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세상생활
Notes
Transcript
성경봉독
성경봉독
19 모든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가 죽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
20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를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지 말고 오직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
21 돌아서서 유익하게도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따르지 말라 그들은 헛되니라
22 여호와께서는 너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셨으므로 여호와께서는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24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
25 만일 너희가 여전히 악을 행하면 너희와 너희 왕이 다 멸망하리라
서론
서론
그리스도인의 이중적인 정체성
그리스도인의 이중적인 정체성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 모두는 구원받은 자들이다.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었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는 이 세상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은 우리를 이 세상 속으로 보내신다.
믿는 순간 바로 천국으로 데려가시면 아무런 고민이 없겠는데
그렇지 않음으로 우리에게는 고민 아닌 고민이 생긴다.
어떤 고민인가?
예수 믿는 자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전처럼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도 되는가?
아니면 다르게 살아야 하는가?
다르다면 어떻게 달라야 할 것인가?
예수 믿기 전에는 하지 않아도 되는 고민이었다.
혹시 이런 고민 하고 있는가?
사실 제가 하고 있는 고민이다.
특별히 최근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과 그것을 대하는 여러 모습들을 보면서
그리스도인인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를 부르시고 그들을 세상으로 보내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지혜와 순결이다.
이 말씀처럼
지혜롭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길 축복한다.
순결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길 축복한다.
어떻게 이 세상을 지혜롭고 순결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다시 말해 어떻게 슬기롭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은
슬기로운 세상생활
이 주제에 대해 말씀을 묵상하면서 떠오른 한 인물이 있다.
바로 사무엘 선지자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사무엘은 어머니 한나의 기도 가운데 태어나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로서 이스라엘을 이끈 위대한 지도자
하지만 그의 노년기에 이스라엘은 정치적인 혼란을 맞이하게 된다.
안으로는 사무엘을 이어 이스라엘을 다스릴만한 마땅한 지도자가 없었다.
밖으로는 블레셋과 암몬 등 주변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하고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신다.
사사시대가 끝나고 왕정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이 이야기가 사무엘상 8장부터 12장에 걸쳐 나온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사무엘은 어떻게 지혜롭고 슬기롭게 삶을 살았는가?
이러한 관점으로 말씀을 살펴보기 원한다.
오늘 말씀을 통해 세상을 지혜롭고 슬기롭게 살아가는 은혜가 있길 축복한다.
본론
본론
사무엘의 삶
사무엘의 삶
사무엘의 삶을 살펴보자.
사무엘은 어떻게 세상을 슬기롭게 살았는가?
가르치는 삶
세우는 삶
기도하는 삶
1. 가르치는 삶
1. 가르치는 삶
먼저 사무엘의 가르치는 삶에 대해 살펴보자.
사무엘상 8 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사무엘에게 왕을 세워달라고 요청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요구하는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그동안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12지파가 지파별로 자율적인 삶을 살았다.
지금의 정치제도와 비교하자면 지방분권형 정치 제도였다.
그러다 민족적 위기가 닥치면 하나님께서 한 지파에서 사사를 세우시고
그 사사를 중심으로 각 지파가 연합하여 위기를 극복해 나갔다.
그리고 그 위기가 지나가면 다시 각 지파별로 각자의 삶을 살아갔다.
반면 주변에 있는 나라들은 어떠한가?
한 왕이 나라를 다스렸다.
다시 말해 중앙집권형 정치 제도인 것이다.
왕에게 나라의 모든 역량이 집중되어 있었기에 강력한 힘을 낼 수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변 나라들의 왕정 제도를 보면서
자신들도 왕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주변 나라들의 강력한 힘에 맞설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왕은 세습되기에 안정적이지만
사사는 때마다 새롭게 세워지기에 불안해 보였다.
사무엘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무엘의 아들들은 자신들의 기대에 못미쳤다.
우리에게 왕이 필요하다.
새로운 강력한 힘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하다.
이 상황에서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가르치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을 엄히 경고하고 왕의 제도에 대해 가르치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에 따라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왕의 제도를 가르친다.
