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사사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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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사사기 9:50-57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를 주의 전으로 불러주시고, 예배의 자리로 초청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지친 심령을 안고 나온 저희에게 주님의 따뜻한 위로와 회복의 은혜를 부어주시옵소서. 이 시간, 세상의 모든 분주함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예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저희가 이 시간 주 앞에 무릎 꿇고 엎드립니다. 주의 은혜 없이 설 수 없는 저희의 연약함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종종 주님보다 세상의 유익을 앞세우고, 우리의 말은 사랑보다 판단과 비난에 더 가까우며, 우리의 삶은 믿음보다 욕심과 편안함을 좇을 때가 많았습니다. 주님, 이기적인 욕망과 불순종으로 얼룩진 저희의 삶을 긍휼히 여겨주시고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돌아보면 참 많은 시간을 주님 없이 살아왔습니다. 기도보다는 염려를, 예배보다는 바쁨을 앞세우며,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하고 타인을 정죄했던 저희의 교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정결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다시금 회복의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진심으로 주 앞에 나아오니, 십자가의 은혜로 저희를 덮어주시고 자유케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전쟁과 기근, 고통과 분열로 신음하는 이 세상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이란과 이스라엘 간의 전쟁 속에서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고 있습니다. 주님, 전쟁을 멈추어 주시고, 피 흘림의 땅에 평화의 길을 열어주시옵소서. 전 세계 곳곳에 주님의 공의와 자비가 임하게 하시고, 복음이 필요한 모든 민족 가운데 그리스도의 빛이 비추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올해는 우리 교단 선교 70주년의 해입니다. 복음 들고 나아갔던 믿음의 선배들의 눈물과 헌신을 기억하게 하시고, 그 뜻을 이어받아 오늘을 사는 우리도 민족과 열방을 품는 사명자로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동역하는 모든 선교사님들을 기억하여 주시고, 그들의 가정과 사역지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능력이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떤 환경 속에서도 복음을 담대히 전하게 하시고, 피로를 채우시며 건강을 지켜주시옵소서. 저희 교회가 더 적극적으로 선교를 품고 기도하며 동역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교회 공동체 안에도 연약한 지체들이 있습니다. 육신의 질병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마음의 고통으로 신음하는 자들을 주님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에게 위로와 회복의 은혜를 부어주시고, 공동체가 그들을 품고 함께 울며 기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혼자가 아닌, 함께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주님의 몸 된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가오는 여름 사역들 위해 간절히 기도합니다. 7월 1일5일 진행되는 SFC 전국 대학생 대회와 7월 2426일 청년 1부 여름수련회, 7월 2830일 전라지역 중고생 SFC 수련회, 8월 12일 또는 8~9일로 준비 중인 광혜교회 여름성경학교, 그리고 8월 11일 주간에 있을 전교인 섬김수련회까지 모든 사역을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준비하는 손길마다 은혜 더하시고, 참석하는 이들마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며 삶이 변화되는 복된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의 임재가 각 사역 가운데 충만하게 하시고, 자라나는 다음세대에게 믿음의 씨앗이 심겨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우리가 더욱 주님의 뜻을 깨닫고 삶의 자리에서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음성에 귀 기울이게 하시고, 말씀이 심령에 생명과 능력으로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배의 처음과 끝을 주님께 맡겨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은 ‘침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겠습니다. 여러분 삼일간 평안하셨습니까? 감사합니다. 이제 여름이 정말로 시작된 것 같습니다. 우리 옆에 있는 지체와 이렇게 한번 인사할까요.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아멘?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요, 그분은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삶에 일하고 계시고요, 이 교회 가운데 일하고 계시고요, 우리 가정 가운데 일하고 계시고요, 이 나라 가운데 일하고 계십니다.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바라볼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 되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이런 말을 들어본적 있으십니까?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될 수 있다”라는 말입니다. 어쩌면 이 말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잘들어맞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내 편 같던 사람이, 내일은 나를 향해 등을 돌립니다. 나를 지지해주던 그 손이, 그 손에 칼을 쥐고 나를 찌를 수도 있습니다. 참 섬뜩하고 무서운 말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이러한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정치계의 모습을 보세요. 언제는 한 당에서, 한솥밥을 먹던 사람들이요,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서, 이익에 따라서 관계가 변화됩니다. 좋을 때는 동료이지만요, 이제 척을 지게 되면, 격렬한 갈등과 대립으로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모습이 그렇잖아요, 남한과 북한이라는 사실 우리는 한 가족이고 한 민족이잖아요. 지금도 어른 세대들은요, 그곳에 가족이 있고, 할아버지가 할머니가 북한에서 이곳으로 내려왔던 사람들도 지금도 여전히 많이 있습니다. 한민족이었던 우리가 이제 정치적 이념과 사상으로 인해서요, 이제는 서로 총을 겨누는 비극적인 상황이 되어버린거에요.
