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이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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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 말씀

저는 고등학교를 자퇴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일때 한 오후예배에 출석을 해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와중에 처음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나서, 바로 그 다음달에 학교를 자퇴하고 기독교 기숙사학원에서 살면서 공부를 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생활을 1년 동안 했습니다. 그 때가 참 기억에 남는게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5시부터 6시 반까지 새벽 예배를 드리고, 공부하고 8시에 아침먹고, 공부하고 12시에 점심먹고 1시에 30분 동안 찬양집회를 하고 공부하고, 6시에 저녁먹고 1시간 동안 예배드리고, 저녁 10시까지 공부하고 잠들었구요, 주일 날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점심만 먹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유일하게 일주일 동안 여가생활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일 4시부터 7시까지고, 주일 저녁에는 청소하고 저녁점호하고 했었는데요.
저는 어느 누구보다도 게임을 좋아하고 혼자있기 좋아하는데 한 방에 30명씩 같이 자는 기숙사 생활에 새벽부터 저녁까지 예배 공부 식사 이것만 하려니까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저는 원래 저녁 10시쯤 자면 아침 7시쯤 일어나는 사람인데 새벽기도하기도 힘들고 공부도 오랜 시간 하는게 익숙치 않다보니까 처음에 참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한창 적응이 힘들어서 어려워하는 와중에 제 책상에 포스트잇으로 누가 그냥 “힘내”라는 두 글자를 딱 써서 올려줬는데 그게 저에게 참 큰 위로가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누가 썼는지도 잘 모르는 글인데, 많이 힘든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저에게는 큰 위로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이후로 그 기숙학원에서 잘 적응해서 1년 정도 공부를 하고 검정고시를 치루고 감리교신학대학교에 진학을 했었습니다.
이처럼 누군가를 위로하는 말은 참 큰 힘을 줍니다. 심지어 누가 썼는지도 모르는 글이었는데도 그 말에 참된 힘이 있기 때문이었는데요, 제게 있어서 그것이 어느 학생이 남긴 글이었을 지는 몰라도, 적어도 제가 받아들이기로는 “아 하나님께서 이 학생을 통해서 나에게 말씀을 해주셨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2이사야

오늘 본문말씀인 이사야서 40장 말씀은 누가 썼는지 이름조차 모르는 누군가가 남긴, 바벨론에 포로로 잡힌 백성들을 향한 위로의 말씀입니다. 아마 여러분들에게는 이게 굉장히 어색하고 잘 받아들여지기 힘든 말씀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굉장히 불편한 말씀으로 들릴 텐데요, 왜냐하면 이 말씀이 이사야서로 분류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전에 이사야 예언자에 대한 말씀을 전해드리면서 말씀드린 적이 있을 겁니다. 소선지서라고 불리는 12명의 예언자의 글들은 12개의 작은 책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큰 두루마리로 되어있기 때문에 “열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사야서도 1-39장 까지는 이사야 선지자가 쓴 것이 맞죠. 활동시기도 일치하고 앗수르에 의해서 유다가 멸망할 것이라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40-66장까지는 앗수르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갑자기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다 백성들이 돌아올 것이라는 내용을 이야기합니다.
본문말씀 2절 말씀을 보시면,
Isaiah 40:2 NKRV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백성들이 그들의 죄 때문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지만 그들이 죄값을 충분히 치뤘고 지은 죄에 비해서 벌을 두 배나 더 받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제 돌아올 때가 되었다, 라는 말씀이죠.
제가 새벽기도 시간에는 한번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성경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시대에 따라서 큰 차이가 존재합니다. 먼저 지금 함께 새벽시간에 읽고 있는 아브라함-이삭-야곱-요셉에 이르기까지의 하나님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신들 중에서, “우리 부족” “우리 족장”을 선택하신 아주아주 강한 하나님, 다른 말로는 “족장 신앙”으로서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있었구요,
그 이후에 저희가 금요기도회때 읽고 있는 본문들의 시기 즈음에 나라가 세워지고 바벨론에 의해서 나라가 완전히 멸망할 때 까지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신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하나님, 다른 말로는 “최고신”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도 이러한 최고신 신앙을 가지고 있던 것을 볼 수가 있는데요,
Isaiah 19:1 NKRV
애굽에 관한 경고라 보라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시리니 애굽의 우상들이 그 앞에서 떨겠고 애굽인의 마음이 그 속에서 녹으리로다
Isaiah 19:3 NKRV
애굽인의 정신이 그 속에서 쇠약할 것이요 그의 계획을 내가 깨뜨리리니 그들이 우상과 마술사와 신접한 자와 요술객에게 물으리로다
이집트의 우상들이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떨것이다, 이집트 사람들이 자기들의 우상에게 찾아가서 물을 것이다, 라는 말씀처럼 우상이 존재하기는 하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모두 떨게 만들만큼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하신 하나님이라는 고백을 합니다.