8장 10-17절 말씀이다.
10 사무엘이 왕을 요구하는 백성에게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말하여
11 이르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는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어거하게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12 그가 또 너희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이며
13 그가 또 너희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로 삼을 것이며
14 그가 또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에서 제일 좋은 것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15 그가 또 너희의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의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16 그가 또 너희의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17 너희의 양 떼의 십분의 일을 거두어 가리니 너희가 그의 종이 될 것이라
사무엘이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왕의 제도, 즉 왕정제도가 가지는 부정적인 측면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왕정제도가 무조건 나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보지 못하고 간과하고 있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은 왕정제도가 가지는 긍정적인 측면만을 바라보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바로 힘이다.
왕을 정점으로 한 중앙집권으로 나라의 힘을 하나로 모아
다른 나라들이 넘볼 수 없는 강력한 국방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왕정제도가 갖는 긍정적인 면만을 바라보는라
왕정제도가 갖는 부정적인 측면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가?
강력한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필요한 재정과 인력을 백성들이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세금을 내야 하고 왕과 신하들을 위해 노동력을 바쳐야 한다.
그 결과 궁극적으로 백성들은 왕의 종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신분과 계급이 나뉘게 된다는 것이다.
사사 시대에는 모든 사람이 평등한 사회였지만,
하지만 왕정시대가 되면 서로 높고 낮음이 있는 신분사회, 계급사회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왕이 세워지면 나라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
장미빛 미래만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사무엘은 왕정제도가 갖는 부정적인 측면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있었고
그것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치고 경고한 것이다.
2. 세우는 삶
2. 세우는 삶
두 번째로 사무엘은 세우는 삶을 살았다.
이스라엘 백성은 안타깝게도
사무엘의 이러한 가르침과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계속해서 왕을 요구했고
하나님은 그들의 요구대로 사무엘에게 왕을 세우라고 말씀하신다.
사실 하나님은 이미 모세 때부터
훗날 이스라엘에 왕이 세워질 것을 내다보고 계셨다.
그래서 신명기 17 장을 보면
어떠한 사람을 왕으로 세울 것인지,
왕이 어떻게 처신하며 살아야 할지를 미리 알려 주셨다.
어떤 정치제도 그 자체가 절대 선이고 절대 악인 것은 결코 아니다.
시대의 흐름과 필요에 따라 정치제도는 충분히 변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제도 그 자체보다도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이 문제인 경우가 더 많다.
어찌되었든 이제 이스라엘은
이제 사사시대를 마감하고 왕정시대를 시작하는 정치적 격변기를 맞이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이스라엘의 첫번째 왕을 세우는 일을 맡기신다.
이것은 몇 차례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먼저 사무엘상 9 장과 10장 앞부분을 보면
사무엘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사울을 개인적으로 만나
그에게 기름을 부음으로 그를 왕으로 준비시킨다.
두번째로 10장 뒷부분을 보면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을 미스바로 불러 모으고
그들 앞에서 제비뽑기라는 방식을 통해 왕이 될 사람을 세운다.
사무엘이 제비를 뽑은 것이다.
이러한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사울이 왕으로 뽑힌다.
그런데 이렇게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뽑힌 사울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일단의 무리들이 있었다.
이 사람들은 사울을 향해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라고 말하면서
사울을 멸시하며 예물을 바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왕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민심이 나뉘어서 한쪽은 사울의 왕으로서의 권위를 인정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사울의 왕으로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사울이 이스라엘을 공격한 암몬과의 전쟁에서 크게 승리하면서
자신의 왕으로서의 역량을 보여 주자
이에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을 길갈로 모은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사울의 왕으로서의 권위를 확고하게 한번 더 세운다.
사무엘상 11장 14-15절 말씀이다.
함께 읽어보자.
14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15 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삼고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고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거기서 크게 기뻐하니라
사무엘은 이 과정을 통해
나뉘었던 민심을 하나로 통합하고
이스라엘의 새로운 정치질서인
왕정제도가 확실하게 정착하고 자리잡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다.
