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620 새벽기도회: 시편 8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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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하시겠습니다. 405장 찬송하시겠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를 새벽기도회 자리로 부르시고 함께 말씀을 듣고 기도하게 하심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저희를 지켜주시고, 이번 한 주도 무사히 보내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보호 아래에서 저희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도록 도와주시고, 항상 저희의 삶을 통해 주님께 영광과 찬송을 올려드리는 저희가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말씀을 듣고 기도하기 위하여 나아갑니다. 이 시간을 통하여 주님을 더욱 알려주시고, 오늘도 말씀대로 살아갈 능력을 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함께 하실 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84편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Psalm 84 NKRV
고라 자손의 시, 인도자를 따라 깃딧에 맞춘 노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 보옵소서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새벽기도회에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무더위 가운데서도 더위를 뚫고 함께 기도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오늘도 이 복을 누리기 위해 함께 말씀을 같이 듣고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시편 84편의 말씀을 들으면 좋겠습니다. 이 84편은 고라 자손의 시편으로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는 것을 한탄해하며 어서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고 싶어하는 마음이 담긴 시편입니다. 함께 이 84편을 살펴보면서 이 시편 기자의 마음이 곧 우리의 마음이 되면 좋겠습니다.
먼저 1절에서 시편 기자는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라고 시작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장막이라는 건물이 아름답고 예뻐서라기 보다는 장막에서 하는 행위, 즉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곳이 바로 장막이기 때문에 이 장막이 사랑스럽다는 뜻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군대를 움직이시고 통치하시는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어디에서든지 계실 수 있으시지만, 특별히 자신의 백성과 함께 하시기 위해 임재하시는 장소로 이 장막을 택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시편 기자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이 장막이 너무 좋은 겁니다. 이곳에 머물길 원하며 이곳을 영원히 사모하길 원합니다.
그러나 이 시편 기자에게는 그것이 허락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2절을 보면 이 시편 기자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라고 합니다. 지금 시편 기자의 상황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장소인 장막 또는 성전, 그리고 2절의 표현에 의하면 여호와의 궁정에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그곳이 너무나 좋은 곳인 걸 알지만, 지금 갈 수가 없습니다.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지만, 사모할 수만 있는 상황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해야 힘도 얻고 기운도 나는데, 그러질 못하니 영혼이 쇠약해집니다.
시편 기자는 자신에게 완전한 만족과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으니 그만큼 쇠약해지는 것을 지금 경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부르짖습니다. 시편 기자의 마음과 육체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성전을 너무나 갈급해 하기 때문에 그것이 필요하다며 3절부터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시편 기자는 먼저 자신의 상황과 대조되는 성전에 있는 자들을 부러워합니다.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 자리를 얻었나이다.” 여기서 시편 기자는 갑자기 참새와 제비를 언급하는데요. 핵심은 “주의 제단에서”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처소인 성전에 참새도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를 둘 수 있는 보금자리를 얻습니다. 바로 비천한 존재인 참새와 제비조차도 시편 기자의 “왕,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이신 분의 집에 자신의 보금자리를 얻었는데, 지금 자신의 처지는 그곳에 가지 못한다는 것을 한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뒤 4절에서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라고 이어서 말하는데요.
이것은 비천한 새들도 주의 집에서 머무는데,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얼마나 복이 있겠냐는 뜻입니다. 이것을 시편 기자의 마음을 녹여서 표현하자면 “비천한 새들조차 성전에 머무는 특권이 있는데, 하물며 거기는 머무는 자들은 얼마나 복이 있으랴!”입니다. 성전에 가지 못하는 이 시편 기자는 주의 집에 살며 거주하는 이들이 얼마나 복 있겠냐면서 부러워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복을 누리고 있는 주의 집에 거주하는 자들은 항상 주를 찬송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의 집에 거하며, 거기서 주님을 찬양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안전과 복이 있는 이 성전을 즐기고 있는 비천한 새들부터 시작해서, 사는 사람들까지 부러워하는 이 시편 기자는 언제나 이 성전에 있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 기자의 간절한 이러한 바람은 성전에 사는 자들이 받는 복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말하는 것에서도 나타납니다. 5-7절이 그 복에 대한 내용인데요. 이것은 이 하나님의 집을 향한 여정 속에서 받는 복입니다. 우선 5절에서 시편 기자는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시온의 대로가 있다”는 것에서 “시온”은 예루살렘에 있는 산의 이름으로서 예루살렘을 대신해서 쓰는 말입니다. 예루살렘에 무엇이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이 임재하신 성전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시온의 대로가 마음에 있다.”는 것은 마음 속에 하나님이 계신 성전에 가는 길이 마음에 있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 하나님의 집을 가는 여정 속에서 주님께서 주시는 힘을 얻고 그 마음에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기대와 사모함이 있는 자는 복이 있다는 겁니다.
심지어 그 복은 이 여정 속에서 어려움과 고난이 있더라도 마찬가지라고 6절에서 시편 기자는 말합니다. 왜냐하면 여정 속에서 하나님께서 채워주시고 보호하시는 것을 경험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주님을 만나러 가는 여정 속에 이런 어려움을 만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많은 샘을 주시고 비를 내리게 하셔서 어려움을 면하게 하는 복을 주시는 다는 겁니다. 메마른 골짜기이지만 그곳에 하나님께서 은혜와 복을 베푸시니 그곳은 더이상 어려움과 역경의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복된 장소가 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은혜를 여정 중에 경험한 자들은 7절에서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게 됩니다. 여정이 비록 순탄하지만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통해 복을 누리게 되니 더더욱 힘을 얻고, 성전에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까지 하나님이 얼마나 좋은 분이신지를 더욱 확신하며 여정을 이어 나갑니다.
