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이야기-15. 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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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사사기 11:30-40(구약 382쪽)
설교제목 : 성경인물이야기-15. 입다
30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
31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32 이에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이르러 그들과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33 아로엘에서부터 민닛에 이르기까지 이십 성읍을
치고 또 아벨 그라밈까지 매우 크게 무찌르니
이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였더라
34 입다가 미스바에 있는 자기 집에 이를 때에
보라 그의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독녀라
35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하니
36 딸이 그에게 이르되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의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하니라
37 또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일만 내게
허락하사 나를 두 달만 버려 두소서 내가
내 여자 친구들과 산에 가서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하니
38 그가 이르되 가라 하고 두 달을 기한하고
그를 보내니 그가 그 여자 친구들과 가서
산 위에서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고
39 두 달 만에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아온지라
그는 자기가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였더라
이것이 이스라엘에 관습이 되어
40 이스라엘의 딸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나흘씩 애곡하더라
반갑습니다.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늘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오늘은 사사 입다에 관한 얘기를 나누려 합니다. 성경은 그를 기생의 아들(삿 11:1)로 소개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생은 여호수아에서 살펴본 라합과 같은 신분을 뜻하는 것인데요. 사실은 성매매를 하는 여성이고요. 오늘 우리도 비슷한 시선이겠지만 고대에는 더 부정적으로 보았을텐데요. 계급사회에서 입다의 신분은 매우 비천한 것으로 여겨졌을테니 말입니다. 게다가 입다는 이른바 첩의 자식이었는데요. 그 결과로 입다는 아버지의 집안에서도 환영받지 못했으며 더욱이 집안과 이스라엘 공동체로부터 추방을 당합니다(삿 11:2-3).
이것은 당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얼마나 변질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본래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구입니까?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사람들입니다. 사실상 입다의 출신과 본래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조들의 출신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도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무시당하던 이들에 다름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에 정착했던 그들은 과거는 잊어버리고 과거의 그들처럼 약한 자들에게 차별을 일삼고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가져왔습니다. 이스라엘 주변 나라였던 암몬이 전쟁을 일으킵니다(삿 11:4). 나라가 위기에 치닫자 이스라엘의 원로들은 입다를 찾아갑니다. 성경은 ‘입다에게 잡류들이 모였다(삿 11:3)’라고 기록하는데요. 이는 입다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모여서 어떤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이로인해 이스라엘의 원로들은 입다에게 찾아가 암몬과 싸워줄 것을 청하게 됩니다. 입다는 전쟁에서 승리하면 이스라엘의 통치자가 된다는 조건으로 이를 수락하게 됩니다(삿 11:11).
이를 통해 입다는 결국 이스라엘의 사사가 됩니다. 구약성경 사사기에 등장하는 사사의 면면들을 보면서 계속 깨닫게 되는 것인데요. 하나님은 혈통이나 재주와 같은 우리의 능력을 통해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일전에 살펴보았던 왼손잡이 에훗이 그러했고요. 상대적으로 약한 지파인 므낫세 지파에 속한 기드온도 그러했습니다. 그 외에도 하나님의 일을 감당한 많은 인물들이 대단한 능력을 지닌 경우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음을 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통하여 일하십니다. 설령 우리의 능력이 부족하고 모자른다고 해도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그것으로 실패하거나 좌절되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이런 것들을 생각해보게 합니다. 때로 우리는 교회에서 직분을 받거나 어떤 봉사의 자리로 임명을 받을 때, 자주 이런 이야기를 할 때가 있습니다. ‘아직 믿음이 부족해서요. 아직 능력이 부족해서요.’ 겸손한 말인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무시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거절하는 불순종에 가까운 것입니다. 물론 정말로요. 내가 믿음과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껴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인줄 압니다. 그러나 그 말은 불행하게도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의지하지 못함을 뜻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니 오늘 내가 받은 직분과 봉사의 자리에서 나를 의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그 일을 허락하셨다면,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뤄갈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편, 이스라엘의 사사로 임명된 입다는 암몬과의 전쟁을 벌입니다. 그러면서 입다는 이 전쟁에서 승리하고자 하나님께 약속을 합니다. ‘만약 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면,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겠다(삿 11:31)’라고 말입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의 내용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입다의 약속이 큰 비극을 가져왔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댓가로 바치게 된 제물이 다름 아닌 입다 자신의 하나뿐인 딸이었습니다. 입다의 딸은 너무나 착했던터라 아버지가 하나님께 한 약속을 따르겠다고 합니다. 차라리 그것을 거부하고 도망이라고 갔다면 좋았을텐데, 입다의 딸은 하나님께 행한 약속을 따라 하나님께 제물로 바쳐집니다.