사실 사무엘 입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사사인 자신을 버리고
새로운 지도자인 왕을 요구하는 것을 보면서
인간적으로 충분히 배신감과 좌절감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사사로운 감정을 내려놓고
나라를 위해 왕을 세우고 왕의 권위를 높이고 질서를 세우는 데 앞장섰던 것이다.
그 뿐 아니라 나뉘어졌던 민심과 국론을 하나로 만들고
새로운 왕을 중심으로 나라가 새롭게 설 수 있도록 힘쓴 사람이 바로 사무엘이다.
3. 기도하는 삶
3. 기도하는 삶
세번째로 사무엘은 기도하는 삶을 살았다.
이어지는 사무엘상 12 장을 보면
길갈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사무엘은 마지막 고별 설교를 한다.
이 설교를 통해 사무엘은 크게 세 가지 이야기를 한다.
첫째로, 자신이 사사로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정직하고 부끄럼 없이 사역했다.
둘째로, 이스라엘 역사를 돌아보면
이스라엘의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이 사사를 세우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
그 하나님이 참된 왕이시다.
셋째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인간 왕을 요구한 것은
하나님께 회개해야 할 크나큰 죄악이다.
이 설교 후에 하나님은 우레와 비를 내리셔서
그들의 범한 죄악이 정말 크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분명하게 각인시켜 주셨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이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이다.
다시 한번 읽어보겠다.
사무엘상 12장 19-25절이다.
19 모든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가 죽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
20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를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지 말고 오직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
21 돌아서서 유익하게도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따르지 말라 그들은 헛되니라
22 여호와께서는 너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셨으므로 여호와께서는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24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
25 만일 너희가 여전히 악을 행하면 너희와 너희 왕이 다 멸망하리라
이 말씀 속에 사무엘의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사랑과 애정이 느껴지는가?
사무엘은 자신의 민족 이스라엘과 그 사람들을 진정 사랑했다.
비록 그들이 참되신 왕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세상 왕을 의지하는 어리석은 죄악을 범하긴 했지만,
그들을 비난하거나 정죄하거나 혐오하지 않았다.
물론 사무엘은 그들의 잘못과 죄악을 분명하게 알려 주었고 회개를 촉구하였다.
하지만 단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향한 긍휼과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이 선하고 의로운 길로 갈 수 있도록 그들을 이끌어 주었다.
무엇보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겠다고 말한다.
그것이 자신의 일이자 자신의 사명이라고 말한다.
가르치고, 세우고, 기도하는 삶
이것이 세상을 슬기롭게 살아가는 사무엘의 삶이었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도 있기 원한다.
우리도 이 세상을 가르치며, 세우며, 기도하며 살아가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한다.
우리의 삶
우리의 삶
가르치라
가르치라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우리가 가르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
예수님은 마태복음 24 장에서
말세를 살아갈 제자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같이 읽어보자.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이 세상은 사람들을 미혹한다.
사람을 속이고 기만하고 호도한다.
영적으로도 그러하지만 일상의 삶에서도 그러하다.
자신들의 이익이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어떤 객관적인 사실을 호도하거나 편향된 정보만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나 시각에 따라 그 내용이 왜곡되는 것도 많다.
심지어 거짓된 정보나 조작된 정보도 많다.
이런 것들을 통해 세상은 사람을 미혹하고 그들을 이용한다.
이러한 세상에서 가르치며 살아간다는 것은
이러한 것들에 선동되거나 끌려 다니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세상의 이야기를 올바로 분별하고 판단하여 행동한다는 뜻이다.
세상을 슬기롭게 살아가고 있는 한 분을 소개한다.
사랑하는 담임목사님이 2주 전 쯤에 쓴 글 하나가 있다.
글 제목이 ‘신문, 가가비가 좋다’이다.
여기서 가가비는 담임목사님이 만든 단어인데
‘가격 대비 가치의 비율’을 의미한다.
그 내용 가운데 일부를 소개한다.
검증 과정을 거쳐 정제된 정보를 인풋 하기 위해 제가 택한 것이 성경과 신문과 책입니다.