이것이 시편 기자가 누리고 싶은 복입니다. 성전에 자신도 거하고 싶고, 성전까지 가는 길에서 받는 복도 누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비천한 새들도 할 수 있는 그것을 시편 기자는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시편 기자는 머리 속에서 상상하고 있습니다.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하나님과 함께하고 있는 행복한 상상과 성전으로 가는 길에서 하나님께서 채워주시고 보호하시는 은혜를 받는 복을 누리는 행복한 상상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 생각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합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한 현실이 참담하기만 합니다.
그러니 시편 기자는 8-9절에서 기도합니다. 구약에서 기름을 붓는 것은 직분자를 의미합니다. 구약에서 직분자는 제사장, 선지자, 왕이 있지만,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직분자는 왕을 뜻합니다. 왜냐하면 시편 2편에서도 기름 부음 받은 자가 등장하는데, 2편에서도 그 직분자가 왕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얼굴을 살펴본다는 것은 은혜를 베푼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왕의 얼굴을 살펴 봐달라는 뜻은 왕을 통해서 은혜를 베풀어 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세우신 직분자를 통하여 은혜를 베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바로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 아니라 항상 직분자를 세우시고, 그 직분자를 통하여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왕을 말하고 있으니 대표적으로 다윗을 예시로 들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왕이었던 다윗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많은 복을 누렸습니다. 나라가 아주 잘 살게 되었고 평화의 나라가 다윗의 나라였습니다. 다윗이 어떤 뛰어난 지도력을 가지고 하였기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왕인 다윗이 하나님을 믿고 잘 섬겼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신 겁니다. 바로 이처럼 하나님은 직분자를 통하여 자신의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렇기에 이것을 알고 있는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을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길 소원합니다.
그리고 그 소원을 10절에서 말하는데요.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말합니다.
얼마나 간절한지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낫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다른 곳에서 백 날 천 날을 보낼 바에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단 하루가 훨씬 낫다고 말합니다. 또한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악인의 장막은 하나님 없이 누리는 다양한 것들을 의미합니다. 바로 부귀, 쾌락, 권력 등등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이런 것들만을 추구하는 곳이 악인의 장막입니다. 이곳에서 산다면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열망하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시편 기자는 그곳에 사는 것보다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훨씬 좋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성전에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가 이러한 선택을 하는 이유는 단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으로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더 자세하게 11절에서 말합니다. 11절은 한글 성경에는 나와있진 않지만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시작하는데요. 그가 성전 문지방에 있는 것이 더 좋은 이유는 바로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시편 기자가 단 하루 성전 문지방에라도 있기를 원하는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모든 좋은 것들을 아끼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분을 따르는 자에게는 결코 좋은 것을 아끼지 않으시기에 단 하루 성전 문지방에라도 있기를 시편 기자는 간절히 원합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성전에 있기를 간절히 원하는 이 시편 기자의 바람은 결국 이렇게 찬송하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오늘 84편에서 시편 기자는 성전에 가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성전에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복이 얼마나 큰 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바람은 단 하루 성전 문지방에 있고 싶을 정도로 너무나 간절했습니다. 하나님은 좋은 것을 결코 아끼지 않으시는 너무나 좋은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하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오늘 시편 말씀을 한번 우리 마음에 비춰보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정녕 이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과 함께 하길 간절히 바라고 있을까요? 이 시편 기자의 마음이 곧 우리의 마음일까요?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그 공간과 시간을 이토록 사모하고 있을까요? “단 하루 성전 문지방에라도 있는 것이 좋다.”는 것이 우리의 고백이 될까요?
우리의 마음이 이러한 사모함으로 가득 차야함에도 우리의 삶은 이 고백을 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어쩌면 악인의 장막을 더 사모하고 있진 않은가 모르겠습니다. 세상이 주는 만족, 세상이 주는 기쁨, 돈과 쾌락과 권력과 명예 등 하나님 없이 누리고 있는 악인의 장막에 거하거나 이 악인의 장막에 거하고 싶다는 마음이 우리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비록 악인의 장막을 사모할지라도 이것을 뛰어넘어 하나님이 계신 성전을 더 사모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9절에서 시편 기자가 말하는 왕을 통해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통하여 복을 주고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 가운데서 항상 하나님을 예배하길 원하셨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을 사모하셨습니다. 그분의 삶은 언제나 하나님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을 사모하지 않는 우리를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바꾸셨습니다. 악인의 장막에 있던 우리를 성전 문지기 정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같이 왕 같은 제사장으로 만들어주심으로 하나님을 바로 만날 수 있는 장소인 지성소에까지 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이렇게 은혜로 우리를 인도하신 그리스도를 기억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사모함이 없어질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오늘 시편 기자의 마음처럼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는 간절함이 생깁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영혼이 쇠약해지기에 부르짖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서 그것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를 따라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특별히 매주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찬송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큰 복입니다. 오늘 시편 기자는 이것을 너무나도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것이 매주 허락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눈물 골짜기를 지나더라도 그리스도를 따라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을 사모하는 것이 큰 복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날마다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라며 찬송하게 되는 우리 새순교회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시간 오늘 말씀을 두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에게 말씀을 주시고 이 84편을 통해 주의 궁정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를 깨닫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거하는 것이 얼마나 복인지를 알려주셨으니 저희가 이 복을 마음껏 누리며 하나님께 찬송을 올려드리는 저희가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복된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시고 날마다 감사하는 저희가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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