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희생 플라이 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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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앙의 희생 플라이 아웃
[서론]
야구에는 아주 특별한 플레이가 있습니다. 바로 ‘희생 플라이(Sacrifice Fly)’입니다.
타자가 공을 높이 띄워 외야로 보냅니다.
그러면 3루에 있던 주자가 그 틈을 타 홈으로 달려 들어오죠.
결과적으로 타자는 아웃됩니다. 기록에는 안타도 없고, 점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공 덕분에 팀은 점수를 얻고, 경기를 이길 수 있습니다.
이 플레이의 이름 자체가 말해 줍니다.
‘희생’ 플라이.
"나는 아웃되더라도, 누군가가 들어오게 하는 것."
"나는 점수를 얻지 못하지만, 팀이 승리하도록 돕는 것."
음악에도 이런 모습이 있습니다.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사람은 조명을 받지만, 그 뒤에서 묵묵히 연주를 맞추는 반주자는 거의 주목받지 못합니다. 실수하면 티가 확 나지만, 아무리 잘해도 박수는 가수에게 돌아갑니다.
그러나 가수는 누구보다 잘 압니다.
“내가 제대로 노래할 수 있었던 건, 반주자 덕분이다.”
오늘 말씀에도 주인공은 아니지만, 실제로 무대를 만든 조연이 등장합니다.
그가 바로 다윗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성전을 지은 솔로몬을 기억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을 보면, 사실 그 성전을 가능하게 만든 이는
다윗의 준비와 헌신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그의 준비와 헌신이 우리에게 어떤 깨달음을 주는 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첫번째 본론]
오늘 말씀은 사무엘서나 열왕기서에는 안나오는 오직 역대기만의 독특한 말씀입니다.
역대기만이 가진 특별한 관점과 메시지를 가장 잘 드러내는 본문중 하나입니다.
그럼 역대기는 왜 이렇게 다윗에 대한 이야기를 길고 자세하게 기록하는 것일까요?
22장 1절입니다.
"바로 이 곳이 주 하나님의 성전이요, 이 곳이 이스라엘의 번제단이다."
다윗은 성전 건축을 향한 자신의 뜨거운 열정과 마음을 드러냅니다.
다윗은 오르난의 타작마당이 하나님의 성전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앞에 내용을 읽으면 그 이유를 알수 있습니다.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는 중대한 죄를 저지르는 바람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심판이 너무 가혹하자 다윗은 하나님께 심판을 멈추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래서 그 심판이 멈춘 장소가 바로 오르난의 타작마당입니다.
그 곳에서 다윗은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불을 보내 다윗의 예배에 응답하십니다.
이처럼 오르난 타작마당은 하나님의 심판이 멈춘 장소입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이 선포된 장소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실제로 드러난 거룩한 자리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 곳이 성전이 세워질 자리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라 역대기를 읽는 당시 이스라엘 공동체를 향한 메시지입니다.
당시 역대기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페르시아의 지배 아래 있어 자신들의 왕이 없는 실정입니다.
또한 성전은 있었지만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무너진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필요한 왕이 바로 다윗과 같은 왕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왕입니다.
성전을 짓지 못하지만 온 힘을 다해 준비한 왕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예배를 위해 산 왕입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성전을 짓기 위해 금과 은, 소와 양을 준비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참된 성전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성전으로 지어져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장 21-22 절입니다.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그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마음입니다.
마음이 없이 드리는 모든 헌신은 하나님께 의미가 없습니다.
다윗이 드린 수많은 금과 은, 소와 양보다 그것을 드리고자 하는 다윗의 마음이 하나님께 더 소중합니다.
이제 우리가 주님께 드릴 제물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을 증명하는 것은 단순히 교회를 위한 헌신이 아닙니다.
더 많은 헌금, 더 많은 봉사나 헌신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삶을 원하십니다.
다윗이 드린 값비싼 성전의 재료들을 이제 우리는 삶으로 드려야 합니다.
금이나 은보다 더 순수하게 빛나는 삶을 드려야 합니다.
수많은 소나 양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수많은 시도들을 더 기뻐하십니다.
부모님께 가장 큰 효도가 많은 용돈이 아니고 자녀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듯,
하나님은 더 많은 기도, 더 많은 예배보다 우리의 거룩한 삶을 요구하십니다.
그래서 로마서 12장 1-2 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주일예배때 드릴 최고의 제물은 우리의 마음이자 삶입니다.
변화된 삶,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을 최고의 예물로 받으십니다.
한주동안 우리의 무엇이 금보다 은보다 더 빛나는 삶이었습니까?
한주동안 얼마나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믿음의 선택을 하셨습니까?
[두번째 본론]
그러나 오늘 말씀에는 놀라운 반전이 있습니다.
다윗이 직접 예루살렘 성전을 지었나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예루살렘 성전을 짓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그런데 왜 하나님은 그가 성전을 건축하는 것을 막으셨을까요?
8절입니다.
다윗이 전쟁하는 동안 너무 많은 사람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윗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습니다.
그 전쟁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수행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뜻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자신이 직접 성전을 짓는 영광을 내려놓고, 아들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을 부탁합니다.
