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한 자는 복이 있습니다.(마 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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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한 자는 복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5:1–12 NKRV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도입

나폴레옹은 권력야욕을 채우기 위해서 프랑스 영토를 다 차지하고 유럽 전체를 말발굽으로 점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빼앗은 영토를 다시 다 빼앗기고 부하들도 그를 다 버리고 작은 섬 세인트헬레나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그때 나폴레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오늘까지 나의 영토와 나의 권세를 위해서 일했고, 나의 부하를 얻기 위해 싸웠는데 지금 내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예수는 영토도 없고 부하도 없이 십자가 위에서 힘없이 죽었는데 오늘날 그를 따르는 자는 왜 그리 많은가? 나는 이제야 알겠노라. 나는 강한 병정을 모았는데, 그는 사랑을 나눠주었다.”

나폴레옹의 이 고백은, 강력한 자가 최후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온유한 자가 최후에 승리한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희 딸이, 요즘 1춘기에 접어들면서, 부쩍 자기 주장도 강해지고, 짜증도 많아졌습니다.
가끔 말을 안 들을 때, 혼을 내면 같이 짜증을 냅니다.
하루는 하원시키려고 데리러 갔는데, 항상 데리러 가면 간식 사왔냐고 물어봐요.
그래서 안 사왔다고 하면, 짜증을 내길래, 그 날은 제가 바나나 우유를 사가지고 갔습니다.
바나나 우유를 사가지고 기쁜 마음으로 가서, 딸에게 바나나 우유 사왔다고 했더니 또 짜증을 내면서, 자기는 씹는게 먹고 싶었다고 하는거에요.
순간, 저도 짜증이 났지만, 온유한 마음으로, 제가 “우리 주아가 씹는게 먹고 싶었구나, 일단 이거 먹고 집에 가서 씹는거 먹자”고 그랬더니, 알겠다고 하고 서로 웃으면서 집에 갔습니다.
만약 제가 거기서 같이 짜증을 냈다면, 제 마음도 힘들고 딸의 마음도 힘들었을텐데, 제가 온유함으로 대하니, 서로 평안해지더라구요.
그래서,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됐는데, 참 온유함은, 내 주변을 화평케 하는 강력한 힘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온유한 자가 결국 강한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만약 딸과 똑같이 짜증을 내고 화를 냈다면, 제가 제 딸과 다를게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2. ‘온유’란 무엇인가?
우리는 이쯤에서, 과연 이 ‘온유’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질문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온유하다’는 ‘따뜻하다’와 ‘부드럽다’는 의미의 한자어입니다.
그래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온유하다’를 “태도와 성격 따위가 따뜻하고 부드럽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하는 ‘온유하다’는 의미도 같은 의미일까요?
성경에서 말씀하는 ‘온유’는 단순히 온화하고 부드러운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온유’라는 단어는, 구약 시편 37:11에서 사용됩니다.
시편 37:11 NKRV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온유한 자들이 땅을 차지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마도 시편 37:11의 말씀을 거의 그대로 인용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이 시편 37편에서 온유한 자는 어떤 자들일까요?
시편 37편 말씀을 살펴보면, 여기서 ‘온유한 자’가 어떤 자인지 알 수 있는데, 먼저 시편 37:3의 말씀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편 37:3 NKRV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시편 37:5의 말씀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편 37:5 NKRV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그리고 7절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편 37:7 NKRV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시편 37편에서의 ‘온유한 자’는 결국 그냥 따뜻하고 온순한 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말씀하는 온유한 자는, 하나님을 철저하게 의지하는 자, 그래서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고, 그로 인해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않는 자를 가리킵니다.
이런 자들은,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기 때문에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편 37:7의 말씀처럼,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대구 동신교회를 담임하셨던 권성수 목사님께서는, 이 온유한 자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온유는 주인이요 심판자이신 하나님께 심판의 특권을 내어 드리고 그를 기대하는 신앙의 한 면이다.

