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618 수요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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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전 539
말씀 후 93장
Romans 1:18–23 NKRV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수요예배로 모인 성도님들 주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도 이시간을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깨달아 그 뜻대로 그 계획대로 살아가겠노라 결심하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성도님들은 하나님께 영광돌리시며 살아가십니까?
오늘 본문 18절에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 부터 나타난다고 바울이 선포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는 이유는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경건하지 않는 행동입니다. 그렇다면 경건하지 않은 행동은 무엇입니까? 본문 21절 입니다. 로마서 1:21
Romans 1:21 NKRV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안하고 감사하지도 않는 것이 경건하지 않은 행동이고 결국 그러한 행동은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모를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 19절에 바울은 이렇게 말 합니다.
Romans 1:19 NKRV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새번역 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알 만한 일이 사람에게 환히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환히 드러내 주셨습니다.
이것을 신학 용어로 일반 계시 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모든 자연을 보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매일같이 해가 뜨고 지는 것, 때가 되면 계절이 바뀌는 것들, 밤하늘에 있는 무수한 별들을 볼 때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신 창조주가 있다는 것을 인정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우리 안에 있는 양심을 보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할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들어본 적 없는 사람도, 거짓말이 나쁘다는 것과, 남에게 피해를 입히면 안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잘 못했을 때 마음이 찔리고, 착한 일을 했을 때 보람을 느끼는 이유는 우리 안에 하나님이 새겨 놓으신 도덕적 각인 때문입니다. 이처럼 자연을 통해, 양심을 통해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 자신을 분명히 알리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 20절에 이렇게 말 합니다.
Romans 1:20 NKRV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이처럼 하나님을 모를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감사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21절에 이렇게 말 합니다.
Romans 1:21 NKRV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여기서 알되로 번역된 헬라어 원어의 뜻은 단순히 지식적으로 아는 것을 넘어 경험을 통해 깨닫고 인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이들은 삶속에서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단순히 지식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서 교제를 통해서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감사하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이 진노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의 진노중 가장 무서운 방식 중 하나는 “그냥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내버려두다” 는 헬라어로 ‘파라디노미’인데 이는 문자적으로 ‘넘겨주다, 방치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향해 진노하시는 방법 중에 하나로, 더 이상 그들을 보호하거나 간섭하지 않으시고, 그들 자신의 죄악된 욕망에 내어 맡기신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그냥 내버려 두신다고 표현이 오늘 본문 이후에 내용인 24,26,28절에 세번이나 반복됩니다. 하나님께서 내버려두신 다는 것은 마치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 처럼,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죄악된 본성에 의해 자멸의 길로 갈 수밖에 없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그냥 내버려두시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 두렵고 떨리는 징벌인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드리지 않는 죄의 결과는 사망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예배에 나오신 성도님들은 하나님을 아시지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요예배까지 나오실 정도의 사모함이면 단순히 하나님을 지식으로 머리로만 알고 있는 수준이 아니실 것 입니다. 우리는 삶속에 말 할 수 없는 은혜을 수없이 경험하며 이자리까지 온 것입니다. 아멘이 이십니까? 여기에 계신 성도님들주에 아무에게나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대해서 간증을 부탁 드리면 날이 샐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다시한번 물어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성도님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계십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느냐의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하는것이 있는데 바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혹시 이런 멘트를 들어보신적 있으십니까? 박수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또 연말에 시상식에서 연예인들이 상을 받고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라고 말 합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돌리는 것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영광이라고 번역된 원어는 ‘카보드’ 라는 히브리어와, ‘독사’ 라는 헬라어 입니다. 이 단어의 뜻은 단순히 명예나 찬사를 넘어, 무게, 중요성, 빛, 광채, 위엄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그분의 참된 본질, 다시말해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고 거룩하며 아름답고 능력 있는 분이신지를 온전히 드러내고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예배와 제사 였습니다. 율법에 따라 정해진 방식으로 제물을 드리며,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것이 하나님의 위엄과 거룩함을 인정하고 높이는 행위 였기 때문입니다.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을 통해 구원의 길이 열린 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의미는 더욱 풍성해졌습니다. 로마서 12:1 바울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Romans 12:1 NKRV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이 말은 더이상 짐승을 잡아 제사 드리는 것을 넘어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행위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드러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방법은
먼저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며 살아가는 것 입니다. 이 말은 영광의 원어의 뜻대로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삶의 가장 중요한 분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것을 말 합니다. 단순히 헌금을 많이 내거나, 기도를 많이 하거나, 예배에 빠지지 않는 겉모습의 행위를 넘어, 우리의 모든 삶을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갈 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며 살아 갈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 감사와 순종의 삶 입니다. 내가 아무리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면 하지 않는것, 반대로 내가 아무리 하기 싫어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 이라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볼 때 맞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맞다고 하면 그분의 말씀을 무겁게 여겨 그분의 뜻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이 전능하시고 못하실 것이 없으신 하나님을 내 삶의 하나님으로 인정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삶은 순종과 감사의 삶이고 이러한 삶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인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은 우리의 연약함 속에서도 하나님만을 붙드는 삶 입니다.
