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한 인간의 한계를 기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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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시편 82:6-8(구약 863쪽)
설교제목: 유한한 인간의 한계를 기억하십시오.
6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7 그러나 너희는 사람처럼 죽으며
고관의 하나 같이 넘어지리로다
8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세상을 심판하소서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이기 때문이니이다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서울대학교 과학학과 이두갑 교수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인간이 영생하려는 욕망’에 관한 이야기를 방송에서 하면서요. 영생과 불멸에 관한 역사적 이야기를 몇 가지 소개했습니다.
먼저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은 이의 몸을 보존하면 육체가 사후세계에서 온전히 영생을 누린다고 생각했고요. 그에 따라 죽은 이의 몸을 오래 보존하기 위해 ‘미라’를 제작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기로도 그 기술이 무척 뛰어나서 이미 몇 천 년 전의 만들어진 미라가 오늘날도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음을 봅니다.
또한, 잘 알려지기로요.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은 죽음 이후가 아니라 현실에서의 영생을 꿈꿨는데요. 그로 인해서 ‘불로초’라고 해서 먹으면 늙지 않는다는 전설상의 풀을 찾아 중국 전역과 해외까지 원정대를 파견했습니다.
모순적인 것은요. 진시황은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요. 오히려 불로초 때문에 수명이 줄어든 것으로 분석됩니다. 당시 진시황은 수은을 불로초로 여겨서 그것을 오랫동안 먹었는데요. 수은을 다량으로 섭취하면 면역계와 신경계에 치명적인 손상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의학지식이 없더라도 오늘 우리의 생각에도 수은을 먹고 오래 살 수는 없다고 여겨지지요.
고대 중국 역대 황제의 평균수명은 40세 미만으로 알려졌는데요. 그런데도 진시황은 수은 먹고 49세까지 산 것을 보면 본래부터 건강체질이었던 것으로 보이고요. 만약 수은을 먹지 않았으면 더 오래 살았을 것으로 봅니다. 결국, 불로초가 진시황을 죽게 한 것이죠.
그리고 고대뿐만 아니라 근대에도 아니 현대에 이르기까지 영생에 관한 사람들의 관심은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16세기 프랑스의 귀부인 디안 드 푸아티에는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금이 든 음료를 즐겨 마셨다고 하는데요. 이는 당시 연금술의 영향으로 금이 영생불멸의 상징이었고요. 유럽 귀족들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기 때문입니다.
17세기의 헝가리 귀족 부인이던 엘리자베스 바토리는 10년간 600명이 넘는 사람을 죽이고 그 피를 마셨다고 합니다. 이는 금 이후에 불로불사 영약으로 새롭게 부상한 것이 피였는데요. 피는 생명과 영혼을 지닌 신성한 물질로 통했습니다.
20세기의 프랑스 외과의사였던 세르주 보르노프는 최고의 회춘제라며 원숭이 고환을 사람에게 시술하여 떼돈을 벌기도 했습니다. 이는 과학의 발달에 따라 인간의 생리적 연구가 이뤄지면서요. 모든 생명의 기원이 고환과 정액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회춘 연구가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21세기 오늘에 들어서는 장기 복제를 통한 장기 이식을 하는 것 하고요. 몸을 대체할 다른 기계적인 신체를 비롯하여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여러 기술을 통해 다양한 연구가 진행 중입니다. 이렇게 인류가 영생을 위한 연구를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인류의 영생을 위한 도전은 성공할까요? 실제로 인류의 수명은 과거보다 많이 늘어났습니다. A.I 자료에 따르면요. 1900년대 세계평균수명이 45세였던 것이요. 2025년 현재 세계평균수명은 73세라고 하고요.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은 85세라고 합니다. 이렇게 보면, 인류는 점점 과거보다 오래 살게 되었고요, 앞으로 더 오래 살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제가 장례식장을 다니다보면요. 대체로 사고나 병 때문에 돌아가신 분을 제외하고요. 평균적인 나이가 90대 이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마도 인류는 영생을 이룩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구절이 그것을 밝혀주는데요. 시편 82편 6~8절을 같이 읽습니다.
