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라는 이름의 초대장 2025 0616 욥33:14-18, 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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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38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 / 384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공동체성경읽기 욥기 31-34장
14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사람은 관심이 없도다 15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에 환상을 볼 때에
16 그가 사람의 귀를 여시고 경고로써 두렵게 하시니 17 이는 사람에게 그의 행실을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의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18 그는 사람의 혼을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그 생명을 칼에 맞아 멸망하지 않게 하시느니라
29 실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이 모든 일을 재삼 행하심은 30 그들의 영혼을 구덩이에서 이끌어 생명의 빛을 그들에게 비추려 하심이니라
고난은 우리를 벌하기 위한 ‘죄의 청구서’가 아니라, 우리를 더 깊은 생명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구출 초대장’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느 날 우편함을 열었을 때, 왠지 모르게 낯설고 두꺼운 봉투가 하나 꽂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보내는 사람의 주소에는 '법원'이나 '세무서', 혹은 '종합병원'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찍혀 있습니다. 그 차가운 종이의 감촉을 느끼는 순간, 우리 마음에는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이제 어떻게 하지?" 봉투를 열어보기도 전에, 우리는 이미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 편지는 틀림없이 나의 잘못에 대한 대가, 즉 벌금 고지서나 무서운 판결문일 것이라고 말입니다.
사실 우리 인생에 예고 없이 찾아오는 고통이라는 불청객이 꼭 이와 같습니다. 갑작스러운 질병, 관계의 깨어짐, 재정적인 어려움, 혹은 깊은 외로움이 우리 삶의 문을 두드릴 때, 우리는 마치 이 반갑지 않은 편지를 받아 든 것처럼 반응합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이제 어떻게 하지?"
그리고 우리 주변, 심지어 우리 자신의 마음속에서도 이런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네가 무언가 잘못했기 때문이야. 이것은 네 죄에 대한 청구서야."
욥이 바로 그런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가 모든 것을 잃고 재 더미 위에 앉아 신음하고 있을 때, 그의 친구들이 찾아왔습니다. 위로하기 위해서였지만, 그들의 손에는 날카로운 '죄의 청구서'가 들려 있었습니다. 그들은 욥의 무너진 삶을 보자마자, 마치 냉정한 우편배달부처럼 소리쳤습니다. "이보게, 욥! 자네 앞으로 온 청구서일세! 자네가 하나님 앞에서 저지른 죄의 대가 말이야!"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동안 욥기를 통해 나눈 관계를 파괴하는 ‘정죄의 신학’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우리는 잠시 멈춰서 질문을 던져보려 합니다. 만약 그 고통이라는 편지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종류의 편지가 아니라면 어떨까요? 만약 그 두려운 봉투 안에, 벌금 고지서가 아닌, 우리를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간절한 초대장이 들어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바로 그 새로운 가능성을, 오늘 본문의 젊은 청년 엘리후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고통이라는 편지의 주소를 잘못 알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고통이라는 편지의 주소를 잘못 알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고통의 발신자를 '인과응보의 하나님'으로 설정했습니다. 하나님을 마치 거대한 자판기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선행이라는 동전을 넣으면 축복이 나오고, 죄악이라는 동전을 넣으면 고통이 나오는, 아주 기계적이고 예측 가능한 시스템입니다. 이 논리는 단순하고 명쾌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 신학의 가장 무서운 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논리적으로는 보일지 몰라도, 결국 관계를 파괴하고 사람의 영혼을 죽인다는 것입니다. 고통받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공감과 위로인데, 이 차가운 논리는 "네 탓이야"라는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그의 상처를 더욱 깊게 후벼 팝니다. 희망을 주지 않고 정죄감의 감옥에 가두며, 하나님과의 관계마저 거래 관계로 전락시켜 버립니다.
솔직히 우리 안에도 이런 '욥의 친구'가 살고 있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보며 쉽게 판단하거나, 혹은 내 자신이 고통스러울 때 "내가 뭘 잘못했길래..."라며 스스로를 정죄의 감옥에 가두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이 바로 고통이라는 편지의 주소를 잘못 읽은 것입니다.
하지만 둘째로, 엘리후는 그 편지의 주소를 바로잡아 줍니다. 그것은 '죄의 청구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확성기'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둘째로, 엘리후는 그 편지의 주소를 바로잡아 줍니다. 그것은 '죄의 청구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확성기'라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 14절을 보십시오.