물론 이것이 진짜로 그 당시에 우상이 존재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니구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정말로 누구신지 역사 속에서 알아가고 배우는 과정입니다. 정말 세상에 존재하시는 하나님은 하나님 한분 뿐이시죠,
그래서 오늘 본문말씀에서 등장하는 예언자의 말씀을 보면요,
Isaiah 40:18–19 NKRV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을 그에게 비기겠느냐 우상은 장인이 부어 만들었고 장색이 금으로 입혔고 또 은 사슬을 만든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다른 어떤것에 비교해서 볼 수 있는 분이 아니시고, 어떤 형상으로 지어진 우상과는 다른 분이시라는 고백을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외에 모든 우상은 만들어진 것이다, 라고 하는 유일신 사상은 바벨론 포로시기 즈음에 생겨난 것을 생각해보면 오늘 본문말씀의 이사야는 원래 저희가 알던 이사야보다는 한참 후대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Isaiah 44:28 NKRV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증거는 이 예언자는 바사 왕 고레스를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활동 시기가 대략 기원전 700년경 까지인 것을 생각하면 포로 귀환 칙령을 내린 기원전 538년까지는 대략 160년이라고 하는 큰 차이가 존재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알려주셨을 수도 있죠. 그러나 듣는 사람들이 전혀 모르는 말씀을 이사야 선지자가 전했을 것이라는 것보다는, 정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을 포로 시기의 예언자의 입을 통해서 전해지는 말씀이 더 설득력있고 은혜가 되는 말씀이 됩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1592년에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갑자기 한 예언자가 나타나서 미국이 일본에 핵폭탄을 떨어뜨려서 조선이 독립할 것입니다! 라고 이야기한다고 믿는 것보다는 일제 시대 때에 3월 1일에 함께 광장에 나와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는 사람 중에 25년뒤에 8월 15일에 우리가 독립할 것입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설득력있다는 말씀입니다.
다만 이 새로운 저자도 저희가 아는 이사야 선지자가 이야기하는 것에서 아주 크게 벗어나 있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하나님의 주권, 유다 왕국의 회복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궁극적으로 해결하실 다가올 메시아에 대한 말씀을 전하는 거로 봐서, 이사야 선지자의 직간접적인 제자들이 그의 유지를 이어받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여러분, 사실 정확히 누가 썼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저한테도 누가 썼는지 모르는 작은 쪽지가 저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되었던 것처럼 오늘 본문말씀도 정말 슬퍼하고 고통받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위로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2이사야라고 불리는 예언자가 어떤 말씀을 전하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위로

Isaiah 40:1–2 NKRV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말씀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위로하시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이미 백성들이 죄값을 충분히 치렀으니 하나님께서 용서를 해주셨고, 이제는 이 용서받은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위로해주시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등장하는 말씀은 여러분도 아마 익숙하신 말씀일텐데요,
Isaiah 40:3 NKRV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세례 요한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신약의 사복음서 모두에서 인용되는 말씀이죠.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있어서 말하기를 “광야에서 하나님의 길을 예비하라,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라는 말씀을 합니다.
