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할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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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고린도후서 5:10-13
“자랑할 기회”
찬송가 436장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2025. 6. 20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자랑할 기회”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고린도교회 안에서 돌고 있는 바울에 대한 오해와 의심을 해결하기 위하여 다시 한번 스스로를 변호하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고린도교회 안에는 바울을 대적하는 자들이 있었어요. 그들은 추천서를 들고 와서 스스로를 자랑하면서 교회 안에서 영향력을 키웠습니다. 그리고 바울을 깎아 내리고, 바울을 의심하게 만들었어요.
바울은 이 모든 오해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늘 본문 10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자, 10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선다. 여러분,우리가 언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섭니까? 그리스도의 재림 때죠. 그리스도가 재림하시면, 모든 육체가 다 부활해요. 그리고 부활한 육체를 입고 심판대 앞에 섭니다. 그때 믿는 자는 영원한 복락을 누리고, 안 믿는 자는 영원한 고통을 당하게 되죠. 이것을 요한복음 5장 29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아멘.
선을 행한 자와 악을 행한 자의 결말이 달라요.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서 심판이 각각 다릅니다. 그래서 바울은 밑에 11절에서 우리가 두려워한다고 말을 합니다. 11절에 바울이 뭐라고 합니까?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안다는 거예요. 언젠가 우리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인데, 그때 내가 어떤 판결을 받게 될 것인가? 물론 바울은 그 심판대 앞에서 정죄받지 않고, 영광을 얻으리라는 것을 잘 알아요. 하지만, 알면서도 두려운 겁니다. 그래서 하루하루 전심을 다해서 충성하면서도, 계속해서 자신을 돌아보는 거예요. 혹시라도 오늘 내가 죄를 지은 것이 있나? 불성실하게 한 것이 있나? 두렵고 떨림으로 반성하는 겁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9장 27절에 이렇게 고백을 했어요.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아멘.
실컷 복음 전파하고 충성했는데, 정작 내 믿음을 제대로 간수를 못해서 내가 버림을 당할까봐, 그것이 두렵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두려움을 안고 더 성실하게, 더 정직하게 충성하는 겁니다.
다시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서 11절을 다시 보면, 그래서 바울이 주의 두려우심을 알고, 뭘 합니까? 사람들을 권면해요. 뭘 권면할까요? 주 예수를 믿으라는 권면이죠. 바울은 죽을 때까지 예수를 믿으라는 권면을 했어요. 자, 그러면 왜 권면을 했을까요? 왜 그렇게 생명을 바쳐서 전도하고 복음을 증거했을까요? 교회 성도 많이 부흥시켜서 헌금 많이 뜯어내려고 했을까요?
바울이 사람들을 권면한 이유는 오직 하납니다. 그것이 자신의 사명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겁니다. 죄인 중에 괴수였던 나같은 죄인을 살리신 은혜에 감사해서, 어떻게든 나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생명을 바친 겁니다. 다른 이유가 없어요. 주님이 맡기신 사명이니까 한 겁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하나님이 아십니다. 11절 중간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우리가 사람들을 권면하는 그 이유를 하나님이 아신다는 거예요. 이 알리어졌다는 말이 헬라어 뜻을 보면, “나타나다, 드러나다” 이런 뜻이에요. 그러니까 우리의 사역에 대한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 낱낱이 드러났다는 겁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아시는데, 성도들은 모른다는 거예요. 내가 어떤 마음으로 고린도교회를 위해서 얼마나 얼마나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헌신하고 충성하고, 생명을 바치는지, 성도들은 몰라줘요. 여러분도 모르시죠? 지금 이 설교 한 편을 준비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과 심력을 쏟는지 모르실 거예요. 어떤 분들은 그냥 눌르면 설교가 나오는줄 아시더라고요. 자판가기 아니거든요.
저는 월요일하고 금요일에 새벽설교를 하는데, 월요일 같은 경우에는 죽을 맛입니다. 주일에 오후예배 마치고 제자훈련까지 끝내고 나면 엄청 피곤해요. 그때가 오후 4시쯤 되는데, 잠깐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다시 교회로 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설교준비를 해요. 다 마치고 집에 가면 밤 11시쯤 됩니다. 지난주에는 집에 가니까 12시 반이더라고요. 씻고 누우니까 1시. 3시간 자고 4시에 일어나요. 이런 생활을 평생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죽을 맛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고생을 하면서까지 시간을 들여서 설교준비를 할까요? 그냥 대충 준비해서 올라와서 대충 찌끄리고 내려가면 얼마나 편합니까? 그러면 저도 편하고, 여러분도 설교 빨리 끝나니까 좋고.
그러나, 그럴 수가 없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 새벽에 말씀 듣겠다고, 단잠을 깨우고 나오는데, 어떻게 밥을 대충 차려서 찌끄릴 수가 있겠어요?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체력이 되는 한 최선을 다해야죠.
그런 수고와 노력을 사람들은 몰라줘도 하나님은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는 겁니다. 바울도 지금까지 그렇게 했어요. 그런데, 말을 안 하니까 성도들은 오해가 생겨요. 그래서 바울이 말을 하는 겁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심판대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한점의 부끄러움도 없도록 최선을 다해서 너희를 섬겼다’ 이 말을 하는 거예요.
자, 그러면서 밑에 12절에 이렇게 이어서 말을 합니다. 12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로 말미암아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에게 대답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아멘.