로마서 4:18-20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Romans 4:18–20 NKRV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아브라함의 약해지지 않는 믿음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창세기를 읽어 본 사람이면 방금 읽은 로마서 4장에 기록된 아브라함의 믿음이 조금 과장되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삶이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그리고 확고하게 신뢰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라를 통해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그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여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은 자신의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아내인 사라를 두번이나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한 아브라함의 모습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99세의 아브라함을 찾아가 아들이 태어날 것을 말씀하실 때 아브라함은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하며 믿지 못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왜 성경은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흠 없는 완전한 믿음’ 이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넘어지고 쓰러지는 순간에도 결국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붙잡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기로 선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4:21 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Romans 4:21 NKRV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흠이 없는 완벽한 믿음’ 이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넘어지고 쓰러지는 순간에도 아브라함은 결국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붙잡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기로 선택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산을 오를 때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목표는 산 정상입니다. 오르는 도중에 우리는 너무 힘들어서 주저앉아 투덜거리거나, "내가 과연 저 정상까지 갈 수 있을까?" 하고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잠시 길을 잘못 들어 헤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다시 방향을 잡고 포기하지 않으며 꾸준히 걸어 정상에 도착한다면, 우리는 "산을 완주했다"고 말합니다. 중간에 힘들고 의심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할지라도, 최종적으로 산을 오른 행위 자체를 평가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웃음은 산을 오르다 잠시 주저앉아 "이게 가능할까?" 하고 불평했던 순간과 같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결국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다시 나아갔으며, 최종적으로 이삭을 낳아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의 믿음은 완벽한 감정적 동요 없음이 아니라, 약속하신 하나님에 대한 최종적인 신뢰와 순종으로 나타났기에 '믿음으로 여겨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모두 아브라함처럼 연약하고 불완전 합니다. 어떻게 우리의 힘으로 매순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며 살아가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매순간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삶은 때때로 하나님을 의심하고, 인간적인 방법을 택하여 살아가 넘어지고 쓰러지기도 합니다. 그게 우리 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영원히 주저 앉는 것이 아니라, 넘어지고 쓰러질 때 다시 하나님을 붙잡고 일어서는 것 입니다.
우리가 넘어질 때, 우리으 힘으로는 도저히 일어설 수 없음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의지해 다시 일어서려고 할 때,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것은 그가 흔들리지 않는 완벽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을 꼭 이루시는 분이고, 능력 있는 분이심이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 보여졌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백 살이 되고, 사라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었을 때에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삭이라는 기적의 자녀를 주셨습니다. 이 일은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고,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었기에, 이삭이 태어 났을 때, 결국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아갔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도 그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삶을 보면, 결국 하나님이 얼마나 크시고 신실하신 분인지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진흙으로 빚어진 그릇이 깨어지고 부서졌지만, 도공의 손에 의해 다시 집어져 새로운 작품이 될 때 도공의 기술과 솜씨가 더 빛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의 실수와 실패를 통해 하나님의 치유와 회복의 능력이 드러날 때, 하나님의 이름이 높여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의 부족함과 실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결국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우리가 실수 하지 않고 완벽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그로인해 주님께 감사하며, 연약함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는 모든 성도님들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가시길 주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사랑의 주님 우리가 하나님을 알면서도 감사하지 않고, 하나님을 가볍게 여겼던 순간들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 선택 속에서 주님을 중심에 두지 않았던 모습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는 우리의 모든 삶을 통해 하나님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감사와 순종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게 하소서.
아브라함처럼 연약한 가운데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했던 믿음을 본받아 우리의 흔들리는 순간에도 주님을 붙잡게 하시고, 그 믿음의 걸음을 통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드러내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매순간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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