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5장 12-21절(나 같은 죄인 살리신)
Notes
Transcript
이 질문을 던지며 설교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인간은 무엇입니까?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십니까?
인간에 대한 철학적 고찰 보다는 / 성경에서 인간을 어떻게 이야기 하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보셨습니까?
멀리 갈 것도 없이, 내 모습을 성경 앞에서 비춰보면 됩니다.
뭔가 잘 하는 것 같고,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이지만, 쉽게 무너지고, 많은 결핍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내가 저 사람보다는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보다 더 잘나고 높은 사람 앞에서는 한 없이 낮아지고, 비참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모습도, 그리고 저도 마찬가지 입니다.
제 설교를 직설적으로 평가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설교 하고 나면, 이해가 안된다, 어렵다. 재미없다. 왜 더듬었냐, 예화가 그게 뭐냐 등등의 피드백을 해줍니다.
들으면 당연히 열받기도 하고, 자존심 상하기도 합니다.
그럼 니가 설교해라 라는 마음도 들지만, 사실 저런 말이 틀리지는 않습니다.
항상 설교 준비할 때마다, 그리고 설교를 하고 나면 너무나도 부족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아마 오늘도 그럴것 같습니다.
어쩔 때는 잘했다고 생각했던 설교에 은혜가 없고, 망했다고 했던 설교에 은혜가 있을때도 있습니다.
잘 하시는 분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저는 여전히 아직 멀었다는 생각 뿐입니다.
그래서 저의 자존감을 위해 그런 분들의 설교를 잘 안듣습니다.
나 정도면 잘하지 라는 생각을 한번씩 했다가도, 이것이 진짜 교만한 생각이라는 사실을 또 뼈져리게 느끼게 하십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나의 지식과 말로는 담을 수 없다는 사실 앞에 연약함과 경외를 느끼기도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안된다는 사실 앞에 두렵기도 합니다.
잘 되는 것 같고, 잘 하는 것 같지만, 여러 상황과 고난 앞에서,
수 많은 것들이 나를 가로막고, 힘들게 하는 것들 앞에 우리는 연약과 부족을 느낍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우리도 그런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성경은 이런 우리를 향하여, 당당하게 죄인 이라고 선언 합니다.
그런데 이 죄인이라는 성경의 선언을 사람들은 듣기 싫어 합니다.
심지어 교회를 다닌다는 사람들 조차도 죄인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북하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12절 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의 죄로 모든 사람이 죄를 짓게 되고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는 것이 사람을 향한 성경의 입장입니다.
그렇다면 죄를 지은 한 사람이 누구 입니까?
14절 입니다.
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아담의 죄로 인해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원래 사람은 죄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는 것은 우리 안에 아름다운 하나님의 속성 들이 심겨져 있다는 뜻 입니다.
이렇게 인사 하겠습니다.
당신은 특별한 존재 입니다.
우리가 특별한 존재인 이유는 우리가 잘 해서, 잘살아서, 세상에서 특별한 위치에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후 하나님은 사람과 첫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명령하셨고,
사람은 이 명령에 순종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사탄의 꾐에 넘어가 아담과 하와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인간 스스로 파괴한 것입니다.
아담을 통한 죄 는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여 선악과를 먹은 표면적 행위 이지만 ,
그 안에는 자신을 하나님처럼 선악의 기준으로 만들어 내려는 내적인 욕망이 가득차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죄의 파급효과와 영향력은 상당합니다.
한 사람의 죄가 모든 인류를 죄인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는 전 인류가,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죄와 사망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아담의 대표성의 원리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담이 지은 죄를 지가 했지 나는 모른다고 이야기 하고, 내가 그 정도는 아니라고 부정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죄가 없어지는 것도, 감형되는 것도 아닙니다.
아담이 지은 죄로 인해 하나님은 모든 자에게 죽음 이라는 징계를 내리셨습니다.
이 죽음이라는 징계는 우리의 육체의 죽음 뿐만 아니라 /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영의 죽음도 의미 합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그래도 내가 너보다 낫다고 비교하고, 자신을 높이는 교만한 생각 자체가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단호하게 아담 이후로 죄는 분명히 존재 했는데
그것을 알지 못하였던 것 뿐이고,
율법이 주어지고 난 이후에 그것이 죄인지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군대에 있을 때 막사 옆에 큰 가건물로 지은 쓰레기 처리 창고가 있었습니다.
그 창고에는 막사에서 나온 박스, 캔, 병, 비닐 과 같은 쓰레기를 분리수거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가건물이라 전등이 없습니다.
창문도 없어서 문을 닫으면 컴컴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거기에 들어가 구석에서 박스 깔고 덮고 짱박혀서 잠든 사람을 발견하지 못하여서 탈영 신고 까지 들어갔던, 그 친구는 아무것도 모르고 자다가 저녁 7시에 나와서 결국 영창갔던 일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문닫으면 아무것도 안보인다고 쓰레기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듣지 못하였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결론은 우리는 모두 죽었다. 입니다.
내가 인정을 하든 하지 않든, 우리 모두는 죽을 뻔 한 자도,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자도 아닌
이미 죽은 자 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막 태어난 자신의 아이를 병원에서 소중히 안으면서 이렇게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
너는 죄인이야~
막 태어난 아기한테 좀 너무한 말이라고 생각되지만, 맞는 말입니다.
목사의 자녀로 태어났다고 자동적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모두 죄인으로 태어나고 죄인 입니다.