이 말씀은 세례요한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아마 이 말씀을 듣고 있던 포로로 사로잡힌 백성들은 아마 모세가 이끈 40년의 광야 생활을 떠올릴 겁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낸 것은 사실 모세나 아론이나 다른 지도자들이 아니죠. 하나님께서 그 길을 인도하셔서 이집트의 노예생활로부터 구원해내셨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길을 예비하라는 말씀은, 이제 광야와 같은 70년의 포로생활을 끝내고, 하나님께서 평탄하게 새로운 구원의 길로 인도하실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Isaiah 40:4 NKRV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이 말씀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이전까지는 골짜기와 산과 언덕을 건너는 것처럼, 무슨 군대에서 산악 행군하듯이 아주 어려운 길을 지나온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이제는 평탄한 길을 내셔서 백성들을 구원해내시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저희가 역사로 살펴보기로는 바사왕 고레스가 칙령을 내려서 포로들을 귀환시킨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구원의 주체, 구원으로 인도하는 자가 고레스가 되는걸까요? 그것이 아닙니다.
Isaiah 40:12 NKRV
누가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쟀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접시 저울로 산들을, 막대 저울로 언덕들을 달아 보았으랴
오늘 본문말씀의 아주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예언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을 이야기합니다. 바닷물을 손바닥으로 떠서 헤아리고, 뼘으로 하늘을 재고, 땅의 티끌을 재고, 저울로 산을 잰다는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주의 질서를 친히 운행하신다는 말씀을 이야기하는 것이구요,
Isaiah 40:13–14 NKRV
누가 여호와의 영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그가 누구와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정의의 길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 주었느냐
특히 이 말씀이 중요한데요, 바벨론과 같은 고대 근동에서는 여러 명의 신들이 이 세상을 창조했고, 또한 이 세상을 다스리기 위해서 신들의 회의가 열려서 서로를 조언하고 대다수의 경우 서로 싸우고 하면서 이 세상의 질서를 운용한다고 믿었습니다.
사진을 보시면 실제로 바벨론 성의 문 중 하나인 이슈타르 문이라고 하는 성문입니다. 안에는 바벨론의 신인 마르둑을 기념하고 상징하는 소와 용들이 그려져 있구요. 이것은 독일에 있는 박물관에 복원되어서 보관된 모습인데, 이게 실제로는 이것보다 더 크다고 해요. 그래서 다음 사진을 보시면, 이것이 기록과 고고학적으로 발굴된 것을 토대로 그림으로 재현한 것인데,
여러분 한번 상상을 해봅시다. 이 모습을 처음 본 유다 왕국의 백성들이 대체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아마 대다수의 백성들은 “아,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 저 바벨론의 신들에게 졌구나!”하고 그간에 가지고 있던 믿음조차 와장창 무너지는 아주아주 절망적인 모습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다니엘 서에서도 보면 여러 나라의 포로로 사로잡은 이들중에 골라서 바벨론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쳤다고 이야기하는데, 그들은 아마 바벨론에서 바벨론의 신들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많이 들었을 겁니다. 그래서 정말로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신들의 싸움과 전쟁, 회의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고, 페르시아가 바벨론을 정복했을 때에도 페르시아의 신들이 이긴 것이구나, 라고 믿는 이들이 다수 있었을 겁니다. “저렇게 어마무시한 건물을 세운 바벨론의 신을 이긴 페르시아의 신들은 대체 얼마나 더 무서운 것일까?”하고 말이죠.