바울이 자랑할 기회를 주겠다고 말을 합니다. 너희가 우리를 자랑할 기회를 주겠다. 누구에게?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에게. 다시 말해서, 너희가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에게 우리를 자랑하라는 거예요. 바울은 다시는 자천하지 않기로 했거든요. 그래서 스스로 자랑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대신 자랑해줄 수는 있죠. “야, 고린도 성도들아. 내가 나를 자랑할 수 없으니까, 너희가 좀 대신 나를 자랑해주라” 이런 말입니다.
그런데 12절을 자세히 보면, 바울이 나를 대신 자랑해달라고 부탁을 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나를 자랑할 수 있도록 허락을 해주고 있어요. ‘너희, 나 자랑하고 싶지? 그래, 기회를 줄 테니까 한번 해봐’ 이런 식으로 말을 하고 있는 것이죠.
고린도교회 안에는 바울을 대적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바울에 대해서 험담을 하고 조롱을 할 때, 거기에 대해서 반박을 해야 되잖아요. 그러면 누가 바울을 위해서 반박을 해야 돼요? 성도들이 반박을 해야죠. ‘야, 우리 바울 선생님 그런 분 아니야. 얼마나 우리를 위해서 열심히 설교 준비하고, 헌신하는지 알아?’ 이렇게 성도들이 나서서 바울을 변호하고 보호해 줄 수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제가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리더가 무너지면 공동체도 무너져요. 사탄은 반드시 리더를 공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가 나서서 리더를 보호해야 돼요. 교회에서는 담임목사님을 보호해야 되고, 가정에서는 가장을 보호해야 되는 겁니다. 다 똑같이 중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최우선 보호대상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시대를 보면, 성도들이 앞장서서 담임목사님을 비난하고, 가족들이 가장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죠. 이게 안타까운 겁니다. 목사가 교회를 지킨다면, 성도는 목사를 지켜야 돼요. 가장이 가정을 지킨다면, 가족들은 가장을 지켜야 돼요. 이게 안 되면 그 공동체는 무너지는 겁니다.
고린도교회가 바울을 통해서 세워졌기 때문에, 바울이 흔들리면 고린도교회도 흔들릴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성도들이 바울을 지키기는커녕 오히려 자기들이 나서서 바울을 비난하고 의심하고 손가락질을 해요. 제정신이면 그럴 수가 있습니까? 미쳤으니까 그런 것이죠.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자기들이 미쳐놓고, 바울을 미쳤다고 말을 한다는 겁니다. 13절 봐 볼까요? 13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아멘.
바울의 대적자들과 거기에 동조하는 성도들이 바울을 미쳤다고 욕을 해요. 왜 미쳤다고 욕을 하느냐 하면, 바울이 돈도 안 받으면서, 몸이 상하도록 헌신을 하고, 목숨도 돌보지 않고 극단적으로 사역을 하니까, 그게 헬라인들이 보기에는 정상적이지가 않은 겁니다.
철학적으로, 논리적으로 볼 때 바울은 너무 신비주의자예요. ‘하나님이 지키실거야’ 하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처럼 보이는 거예요. 바울은 그저 맡은 사명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하루하루 열심히 사역을 한 것밖에 없는데, 헬라인들이 보기에는 꼭 미친 사람처럼, 겁도 없이 너무 막무가내로 사역을 하는 걸로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미쳤다고 욕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아요. ‘그래, 나 미친 거 맞아.’ 인정을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왜 미쳤는지 이유를 설명을 하죠. 13절에 뭐라고 그랬어요?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미쳤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미쳤기 때문에, 우리가 목숨을 걸고 사역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안 미쳤으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사역을 할 수 있겠어요?
사도행전 26장에 보면, 바울이 가이사랴에서 베스도 총독에게 자신을 변호하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그때 자기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건을 간증을 했더니, 베스도가 뭐라고 합니까? 사도행전 26장 24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어요.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바울아 네가 미쳤구나.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돌아버렸구나. 이렇게 비난을 했어요. 여러분, 예수 믿는 것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미친 짓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그러고, 죽었다가 3일만에 부활했다 그러고, 원수를 사랑하라 그러고, 시간과 물질을 들여서 전도하고. 미치지 않고서야 이럴 수가 있겠습니까?
바울도 미쳤고, 우리들도 미쳤어요. 미쳤으니까 이 새벽에 교회 오는 거 아니에요? 이 새벽에 누가 돈 주는 것도 아닌데, 왜 교회를 옵니까? 미쳤으니까 오는 거예요. 우리는 다 예수에 미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서는 미쳐도, 사람을 위하여서는 미치면 안 돼요. 사람에 집착하고, 사람의 시선이나 평판에 열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가 않습니다.
바울의 대적자들은 사람에 미쳤어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잘보이기 위해서 겉사람을 자랑해요. 그러면서 하나님을 위하여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완전히 반대로 됐어요.
우리는 그래서는 안 돼요. 우리가 사람에 대하여서는 온전한 정신으로, 말 한 마디, 행동 하나, 절제해서 해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을 위하여서는 최선을 다하여 맡은 사명을 감당하고, 헌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을 달아 보십니다.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심판대 위에서 우리를 판단하실 것인데, 그 때에 우리가 한 점의 부끄러움이나 책망 받을 것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충성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향하여는 미친 사람처럼 충성하고, 사람을 향하여는 범사에 절제하여서,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며, 사람에게는 영광의 복음을 전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