나의 의, 나의 생각, 나의 기준, 나를 위해 하나님도 교회도 존재 한다는 죄로 가득 차있는 나는 죄인 입니다.
인정하기 싫지만 우린 모두 죄인 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필요한 이유,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담이 인류의 대표로써 죄를 짓고, 죽음이 들어왔다면,
예수 그리스도 또한 인류의 대표자로써 죄가 없으심에도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구원을 완성 하셨습니다.
15절 입니다.
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나의 순종이 아닌 /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모든 것이 회복 되었습니다.
나의 능력이 아닌 / 그리스도의 은사와 은혜로 구원이 임하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아담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죄를 짓고 사망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은 구원을 선물 이라고 합니다.
주님의 순종과 의와 생명이 모든 사람에게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고 받고, 풀면 되는데, 그것이 선물인지 모르고, 가지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내 안에 죄로 가득 차 있으며,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소망과 생명 보다는 죄의 종노릇 하는 것에 만족하며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나의 것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 입니다.
내 인생은, 내 삶은 여전히 나의 소유이며, 내가 만들어 갈 수 있고, 내가 열심히 해서 의롭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교회를 다니고, 말씀을 듣고, 기도도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삶은 나의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거룩하고, 교양있고, 경건해 보이기 위해 애를 씁니다.
물론 이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나 스스로가 나는 정직하고 경건하다고 생각하면서, 계속 남 탓을 하고, 정죄하고, 판단하고, 비교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도 알고, 구원도 알지만 더 이상 우리에게 구원과 십자가의 감격이 없습니다.
성찬식 때, 고난 주간 때는 눈물을 흘릴 때도 있지만, 정작 교회 밖에서 나의 삶에 그리스도가 없이 살아갑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죄와 사망의 족쇄를 풀 수 있습니까?
17절 입니다.
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우리에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로 가득 찰 때, 그 분 만이 내 삶에 유일한 소망되심을 알 때
내가 내 삶의 주인이 아니라, 결정권자가 아니라
오직 주님만이 나의 주권자 이시며, 통치지 이심을 끊임없이 알아가야 합니다.
20절 입니다.
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는 말이 무슨 뜻 입니까?
죄를 지어도 된다, 얼마든지 짓고 회개하면 그만이다 라는 뜻이 아닙니다.
죄를 알 때, 구원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자랑할 수 없는 죄인임을 알고 , 엎드리고 고백할 때
회개와 구원의 은혜가 넘친다고 합니다.
이것이 율법의 진정한 역할 입니다.
또한 이것이 율법의 성취자로 오셔서 말씀하신 그리스도를 통한 지혜이며 선물 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배우고, 순종해야 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우월하고, 정죄하고, 교만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말씀에 우리를 비추지 않으면, 우리 스스로를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라고 자부하며 교만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내 안에 나로 가득 차 있음을 철저하게 말씀으로 비추어야 하고,
나를 십자가에 죽이고, 그리스도로 채워야 합니다.
참된 구원의 선물을 받아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주의 나라와 통치를 위해 삶을 하나님께 내어 드려야 합니다.
전에 저희 할머니께서 많이 부르셨던 찬양 중에 세상에서 방황할 때 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방황할 때 나 주님을 몰랐네
내 맘대로 고집하여 온갖 죄를 저질렀네
예수여 이 죄인도 용서 받을 수 있나요
벌레만도 못한 내가 용서 받을 수 있나요
요즘 이런 찬양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이 정도면 잘 살고 있고, 그 정도 죄인은 아닌데 라고 만족하며 살아가는 시대 이기 때문입니다.
벌레만도 못한 나같은 죄인도 용서 받을 수 있나요 라는 이 고백이 주님을 향한 진정성을 담고 있습니까?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시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당연한 것이 아니라
내가 누릴 수 없는 큰 은혜이며, 사랑이며, 생명인 것이 내 삶에 가장 큰 간절하고 소중한 선물임을 확신 하십니까?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통한 복음의 감격이, 생명 안에서 나의 왕이 되시는 주님이 내 삶의 대표가 되는 믿음의 고백이 흘러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 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여전히 죄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에베소서 4장 22절에서 24절 말씀을 보시면 이렇게 말씀 합니다.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우리 안에 항상 옛 사람과 새 사람이 충돌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전히 우리 속에 죄의 잔재들이 남아 우리를 넘어 뜨리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려 합니다.
우리는 새 사람의 옷을 입었지만, 여전히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고, 미워하고, 나를 자랑하고, 내가 높아지려고 합니다.
어느덧 그리스도의 구원과 십자가는 감격이 아닌 지식과 구원의 안전장치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또 우리에게 그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깨닫게 하시고 듣게 하십니다.
알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시는 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 입니다.
내 안에 나의 것이 아닌, 그리스도의 사랑이 넘치며, 생명이 넘칠 때
나의 상황과 환경이 바뀌지 않아도, 어느 환경과 순간에도 감사와 사랑과 감격으로 살게 됩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주님의 사랑이 내 안에 가득하면,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 여러분들 속에 무엇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무엇을 더 얻기위해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찾으십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십자가의 축복과 은혜 말고 주실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로 이미 충분하고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님 앞에 완전한 죄인임을 깨닫고 고백함으로, 십자가의 은혜를 은혜로 깨닫고,
그 은혜로 그리스도를 묵상하며, 하나님으로 내 삶을 채워나감으로
죄와 사망의 결박과 유혹의 욕심과 썩어져 가는 구습이 아닌
영원토록 함께 하시겠다 약속하시는 주님의 사랑으로 삶을 채워나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