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4장

이주혜
새벽기도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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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찬송가 440, 292장

서론

저희가 요즘 함께 나누고 있는 말씀은 요셉과 그의 형제들이 다시 만나게 되는 장면들입니다.
성경은 단순히 오래된 기록이 아니라,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쓰신 책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야기에 분량이 많이 할애되어 있다면, 그 안에는 그만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꼭 전하고 싶으신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특히 창세기 42장부터 45장까지, 거의 4장에 걸쳐 요셉과 형제들이 다시 만나고, 시험하고, 또 감정을 드러내는 이 긴 장면을 통해 우리에게 주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함께 볼 창세기 44장은 이 이야기의 거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은잔 하나로 시작된 이 사건을 통해, 긴 이야기의 마지막을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은잔

1절을 보면 요셉은 집으로 돌아가는 형제들과 베냐민의 짐을 세심하게 챙겨줍니다.
Genesis 44:1 NKRV
요셉이 그의 집 청지기에게 명하여 이르되 양식을 각자의 자루에 운반할 수 있을 만큼 채우고 각자의 돈을 그 자루에 넣고
각자의 자루에 운반할 수 있을 만큼 곡식을 가득 채워주고, 그들이 낸 돈도 다시 넣어줍니다. 사실 이것만 봐도 요셉의 마음은 분명히 형들과 아버지를 향한 깊은 애정과 사랑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전에도 자루에 돈을 넣어서 보냈고, 형제들에게 아버지, 어머니는 잘 계시냐, 형제는 있냐라는 물음을 통해 이미 가나안에 가족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합니다. 2절에 “그 청년” 이라고 하는 사람은 베냐민이죠. 베냐민 자루에는 돈과 은잔을 몰래 넣게 한 것입니다.
굳이 이 은잔이라고 설명되는 이 물건은 단수한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애굽에서 은잔은 보통 점을 칠때 사용되었습니다. 은잔에 물을 가득 담고, 기도나 의식을 한 뒤에 물의 움직임으로 점을 쳤습니다. 그래서 은잔은 점술과 권위를 상징하는 도구였습니다. 애굽의 총리로서 요셉은 사람들 앞에서 애굽인처럼 보이기 위해 그 은잔이 매우 소중한 것처럼 행동을 했을 거예요. 물론 요셉이 실제로 점을 친는 것으로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이 은잔을 이용합니다.
그리고 이 은잔은 형제들이 지었던 과거의 죄를 기억나게 하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과거 요셉을 은 이십에 팔아넘겼던 그 기억, 그 죄가 이제 이 은잔 사건을 통해 다시 과거처럼 총애받는 동생을 버릴지, 아니면 책임과 사랑을 선택할지 시험하는 도구가 됩니다.
이사실을 모르는 형제들은 3절에 “아침이 밝을 때에” 이제 가나안 땅으로 돌아갑니다. 다시 먼길을 가야하는데 애굽 총리가 환대해주고 시므온도 석방해주고, 생각보다 많은 자루의 곡식을 받고 가는 그들의 마음은 아주 기뻤을 거예요. 왜냐하면 이미 2번은 곡식을 더 얻으러 올 만큼 굼주리고 있을 가족들을 생각하면 빨리 집에 가고 싶었을 거예요.
그런데 그 기쁨도 얼마 가지 않습니다.
요셉이 계획을 세우는데 4절에
Genesis 44:4–5 NKRV
그들이 성읍에서 나가 멀리 가기 전에 요셉이 (자기 집안의)청지기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 사람들의 뒤를 따라 가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선을 악으로 갚느냐 이것은 내 주인이 가지고 마시며 늘 점치는 데에 쓰는 것이 아니냐 너희가 이같이 하니 악하도다 하라
악하도다 라고 말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러자 요셉의 성실한 청지기는 주인의 명대로 성읍에서 얼마 안간 이들에게 달려가서 주인이 말을 그대로 전합니다.
그러자 기쁘게 집으로 가고 있는 형제들이 깜짝 놀라면서 7절에 아주 강한어조로 “결단코 아니하나이다”라고 말해요. 이런일은 우리가 절대 하지 않았다.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자신들의 결백함을 증명하기 위해서 굉장히 무거운 말을 합니다.
Genesis 44:9 NKRV
당신의 종들 중 누구에게서 발견되든지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는 내 주의 종들이 되리이다
발견된 사람은 죽을 것이고 우리는 너의 종들이 될꺼야.라는 형들의 말에 청지기가 너희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너희 말과 같이 되고, 누구에게서든지 발견되면 그 사람은 나의 종이 되고, 나머지는 죄가 없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우리는 훔친 그 사람을 찾으면 된다고 말합니다.
이후에 각 자의 자루를 땅에 내려놓고 찾기 시작하는데, 나이많은 자부터 자루를 확인 하면서 내려가장 마지막 베냐민의 짐에서 은잔이 나옵니다.
그리고 나서 형들의 모습이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데
Genesis 44:13 NKRV
그들이 옷을 찢고 각기 짐을 나귀에 싣고 성으로 돌아 가니라
아마 베냐민이 범인으로 지목되어서 무작정 끌려 갔을 텐데 그 모습을 보면서 형들이 옷을 찢습니다. 옷을 찢는 다는 것은 당시에 극한 슬픔을 나타내는 행위였는데, 형제들은 무너지는 심정으로 옷을 찢고, 다시 짐을 꾸려 베냐민과 같이 요셉에게로 갑니다.
과거 같았으면, 그들은 "우리는 몰랐어요"라며 빠르게 발을 빼고 막내 동생 하나쯤은 버리고 돌아갔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랐어요. 그들은 자기 짐을 다시 싣고, 모두 함께 요셉에게로 돌아갑니다. 어떤 형도, 베냐민만 남기고 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동생을 지키기 위해 자기들의 자유를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로 바뀐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과거의 죄를 되풀이하지 않기로 결단했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함께 책임지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유다