Isaiah 40:13–14 NKRV
누가 여호와의 영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그가 누구와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정의의 길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 주었느냐
그런데 오늘 본문말씀은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감히 누가 신들의 회의 따위를 조직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지도하겠느냐! 하나님께서 누구랑 의논하실 분이시냐! 누가 감히 하나님을 가르치려들 수 있겠느냐!라고 외치면서, 전쟁과 폭력과 싸움으로 힘을 불린 바벨론의 우상들 따위가 감히 우리를 구원하시고 광야에서 정의의 길을 펴실 하나님을 가르칠 수 있겠느냐!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Isaiah 40:17 NKRV
그의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 같이, 빈 것 같이 여기시느니라
그래서 그런 어마무시한 바벨론 민족을 포함한 이 세상의 모든 열방이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Isaiah 40:18–19 NKRV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을 그에게 비기겠느냐 우상은 장인이 부어 만들었고 장색이 금으로 입혔고 또 은 사슬을 만든 것이니라
아까 잠시 보았던 것처럼 바벨론이 세운 저런 높다란 건물과 신상들 역시 그저 인간이 부어만든 형상이고, 감히 하나님에게 우상 따위를 비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벨론에 사로잡힌 것은 우리의 죄값을 치룬 것이지 하나님께서 말도 못하고 사람이 부어만든 우상 따위에 진 것이 아님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Isaiah 40:6–7 NKRV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는 저 강대하고 아름다운 성곽을 지은 바벨론은 하나님께서 입김을 “후!”하고 부시면 시들고 말라버리는 풀과 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강대해 보이던 바벨론도 지난 주에 저희가 살펴본 바처럼 정말 어처구니없이 순식간에 멸망했습니다. 처음 바벨론이 앗수르로부터 독립해서 나라를 크게 성장시키고 멸망하기 까지 고작 87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풀같은 육체는 마르고, 꽃같은 성읍은 다 시들었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변치않고 굳건히 서 있는 것이 하나 있죠. 본문말씀 8절을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Isaiah 40:8 NKRV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바벨론은 마르고 시들지만 이스라엘과 유다를 구원하시겠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마르고 시들지 않고 굳건히 서있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손으로 지은 우상도 썩고 무너지지만 이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말씀으로 이집트에서 노예들을 구원하시고, 말씀으로 나라를 세우시고, 말씀으로 포로로 잡힌 백성들을 구원하신 이 땅의 유일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있으리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앙망하는 자에게

그래서 백성들이 해야할 일은 먼저 유일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Isaiah 40:26–27 NKRV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바벨론이 백성들을 포로로 잡은 상황, 이 땅의 일들을 바라보면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압박하고 강제로 이주를 시키고 우상 숭배를 가르치는 일들을 바라보다가는 “하나님께서 내 사정을 봐주지도 않고, 나를 지켜주시지도 않는구나”라고 신세한탄만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가장 먼저 할 일은 사람이 쌓아올린 바벨론 성읍과 신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먼저 필요합니다.
또한 바벨론의 우상들은 인간적인 한계가 자주 드러납니다. 전쟁과 다툼을 하다가 지쳐서 쓰러지기도 하고 심지어 바벨론의 창조 신화는 자기들이 노동을 하기 싫어서 인간을 일꾼으로 부려먹기 위해서 창조했다고 이야기합니다.
Isaiah 40:28–29 NKRV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피곤하지 않으시고 지치지 않으시고 지혜의 한이 없으시기 때문에, 비로소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들에게 피곤할 때에 능력을 주시고, 힘이 없는 자에게 힘을 주실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의 마지막 구절을 함께 읽어볼까요?
Isaiah 40:31 NKRV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를 앙망하는자, 이말의 히브리어는 카와(קָוָה)라고 하는 동사인데요, 기대하다, 기다리다, 소망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대하고 소망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힘을 얻어서 다른 사람들은 바벨론의 신들처럼 바벨론의 위정자들이 인간을 노예로 부려먹는 절망적으로 느끼는 상황 가운데서도, 포로 생활에서 구원해내실 하나님을 소망하게 되면 달려도 지치지 않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결론

살다보면 저희가 많은 어려움을 만납니다. 저도 아직 서른 살도 되지 않았지만 처음 하나님을 만난 이후로 신학교에 입학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어려운 일들이 있었습니다. 군대에서 훈련받아가 총이 폭발해서 죽을 뻔한 경험도 있었고, 미국에 유학을 갔다가 좌절해서 도망쳐온 경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돌이켜 보면, 제가 힘들다고 느낀 것들은 사람을 보고, 사람들이 만든 것들을 바라봤을 때 더욱더 절망을 느끼게 만드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기 시작하니까 나에게 닥친 어려움이 사실은 별것 아니었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으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어려움 가운데서도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정말 애쓰시는 분이시구나, 하나님을 바라보고, 또한 이전의 삶을 돌아보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여전히 인도하시는 구나, 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달려가는 그길에 힘들고 지치는 일들이 생기신다면, 바벨론과 같이 나를 둘러싸고 포위하는 어마무시한 세상에 두려움을 느끼신다면, 포로로 끌려간 것처럼 좌절할 일들이 생기신다면, 바로 그 때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대하고 소망해야할 때입니다. 그렇게 사람이 만든 것들에 의지하거나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힘으로 독수리처럼 날아올라 믿음의 역사를 함께 감당해 나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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