이런 큰 이야기 뿐만 아니라, 이런 일은 우리 가정에서도 너무나 쉽게 벌어지는 일입니다. 믿었던 아내가, 남편이, 자녀가, 형제들 가운데에서도, 신뢰가 깨어지고, 관계가 깨어지고, 배신감을 느끼고, 돌아서는 경우도 많습니다. 오히려 가까울 사이일수록 그 상처는 더 깊고, 그 파괴력은 더 크게 느껴지는거에요.
하고 싶은 말은요, 이런 일이 많다고 해서, 이렇게 사는 것을 선택하고 그렇게 사는게 당연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불의와 배신이 만연한 세상에서, 신의와 믿음을 지키는 삶이 중요하다는거에요. 신의와 믿음을 지키는 삶은 절대로 바보같은, 멍청한 삶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신의와 믿음을 지키는 삶은요, 무엇보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삶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신의와 믿음을 지키는 자에게, 합당한 은혜로, 불의와 배신을 일삼는 자에게 역시 합당한 심판을 하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사실 오늘 본문이 그런 이야기입니다.
지난 주 말씀을 떠올려보면요, 기드온의 아들이 왕이 되게 됩니다. 그 아들이 누구였죠? 바로 아비멜렉이라는 아들이었습니다. 아비멜렉은 정실의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기드온의 첩의 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왕위를 이어받습니다. 어떻게 받았죠? 9장 초반부에 보면요, 아비멜렉은 자신의 어머니의 고향인 세겜으로 가서, 그곳 사람들을 설득합니다. 세겜은 이스라엘의 중요한 도시였고요, 세겜 즉 자신의 혈육과 관련된 사람이 많고요, 유력한 도시의 지지를 받는 것은, 왕이 되기에 너무나 좋은 정치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또 한 가지 아비멜렉은 왕이 되기 위해 무엇을 했지요?
돈을 주고 용병, 건달을 고용합니다. 그리고 9장 5절에 보면요, 기드온의 아들들, 즉 자신의 이복 형제들 70명을 한 자리에서 죽이는 살육을 벌입니다. 즉 왕이 될 수 있는 후보들을 싹 없애는 것을 통하여, 자신의 왕위를 확보하려 했던 것이죠. 얼마나 잔인합니까. 그는 왕위를 위해서 형제를 배반하며 모두를 죽이는 일을 벌였습니다. 그때 살아남은 사람이 누구였어요? 요담이라는 사람이었죠. 그 사람이, 나무 이야기를 통하여, 아비멜렉이 얼마나 자격없는 왕인지 폭로한 내용이 바로 저번주의 내용이었습니다.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오늘 내용은 22절부터의 내용인데요, 22절부터의 내용은요 아비멜렉이 왕이 된지 3년후에 일부터 시작되어집니다. 그렇다면 질문해보겠습니다. 아비멜렉을 지지했던 세겜사람들은 계속해서 아비멜렉을 지지하고 따랐을까요? 이 둘의 사이가 계속 좋았을까요? 아니니깐 물어봤겠죠. 23절 말씀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시매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였으니”
세겜 사람들과 아비멜렉은 틀어지게 됩니다. 그들은 아비멜렉을 몰아내고 다른 사람을 세우고자 합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세겜은 불탔고요,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요, 아비멜렉도 결국 한 여인의 손에 맷돌을 맞아 죽게됩니다. 정치적 동맹으로 시작된 관계는요. 결국 배신과 파멸로 끝이 납니다. 그러나 이 비극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심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요 침묵하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의 죄와 탐욕, 거짓과 폭력, 불의와 배신 앞에서 하나님은요 반드시 일하셨고, 심판하셨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침묵하지 않으시는 분이신지, 이 하나님의 공의가 어떻게 드러나게 되는지 함께 살펴보길 원합니다.
