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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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일기
꿈 일기
여러분 혹시 꿈을 자주 꾸십니까? 사람이 잠을 잘 때에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간혹 가다가 꿈을 꿀 때가 있는데요, 내용이 잘 기억이 날 때도 있고 안 날때도 있고, 기분이 좋은 꿈도 있고 아닌 꿈도 있고 합니다. 저는 한 때 제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꿈 일기라고 하는 것을 작성한 적이 있는데요. 정신분석학적으로 꿈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무의식의 반영, 그러니까 저희가 생각하고 기억하는 것 외에 인간의 정신 저 깊은 어딘가에 있는 것들이 꿈속에 반영된다고 해서 꿈 일기를 작성해보는 것이 내 자신을 아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도 한 몇 년간 생각날 때마다 꿈 일기를 작성을 했는데요. 참 신기한 것이 보통 잠에서 깨면 꿈 내용이 막 선명하다가도 금새 잊어버리기 마련인데 한번 꿈 일기를 작성해놓으면 몇 년 뒤에 그 글을 읽어도 꿈 내용이 기억이 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읽으면서 “이야~ … 아주 개꿈을 꾸었구나”싶었던 적이 있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인 창세기 40장은 바로 이런 꿈에 대한 내용입니다. 특히 이전에 37장에서는 요셉이 꿈을 꿨었는데, 이번 본문에서는 다른 사람의 꿈을 요셉이 해석해주는 내용이 등장하죠. 바로 이집트의 파라오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의 꿈입니다.
내러티브
내러티브
먼저 어떤 일이 있었는가 보시면요,
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들의 주인 애굽 왕에게 범죄한지라
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지난 번에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치다가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복을 더하셔서 간수장이 요셉을 신뢰해서 이것저것 일을 맡겼다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에 파라오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 왕에게 범죄를 해서 왕이 두 관원장을 요셉이 있는 감옥에 집어넣어버렸다 라고 합니다.
여기서 이 두사람이 대체 무슨 범죄를 했을 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이 사람들의 직업에 대해서는 알아볼 여지가 있는데, 술 맡은 관원장이라고 하면 저희로 따지면 기미상궁처럼 왕을 독살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먼저 맛을 보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아주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떡 굽는 자라고 하면 바로왕의 음식을 책임지는 자이기 때문에 또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사람들이 바로를 암살하고자 하는 어떤 음모에 가담을 했다는 혐의를 받았을 수도 있고, 아니면 단순히 기분을 상하게 했든지 간에 왕이 이들에게 아주 화가 나서 감옥에 가뒀다는 사실만을 알 수가 있죠.
그래서 3절에 보시면 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감옥에 갇히게 되는데, 보디발의 집 안에 있는 감옥, 다른 말로 요셉이 갇힌 곳이죠. 그리고 4절을 보시면 친위대장이 요셉으로 하여금 그 두 관원장을 섬기게 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은 요셉을 감옥에 가뒀던 보디발이 여전히 요셉을 신뢰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아무튼 이후 내용은 여러분도 아마 잘 아실 겁니다. 5절에 두 사람이 각각 서로 다른 꿈을 꾸는데, 요셉이 들어가서 보니까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 겁니다. 그래서 묻기를 “아니 오늘 왜이렇게 여러분들 안색이 안 좋아 보이십니까? 무슨 일이 있으세요?”라고 물으니까 두사람이 “오늘 우리가 꿈을 꿨는데, 도대체 이걸 해석해줄 사람이 없구려”라고 합니다.
요셉은 8절에 “아니, 해몽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 아닙니까? 어디 저한테 한번 말씀해보시지요.”라고 합니다. 그래서 술 맡은 관원장이 먼저 이야기하기를 “내가 꿈에서 보아하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하나가 있었네. 그 나무에 가지가 셋이 있었는데, 거기서 싹이 나고 꽃이 피더니 포도송이가 익었다네. 내 손을 보니 바로의 잔이 들려있기에 내 어서 그 포도를 짜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담아 바로께 진상하였다네.”라고 합니다.