14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사람은 관심이 없도다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고 우리에게 계속해서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평안하고 모든 것이 잘 풀릴 때는, 그 세미한 음성을 듣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귀는 세상의 소음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 C.S. 루이스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은 쾌락 속에서는 우리에게 속삭이시고, 양심 속에서는 말씀하시지만, 고통 속에서는 우리에게 소리치신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깨우는 하나님의 확성기다."
엘리후는 바로 고통이 그 '확성기'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주목시키기 위해 볼륨을 높이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혼내고 벌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17절과 18절이 그 목적을 분명히 밝힙니다.
17 이는 사람에게 그의 행실을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의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18 그는 사람의 혼을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그 생명을 칼에 맞아 멸망하지 않게 하시느니라
성도 여러분, 들리십니까? 목적은 파괴가 아니라 구조입니다. 징벌이 아니라 보호입니다. 우리가 교만의 길, 잘못된 길로 달려가다가 낭떠러지로 떨어지기 직전에, 하나님께서 고통이라는 확성기를 통해 소리치시는 겁니다. "그쪽은 위험해! 돌아오렴! 내가 너를 구덩이에서 건져주마!"
자, 이제 드디어 우리는 그 초대장의 내용을 확인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확성기까지 동원해서 우리를 부르시는 그 목적지는 어디일까요?
자, 이제 드디어 우리는 그 초대장의 내용을 확인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확성기까지 동원해서 우리를 부르시는 그 목적지는 어디일까요?
본문 29절과 30절을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29 실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이 모든 일을 재삼 행하심은
30 그들의 영혼을 구덩이에서 이끌어 생명의 빛을 그들에게 비추려 하심이니라
'생명의 빛을 그들에게 비추려 하심이니라.'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초대장의 내용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진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교만과 자기 의존, 절망과 어둠의 구덩이에 머물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곳에서 우리를 이끌어내어,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 겸손과 신뢰가 가득한 '생명의 빛' 가운데로 우리를 초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통은 우리를 끝장내기 위한 마침표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를 새로운 문장으로 이끌기 위한 쉼표였습니다.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한 망치가 아니라, 우리를 더욱 아름답게 빚으시기 위한 하나님의 섬세한 조각칼이었습니다.
결론, 결단과 희망을 촉구하며
결론, 결단과 희망을 촉구하며
오늘 말씀 앞에 선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고통이라는 편지를 받았을 때, 우리는 욥의 친구들처럼 "이건 내 죄의 대가야"라며 그 편지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절망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엘리후의 눈을 빌려, "하나님, 이 봉투 안에 무슨 메시지를 담아두셨습니까?"라고 물으며 조심스럽게 그 초대장을 열어볼 수도 있습니다.
'초대장을 열어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고통 속에서 우리의 질문을 바꾸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도대체 뭘 잘못했습니까?"라고 따져 묻던 자리에서 돌이켜,
"하나님, 이 고통을 통해 제게 무엇을 말씀하고 싶으십니까? 이 아픔을 통해 저를 어디로 이끌고 계십니까?"라고 묻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선을 원망스러운 '과거의 내 모습'에서, 나를 빚어 가실 '미래의 하나님의 손길'로 옮기는 것입니다.
물론, 이 초대장을 받는 것은 아픕니다. 그 과정이 쉽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이것 하나만은 꼭 기억하십시오. 이 초대장의 최종 목적지는 절망이 아니라 '생명의 빛'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 혼자 그 아픈 길을 가게 하지 않으십니다.
이 초대장에 응답하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친히 가장 아프고 고통스러운 초대장을 받으셨습니다. 바로 하나뿐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인류의 모든 고통과 죄악이 집중된 가장 끔찍한 고통의 현장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곳을 통해 부활이라는 가장 찬란한 생명의 빛을 비추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고통의 구덩이로 내려오셨다가 생명의 빛으로 일어나심으로, 우리에게 오는 모든 고통의 초대장 끝에는 결국 생명과 희망이 있음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어떤 고통의 편지를 받아 들고 계십니까? 더 이상 그것을 죄의 청구서라 여기며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를 구출하여 생명의 빛으로 옮기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그 초대장을 열어보십시오. 부디 오늘 이후, 여러분의 삶에 찾아오는 모든 고통의 순간에, 정죄의 목소리가 아닌 구출의 손길을 발견하시기를, 죄의 청구서가 아닌 생명의 초대장을 발견하시는 놀라운 은혜가 있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