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하나님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막5:3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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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5년 6월 11일 수요일
제목 : 당신의 하나님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본문 : 마가복음 5:35-43
1. 기다릴 수 없는 우리, ‘지금 당장’을 원한다!
1) 간증과 결단
다른 이의 간증을 듣다보면 꽤나 도전이 되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비교가 쉽게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보통 간증은 이런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먼저는 ‘위기’가 등장하죠. 보통 이야기는 평범한 가정, 화목한 가정 혹은 부유한 가정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던 중 누리던 평화를 깨버리는 일생일대의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부도나 죽음같은게 그런 요소가 될 수 있겠죠.
그리곤 ‘절망’ 혹은 ‘포기’ 또는 ‘원망’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과 상황을 마주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목숨을 끊기 직전의 상황을 마주한다거나, 또는 하루 벌어 하루 겨우 살아내는 그런 삶 말입니다.
그 다음엔 ‘회복’을 경험하게 되죠. 오래 전 보았던 성경책을 갑자기 펴보다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된다거나, 지인 누군가를 만났는데 오래 전부터 날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 받아 다시 새 힘을 얻었다거나 하는 등 어둠 속 빛을 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성공의 대로를 걷습니다. 사회적으로 대단한 위치에 올랐고, 지난 날의 어려움은 밑거름 삼아 봉사와 섬김을 아끼지 않는 모습도 보입니다.
그리고 ‘권면’ 합니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붙잡으라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인생을 선한 길로 인도하실 거라고 말이죠.
맞는 말입니까? 틀린 말입니까? 맞는 말이죠. 그래서 도전 받아 결단합니다. ‘좋아! 나도 내 인생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며 멋진 삶을 살아내보겠어!’
2) 기다림 없는 자의 최후, 불평과 불만
하지만 내 기도와는 다르게 내 인생은 멋지지 않습니다. 1시간의 간증엔 수년의 혹은 수십년의 긴 시간이 축약되었음은 까마득하게 잊고, 1-2주 기도하고 변하지 않는 내 삶에, ‘왜 내 인생은 여전히 힘들지? 왜 나는 저 사람처럼 성공한 삶을 살지 못하는거지?’ 절망합니다. 비교가 되니 불평과 불만이 절로 나오게 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아쉬워 우리가 비교하게 되고, 무엇이 불평과 불만 가득한 나로 살게 합니까? 어쩌면, 우리가 ‘기다리지 못하기 때문’은 아닙니까?
내 기도가 지금 당장 응답되어야 하고 또 그러길 원하지만, 지금 당장 기도의 응답이 일어나지 않기에 우리는 불평과 불만을 가지고 원망하는 거 아닙니까?
2. 당신의 딸이 죽었습니다.
1) 딸의 죽음을 본 야이로 : 1. 절망
오늘 본문 속 야이로는 자신의 딸이 지금 당장 회복되길 희망하며 예수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야이로가 예수님께 나아간 점을 우리는 칭찬해야 합니다.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즉 증오와 경멸, 상종하지 않으려 힘쓰던 자들이 유대교 지도자 입니다. 그리고 야이로가 바로 유대교의 지도자 였기에, 그가 예수님 앞에 소망을 품고 나아갔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한 겁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생깁니까? 그렇게 용기내 나아갔는데, 왠걸요? 12년간 혈루증을 앓던 여인의 갑작스런 새치기 때문에 예수님이 가던 발걸음을 멈추셨고, 끝내 딸이 죽게 됩니다.
지금 당장의 회복을 기대했던 야이로는 절망합니다. 아니요. 어쩌면 절망 이상이겠죠. 세상 어느 부모가 자기보다 먼저 죽은 자녀의 죽음을, 고작 열 두살 밖에 안된 어린 소녀의 죽음을 덤덤히 수긍할 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주변 사람들이 찾아와 ‘포기하라’ 말합니다.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그 말을 듣는 순간 야이로는 딸과의 수많은 추억들이 스쳐 지나갔을 겁니다. 딸 아이가 태어나 처음 아빠 품에 안겼던 순간, 처음으로 아빠라 불러주었던 그 순간, 처음으로 일어나 걸었던 그 순간, 아빠에게 삐져 토라진 모습과 삐죽 튀어 나온 입술에 귀여워했던 순간, 그리고 생기가 사라진 딸 아이가 아빠의 손을 붙잡으며 ‘아프다고, 살려달라고’ 말하던 그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을 겁니다.
그 모든 것들이 이젠 추억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내 딸은 더 이상 아빠라 말해주지도, 아빠의 장난에 토라질 수도 없고, 딸이 슈퍼맨이라 여기던 아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히어로가 되버렸습니다.