시편 82:6-8(구약 863쪽)
6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7 그러나 너희는 사람처럼 죽으며
고관의 하나 같이 넘어지리로다
8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세상을 심판하소서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이기 때문이니이다
방금 읽은 시편의 구절은요. 인간의 유한함을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조금 더 해설하면 이러합니다. 시편 82편은 세상에서 신과 같은 위치에 있는 권력자들에게 불의를 행치 말 것을 경고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심판이 임할 것을 말씀하시는데요.
누구도 이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방금 읽은 성경 구절이 보여 줍니다. 세상에서 신과 같은 권력을 부여받은 이들이라도요. 심지어 그것이 하나님께서 부여한 것임에도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그들은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게 죽음을 맞이할 것이고요. 그 후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이야기합니다.
저는 이를 통해 생각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지 않고서는 우리가 죽음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죽음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합니다.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그것이 인간이 결코 하나님을 넘어설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합니다. 인간의 삶이 이처럼 한계지어져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시편을 보면요. 인간의 유한함을 깨달으라고 말하는 대상이 ‘신들’이라고 소개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신들은 정말 하나님 말고 존재하는 다른 신이 있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신과 같은 위치에 서 있는 세상의 권력자들을 뜻합니다. 결국, 인간의 유한함을 깨닫지 못한 이들은 자신을 신과 같은 존재로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행하는 일이라는 것은 가난한 자와 빈궁한 자를 괴롭게 하는 일입니다.
이처럼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깨닫지 못하고 살아갈 때 힘없는 자들이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역사 속에서 현실 세계에서 경험하는 것이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힘을 가졌던 이들이 행했던 악을 떠올려 봅니다.
성경에서 이집트의 왕은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태어난 남자 아기들을 나일강에 버려 죽게 하라고 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히틀러는 수백만명의 유태인과 장애인들을 죽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두환은 얼마나 많은 광주의 시민들을 학살했습니까? 그리고 이른바 갑질이라는 것은 대체로 세상에서 힘 있다고 하는 이들이 행하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과연 힘을 가졌던 이들이 역사 속에서 오늘 현실 속에서 보여 주는 모습은 선하고 아름답습니까? 그들이 마치 신과 같이 세상에 군림하려고 할 때, 그들은 매우 잔인하고 극악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외면하고 하나님처럼 되려 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였는지 모릅니다. 아담과 하와가 사실 그 죄로 인해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에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것이 아니라요. 그것을 통해 하나님처럼 되려 하였기 때문이고요. 그것은 결국 하나님을 외면한 것이 됩니다. 그 후에 하나님을 외면했던 이들에게서 벌어지는 일들을 성경은 이렇게 보여 줍니다. 형인 가인이 동생인 아벨을 죽임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외면했을 때 세상에 얼마나 큰 비극이 찾아옴을 알 수 있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죽음을 통해 분명히 교훈하십니다. 모든 인간은 신이 아니라 유한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세상에 그렇게 포악했던 강력했다고 알려진 모든 이들은 결국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도 예외이지 않습니다. 언젠가 우리도 죽음이 찾아올 것인데요. 누구도 그것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이 죽음 앞에서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우리의 삶이 그분 앞에서 평가됨을 말입니다.
저는 그 삶이 결국 예수님을 본받는 삶임을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본래 선생이 제자의 발을 씻기는 법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일을 제자들에게 모범으로 삼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높아지려는 삶이 아니라 낮아져서 심지어 종의 모양으로까지 낮아지는 삶 그것이 죽음을 기억하며 인간의 유한함을 깨닫고 사는 삶의 모습입니다.
바라건대, 오늘 주일을 맞이하며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될 텐데요. 오늘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이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높아지려 하기보다 낮아져서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는 모습 말입니다. 서로를 귀히 여기고 아끼므로 살아가는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