요셉은 그에 해몽을 해주지요. “음… 그 꿈의 해몽은 이러합니다. 가지가 셋이 나있다는 것은 사흘을 말합니다. 앞으로 사흘 안에, 바로께서 당신을 불러다가 당신의 직책을 되돌려 줄 것입니다. 이전에 술 맡은 자가 되어서 하던 것과 같이 바로께 술잔을 진상하게 될 것입니다. 혹시 정말 그렇게 관원장께서 일이 잘 풀리시거든 부디 저를 기억하셔서 제게 은혜를 베풀어주시지요. 꼭 바로께 제 사정을 말씀드려서 이 집에서 나올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저는 히브리 사람들이 사는 땅에서 강제로 끌려온 사람이고 여기 이집트에 와서도 딱히 감옥에 갇힐 만한 일은 절대 하지 않았습니다.”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떡 굽는 관원장이 요셉이 해주는 해몽을 이야기를 들으니까 꽤 맘에 들었습니다. “이야 저 사람의 꿈이 나중에 복직하는 거라고? 어디 나도 좀 해주게나! 나도 꿈에서 봤는데 떡을 담은 바구니가 내 머리에 세 개가 있었는데, 가장 위에 있는 바구니에 바로를 위해서 구운 각종 음식들이 있었다네. 그런데 갑자기 새들이 와서 내 머리에 있는 바구니의 음식을 먹는게 아닌가? 이게 대체 무슨뜻일지 말해주게”
요셉은 다시 한번 해몽을 해줍니다. “그 꿈의 해석은 이러합니다. 그 세 바구니는 또한 사흘을 의미하는데, 이제 사흘 안에 바로께서 당신을 부르실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께서 당신의 목을 치실 것이고 당신의 시신은 나무에 매달아 새들이 당신의 몸을 뜯어먹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이런 무시무시한 해석을 떡 굽는 관원장에게 이야기 해줍니다.
그로부터 사흘이 지나서 바로 왕의 생일이 되었습니다. 그에 따라서 왕이 신하들을 다 불러모아서 잔치를 베푸는데 “여봐라! 전에 가두었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을 감옥에서 불러 들라하라!”라고 요셉이 해준 해몽처럼 두 사람들을 불러들입니다.
그래서 정말로 그 말대로 술 맡은 관원장은 원래 직책을 회복하게 되었고, 떡 굽는 관원장은 처형당하게 되었는데, 마지막 23절을 보면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기 잊었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신다.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신다.
이처럼 오늘의 이야기는 요셉이 보디발의 집 안에 있는 감옥에 갇혀있을 때, 바로왕을 섬기던 두 관원장에게 해몽을 해주는 내용으로 저희가 잘 아는 이야기이기도 한데요, 여러분 사실 이집트는 아주 고대로부터 꿈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있었다는 것 알고 계셨습니까? 오늘날에야 막 꿈 해석을 해준다, 아니면 하늘의 별을 보고서 점성술을 해준다, 아니면 사주팔자를 봐준다 라고 하는 것이 다 그냥 이상한 미신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요 그것이 그들에게는 나름 최첨단의 과학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사진을 보시면, 이것이 실제로 이집트에서 발굴된 꿈 해석에 대한 책인데요, 꿈에 이러한 내용이 나타나면 이렇게 해석한다, 저런 내용이 나오면 저렇게 해석한다 라는 내용들이 담겨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 8절 상반절에 두 관원장이 “우리가 꿈을 꿨는데, 도저히 해석해줄 사람이 없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두 사람이 감옥에 갇혀있으니까, 저 꿈 해석에 대해서 정통한 과학자들, 당시의 마술사 혹은 점술가들을 만날 기회가 없어서 근심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요셉이 그때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꿈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라고 이야기하지요. 이 말은요 당대에 아주 최신, 최고의 문명과 기술을 가지고 있던 이집트의 파라오왕이 아주 신뢰하던 현인들과 마술사들을 대놓고 무시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출애굽기에서 모세와 아론이 지팡이로 뱀을 만들었을 때, 바로가 어떻게 했죠?
