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616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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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주님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370장(주 안에 있는 나에게)
신앙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기도
참 좋으신 주님 오늘도 주님의 은혜로 새벽을 깨워 주님전에 있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이 허락하신 이 귀한 시간을 통해 우리의 마음과 영혼이 새롭게 되고, 더 나아가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시간이 되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오늘하루도 세상속에 살아가지만 그 안에서도 주님이 원하시는 삶,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가는 저희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시간 일천번제와 감사헌금을 주님께 예물로 드립니다. 드려진 예물 기쁘게 받아주시고, 드린 손길들 기억하여 주셔서, 주님보시기에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 Corinthians 6:1–11 NKRV
1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4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5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6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7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8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 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오늘 본문의 말씀은 얼핏 보기에 성도들 간의 법적 다툼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 본질에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그래서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매우 중요한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면서, 그들 가운데 벌어진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도들 사이에서 서로를 세상 법정에 고소 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행위를 강력하게 책망하면서 오늘 본문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면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라고 바울이 말 합니다.
‘불의한 자들’로 번역된 아디쿠스의 원어의 뜻은 ‘정의롭지 못한 자들’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문맥상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 재판관이나 세상 사람들을 의미 합니다.
그러기에 지금 고린도 성도들 간의 갈등이 생기자 교회 안에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법정에 고발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는 로마 제국의 중요한 상업 도시였습니다. 상업이 발달한 도시답게,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서로간의 문제를 법정으로 가지고 가 소송을 하는 경우가 아주 흔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명예와 재산이 삶의 중요한 가치였기 때문에, 고린도 사람들은 작은 다툼만 생겨도 곧바로 법원에 가서 소송을 걸었 습니다. 내게 작은 해를 끼쳐도 세상 법정에 고발하는 것이 너무나도 쉬웠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 안에 이러한 세상의 문화가 그대로 스며들었던 것 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일들은 단순히 개인대 개인의 싸움이 아니라, 세상사람들이 볼 때 교회가 거룩하지 못하고 복음이 힘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서로 법정에 고소하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향해 ‘저 사람들이 진짜 사랑을 말하는 사람들이 맞나?’ 라고 생각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세상과 구별되지 않는다면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그 힘을 점점 잃게 됩니다. 교회는 세상과 구별될 때 그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본문 6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현대인의 성경입니다.
“신자가 신자를 고소하여, 그것도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꼭 재판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바울은 세상과 구별되지 않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 책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다시말해 성도간의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합니다.
첫째는, 성도들 안에서 지혜로운 자를 세워 분쟁을 해결하라는 것입니다(4-5절).
1 Corinthians 6:4–5 NKRV
4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5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너희 가운데 지혜 있는 자가 하나도 없는 것이냐." 라는 이 말씀은 교회가 세상보다 더 높은 지혜, 곧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는 영적 능력이 있음을 말 하는 것입니다.
예화: 출애굽기 18장을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송사를 혼자 감당하지 못했을 때, 그의 장인 이드로가 백성 가운데 유능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고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들을 세워 송사를 재판하게 했습니다. 이처럼 공동체 안에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분별력을 가진 이들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이들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성도간에 갈등이 생기면 차라리 불의를 당하고 속임을 당하는 것이 낫다고 바울은 이야기 합니다. 본문 7절입니다.
1 Corinthians 6:7 NKRV
7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바울이 말 한 것은 단순히 무조건 참으라는 수동적인 태도가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정신을 닮은 적극적인 사랑의 실천을 이야기 하는 것 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불의를 당하셨고, 속임을 당하셨으며, 억울하게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 예수님을 따르며, 그분의 삶을 닮아가길 원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을 본받아 우리는 내 권리를 내세우기보다, 함께 지내는 사람들과의 평화를 지키고 예수님을 드러내는 것을 더 소중하게, 그리고 더 우선 여겨야 하는 것 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이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성도들이 자신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누구인지, 또 어떤 존재인지를 잊어버리고 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본문. 2-3절에 이렇게 선포합니다.
1 Corinthians 6:2–3 NKRV
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판단하다’(κρίνω, 크리노): 이 단어는 ‘재판하다, 분별하다, 다스리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믿는 자들이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을 다스리고, 심지어는 천사까지도 판단할 영광스러운 존재가 될 것임을 강조합니다. 그러기에 성도들이 이 세상의 지극히 작은 일들, 즉, 사소한 다툼을 해결하지 못하겠느냐고 바울이 책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어떤 새로운 신분을 얻었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리는 이제 더 이상 세상이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에 따라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깨끗하게 되었고, 성령님으로 인해 거룩해졌으며,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 9-10절에서 불의한 자들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며 음행하는 자, 우상 숭배하는 자, 간음하는 자, 탐색하는 자, 남색하는 자, 도적, 탐욕을 부리는 자, 술 취하는 자, 모욕하는 자, 속여 빼앗는 자들을 열거합니다. 이들은 모두 세상의 죄악된 기준과 방식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11절은 이 모든 것을 단번에 뒤집는 희망의 선포입니다: “너희 중에 어떤 자들이 이와 같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그러기에 성도인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의 정체성은 더 이상 과거의 죄된 모습이나 세상의 기준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완전히 새롭게 된 사람들입니다.
결론 및 적용 (25-30분 분량의 2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세상의 가치와 기준 속에서 살아갑니다. 경쟁, 자기 권리 주장, 물질주의 등 세상의 기준들은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분명히 선언합니다. 우리는 새 사람이며, 이제는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새벽을 깨운 여러분의 삶에 적용해 보십시오:
혹시 내 안에 세상의 방식대로 해결하려는 다툼이나 분쟁이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 안에서 지혜로운 중재를 구하고, 차라리 손해를 보더라도 사랑과 용서의 길을 택하려는 마음이 있습니까?
우리의 말과 행동과 삶의 방식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됩니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게 되었으니, 더 이상 세상의 죄악된 습관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몸은 성령의 전이며,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새벽,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의 새로운 정체성을 확인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기준을 넘어선,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 살아가야 할 존재입니다. 우리의 삶이 세상 속에서 빛이 되고, 소금이 되며, 복음의 통로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세상의 방식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유일한 기준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
사랑의 주님, 세상의 방식과 판단 기준이 익숙한 이 시대 속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씻기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의롭다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시고, 이제는 우리의 삶 전체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 삼아 살아가는 삶 되게 하옵소서. 우리 안의 자아와 욕심이 아닌,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자답게 오늘도 성결하고 진실한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치유의 하나님 오늘 수술을 받으시는 사모님을 위해 기도합닏.ㅏ 모든 불안과 두려움을 거두어 주시고, 주님의 평강으로 사모님의 마음을 붙들어 주옵소서. 수술을 집도하는 의료진의 손길 위에 주님의 지혜를 더하셔서,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 될 수 있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사모님의 몸과 마음이 속히 회복되어 온전히 강건해질수 있길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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