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접하지 않는 자기 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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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고향 나사렛에 왔지만 고향 사람들로부터 거절당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자기 백성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한 예수님의 삶과 완악한 백성들의 모습을 나눔
예수님이 고향 나사렛에 왔지만 고향 사람들로부터 거절당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자기 백성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한 예수님의 삶과 완악한 백성들의 모습을 나눔
눅 4:22-30
영접하는 않는 자기 백성
I. 도입
1. 인사
2. 예수님의 공적인 사역의 첫 메시지는 고향 나사렛 회당에서 이루어짐
이사야의 예언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내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이 곳에서 시작되었다고 선포한 것
당연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큰 기쁨의 소식이어야 할 것 같은데 실제로 나사렛 고향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반응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II. 본론
1. 고향사람들의 반응(눅 4:22-23)
1) 고향사람들의 반응(눅 4:22)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1) 사람들이 예수의 입에서 나온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겼다.
이 구절만 보면 예수님의 말씀이 은혜로워서 고향 사람들에게도 큰 은혜를 끼쳤다는 긍정적 의미로 보인다.
그러나 그 다음 표현을 보면 좀 묘하다.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이 의미는 ‘요셉의 아들인 예수가 어떻게 이런 놀라운 말을 하는가?’하는 의미일 수도 있고
‘요셉의 아들 주제에 무슨 하나님의 아들이란 가당치도 않은 말을 하고 있어?’ 하는 조롱일 수도 있다.
(2) 명확한 의미를 위해서는 그 다음 구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까지 살펴봐야 알수 있다. 눅 4:2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용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가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 이들이 한 말 중에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라는 속담을 인용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네가 의사라면 실력을 보여봐라’ 하는 의미다. 너나 고치면서 의사라고 자랑을 하든지.. 별 실력도 없으면서 의사타령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을 때 쓰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그러면서 ‘우리가 듣기로는 가버나움에서 뭔가 대단한 일을 했다고 들었는데 그 일을 먼저 여기에서도 보여주고서나 그런 말을 해라’하는 뉴앙스의 말들이 있었다는 것을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알게 된다.
[정리] 정리하면 고향 사람들은 회당에서 한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오히려 조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말을 할만한 자격이나 실력이 있는지를 먼저 보여주고 나서 말하라는 것입니다. 요셉의 아들이라는 것을 우리가 다 알고 있는데 무슨 하나님 아들, 메시아 타령을 하고 있느냐 하면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됨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예수님이 말씀을 듣고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 예수님의 반응 눅 4:24
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1) (역시)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 예나 지금이나 이 백성들은 변한것이 없구나…
-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늘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환영하지 않았다.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눅 20: 9-12 포도원 농부 비유도 이것을 반영하는 비유다. 포도원 주인이 종을 보내 농부들에게 소출을 받으려 하지만 농부들이 종을 때리고 죽인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2) 눅 4:25-26 의 예도 이와 같은 것을 반영하고 있다.
엘리야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그의 백성들에게 보내지 않고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과부에게 보내서 그의 가족을 살게 해주셨다.(눅 4:25)
엘리사 시대에도 이스라엘에 문둥병자가 많이 있었지만 치료를 받은 사람은 수리아 사람 나아만 한 사람뿐임을 지적하신다.(눅 4:36)
[정리]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위하여 선지자를 보내시고 그들을 품어 자식으로 돌보려 하셨지만 그들은 반복적으로 하나님을 거절함으로 결국 하나님께서 이들을 떠나셨으며 이방인에게 가실수 밖에 없었던 것처럼, 지금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도 예수님을 잘 안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거절하여 예수님이 이들 가운데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3) 고향 사람들의 회심이 아니라 적개심(눅 4:28-30)
(1) 28절.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 말을 듣고 다 크게 화를 냈다.
(2) 29절. 예수를 동네 밖으로 끌고가 밀쳐 떨어뜨리고자 했다.(낭떨어지 밑으로)
(3) 30절. 예수는 그들 가운데서 빠져 나오셨다.
[묵상] 예수님의 말씀에 자극을 받은 고향 사람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했다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만날 수 있었을 것인데 그들은 처음에는 예수를 조롱했고, 그 이후에는 예수에게 화를 내 결국 예수를 죽이고자 했다. 예수는 사역의 초기부터 자기 고향사람들에게 거절당했고 죽임을 당할 위기를 맞이했던 것이다.
2. 본문의 사건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메시지
1) 가장 가까운 고향 사람들이 오히려 예수를 거절하고 받아들이 않는다는 사실
어려서부터 나사렛에서 자란 예수님이 나사렛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을 온전히 알지 못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배척하고 죽이려고 하는 것이 그의 백성들의 모습이었다는 것입니다.
(1) 요 1:9-12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9절. 참 빛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다.
10절.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는데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다.
11절.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았다.
영접하지 않았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피조물들이 하나님을 창조자로 인정하지 않았고, 그의 백성들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왕으로 영접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진 문제였다는 것.