바로도 현인들과 마술사들을 부르매 그 애굽 요술사들도 그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되
현인들과 마술사들을 불러서 그들이 똑같이 지팡이를 뱀으로 바꾸는 요술을 행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들은 단순히 광대같은 엔터테이너가 아닙니다. 바로가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듣지 않고 그들의 말을 신뢰할 정도로 왕의 신뢰를 받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런데 요셉은 꿈 해석을 해줄 수 있는 전문가를 찾고 있는 두 사람에게 아주 정면에서 “그런 사람들은 다 가짜입니다. 하나님 만이 해석을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제가 아까 전에 꿈 일기에 대해서 말씀드리면서 꿈이라고 하는 것이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이미지들을 반영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그래서 꿈이라고 하는 것은 이집트의 점술가들의 말처럼 절대절대 미래를 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과거에 가지고 있었던 어떤 이미지들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꿈이에요. 그래서 실제로 청각장애인들은 꿈 속에서 자막으로 대화하기도 하고 색맹인 사람듫은 꿈속에서 자신이 볼 수 있는 색상만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셉이 하나님 만이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의 앞날을 알고 계시는 분은 하나님 한분 뿐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로 두 관원장의 꿈을 해석을 했을 때, 그 꿈에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보고 해몽을 해줍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해석을 했을 때야 그것이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이야기로 나온 것이지 사람의 뜻으로는 당장 한 치 앞의 일도 알 수가 없습니다.
어제 오후예배 때 홍성욱 선교사님께서 말씀주셨었죠. 오늘 당장 내가 죽는다고 한다면 갈등, 시기, 질투, 미움이 생길 수가 없다고. 만약에 떡 맡은 관원장도 자기가 그렇게 삼일 안에 처형당할 줄 알고 있었으면 왕의 심기를 건드리는 짓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 감사하게도 저희는 미래의 일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미래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믿음으로 구원받은 의인들을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부르셔서 영원한 삶을 살 것이라는 것을 저희는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우리의 앞날은 하나님만이 아신다는 것을 믿고, 또한 주님 다시 오실 때에 영원한 천국으로 부르신다는 것을 믿는 다면, 영생의 소망을 품고 오늘 하루를 기쁨으로, 감사로, 찬양으로 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해석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하는 요셉의 말은요, 꿈이라고 하는 것이 저희의 깊은 내면과 관계있다고 말씀드렸죠? 제가 예전에 기록한 꿈일기도 그 날짜와 함께 다시보면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제가 마음 속 깊이 불안하고 감추어뒀떤 마음들, 또는 강하게 바랐던 마음들이 주로 반영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훈련소에 처음갔을 때는 집에서 부모님이 반겨주시는 꿈을 꾸기도 하구요, 오히려 퇴소했을 때는 군대에 다시가는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해석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는 말씀은 다른 말로 하나님께서는 저희의 중심, 저희의 가장 깊은 내면조차 보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두 관원장이 정말 자신의 운명을 모르지는 않았을 거예요. 분명 자기 스스로는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알았을 겁니다. 그것이 또한 꿈에서 반영이 되었을 거구요. 하지만 백날 그것을 부정한다 한들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꿰뚫어 보십니다. 정말 바로왕을 잘 섬기려고 포도주를 만들어서 진상하려고 하는 사람인 것인지, 아니면 왕에게 바쳐야할 음식을 새들에게 먹게 만드는 것인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보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저희의 가장 깊은 마음속에 있는 내용 또한 보십니다. 그래서 저희가 간구해야할 것은 저희의 마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마음, 정결한 마음, 또한 지난 장에서 요셉이 보여준 유혹을 뿌리치는 마음입니다.
결론
결론
그래서 오늘 함께 기도하실 때에 이렇게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는 한치앞도 모르는 저희 인생이지만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영생을 날마다 소망하며 사는 지혜를 허락해주시기를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오늘만 사는 사람들은 기쁨을 누리면서 살 수 없지만 영생을 바라보고 오늘을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평안으로 사는 것입니다. 내일의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고 하는 요셉의 말처럼 오늘 하루가 주님 안에서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하루가 될 수 있도록 기도했으면 좋겠구요.
또한 하나님께서 두 관원장이 자신도 몰랐던 중심을 보셨던 것처럼 저희의 중심을 보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저희가 하나님 보시기에 정결한 마음을 허락해달라고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율법만 지키고 마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모습을 보였던 바리새인과 같은 모습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했으면 좋겠구요.
마지막으로 불과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의 전쟁 소식을 들은게 엊그제 같은데 또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에 교전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또한 전쟁과 교전이 계속될 것 같은데 그 안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 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안전과 평안을 위해서, 또한 우리가 모두 함께 살아가는 이 지구위의 위정자들이 부디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바랄 수 있도록 각지의 많은 사람들과 또한 희생된 이들의 유족들을 위해서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