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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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고린도후서 5:1-10
“주와 함께”
찬송가 549장 ‘내 주여 뜻대로’
2025. 6. 16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주와 함께”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소원이 있으십니까? 육신의 건강, 자녀의 성공, 사업의 번창, 여러 가지 소원이 있죠. 그런데 그 중에 가장 최고의 소원이 있다면, 바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최고의 소원일 겁니다.
바울에게도 소원이 있었어요. 바울의 소원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오늘 말씀의 제목이 바울의 소원이었습니다. 주와 함께. 바울은 주와 함께 있는 것이 최고의 소원이었습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 8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오늘 본문 8절,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아멘.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것, 이것이 바울의 소원이에요.
이것을 나중에 빌립보서에서 또 한번 말을 하는데요. 빌립보서 1장 23절, 24절에 바울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아멘. 내가 이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고 싶다는 겁니다. 그런데 아직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세상을 떠날 수가 없다는 것이죠.
이처럼, 바울은 빨리 주님을 만나고 싶어 했습니다. 빨리 이 땅에서 사명을 끝마치고 주님과 함께 있고 싶어요. 이게 평생의 소원이었습니다.
자, 그런데. 바울은 내가 주님과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내 육신이 죽든지 죽지 않든지,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을 해요. 9절 봐 볼까요? 9절도 같이 읽습니다. 시작,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살아있든지 죽든지 중요하지 않다는 거예요. 뭐가 중요합니까?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살아서든 죽어서든 우리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힘써야 된다는 거예요. 이것이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이 결론을 우리가 먼저 염두에 두고, 1절부터 살펴보면서 내려오도록 하겠습니다.
자, 오늘 본문 1절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아멘.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 이것은 우리의 육신을 의미합니다. 위에 4장 16절에서는 이것을 “겉사람”이라고 표현을 했죠. 이 장막 집은 언젠가 무너져요. 우리가 생의 연수를 끝마치는 날에 무너집니다. 그런데, 이 장막 집이 무너지면 새로운 집이 우리에게 주어지죠. 바로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주어지는데, 이것은 주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가 입을 부활의 몸이에요.
재림 때에 우리는 모두가 다 부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두가 다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을 입게 돼요. 이 집은 하자가 없는 집이고, 침수도 없고, 균열도 없고, 영원히 아름다운 집이에요. 우리가 바로 이러한 신령한 육체를 입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때가 빨리 오기를 기다려요. 육신의 장막을 벗어버리고,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을 입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래서 밑에 2절에 바울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자, 2절도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아멘.
바울이 무엇을 간절히 사모합니까?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를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죠. 그런데 그 전에 바울이 탄식을 한다고 그랬어요.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탄식을 해요. 탄식이 헬라어로 “스테나조” 라는 말인데, 이 말은 “신음소리를 내다” 라는 뜻입니다.
너무 고통스러우면 저절로 신음소리가 나죠. 우리가 육신의 장막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고통스러워요. 날마다 낡아져가고, 환난이 오고, 어려움들이 있기 때문에, 수시로 아픕니다. 그래서 신음소리가 나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고통스러운 와중에서도, 바울은 간절히 사모하는 것이 있어요. 우리가 덧입을 처소, 장래에 우리가 덧입을 부활의 몸, 그것을 사모하는 겁니다.
지금 고린도교회 안에는 헬라철학을 깊이 따르는 자들이 있어요. 헬라철학의 사상에 따르면, 영혼은 깨끗한 것이고 육체는 더러운 거예요. 그래서 이 헬라철학을 숭상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죽으면 깨끗한 영혼이 더러운 육체로부터 해방된다고 믿었어요. 그래서 이 사람들은 무엇을 소망했냐면, 빨리 죽어서 육체로부터 해방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빨리 죽어서 육신의 이 모든 더러운 욕구로부터 해방되고 싶다. 이런 사상이 고린도교회 안에도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부활을 계속 강조하는 겁니다. 죽어서 영혼만 둥둥 떠있는다고 좋은 게 아니라, 부활의 육체를 입는 것이야말로 좋은 것이라는 거예요.
인간은 영혼만 있어서는 불완전해요. 영혼과 육신이 함께 있어야 완전한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육신과 영혼이 분리되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그래서 2절에서 뭐라고 그랬습니까?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한다”고 그랬죠. 바울은 부활의 육체를 덧입기를 원해요.
여러분, 덧입는 게 뭡니까? 옷을 입고 있는 상태에서 위에 껴입는 거죠. 그러니까 바울은 육신의 장막을 벗기 전에, 그 위에 부활의 몸을 입기를 원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죽기 전에, 내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기 전에, 내 육체가 부활의 몸으로 변화되기를 원한다는 거예요. 죽지 않고,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고 싶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면, 불완전한 존재가 되기 때문에. 밑에 3절에 보면, 바울은 그러한 불완전한 존재를 “벗은 자”라고 표현합니다. 자, 3절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이게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벗고 있는 상태로 발견되고 싶지 않다는 겁니다. 벗고 있는 상태, 육신의 장막을 벗고 영혼만 남아 있는 상태로 발견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헬라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육체와 영혼이 분리된 상태에 놓여지는 것이 싫다는 거죠.
그래서 밑에 4절에서 이것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4절에 보니까,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내가 지금 이 땅에서 탄식을 하고 있는데, 탄식을 하는 이유가 육신의 장막을 벗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 위에 영원한 집을 덧입고 싶어서라는 겁니다. 헬라인들은 어떻게든 육신의 장막을 벗고, 영혼이 해방되기 위해서 탄식을 하지만, 우리는 그러면 안 돼요. 우리는 그 다음 단계를 바라봐야 합니다. 부활의 몸, 신령한 몸을 입고 완전한 존재가 되기 위하여 탄식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가 힘써야 되는 겁니다.
자, 그런데. 이 말씀이 8절에 와서는 말이 바뀌죠. 8절에서 뭐라고 합니까?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분명히 앞에서는 내가 몸을 떠나는 것이 싫다고 했어요. 내가 영혼으로만 존재하는 벗은 자가 되기 싫다고 했단 말이죠. 그런데 8절에서는 뭐라고 그래요? 차라리 몸을 떠나는 것이 좋겠다고 말을 하죠. 도대체 바울이 무슨 말을 하는 걸까요? 육신을 떠나고 싶다는 거예요, 떠나기 싫다는 거예요? 왜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겁니까?
제가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여러분, 바울은요, 육신을 떠나든 떠나지 않든,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지금 말하고 있는 겁니다. 육신을 떠나면 어떻습니까? 또 안 떠나면 어떻습니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주와 함께 있는 겁니다. 살아서든 죽어서든 주와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상관이 없는 거예요.
기왕이면 내가 죽기 전에 주님이 재림하셔서 그 상태 그대로 신령한 몸을 덧입고, 주님과 함께 있을 수 있게 되는 것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괜찮아요. 죽으면 죽은 대로, 내 영혼이 천국 가서 주님과 함께 있을 수 있으니까.
이것이 바울의 소원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아까 같이 찬송했죠? “살든지 죽든지 주 뜻대로 하소서” 내가 주와 함께 있으면서 주의 뜻을 따라,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는 것. 이것이 바울의 평생의 소원이었고, 이것이 바울의 평생의 사명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바울과 같이, 여러분 평생에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살든지 죽든지, 살아서는 이 땅에서 육신의 장막을 입은 채로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서는 육신의 장막을 벗어버리고 저 천국에서 주를 위하여 살고. 어느 쪽으로든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로서 충성을 다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