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618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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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주님을 찬송합니다. 425장 입니다.
신앙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사랑의 주님 오늘도 새벽을 깨워 주님앞에 나오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어제의 일들을 뒤로하고 오늘의 시작을 주님과 함께 하기를 소망하며 이자리에 나왔으니 이시간 저희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마음이 분주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말씀 없이 살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해 우리를 붙드시고, 일으켜 주시며, 오늘 하루를 살아갈 힘과 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시간 정성껏 준비한 일천번제 헌금과 감사헌금도 주께 올려드리오니, 기쁘게 받아주시고
이 예물이 사용되는 곳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으로 죽었던 영혼이들이 구원받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드린 손길 위에는 하늘의 은혜로 채워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7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18 할례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19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20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21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
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23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24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부르심의 자리, 그곳에서 믿음을 지키라
부르심의 자리, 그곳에서 믿음을 지키라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7절 입니다.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여기서 **'부르심' 의 원어의 뜻은 단순히 누군가를 초대한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특별한 목적과 상황을 위해 불러내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태어난 환경, 지금의 사회적인 위치, 그리고 우리가 처한 모든 상황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곳에서 부르시고 사용하시겠다는 분명한 뜻과 계획이 있다는 것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습니다.
그중에는 유대인이었다가 예수를 믿은 사람도 있고, 그리스 사람이었다가 예수를 믿게 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또한 노예가 아닌 자유로운 사람들도 있었고, 심지어 노예 신분의 사람들까지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음으로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 안에서는 누구 하나 차별 없이 모두 똑같이 귀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간혹 이런 새로운 믿음이 이들이 원래 살던 방식이나 사회 질서와 부딪히면서 혼란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유대인 신자가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 신자보다 더 좋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또, 노예였던 사람이 이제 자기가 예수님을 믿으니 더 이상 노예처럼 일하지 않으려 하거나 주인에게 순종하지 않는 등 자유인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잘못 생각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혼란 앞에서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는데 오늘 본문 20절 입니다.
20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바울은 지금 자신이 어떤 신분이나 상황에 있든지 굳이 그것을 바꾸려 애쓰지 말고, 그 자리에서 흔들림 없이 믿음을 지킬것을 권면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권면은 겉으로 보이는 조건이나 사회적인 위치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변화하고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집중할 것을 말 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우리가 구원받는 것이 겉으로 보이는 조건이나 사회적인 위치에 달려 있지 않고,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구원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 있게 해줍니다.
할례를 받았든 받지 않았든, 노예이든 자유인이든, **진짜 중요한 것은 겉모습이나 신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19절)**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율법에 적힌 규칙들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믿고 새롭게 살아가게 된 사람답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주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22절에서 이런 놀라운 말을 합니다. "주님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설령 노예라 해도 주님께 속한 진정한 자유인이고, 반대로 자유로운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노예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생각하는 세상의 기준을 완전히 뒤집어 놓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자유롭지 못한 노예라 할지라도, 주님 안에서는 진짜 자유를 누리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모든 걸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사람이라도, 오히려 예수님의 노예로서 그분을 섬기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삶의 모습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진짜 자유는 어떤 신분이나 환경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노예가 자신의 주인에게서 도망치거나, 노예 제도를 무조건적으로 뒤엎으려는 사회 운동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노예로 살아가더라도 그의 마음과 영혼이 예수님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위치가 노예일지라도, 그는 더 이상 죄의 노예가 아니라 예수님께 속한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것이고 또한, 자유로운 사람도 자신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에 묶여 예수님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이 참된 기쁨임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먼저 지금 처한 삶의 자리를 소중히 여기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가끔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 더 좋은 환경, 더 좋은 직업, 더 좋은 상황을 바라곤 합니다.
물론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부르심'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어떤 역할을 맡고 있든, 어떤 환경에 있든, 그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사랑하며, 섬길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셉은 형들의 미움 때문에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고, 감옥에 갇히는 힘든 삶을 겪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어떤 자리에서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는 성실한 노예로 살았고, 감옥에서는 지혜로운 죄수로 자신의 역할을 다했습니다.
요셉의 모든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셨고, 결국 그는 애굽의 총리가 되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환경을 바꾸려 애쓰기보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굳건히 하며 하나님의 뜻을 믿었습니다.
우리나라 초기 기독교 역사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엄귀현이라는 마부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눈에는 보잘것없는 마부였지만, 예수님을 믿고 새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어느 날 그는 왕족 출신의 이재형이라는 사람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그러자 이재형이 이렇게 말 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마부군이 양반이라도 된단 말이냐?!”
엄귀현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예수 믿는 도리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으면 상놈은 더 좋은 상놈이 되고, 양반은 더 좋은 양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제가 양반이 되기 위해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마부 노릇을 잘 하기 위해서 예수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리께서 예수를 믿으시면 제가 평생을 마부꾼으로 나으리를 모시겠습니다.”고 했다는 것이다.
엄귀현 마부의 고백처럼, 우리도 어떤 직업, 어떤 사회적 위치에 있든지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더욱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의 부르심에 합당한 모습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당장 우리의 외적인 환경이 마법처럼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 얻은 새 생명으로 인해 우리는 주어진 삶 속에서 이전보다 더 큰 기쁨과 의미를 찾으며, 부르신 그 자리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의 진짜 모습은 세상적인 위치나 가진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의 자유와 그분의 노예 됨에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기준으로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고, 돈과 명예를 쫓아가며 우리의 가치를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이미 완전한 자유인이며, 동시에 그분의 영원한 노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알려줍니다.
그러기에 더 이상 세상의 시선이나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에 우리의 삶의 목적을 두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24절은 이 모든 권면의 마지막 결론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여기서 **'함께 거하라'(메네인, μένειν)**는 헬라어 단어는 **'계속해서 머무르다', '항상 동행하다', '친밀한 관계 속에 살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든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놓지 않고, 주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심을 느끼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삶의 모든 순간순간에 하나님이 동행하신다는 것을 믿고 의지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가 비록 마음에 들지 않거나, 때로는 힘들게 느껴질지라도, 그곳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자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삶의 '환경'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을 살아가는 '태도'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어떤 환경에 있든지,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하나님과의 동행을 통해 진짜 만족과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진짜 모습이 예수님 안에서 새롭게 정해질 때, 우리는 비로소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새벽 다시 한번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주님이 계획하시고 인도하신 그 자리에서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으십니까?
우리의 모든 겉모습과 상황을 뛰어넘어,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진짜 기쁨과 자유를 누리는 모든 선도님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 합니다. 아멘.
기도
사랑의 주님 오늘도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깨우시고 삶의 자리를 다시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눈에 보이는 조건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이 자리를 우리의 마음에 깊이 새기게 하시고, 주어진 자리에서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환경을 탓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겼던 믿음의 사람들처럼,
저희도 오늘 주님이 부르신 그 자리에서 예수님의 사람으로 온전히 하루를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치유의 주님, 수술후 회복중인 사모님을 위해 기도합니다.
수술의 과정을 주님께서 지켜주셨듯이, 이제 남은 회복의 시간도 주님의 손으로 붙들어 주옵소서,
그리하여 몸의 연약함을 강건하게 하시고, 혹여나 마음의 두려움과 염려가 있다면 그 마음을 평안으로 바꿔주셔서
주님 주시는 위로와 소망 안에서 하루하루 힘을 얻어, 사모님께서 속히 일상으로 돌아 오실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