첫번째로 하나님은 어떻게 일하고 계셨을까요? 우리가 읽었던 23절에 보면요,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시매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였으니”라고 말씀합니다. 그 앞에는 이렇게 말하죠, 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을 다스린지 삼 년에,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은 아비멜렉이 왕이 되기 위해 중상모략과 살인을 저지른 것에 대해 아무 말씀 안한 것처럼 보였다는거죠. 무려 3년이라는 시간동안 말입니다. 이 시간동안 세겜 사람들은 잘먹고 잘 살았겠죠. 자기들이 왕으로 민 아비멜렉이 왕이 됬으니깐요, 아비멜렉 역시 왕의 자리에서 부귀와 권세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질문할 수 있습니다. 아니 형제를 죽이고 왕이 되었는데, 왜 하나님이 곧바로 심판하시지 않으셨을까요? 왜 그런 악인이 권세를 누리고 평안하게 잘 사는 것처럼 보였을까요? 그런데 성경은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침묵하고 계셨던 것이 아니라, 때를 기다리고 계셨다는 것을요, 23절을 다시 보세요, 하나님이 악한 영을 보내셨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중요한 한 가지를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악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정해진 때에 심판을 시작하셨다는 것입니다.
악한 영이 보내졌다는 것은요, 단지 영적인 현상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의 사이의 신뢰를 무너뜨리시고, 관계를 갈라놓으셨다는 의미입니다. 서로를 이용해 왕과 백성의 관계를 맺었던 이들이요, 이제는 서로를 의심하고, 서로를 배신하고, 서로를 치는 상황으로 나아게 변해버렸습니다. 즉 하나님은요 그들의 죄를 그들 스스로의 손으로 심판하게 하시는 방식으로 일하고 계셨다는 거에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성경 속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우리는 때때로 이런 질문들이 생깁니다. “왜 하나님은 침묵하실까”라는 질문이지요. 지금 이란와 이스라엘이 미사일과 드론을 퍼붓는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전쟁으로 인하여 수백명의 희생자가 생겼습니다. 이런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하나님은 무엇을 하실까? 질문이 생기죠.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이죠. 어떤 사람을 보면요, 참 부정직하고요, 남들에게 피해를 주고요,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 아주 평안하게 잘 살아가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에 반해, 정직하고, 신의를 지키고 믿음으로 살아가도요, 어려움과 핍박이 찾아오고요, 때로는 더큰 당혹함을 맞닥들이게 되는 경우가 있지요. 그러나 우리가 잊지 않고 고백해야 하는 것은요, 하나님은 일하고 계시다는거에요.
그분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가장 정확한 시간에, 가장 정밀한 방법으로 일하고 계십니다. 때로는 사람의 손으로, 때로는 우연처럼 보이는 상황 속에서, 때로는 눈물과 고통의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은 정의롭게 갚으시고, 악을 심판하시며 선을 세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침묵은요 결코 무관심이 아닙니다. 침묵처럼 보이는 것 뿐이에요. 우리가 보기에 말이지요. 하나님의 주권을 벗어난 이 땅에 일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 이러한 믿음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뜻대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두번째 입니다. 그렇다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의 갈등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세겜이라는 지역에, 가알이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가알이라는 사람이요, 세겜 지역에 신뢰와 인기를 얻게 됩니다. 이 당시에 아비멜렉은 세겜이 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 가알과 형제들은요, 밭에 나가 포도를 수확해 포도주를 만들고요 세겜 사람들에게 잔치를 베풉니다. 그러면서 막 포도주에 취해서 아비멜렉을 저주하는거에요. 아니 도대체 그 아비멜렉이 누구이기에 우리가 그 사람을 섬겨야 합니까. 차라리 우리는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후손을 섬기는게 맞지 않냐, 아비멜렉 있었으면 내가 확 하면서, 막 저주를 하면서요 세겜 사람들을 설득합니다.
