의 몸이라는 교회에서도 만연하게 일어나는 우리의 모습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이런 정치적인 움직임과 암투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납니까. 성도라고 하는데, 아직도 세상적 방식과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그 사람들의 인정과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권모술수를 벌이려는 모습들이 교회에서도 일어납니다. 교회에는 자리들이 있습니다. 이 교회의 자리는 각 자의 사람에 따라 그 자리의 사람이 그 역할을 잘 감당할 때에, 교회가 건강하게 세워지게 되요. 근데 사람들이 뭐만 바라는지 아세요? 그 자리만 바랍니다. 그 자리가 주는 영광, 그 자리가 주는 사람들의 인정, 이런 것들을 바라고 자리를 탐내려는 마음인거에요.
마태복음 20장에 보면요, 세배대의 아들 어머니가 자기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두고 예수님께 이렇게 요청하죠. “이르되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어머니는 뭘 원해요? 아니 예수님, 예수님이 곧 왕이 되실거 아닙니까. 그러면 그 때 어떻게 해달라고요? 내 아들들 높은 자리에 앉혀주세요. 그러니깐 예수님이 뭐라고 하시는지 아세요?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그 어머니는요, 자리에 대해서 요구했는데요,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하는 일에 대해 말씀하시는거에요.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자리는요. 그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이, 그 자리에서 누릴 영광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해야되는 그 일 때문에 주신 것이라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늘 그 자리가 주는 영광과 인정만 생각합니다. 집사, 권사, 장로, 목사, 뭐 어느 기관의 장, 임원 이런 자리가 왜 도대체 교회에 있을까요? 이 모든 자리는요, 영광을 취하는 자리가 아니라요. 일을 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 대한 일을 하지 않는데, 그 자리가 무엇이 필요할까요? 사람들은 그래도 내가 교회에서 권사지, 장로지, 목사지 이런 타이틀, 자리를 원해요. 그런데 이 자리는 누가 세워져야 합니까? 그 자리에 맞는 일을 할 사람들이 세워져야 되는거에요.
우리 교회지요. 우리는 각 지체 입니다. 지체는 뭐하는거에요? 손은 손이 해야될 일을 하는게 손인거에요. 코는 코가 해야될 일을 해야 하는게 코인거에요. 그런데 자꾸 뭘 생각하냐면, 교회에서 직분자 투표를 하는데요, 교회 몇년다녔냐, 누구의 아내냐, 남편이냐, 집안이 어떠하냐, 나이가 어떠하냐, 교회에서 어떤 입지에 있나 이런 것을 늘 따지면서,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어떻게 될까요? 교회는 반드시 타락하게 되어 있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월계교회 안수집사님인데요, 예전에 제가 청년 때인가요, 아빠가 장로피택자로 선출되어서 투표를 할 때가 있었습니다. 제가 아빠 아들이잖아요. 제가 아빠를 장로로 세우는데 찬성을 했을까요 반대를 했을까요? 가족이면, 내 아빠면 당연히 찍어야 하는거 아니에요? 제가 아빠한테 그랬습니다. 나는 아빠 아들이니깐 반대할꺼다. 내가 반대해도 되면 아빠가 정말로 그 역할을 위해 부름 받은 사람이지 않겠냐라면서 그런 말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 공동체인 교회는요, 혈연이나, 끼리끼리로 움직이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반드시 기억하세요. 따라해보겠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여야 합니다. 하나님은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배경이나 연줄로 세우시는 분도 아니세요.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는요, 진실함과, 섬김, 그리고 부르심을 따라 움직이는 공동체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로 나아가야 될 줄 믿습니다.