2) 딸의 죽음을 본 야이로 : 2. 분노와 원망
또 한 편으론 분노와 원망을 품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대상은 예수님일수도, 혈루증 여인일 수도 있겠죠.
야이로는 같은 동네에 살며 12년간 혈루증을 앓던 여인을 잘 알았을 겁니다. 그런데 하필 그 순간, 그녀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았습니다. 야이로는 생각했을 겁니다. ‘12년을 아팠는데, 하필 왜 지금! 하루 더 아프다 한들 그게 무슨 대수입니까? 왜 하필 지금입니까?’
또 예수님을 향해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먼저 예수님께 말한 거 아닙니까? 일에는 순서가 있는데, 갑자기 나타난 저 여인에게 붙잡혀 멈추실 일은 또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여인 하나 치료하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을 쓰지 않고 서둘러 갔다면, 제 딸은 살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났고 이제 희망을 보게 될 줄 알았는데, 어째서인지 일은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최악으로 흘러간 야이로의 심정으로 충분히 분노하고 원망할 수 있는거 아닙니까?
그런데 이 모습, 어쩌면 우리 모습 아닐까요? 예수님께 기도했다는 그 이유로, 그래서 지금 당장 이루어지길 원했지만 해결되지 않아 답답해 하고 절망하며 원망하는 모습. 너무 우리의 모습 아닙니까?
3. 믿음으로 나아온 야이로를 향한 예수님의 사역
1) 절망의 순간 예수님을 믿기로 한 야이로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치료 되어 감격했고, 수 많은 사람들은 그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보며 놀라워 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는 이적을 행한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하지만 야이로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모두가 즐거워 하고 환호하는 그 순간, “딸아, 네 미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말씀하시는 동안, “평안히 가라” 말씀하시는 동안, “그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말씀하시는 동안 야이로의 딸은 죽었기 때문에, 그는 결코 그 자리가 기쁘지 않았습니다.
그런 야이로를 향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6절,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예수님은 야이로에게 두 가지 길을 제시합니다. 계속 두려워 하던가 또는 두려워 하지 말고 나를 믿고 따르던가. 사실 답은 정해져 있죠. 정답은 믿는겁니다. 믿고나면 어떤 일이 내게 생길지, 앞으로 겪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무거운지는 알 수 없지만, 정답은 믿고 맡기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절망 가운데 계십니까? 육체의 질병 때문에, 끊임없는 아픔에 괴로워 절망하고 계십니까? 또는 직장의 어려움 아니면 자녀 양육이나 혹은 이웃간 관계에서 찾아오는 어려움 중에 계십니까? 그래서 여전히 답답한 마음에 한 숨만 푹푹 쉬고 계십니까?
여러분들의 절망에 어떤 일이 더하여 질지, 어떻게 일이 흘러갈지 저는 알 수 없지만 그저 예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며 믿고 맡겨보는 건 어떠십니까?
야이로는 예수님이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말씀하신 순간, 확신에 찬 예수님의 눈빛을 보았는지 또는 혈루증 여인을 회복시킨 이적을 보았기 때문인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예수님을 믿고 맡겨보기로 결정합니다.
2) 믿음의 결과, 달리다굼! /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지다
이제야 예수님은 야이로의 딸을 마주합니다. 누가 보아도 죽어 창백한 얼굴을 한 야이로의 딸이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9절,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심히 통곡하며 함께 울던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곤 예수님을 비웃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신경쓰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 나가십니다. 이번엔 딸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1절,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달리다굼, 이 표현은 흔히 부모가 자녀를 깨울 때 쓰던 표현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예수님은 늘 이 아이가 듣던, 늘 아침에 자기를 깨우던 그 말을 인용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만약 그렇다 할 때, ‘달리다굼’ 이 말은 죽은 자를 일으키기엔 너무나 약한 말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늘 엄마가 딸 아이를 깨울 때 사용하던 말이었고, 딸에겐 잠을 깨우는 귀찮은 소리일 수 있겠지만, 예수님의 달리다굼엔 딸이 일어납니다. 그 순간 너무나 강하고 거대해 보이던 어둠의 벽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4장에선 바다를 잠잠케 하시며, 자연만물을 통치하신 예수님을 보이셨고, 5장 혈루증 여인을 치료하며, 모든 질병을 회복시키시는 예수님을 보이셨고 이제는 죽음 마저도 이기시고 생명을 다스리시는 예수님을 보여주셨습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해결되지 않았던 죽음의 문제를, 예수님은 단 번에 해결하셨습니다. 죽음 앞에 모두가 두려워 떨었지만 예수님은 그 죽음을 이기시고 생명을 다스리시는 분임을 보이셨습니다. 야이로의 믿음은 말도 안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4. 믿음으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
1) 커 보이는 나무가 아닌 큰 나무를 보아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를 계속해서 옥죕니다. ‘너 그렇게 살아서 어떻게 할래? 그러지 말고, 이렇게 이렇게 해봐.’ ‘그렇게 기다리다 다 놓치면 어떡하려고 그래? 우리 조금만 빠르게 빠르게 전환해보자.’