성경에 나오는 참 이상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찍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말씀하셨지만, 이삭을 제물로 받지 않으셨습니다. 더욱이 성경은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행위에 관해 하나님이 엄격하게 금하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왜 입다의 딸의 경우에서는 그러지 않았을까요? 이에 관해 학자들은 이렇게 설명하기도 합니다. 아마 입다의 딸이 실제로 하나님께 제물로 바쳐지지 않았을 거라고요. 마치 어린 사무엘처럼 하나님의 일에 봉사하는 것으로 평생을 바쳤을 거라고요. 그래서 입다의 딸이 처녀라는 것과 남자를 알지 못했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입다의 딸이 희생제물로 바쳐졌던지 혹은 평생을 하나님께 헌신하며 사는 독신자로 세워졌던지요.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하나님께 약속할 때는 신중해야하고 행해진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교훈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입다가 어리석은 약속을 한 상황을 다시 돌아가보면요. 입다가 사사로 쓰임을 받는 결정적인 계기는 29절에 나오는데요. ‘여호와의 영이 임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입다를 도우셨는데요. 입다는 그것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무모한 서원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만약 입다가 하나님의 도움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분의 뜻을 따랐다면요. 어리석은 약속을 하지 않고도 승리를 거뒀을 뿐만 아니라요. 승리 이후에 충분한 기쁨을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적어도 자신의 딸을 사지로 내몰지는 않아도 되었으테니 말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신뢰했다면, 입다와 그의 딸에게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성경 이야기 속에서 입다가 자신의 딸을 제물로 바치는 결정적인 이유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함이었고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 결과는 얼마나 비참한 것을 가지고 오는지를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 가운데 참 무서운 사실은요. 입다가 서원하고 행한 그 일에 관해서 하나님은 아무런 말씀이 없으시다는 거예요. 어쩌면 하나님은 마치 가인과 그의 제물을 받지 않으신 것처럼, 입다의 제사와 그의 제물인 딸도 받지 않으셨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이를 통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런 생각과 바람이 있잖아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겠다는 것 말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있나 혹은 우리의 신앙생활이 하나님의 뜻과 관계가 있나 하는 생각이 종종 들때가 있어요.
특별히 어제 총회에서 주관하는 대각성집회를 참석해서 설교를 듣는데요. 설교하시는 목사님이 그러시는 거에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목표가 정말로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과 같은 뜻이냐고요. 보통 우리는 예수 믿고 복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고 또한 그것을 기대하기 때문에요. 신앙생활하면서 이 복에 해당하는 건강이나 성공이나 행복 등을 기대할지 모르는데요. 신기하게도 성경은 그러한 복을 우리에게 약속해주고 있지 않다는 거예요.
오히려 성경은 신앙생활을 통해 우리에게 고난과 질병과 불행을 경험할 수 있고요. 그것에 관해 성경은 더 많이 이야기 하고 있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가 신앙생활을 통해 이룰 목표가 이 땅에서 잘 먹고 살 사는 것이 아니라요. 성숙해져서 이른바 거룩함 삶을 살아가는 것인데요. 그러기 위해서는 고난, 질병, 불행과 같은 것이 필연적으로 필요하다는 거예요. 오히려 삶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거나 관심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또한 우리에게 이러한 어려움들을 통해 우리는 진정으로 거룩해질 수 있다는 거예요.
이를 통해 깨닫는 거예요. 우리의 신앙생활은 과연 성숙 또는 거룩을 이루는 것으로 나아가고 있나요? 아니면 현실의 축복을 바라고 있나요? 혹시 우리는 현실의 축복을 기대하고 바라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신앙생활한다고 얘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또는 그것이 하나님의 신뢰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지는 않나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요.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믿음에 따라 우리는 그분이 우리의 삶에서 허락하시는 삶의 어려움을 통해서도 그분의 계획과 뜻을 믿으며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에 내 생각이 들어오고 내 기준이 들어올때요. 우리는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믿고 신뢰하게 되고요. 그것이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비극이 될 수 있어요.
바라건대, 오늘 입다의 교훈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은 인생에게 비극이 닥칠 수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 택함받은 사람에게도 그것은 예외이지 않습니다. 오늘 신앙생활하는 구원받은 우리에게도 다르지 않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분을 믿고 의지함으로 오늘 우리의 삶을 그분께 온전히 맡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때에 우리는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 믿음 안에서 살가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