그렇게 형제들이 무거운 마음으로 다시 요셉 앞에 섰을 때, 그 중심에는 유다가 있었습니다. 14절을 보면
Genesis 44:14 NKRV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 요셉의 집에 이르니 요셉이 아직 그 곳에 있는지라 그의 앞에서 땅에 엎드리니
라는 말로 유다의 등장이 강조됩니다. 유다는 단순한 한 형제가 아니라, 형제 전체를 대표하여 요셉 앞에 서는 중보자의 자리에 섭니다.
그런데 참 놀랍게도 이 유다는, 과거에 요셉을 노예로 팔자고 제안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정반대로 이번에는 자신이 종이 되겠다고, 동생을 대신해 붙잡혀 있으려는 사람이 바로 유다입니다. 18절에
Genesis 44:18 NKRV
유다가 그에게 가까이 가서 이르되 내 주여 원하건대 당신의 종에게 내 주의 귀에 한 말씀을 아뢰게 하소서 주의 종에게 노하지 마소서 주는 바로와 같으심이니이다
유다가 이제 요셉에게 가까이 가서 말 하기 시작하는데,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쭉 나열합니다.
아버지 야곱의 늙고 연약한 상황을 설명하고, 그가 베냐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그 아이가 없으면 아버지도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요셉에게 간절하게 호소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자신이 종이 되겠다고, 동생을 대신해 붙잡혀 있겠다고 말하죠. 33절에
Genesis 44:33 NKRV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이 말은 단순한 호소에서 끝나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과 자유를 걸고 자신을 담보로 내세우면서 이야기합니다. 이미 아버지 야곱 앞에서 “내가 그를 책임지겠다”고 맹세한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베냐민을 위해 나서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장면은 단지 형제를 서로 챙기는 가족사랑 또는 화해만 들어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진정한 회개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드러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책임지는 사랑은 결국 누군가를 대신해주는 사랑이라는 것을 유다가 보여줍니다.
이제 유다는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지고, 누군가를 대신해 고통을 끌어안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죠.
누군가의 문제를 “내 일 아니야”라고 밀어내고 싶은 마음, 불편한 관계를 그냥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 처럼 진짜 사랑은 말이 아니라 책임이라고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랑을 통해 관계의 회복과 공동체의 치유를 이루어가십니다.

예수님의 예표인 유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유다는 장차 오실 예수님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유다는 이 예수님의 그림자처럼, 자신이 베냐민을 대신에 종이 되겠다고 말하는 대속적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죄 없으신 분이었지만, 우리를 위해 종의 자리로 이땅 가운데 오셨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음의 자리까지 나아가신 분이시죠.
그래서 33절의 이 고백은 장차 유다 지파에서 태어나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미리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이유가 잘 나타나는
Mark 10:45 NKRV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말로만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죄의 형벌을 받아야 할 우리가 자유롭게 되기 위해, 스스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자리에 서신 분이십니다.

결론

오늘 은잔으로부터 시작된 오늘의 사건을 함께 보았습니다. 사실 은잔은 베먀민 자루에 들어 있어서 베냐민의 대화가 등장할 만도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베냐민의 말은 등장하지 않아요. 어제 새벽설교에서 들었듯이 베냐민이 어린 청년이 아니라 자녀를 많이 둔 건장한 가장입니다. 그런 베냐민임에도 불구하고 요셉과 유다의 대화로만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말씀 가운데 요셉은 과거의 상처로 복수하지 않았고, 형들의 변화된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형제들도 누군가를 버리지는 모습이 아니라 함께 책임지고, 유다는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 유다의 모습을 통해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님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래서 오늘 함께 기도할 때
주님 저희가 그 자리에 서겠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자리에 서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를 위해 이땅에 오셨듯이, 유다가 자신의 자유와 생명을 대신해서 베냐민을 구하려고 했듯이, 저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사람으로 말보다 책임이 앞서고, 여러 이유 보다 진실한 사랑으로 나아가는 자들이 되길 원한다고 기도하며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기도 하겠습니다 ]
하나님 아버지,
오늘 새벽, 요셉의 시험과 유다의 헌신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자주 책임을 피하고 사랑을 말로만 하며 살아왔는지를 돌아봅니다.
주님, 과거를 직면하고,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함께 지며, 누군가를 위해 대신 설 수 있었던 유다처럼, 저희도 그렇게 변화된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주님께서도 저희를 위해 이땅 가운데 오시고, 십자가를 짊어지셨듯이, 저희도 그 사랑을 기억하며 오늘 하루, 누군가의 짐을 함께 지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사랑하며 살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을 본받아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관계 안에서 끝까지 사랑하고,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가게 하소서.
은혜의 주님, 은잔과 같은 작은 시험이 저희 가운데 찾아오더라도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하시고, 그 사랑에 응답하는 변하된 사람이 되어 믿음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늘 우리와 동행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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