눅 20:9-12 포도원 농부의 비유가 이런 상황을 비유로 설명한 것입니다. 포도원 주인이 모든 농장을 만들어 놓고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먼 나라로 갔는데 때가 되어 종들을 보냈는데 그들에게 약속된 소출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인의 종을 때리고 죽였다는 것입니다. 농부들이 포도원 주인을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약속을 깨고 그 농장을 빼앗으려 함을 보여주는 비유인 것입니다.
(2) 예수를 시험해 보려고하는 모습 속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눅 4:2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용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가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우리의 요구대로 뭔가 실력을 보여주면 우리가 믿어 볼 텐데… 먼저 하나님의 아들의 실력을 보여보라는 것입니다.
이 요구는 마귀가 예수를 시험할 때도 한 요구입니다. ‘성전에서 뛰어 내려 보라는 것’ 그래서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입증하라’는 마귀의 요구와 다르지 않습니다. 주님은 마귀의 요구에 대해서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눅 4:12)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백성들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구했던 것처럼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을 시험해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판단하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3) 그래서 이들은 예수님과 오랜시간 함께 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서 만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와 같은 백성에게 더 이상 가지 않고, 믿음을 구걸하지 않고 정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인정해 주는 사람을 찾아 나서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들이 이방땅에 있다 할지라도 우리 주님은 그들을 찾아가시는 것입니다.
엘리야 시대와 엘리사 시대에 보여주셨던 이방 인들의 구원이 바로 그와 같은 의미임을 우리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2) 그럼 누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만날 수 있는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 영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 이름을 믿는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엘리야 이야기] 왕상 17:8-16
3년 반의 기근 속에 있을 때, 엘리야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사르밧 과부의 집으로 간다.(이방인) 사르밧 과부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해서 없는 물을 주려하니 오히려 떡도 달라고 한다. 사르밧 과부는 자신들에게도 양식이 없어 이제 가루 한 줌과 기름 약간을 가지고 마지막으로 아들과 함께 떡을 만들어 먹고 죽을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하니 엘리야가 알겠으니 우선 자기에게 먼저 가져다 주고 여인과 아들을 위해서는 그 이후에 만들어 먹으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핵심은 무엇입니까? 이 여인이 엘리야의 말대로 먼저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이해가 되지는 않았겠지만, 심지어 받아들이는 것도 어려웠겠지만) 그대로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요 이것이 영접하는 것의 의미입니다. 먼저 인정하는 것입니다.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어떻게 되는지 보는 것입니다. // 먼저 네 실력을 보여서 내 기준을 만족시키면 내가 믿을지 말지를 알려줄께가 아닙니다. 먼저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먼저 인정하는 것입니다.
[엘리사 이야기] 왕하 5:1-14
엘리사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 땅에 문둥병을 가진 자는 많았지만 오직 나아만 장군만 치료를 받았습니다. 왜요? 그 사람만이 엘리사를 찾아왔고, 엘리사의 요구에 반응했기 때문입니다. 요단강에 일곱번 들어갔나 나오라는 간단하 명령이다. 나아만 장군이 처음부터 순종할 마음이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너무 별게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로 씻는 것으로 따진다면 더 좋은 물에도 많이 들어가 봤고, 시리아 땅에도 더 좋은 크고 좋은 강이 있는데 이 별볼일 없는 것 같은 요단강에 몸을 담그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냥 돌아가려고 했으니 장군의 종들이 설득합니다. 더 한거라도 요구했으면 못했겠는가 한 번 해보시라. 믿져야 본전아닌가?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먼저 믿고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바로 영접이다.
먼저 믿고 받아들이시라고 말씀드리니까 그게 말이되냐? 믿을만한 것을 먼저 보여주고 그 다음에 믿으라고 해야지 무턱대고 믿으라고 하는게 말이 되냐? 안되지요… 그런데 우리가 그와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니 그와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아내가 종종 아이에게 카톡을 보냅니다. 집에 들어 올 때 마트에 들려서 고기 좀 사오고, 계란이랑 우유도 저지방으로 두 묶음 된 것을 사오라고 시킵니다. 그러면 아들은 보통 투덜거리기는 해도 말없이 사옵니다. 미리 확인하지 않습니다. 왜 고기를 사오라고 하는지 묻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늘 저녁에는 고기를 먹겠다는 생각에 안심합니다. 계란도 우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선불로 먼저 금액을 청구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가진 돈으로 사오면 아빠가 다 정산에서 준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그렇게 합니다. (너무 소소한 이야기라 적절하지 않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요청하는 사람이 아버지요 어머니라고 믿겨지는 사람은 그렇게 합니다.)
억지로 믿으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무조건 믿으라고 강요할 수도 없습니다. 믿음은 신뢰관계 속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이 먼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으시라고 권면드리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실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III. 결론
주 예수를 믿으시라. 그 믿음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믿음이 되리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2. 믿음을 돕는 성도가 되시라(나아만 장군의 믿음을 도왔던 종들)
1)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살아왔던 사람들의 권면이라면 더 설득력이 있을 것
2) 진실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왔던 사람이라면 그 권면에 더 큰 믿음이 생겼을 것
3) 중요한 순간에 꼭 필요한 말을 해서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