그런데 세겜에는요 아비멜렉은 없었지만요, 그의 신복이었던 스불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스불이 가알과 세겜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요, 화가 난거에요. 그리고 아비멜렉에게 이 사실을 알려줍니다. 가알이라는 사람이, 세겜 사람들과 당신을 대적하려한다는거에요. 그래서 아비멜렉에게 작전을 요구합니다. 군대를 데리고 와서, 밭에 매복해가지고, 가알과 그 형제들을 덮치라는거에요. 결국 가알과 형제들과 아비멜렉이 맞붙게 됩니다. 누가 이겼을까요? 아비멜렉이 이기게 됩니다. 그래서 가알과 형제들은 큰 피해를 입고 세겜에서 쫓겨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아비멜렉의 화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세겜 사람들을 심판해야겠다고 생각하여서요, 다시 매복작전을 통해 세겜을 칩니다. 종일토록 세겜 성을 쳐서요 세겜을 점령하고요, 세겜 사람들을 죽이고 성을 헐고 소금을 뿌립니다. 그리고 세겜 망대 역시 다 헐어버리고요, 그곳에서 살육한 남녀가 천명이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흥미로운 것은요, 이런 모습들이 어디에 예언되어있는지 아세요? 바로 기드온의 자녀들 중에 살아남았던 그 요담이 했던 말 중에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을 암시하는 예언이 있습니다. 9장 20절에 보면요,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나와서 세겜 사람들과 밀로의 집을 사를 것이요 세겜 사람들과 밀로의 집에서도 불이 나와 아비멜렉을 사를 것이니라 하고”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보면요, 이 전반부분은 성취가 되었습니다.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나와서요, 세겜 사람들과 밀로의 집을 살랐어요. 그렇다면 이제 세겜 사람과 밀로의 집에서 어떤 불이 나와서 아비멜렉을 사를까요?
그게 이제 50절부터의 말씀인데요. 여기에 보면요, 아비멜렉은 이 더베스라는 성읍을 점령하는 계획을 세웁니다. 이게 참 이상하죠. 세겜 성읍은요, 그 사람들이 자신을 배반하였기 때문에 쳤다고 생각하면 되는데요, 배반하지도 않은 더베스라는 성읍에 가서 그곳을 점령하려 합니다. 그 이유는 이야기하지 않아요. 자연스럽게 세겜에 이어 “자기 영토의 경계를 확장하는 단계”처럼 보입니다. 아비멜렉에게 공격을 받은 더베스 성읍의 사람들은, 망대 꼭대기까지 피신하게 됩니다. 세겜 망대에서 했듯이 아비멜렉은 불을 이용해 망대의 문에 다가가 불사르는 작전을 하려하는데요, 아까 그 예언 생각 납니까? 불이 나와 아비멜렉을 사른다는 예언 말이죠. 불을 지르기 위해 망대의 문에 가까이 간 것이 그의 죽음의 복선입니다. 그가 가까이 가니깐 망대 꼭대기로 피신했던 한 여인이 맷돌 위짝을 던져 그의 두개골을 깨뜨리게 됩니다. 그는 즉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무기를 든 청년에게, 여인에게 죽었다는 불명예를 피하기 위하여, 자신을 죽여달라 요청하고요, 아비멜렉은 거기서 숨을 거두게 됩니다. 여인에게 죽었다라는 이 표현이 재미있게도요, “여자”라는 단어가 히브리 말로 ‘잇샤’거든요, 불이라는 단어는 ‘에쉬’입니다. 비슷하죠. 즉 세겜에서 나와 아비멜렉을 살랐던 불이 이 여자인거에요.
56-57절 말씀 읽어볼까요. “아비멜렉이 그의 형제 칠십 명을 죽여 자기 아버지에게 행한 악행을 하나님이 이같이 갚으셨고 또 세겜 사람들의 모든 악행을 하나님이 그들의 머리에 갚으셨으니 여룹바알의 아들 요담의 저주가 그들에게 응하니라”
결국 아비멜렉 역시 비참한 죽음으로 말미암아 이 사건을 끝이나게 됩니다. 여러분 이 사건이 교훈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하나님은요 침묵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불의와 배신을 기억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 응당한 댓가를 반드시 치루게 하십니다. 때로는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보이고요, 때로는 악인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요, 아니요, 하나님의 공의는요 절대 지연되지 않고, 반드시 돌아오게 되고요, 악은 심판으로 응징하십니다.