성경을 인풋 할 때는 무장을 풀고 마음을 100% 다 열어 놓고 받아들입니다.
신문이나 책을 통해 인풋 할 때는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분별하고 판단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칼럼이나 사설 등은 그 신문사의 의지가 오롯이 들어간 것임을 간과하면 우리의 관점이 어느 신문사 관점으로 바뀝니다. 분별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이 글처럼 이 세상을 분별하고 판단하는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 원한다.
세상을 가르치며 살아가는 자들 되길 축복한다.
세우라
세우라
또한 이 세상을 세우며 살아가는 자들 되길 축복한다.
무너뜨리고 허무는 자가 아니라 세우는 자가 되길 원한다.
무엇을 세워야 하는가?
질서를 세워야 한다.
권위를 세워야 한다.
베드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13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또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3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같이 읽어보자.
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7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상의 질서와 권위를 세워야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이신 예수님을 위해서이다.
그리고 또한 이 세상 모든 권세의 근원이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유대 총독인 본디오 빌라보 앞에서 재판을 받으실 때
그와 나누었던 대화를 기억하는가?
빌라도는 자신에게
예수님을 놓아 줄 권한도,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다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그 권한은 바로 위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말씀한다.
이것이 우리 믿는 자들의 고백이고
이 세상 권세와 권위를 세우고 순종하는 이유이다.
물론 이렇게 질서를 세우고 권위를 세우는 것이
그 권세와 지도자가 무조건 선하고 옳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떤 악행이나 잘못된 것이 있을 때 수수방관하라는 뜻도 결코 아니다.
사무엘은 왕으로 세워진 사울이
이후 자신의 정치적 욕망을 위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할 때
그 죄악을 분명하게 그에게 고발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 다윗에게 기름부음으로 그를 왕으로 준비시킨다.
하지만 사무엘도, 새로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도
지금 눈 앞에 있는 질서와 권위를 힘으로 무너뜨리지 않았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다.
다윗은 무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사울을 피해 도망다녔다.
심지어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왕의 권위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사무엘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울을 위해 슬퍼하였다.(삼상 15:35)
다윗도 전장에서 죽음을 맞이한 사울을 위해 슬픈 노래를 지어
이스라엘 백성이 사울의 업적을 기억하고 슬퍼하도록 했다(삼하 1:17 이하)
미움과 증오와 혐오가 아니라
긍휼과 애통과 사랑의 마음으로 사울을 바라본 것이다.
이 세상 권세의 주관자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세우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무너뜨리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이 믿음과 은혜가 우리에게 있길 원한다.
이 세상의 질서와 권위를 세우며 살아가는 자들 되길 축복한다.
기도하라
기도하라
또한 우리는 기도하며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기도한다는 것은
이 세상을 궁극적으로 다스리고 주관하시고 통치하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많은 기도의 제목이 있지만
그 중에 중요한 것 하나가 바로
이 세상 권세와 위정자들을 위한 기도이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2 장에서 이렇게 말씀한다.
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우리가 이 세상 위정자들과 권세들을 위해
기도해야 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바울은 ‘우리의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위해서’라고 말씀한다.
한 나라의 위정자들의 잘못된 판단과 결정 때문에
그 나라 국민이 고통받는 수많은 예를 우리는 보고 있고 경험하고 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위정자들이 올바른 판단과 결정으로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우리가 이 땅에서 편안하게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기도가 아니다.
이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삶의 목적이 아니다.
우리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 위정자들과 권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바로 복음 전파를 위해서이다.
고요하고 평안함 가운데 진리의 복음을 이 땅에 전하기 위함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0 장에서 자신의 동족인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기도한다고 말한다.
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그 기도의 내용이 무엇인가?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이다.
비록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 받고
복음을 전하는 자신과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그들이지만
바울은 그들을 미워하거나 정죄하거나 혐오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가
바로 그들의 구원이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그들을 긍휼히 여기고 사랑했다.
그리고 그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 있길 원한다.
결론
결론
오늘 하루도 가르치며, 세우며, 기도하며,
이 세상을 슬기롭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