우리나라 초대교회 역사에 보면요 정말로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볼 수 있는데요, 1900년초반, 전북 김제시 금산면에 있는 금산교회의 이야기는 아직도 우리에게 전해져내려옵니다. 거기에 조덕삼이라는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그 지역의 유력한 지주였고요, 교회의 초대 설립자 중의 한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안에는 이자익이라는 머슴이 있었습니다. 그 머슴은 그 지역 출신도 아니고요 마산 출신이었어요. 그런데 그 머슴이 교회에 나오게 된거죠. 그는 비록 낮은 신분이었지만 누구보다 경건하고 신실하게 예배하며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장로선출을 위한 일이 이루어졌을 때, 누구라도 조덕삼이 장로가 될줄 알았는데요, 그 집에서 일하는 머슴이었던 이자익이라는 사람이 먼저 장로가 된거에요. 이 당시에 둘의 나이가요 조덕삼은 41살이었고요, 이자익은 26살이었습니다. 당연히 누가 장로가 되어야 합니까? 조덕삼아닙니까. 그런데 이자익이라는 사람이 장로가 되어집니다. 신분과 지역과 차별과 나이를 모두 뛰어넘어 이자익 장로가 먼저 선출된거에요. 그 이후에 조덕삼 역시 장로로 선출되어지게 되는데요, 조덕삼 장로는요, 이자익 장로가 결국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기 위한 결정을 할 때요,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요 나중에 이 금산교회 담임목사로까지 청빙하는 믿음을 보입니다. “조덕삼 장로는 자신의 뜻이 꺾였을 때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부르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겸손히 인정하며, 낮은 자를 높이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이런 믿음이 있었기에, 금산교회는 지역을 넘어 한국 교회사의 본이 되는 공동체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게 바로 교회인거에요. 교회는 인간의 뜻과 관례가 서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세워져야 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세우는 일에 동참하는 사람들 되길 소망합니다.
두번째 살펴볼 부분은요, 아비멜렉이요, 왕이 되고자 기드온의 아들들을 싸그리 다 죽여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난리 중에 살아남은 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5절 끝에 보면요, 여룹바알의 막내 아들 요담은 스스로 숨었으므로 남으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요담이라는 아들이 살아남은거에요. 아비멜렉이 왕이 된후, 이제 막 요담에게 사람들이 알리는거죠. 아비멜렉이 왕이 됬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런데 요담이 숨어있었으면 좋았겠지만요, 아주 당당히 산 꼭대기에 가서 외치면서, 나무 이야기를 하나 합니다. 그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나무들이 있었습니다. 나무들 사이에서 한 나무를 왕으로 세우려고 한거에요. 그래서 제일 먼저 올리브나무에게 가서 말합니다. 너는 우리를 다스리라, 그런데 올리브나무가 뭐라고 합니까, 9절에보면, 내게 있는 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한다.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 나무들 위에 우쭐대겠느냐라고 답하며 거절합니다. 그 다음에 무화과나무에게 갑니다. 무화과 나무도 말해요. 내 단 것을 버리고 어찌 나무들 위에 군림하겠느냐, 그리고 마지막으로 포도나무에게 갑니다. 포도나무 역시 말합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내 포도주를 버리고 어찌 나무들 위에 군림하겠느냐 거절합니다.
다 거절하니, 이제 가시나무에게 갑니다. 너가 우리들 중에 왕이 되라, 그러니깐, 이렇게 대답합니다. “너희가 참으로 나를 왕으로 삼고자 하거든 내 그늘 아래 피하라, 그렇지 않으면 불이 나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다” 그니깐 좋다는거에요. 지금 이 나무는 뭐에요? 가시나무입니다. 그러면 과연 그 나무가 그늘을 제공할 수 있습니까? 없죠. 열매 역시 제공할 수 없어요. 그런데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자기의 위치와 은사도 인식하지 못한체, 왕의 자리만 탐내고 있는 모습인거죠. 이게 누구의 모습이에요? 아비멜렉의 모습인거죠.
그에 비해 다른 나무들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왕이라는 자리가 중요한게 아니라, 나를 올리브나무로, 무화과나무로, 포도나무로 불러준 그 자리와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자신이 해야될 일을, 부름 받은 그 소명에 따라 선택한 나무들이었다는거에요.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서 깊이 깨달아야될 부분이 있는거에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각자 다른 부르심을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름을 내는 올리브나무, 어떤 사람은 단맛을 내는 무화과나무, 어떤 사람은 기쁨을 주는 포도나무로 부르신거에요. 중요한건요 왕이 되느냐가 아니라 내 자리를 충실히 감당하는게 중요한거에요.
여러분, 교회라는 공동체는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서로 다른 자리를 맡은 지체들이 하나 되어 일하는 곳입니다. 내가 맡은 자리를 부끄러워하거나, 다른 이의 자리를 탐내는 사람이 되어선 안됩니다. 대신 내 자리가 주는 의미와 책임을 알고, 하나님 앞에서 충성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진짜 믿음의 길입니다.