본문에서 그 공의가 이루어지는 모습은요, 사람을 통해서, 사건을 통해서, 때로는 작고 보잘것없는 여인의 손에 들린 맷돌을 통해서라도 완성됩니다. 아비멜렉의 결말을 보십시오. 그는 자신의 왕위를 위해 사람들을 살육했습니다. 그리고 남을 죽이기 위해 불을 사용했지만요, 결국 자신이 그 불에 타게 된자가 되었습니다.
이게 바로 성도에게 소망이 있는 이유입니다. 악은요 하나님 앞에 남아있지 않게 됩니다. 죄와 악인들이 행했던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역시 그렇지 않습니까. 너무나도 불의하고, 너무나도 고통이 있고, 너무나도 죄가 만연한 이 세상을 바라보면서, 탄식이 나오며 절망에 빠질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때마다, 이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우리의 삶이 되길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 생각해볼 부분이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죄와 불의와 배신이, 다른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아비멜렉을 보고 사람이 어찌 저리 할 수 있냐 손가락질하지만요, 우리도 때로는 그런 일에 동참할 때가 있고요, 그런 마음을 품고 살아갈 때가 있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유익을 따라 때로는 아비멜렉처럼 이기적이었고요, 우리도 때로는 세겜 사람들처럼요 편의에 따라 사람을 버리고, 하나님을 잊고 살았던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질문해보겠습니다. 우리는 과연 이 하나님의 공의 앞에, 심판 앞에, 어떠한 처벌을 받아야만 하겠습니까. 응당 어떠한 댓가를 치뤄야만 하겠습니까. 아비멜렉처럼, 우리가 뿌린대로 거두게 되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죄인들에게 소망이 있는거죠. 놀라운 복음의 은혜가 있는거죠. 그 하나님의 공의가요 예수님이 올라가셨던 그 십자가 위에서 완전히 실행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될 그러한 심판을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신거에요. 우리가 감당해야 될 그 형벌을 그분이 대신 짊어지신겁니다.
참 웃기지 않습니까.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요, 아비멜렉같이 때려 죽일놈이 이 세상에 많은 것을 한탄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알게 된 것은 무엇인지 아세요? 그 때려죽일놈이 사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저였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늘 다른 사람의 죄악은 크게 보고 손가락질 하지만요, 나에게는 얼마나 관대한지 모릅니다. 그런데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요, 아비멜렉이나 나나, 악행을 일삼는 죄인이나, 나나 죽일놈이라는거에요.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다시금 십자가 앞에 나아가야 됩니다. 아비멜렉은요 스스로의 죄로 무너졌지만 예수님은 죄가 없으심에도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 위에서 무너지셔야만 했습니다. 아비멜렉은 맷돌에 머리가 깨져 비참히 죽었지만, 예수님은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요 손과 발에 못이 박히고요, 그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을 자기 몸에 있는 그대로 받아내셔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면목없게도, 나를 위한, 우리를 위한 은혜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심판 받아야 할 우리에게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 임하는 은혜가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은 지금도 불의가 가득합니다. 정의는 무너지고, 진실을 짓밝히고 가장 정직한 사람이 오히려 고난을 당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시고, 이 어두운 세상을 밝히며 자신의 공의를 드러내십니다. 악은 반드시 심판받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인생이 되어집니다.
바라기는 낙심하지마세요. 포기하지마세요. 아무리 그 악과 죄의 세력이 크게 보이더라도 주눅들지 마세요. 하나님이 더 크세요. 하나님이 함께 하세요. 그리고 그 죄악 앞에 설 때에, 내가 어떠한 은혜를 받았는지를 생각해보세요. 사실 우리도 저들과 똑같은 존재라는거 심지어 예수 믿고 나서도요, 우리 안에 여전히 저 사람들과 같은 죄악이 가득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때마다 이 하나님의 공의를 십자가 위에서 다 받아내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생각하며, 세상과 죄악을 긍휼히 여기며, 나도 예수님처럼, 나를 드림을 통하여, 큰 사랑으로 인하여, 모든 것을 감당하는 세상의 작은 예수로 살아가는 남은 한주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첫 번째 기도: 침묵 같아 보이는 시간 속에도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믿게 하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첫 번째로 함께 기도할 제목은 이것입니다. “하나님, 침묵 같아 보이는 시간 속에서도 주님이 일하고 계심을 믿게 하소서.”
