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8장 1-15절
Notes
Transcript
엘리야는 아합에게 수년 간의 가뭄을 선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하여 북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경고 및 심판 하십니다.
엘리야는 자신을 죽이려 하는 이세벨을 피해 시돈 땅 사르밧 과부의 집에서 약 3년간 도피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북이스라엘에 3년이 넘게 비가 내리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은 엘리야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아합을 만나기 위해 나오는 것으로 시작 합니다.
당시 비가 내리지 않아 사마리아에 기근이 심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그 곳에 비를 내리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은 그들에게 누가 생명의 주관자 이신가를 보여주시고자 하십니다.
특히 2절을 보시면 사마리아에 기근이 심하였다고 합니다.
이는 북이스라엘 전체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특히 북이스라엘의 수도 이자 바알 숭배의 심장부 였던 사마리아를 지칭 합니다.
당시 아합의 바알 숭배정책으로 인해 북이스라엘은 바알이 비를 내리고 그치게 하는 신은 바알의 소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알을 비와 바람을 주관하여 풍요를 가져다 주는 농경신이라 생각하고 섬겼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 하나님이 비를 내리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사마리아에 가장 혹독하게 기근을 내리십니다.
이를 통하여 바알의 무능함과 거짓됨을 부각시키고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신실하심을 대조 하고 있습니다.
다시 1절 입니다.
많은 날이 지나고 제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하나님은 이런 상황 속에서 엘리야를 다시 부르십니다.
그리고 엘리야에게 위험한 명령을 내리십니다.
그것은 이제 때가 되었으니 아합에게로 가라 는 명령 입니다.
9절 이하의 말씀에서 아합에게 가던 엘리야는 오바댜를 만났습니다.
자신을 아합에게로 데리고 가라고 하자 오바댜는 극구 사양 합니다.
이를 통하여 당시 아합은 모든 가뭄의 근원을 엘리야라고 생각했고, 그를 죽이기 위해 찾아 다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를 엘리야가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엘리야를 다시 부르십니다.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는 이 명령에는 믿음을 가지고 그에게 나아가라 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비를 그 땅에 내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비를 내리시기를 허락하셨습니다.
아합은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그 곳을 향해 나아갑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두 사람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첫번째 사람은 엘리야 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 사건을 잘 알고 있고, 엘리야가 어떤 사람인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엘리야의 순종이 당연하고 이해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것도 확인되지 않고, 보호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는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나아갑니다.
그것도 자기의 목숨을 노리고 찾는 왕 앞으로 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셨을 때 잠시라도 내리는 빗방울이라도, 아니 멀리 보이는 비구름이라도 봤으면 확신을 가졌겠지만, 여전히 상황은 가뭄에 지친 북이스라엘과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 뿐입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합니다.
우리는 순종을 너무 쉽게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쉽게 이야기 하는 순종이 내 삶과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도 온전한 순종을 드릴 수 있습니까?
남의 이야기, 성경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삶이 걸린 부르심 앞에 온전한 순종으로 그 자리에 나아 갈 수 있습니까?
두번째 인물을 오바댜 입니다.
저는 오바댜를 단지 대단한 조력자 정도로 생각하였는데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 사람이 너무 대단하게 보였습니다.
3절에서 오바댜를 왕궁 맡은 자 라고 합니다.
이는 오바댜의 직업이 아합과 가장 가까운 그리고 고위 관직자 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국가의 재난상황 에서 아합이 그를 불렀다는 것은 왕의 신임을 받고 있었던 자이기도 합니다.
바알 숭배를 일종의 국가 종교로 하는 나라에서 왕궁전체를 관리하는 아합의 청지기 역할을 했을 오바댜는
그 곳에서 여호와 신앙을 지키기가 너무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굳이 목숨을 걸고 여호와 신앙을 지키지 않아도 잘 먹고 잘 살고, 성공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시대의 조류에 편승하지 않고 신앙을 지켜 나갑니다.
성경은 그를 향하여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자 라고 합니다.
또한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 백명을 숨겨주고 물과 떡을 제공했던 자 입니다.
그의 이 모든 행동은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것이며, 목숨을 걸고 한 행동입니다.
여러분, 여호와를 경외 한다는 것이 어떤 것입니까?
앞서 엘리야를 통하여 순종이 무엇인지를 생각 해봐야 한다면, 오바댜를 통하여서는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의미를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두려워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은 무섭다 는 의미가 아닙니다.
경외는 오직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만을 인정함으로 가지는 거룩한 두려움, 경건한 공경을 의미 합니다.
그래서 오바댜는 아합과 이세벨이 아닌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그는 목숨을 걸고 여호와를 위해 적극적으로 신앙의 삶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고 여호와를 위해 자신의 삶을 내어 던지는 자였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합은 국가적 위기 가운데서 오바댜를 불러 함께 물을 찾으러 갑니다.
아합도 이제 바알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아합은 너무나도 비참하고, 그가 믿는 신의 허구성을 너무나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뜻 앞에 순종하는 것이 어렵고, 실패와 고난의 길이라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세상이 보기에는 그러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목숨을 걸고 하나님만 사랑하며 순종하는 자의 삶을 통해 세상의 거짓과 허구와 어리석음을 드러내십니다.
아무도 예배 하지 않는 그 곳에서 하나님을 예배 하고 경외하며 순종하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이 찾는 그 자리에서 오직 주님만을 경외하며 주를 위해 헌신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걸음이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오직 주님 만을 증거하는 주님이 찾으시는 삶의 예배자로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