3. 예수님을 통해 본 ‘온유’에 대한 두 가지 오해
1 ) 온유는 무조건적 참음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온유함에 대해서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몇 가지 사실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1:29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29 NKRV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온유한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온유의 속성은, 불의나 하나님의 뜻에 합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무조건적으로 참는 것이 온유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 정화사건에서 만민이 기도하는 하나님의 집을 장사하는 강도의 소굴로 변질시킨 것에 대해서 의로운 분노를 내셨습니다.
이에 대해서 요한복음 21:7의 말씀은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예수님의 행동의 동기였다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21:7 NKRV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또한 마가복음 3:5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실 때, 바리새인들이 침묵하며 믿지 않는 완악한 태도를 보일 때에도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보셨다”고 말씀합니다.
마가복음 3:5 NKRV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이 분노 역시 자기 이익과 율법주의에 사로잡혀서 사랑과 긍휼을 외면하는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에 대한 의로운 분노였습니다.
마가복음 10:14의 말씀에서도 어린 아이들이 예수님께 나오는 것을 제자들이 막았을 때, 예수님은 노하시며 어린 아이들이 자신에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0:14 NKRV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어린 아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방해하는 태도에 대해서 분노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일에 대해서는 의로운 분노를 드러내셨다는 점에서, 온유함이 무조건적인 참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2 ) 온유는 나약함이 아니다.
또 온유함은 곧 나약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광야 시험 사건에서, 예수님은 40일을 주리셨지만, 결코 마귀에게 굴복하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마귀를 말씀으로 대적하시고 물리치셨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행하신 수많은 기적들은 예수님의 권능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기 위해서 붙잡히실 때에도, 칼로 예수님을 붙잡으려는 자들을 대적하려 했던 베드롤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 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예수님께서는 충분히 자신을 대적하는 자들을 무력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물리치고 굴복시키실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가진 권능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으셨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온유함이었습니다.
3 ) 결론
이처럼 예수님의 삶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진정한 온유함이란, 불의에 대해서 무조건 참는 것이 아니며, 나약해서, 힘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온유는, 나약함이나 비굴함이 아닙니다.
또한 온유는 우유부단함도 아닙니다.
온유함은 우리 안에 넘쳐나는 분노와 복수심을,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절제하는 가장 강력한 성품입니다.
잠언 16:32의 말씀에서 온유한 자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잠언 16:32 NKRV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4. 적용 및 결론
세상에서 땅을 차지하는 방법은, 강력한 힘으로 적대하는 모든 세력을 힘으로 제압하는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이나, 얼마 전 일어난 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전쟁만 보더라도, 자신이 가진 힘으로 상대를 짓누르는 것이 세상에서의 땅을 차지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땅은, 온유한 자가 차지하게 된다고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세상에서 힘으로 세계를 재패하려 했던,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 프랑스의 나폴레옹, 독일의 히틀러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온유함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 날 세계를 다스리고 계십니다.
입 속에 이는 시간이 지나면 부서지고, 부식되고, 빠지지만, 혀는 죽는 순간까지 계속해서 남아 있습니다.
바다가 산을 깎아내리듯, 진정한 강함은 온유함에 있습니다.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은 친구도 많았지만, 적도 많았습니다.

링컨을 집요하게 괴롭히던 스탠톤(Stanton)은 신문지상에 링컨을‘교활한 광대’라고 선전했습니다.

스탠톤은 공식석상의 연설에서 링컨을 ‘오리지널 고릴라’라고 조롱했습니다.

“여러분은 고릴라를 보러 아프리카까지 가실 필요가 없습니다. 일리노이의 스프링필드에 가면 멋진 고릴라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후일 링컨이 그를 국방장관으로 임명 발표했습니다.

사람들은 경악하면서 “어떻게 그럴 수가?” 하는 반응을 보였지만 링컨은 “그 자리엔 그가 적임자요”라고 했습니다.

스탠톤은 암살된 링컨의 시체 앞에서 뜨거운 눈물을 떨어뜨리며 꿇어 엎드려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여기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통치자가 누워 계십니다!”

핵 에너지가 폭발하면, 다른 사람을 죽이는 핵폭탄이 되지만, 핵 에너지가 절제되고 정제되면 많은 사람들을 돕는 전기 에너지가 되듯이, 분노는 나와 다른 사람을 죽이는 힘이지만, 온유함은, 나를 살리고 다른 사람도 살리는 힘이 됩니다.
그 강력한 힘이, 미래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살아가도록 만들어줄 것입니다.
서로 가진 힘으로 상대를 누르려고 하는 곳은 전쟁터이고, 그곳은 바로 지옥과 다르지 않습니다.
‘고지전’이라는 영화가 있는데,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입니다.
그 영화에 보면, 명대사가 하나 나옵니다.
극중에, 오랜 전쟁으로 인해서 전쟁의 베태랑이 된 한 남자가, 결국 전쟁에서 마지막 죽는 순간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게 많이 죽여댔으니까 당연히 지옥에 가야 되는데 여기보다 더한 지옥이 없어서 그냥 여기에 살고 있는 게 아닐까, 계속 서로 죽이면서”
분노로 가득한 세상은, 그 자체로 지옥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 분노는, 끊임없이 나와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고 고통스럽게 만들고 죽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가 온유함으로 대할 때, 그 온유함으로 인해 상대방도 온유해집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결론을 맡겨드리고,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그저 온유함을 따를 때, 우리의 삶의 모든 결론은 하나님이 내실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우리의 삶에 모든 권리를 하나님께 맡겨드리고, 우리가 모든 일에 대해서 참고 견디며 온유함으로 살아간다면, 내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마다 나의 온유함으로 말미암아 화해가 있고, 평안이 있고, 사랑이 있는 곳이 되어, 내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때, 그곳이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우리 모두 온유함으로, 내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되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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