그리고 그는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잘 짓도록 준비만 열심히 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이 결과를 누리지 못할것 같으면 최선을 다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내가 아무리 수고해도 그 열매를 내가 누릴수 없는데…”
“내가 빛나지도 않을 텐데 왜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해?”
이렇게 생각하는게 인간의 본성입니다.
성과 중심, 보상 중심, 효율 중심의 사고방식이 우리가 세상에서 익숙하게 배워온 패턴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다릅니다.
그느 자신이 결과를 거두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뜻이기에 기꺼이 그 길을 갑니다.
자신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아도, 하나님의 영광만 드러날수 있다면 그는 준비하는 자로 남습니다.
주인공이 아니어도 기쁨으로 조연이 되기를 선택한 사람입니다.
이처럼 그는 진정한 순종의 사람입니다.
그는 성전을 짓는 것 자체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따르는 일에 더 관심을 갖습니다.
그래서 성전을 직접 건축한 솔로몬보다 다윗이 더 빛나는 것입니다.
다윗이 아들 솔로몬에게 한 말을 보십시오.
다윗이 강조한 것은 성전 건축 기술이나 어떤 설계가 아닙니다.
11-13절입니다.
“내 아들아, 이제 주님께서 너와 함께 하셔서, 주님께서 너를 두고 말씀하신 대로, 주 너의 하나님의 성전을 무사히 건축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부디 주님께서 너에게 지혜와 판단력을 주셔서, 네가 주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며, 이스라엘을 잘 다스릴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바란다. 네가 주님께서 모세를 시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율례와 규례를 지키면, 성공할 것이다. 강하고 굳건하여라. 두려워하지 말고, 겁내지 말아라.”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여러번 강조합니다.
다윗은 성전의 의미가 단순히 예배드릴 장소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아무리 성전이 있고 예배를 열심히 드려도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성전의 본질은 성전이나 예배 그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인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과연 어떤 기준을 따르고 있습니까?
우리는 때때로 보상과 성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기도했으면 그 응답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헌신했으면 사람들의 인정이 따라야 한다고 기대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없을 때 우리는 낙심하거나 멈추거나 포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르게 보십니다.
결과보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순종과 마음을 더 중요하게 보십니다.
지금 내가 하는 작은 섬김과 기도, 헌신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수 있습니다.
곧바로 결실을 맺지 못할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종하며 충성할수 있는 사람을 하나님은 찾으십니다.
그럼 우리의 모든 순종과 헌신이 헛된 것일까요?
아닙니다.
우리의 순종과 헌신은 결국 하나님의 때에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다음 세대가 그 열매를 거둘수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열매를 맺고 있는 일 또한 누군가의 순종과 헌신의 열매일지 모릅니다.
[세번째 본론]
마지막으로 다윗은 지도자들에게도 당부합니다.
다윗과 솔로몬만의 순종으로 성전이 건축되는게 아닙니다.
18절입니다.
“주 당신들의 하나님께서 당신들과 함께 계셔서, 당신들에게 사방으로 평화를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이 땅 주민을 나에게 넘겨주어, 이 땅 사람들을 주님과 그의 백성 앞에 굴복시키셨습니다. 이제 당신들은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찾고, 일어나서 주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십시오. 그래서 주님의 언약궤와 하나님의 거룩한 기구들을 옮겨와서,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성전에 들여 놓도록 하십시오.”
다윗은 모든 지도자들이 솔로몬을 도와 함께 성전짓도록 명령합니다.
성전을 홀로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을 위한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의 열심만으로 목사의 열심만으로 온전히 세워질수 없습니다.
모두가 함께 마음과 정성을 모을때 비로소 예배 공동체의 본질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다윗이 강조한 것은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전의 외형보다 중요한 것은 그 성전에 담긴 사람들의 마음과 태도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공동체의 진실한 마음과 정성이 성전을 성전답게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크고 화려한 예배당에서 감동적인 예배를 드릴지라도 그 속에 하나님을 찾는 진실한 마음이 없다면 빈껍데기에 불과합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얼마나 진실한 마음과 정성으로 연합하며 나아가고 있습니까?
믿음의 위로와 격려가 교회를 견고하게 만들어줍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에 우리 역시 순종해야 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야구의 희생 플라이처럼, 나는 점수를 얻지 못해도 누군가가 홈으로 들어올 수 있다면
기꺼이 아웃을 선택하는 것, 또는 반주자처럼, 무대의 조명을 받지 못해도
누군가가 제대로 노래할 수 있도록 뒤에서 섬기는 것, 이것이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다윗의 모습입니다.
다윗은 성전을 짓는 영광을 누리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더 중요했기에 기꺼이 준비하는 자로 남았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머물 장소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혼자 감당하지 않고, 공동체 전체를 믿음으로 이끌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그런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오늘 한 주간도 주인공이 되려 하기보다,
누군가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연으로 살아가십시오.
결과보다 과정과 순종을, 드러남보다 진심을, 혼자보다 함께 짓는 믿음의 성전을 선택하는 삶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