혹시 나는 지금 가시나무처럼 되어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남에게 줄 열매도 없고, 그늘도 없으면서, 높은 자리만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혹은 지금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올리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같은 소명을 소홀히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사랑하는 여러분, 왕이 되지 않은 나무들이 진짜 믿음의 선택을 하며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리에 충실했고, 그 부르심 앞에 머물렀습니다. 오늘 우리도 그런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자리를 탐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하는 사람. 그 자리에 머무르며 충실히 열매 맺는 삶을 사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하나님이 찾으시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나를 부르신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깨닫는 은혜가 있길 소망합니다.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나를 부르신 그 자리에 충성을 다하여, 주님께 칭찬받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그러한 자들이 우리교회에 더욱 많아지게 될 때, 주님의 몸된 교회는 더욱 건강하게 나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 교회가 그러한 교회가 되길 소망하며 이 일에 우리 모두가 동참하는 은혜가 있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부르신 자리에 충실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나를 부르신 그 자리에서, 열매 맺으며 충성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기도제목 1]

세상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뜻과 부르심을 따르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기도 인도 멘트: 사랑하는 여러분, 첫 번째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말씀을 통해, 왕이 되고자 했던 아비멜렉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 없이도, 자리를 탐하며 혈연과 폭력과 돈이라는 세상의 수단을 동원하여 왕의 자리를 차지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 공동체는 그런 방식으로 세워지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때때로 세상의 방식이 너무 익숙해져서, 사람의 평가와 인정, 인맥과 지위, 권력과 안정만을 쫓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자리를 쫓지 말고, 부르심을 따라 살아라.” 내 뜻과 계산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시다.
혹시 내 마음에 아비멜렉과 같은 탐욕이 있지는 않았는지, 사람의 눈을 의식하며 신앙생활을 하려 했던 모습이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며,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무릎 꿇기 원합니다.
이 시간 우리 마음을 다해 이렇게 기도합시다. “하나님, 세상의 방식과 계산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따라 살아가게 하소서. 자리를 쫓는 인생이 아니라, 부르심에 반응하며 사는 인생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여 한번 간절히 부르짖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 [기도제목 2]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자리와 역할에 충실한 삶을 살게 하소서
기도 인도 멘트: 두 번째 기도는, **‘왕이 되지 않은 나무들’**의 모습에서 배우기를 원합니다. 요담이 들려준 나무들의 우화 속에서, 올리브나무도, 무화과나무도, 포도나무도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은사와 사명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어찌 내가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기름과 단맛과 포도주를 버리고 나무들 위에 군림하겠는가?”
그들은 높아지는 자리를 거절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떤 나무로 부르셨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주어진 소명을 우습게 여기지 않았고, 오히려 그 자리를 충실히 지키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오늘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자리가 있습니다. 가정에서의 부모로, 자녀로, 직장에서의 일터에서, 그리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역할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남의 자리가 아닙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얼마나 충실히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 있느냐입니다.
혹시 나는 지금, 하나님이 주신 자리를 소홀히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가시나무처럼, 남에게 줄 그늘도 없고 열매도 없으면서, 다른 이의 자리만 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시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나에게 맡기신 그 자리, 그 은사, 그 사명을 소중히 여기게 하소서. 높은 자리가 아니라, 부르심 앞에 충실한 자가 되게 하소서. 내게 맡기신 그 자리에서 열매 맺게 하시고, 그 자리에서 주님을 영화롭게 하게 하소서.”
간절히 주여 한번 외치고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 [기도제목 3]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부르심에 충실한 공동체 되게 하소서 – 특별히 다음세대 사역과 여름 사역들을 위해
기도 인도 멘트: 마지막으로는 우리 교회를 위해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는 이번 전교인 수련회를 통해 다시금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교회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각 기관과 부서는 하나님의 질서와 계획 안에서 주어진 역할을 감당하는 지체들입니다.
특별히 다가오는 여름은 우리 교회에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여름성경학교와 각 부서별 수련회, 유년부에서부터 청년부에 이르기까지 다음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는 시간입니다. 이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이 시간들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존재임을 깨닫고, 믿음 위에 서는 은혜가 있도록 함께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교회 모든 기관들이 이 사역을 나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여기고, 기도로 준비하고, 몸으로 섬기고, 마음으로 동참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광혜교회가 말씀과 부르심 위에 세워지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다음세대의 심령 가운데 주님을 향한 믿음이 자라게 하시고, 이 여름, 모든 사역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하소서. 우리 교회가 부르심에 충실한 공동체 되게 하소서.”
우리 다함께 주여 한번 부르고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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