우리 생각에 그런 세상의 소리가 틀려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기다리지 못해 세상의 소리에 빠르게 따라가는게 좋은 게 아닌, 명심하십쇼. 하나님의 때가 좋은 때 입니다.
노진준 목사님과 일전에 대화할 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목사님, 어떤 일에 있어 선택해야 할 때, 언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까? 어느 때가 가장 좋은 때 입니까?” 그러자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네비게이션이 없던 시절, 길을 물으면 ‘쭉 가시다가 큰 나무가 보이면 우회전 하세요.’ 라는 대답을 듣곤 했습니다. 그래서 쭉 가다보면 이 나무가 큰 나무인지, 저 나무가 큰 나무인지 혼란이 찾아오기도 하지요. 그러나 가다보면 누가 보아도 크다 말할 수 있는 나무가 보일 겁니다. 그때 우회전 하면 됩니다.”
지금 당장 우리는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지길 소망해 ‘이 나무가 큰 나무인가?’ 확신은 없지만 우회전 하려 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다리는 겁니다. 하나님의 때는 큰 나무지 크다 여겨지는 나무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그저 기도로 구할 뿐 입니다.
2) 하나님의 때, 우리는 측량할 수 없는 크신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그럼 우리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게 될 겁니다. 전도서 3장 10절과 11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지금 당장 남편을 믿게 할 수도, 아내의 신앙을 회복시킬 수 없습니다. 질병의 회복과 직장의 미래를, 그 어느 것 하나 우리는 할 수 있는게 없습니다. 그저 우리는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실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며, 기다릴 뿐입니다. 그리고 명심하십시오. 하나님은 절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선한 길로 우리를 인도하실 겁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으로 측량할 수 없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신 하나님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만나길 소망합니다. 그런 하나님과 동행하는 저와 여러분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결단찬양 및 기도]
1. 아무것도 두려워 말라 + 하나님의 열심(후렴)
- 하나님의 열심은 하나님의 시간에 이루어 집니다. 이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어려움 속에 주님의 일하심을 보지 못하고 두려워 합니다. 절망하고 낙심합니다. 그런 우리를 향해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나를 믿으라”고 말입니다. 이 시간 기도할 것은 우리 안에 있는 걱정과 두려움과 우울과 절망을 모두 던져 버리고, 우리를 위해 저 높은 곳에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믿음의 눈 들어 선하신 주님을, 전능하신 주님을 보게 하시어 믿음에 믿음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앞에 내 모든 것 맡겨 드리며 나아가겠노라 선포하며 주님의 이름 한 번 부르짖고 기도하겠습니다.
-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어 오늘도 이 자리 가운데 기도하게 하심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의 응답이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아 절망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어쩌면 이미 절망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 이제는 절망에 넘어지지 않고 고개를 들어 주님을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주님이 주님의 방식으로, 나는 꿈꾸지도 못한 그러한 방식으로 일하실 것을 기대하며 끝까지 기도의 끈을 놓치지 않게 하소서. 우리의 기도의 끈이 결코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우리의 가정이 변화되게 하소서. 우리의 삶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 변화를 경험하게 하소서. 더욱 더 주님의 능력을 구하는 가정이 되도록 날마다 기도하겠노라 결단하며 이 시간 주님의 이름 한 번 부르짖고 기도하며 나아가겠습니다.
2. 예수 나의 치료자 + 아무것도 두려워 말라(후렴)
- 주님의 시선이 머무는 슬픔, 고통, 상처와 아픔이 있는 우리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길 소망합니다. 그들은 고통과 질병의 아픔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금 당장 이 시기가 속히 지나가길 소망할 뿐입니다. 이 시간 신음하는 자들을 위해 함께 기도할 때, 주님의 시선이 머무는 그들의 삶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죽음을 이기시고 생명을 다스리시는, 달리다굼, 죽은 자도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동역자들의 삶 가운데 임하길 소망합니다. 그들을 주님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건져 주시옵소서.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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