사사기 9장에서 하나님은 무려 3년 동안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신 것처럼 보이셨습니다. 아비멜렉은 왕이 되어 잘나가고, 세겜 사람들도 평안한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침묵하신 것이 아니라 때를 준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삶에도 이런 시간들이 있습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 같고, 정직하게 살았는데도 오히려 손해를 보는 것 같고, 악한 자들이 오히려 더 잘 되는 것처럼 보이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일하십니다. 지금도 내 삶 가운데, 가정 가운데, 이 나라 가운데 일하시는 그 하나님을 믿게 해달라고, 그 믿음을 잃지 않게 해달라고 함께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 두 번째 기도: 하나님의 공의 앞에 나를 돌아보게 하소서 – 그리고 십자가 은혜를 붙잡게 하소서

두 번째 기도는 회개의 기도입니다. “하나님, 아비멜렉만 손가락질할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죄악을 보게 하시고, 십자가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나임을 고백하게 하소서.”
우리는 오늘 아비멜렉을 보며 분노했습니다. 어떻게 형제를 그렇게 죽일 수 있는가. 그런데 설교를 통해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 아비멜렉이 바로 나였다는 것을.
우리는 아비멜렉처럼 이기적이었고, 세겜 사람들처럼 상황 따라 사람을 버렸고,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 유익을 따졌던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 앞에 어떻게 설 수 있습니까? 우리도 멸망받아 마땅한 죄인입니다. 그러나 소망이 있습니다. 그 공의가 십자가 위에서 완전히 실행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심판받으시고, 하나님의 공의를 몸으로 받아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 회개하며 이렇게 기도합시다.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십자가의 은혜로 나를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함께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 세 번째 기도: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를 드러내는 삶을 살게 하소서

마지막 기도는 결단의 기도입니다. “하나님, 이 불의한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공의와 십자가의 은혜를 드러내는 작은 예수로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기다립니다. 정의는 무너지고, 거짓이 이기는 것처럼 보이고, 진실한 자들이 조롱받는 시대 속에서 우리는 아비멜렉 같은 이들을 매일 목격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도 때론 아비멜렉 같았지만, 이제는 그리스도의 은혜 입은 자로서, 이 세상 가운데 공의와 자비를 드러내는 예수님의 편지가 되기를 원합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사람들 앞에서 빛과 소금이 되게 하시고, 사랑으로 세상을 감당하게 해달라고 함께 결단하며 기도하겠습니다!

🏕️ 마지막 기도: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를 전하는 교회 되게 하소서 – 여름 사역을 위해 기도합시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 교회의 여름 사역과 다음 세대를 위한 기도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확인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침묵 같던 시간에도, 죄와 악이 가득한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은 공의로 일하시고, 은혜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일하심이, 이 여름, 우리 교회와 다음 세대, 온 성도들의 삶 가운데 실제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 이번 여름, 우리 교회에는 많은 사역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7월 1일~5일: SFC 전국 대학생 대회7월 24일~26일: 청년 1부 여름수련회7월 28일~30일: 전라전역 SFC 중고생 수련회8월 1~2일 또는 8~9일(금토): 광혜교회 여름성경학교 – 함께할 봉사자를 찾고 있습니다 ▪ 그리고 8월 11일 주간에는 온 성도가 함께하는 전교인 섬김수련회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모든 사역이 단순한 행사가 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가 흘러가는 복음의 통로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다음 세대가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를 깨닫는 자리, 교회가 함께 섬김과 회복의 은혜를 누리는 자리가 되게 하시고, 이를 위해 헌신하는 모든 봉사자들에게도 하늘의 힘과 기쁨을 부어주시도록 기도합시다.
이 시간, 우리 교회를 통해 하나님이 일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우리 모두가 이 일에 기도로, 몸으로, 사랑으로 동참하게 해달라고 함께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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