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평화

성령강림절 후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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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참 평화

본문: 야고보서 2장 14-21절

찬송: 412장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임재의 기도

말씀을 통해서 오늘도 말씀하시는 하나님, 오늘 나눌 말씀을 통해 저희에게 말씀해 주옵소서. 이 말씀이 우리 삶의 모든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 되게 하시고, 이 말씀이 우리 삶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이기게 하는 뜨거운 능력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말씀의 문을 열며

우리는 매일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주고받습니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인사이지요. 그런데 이 인사말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이화여대에서 영문번역 시험을 볼 때 "안녕하세요?"를 영어로 번역하라는 문제가 나왔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Hello" 또는 "How are you?"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최고점을 받은 번역이 있었습니다. "Are you still alive? 아직 안 죽고 살아계세요?"
처음 들으면 조금 충격적인 번역 같지만, 교수님은 이 번역에 최고점을 주었습니다. 왜일까요? 이 번역이 우리 인사말의 진짜 의미를 정확히 파악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안녕하세요?"는 단순한 인사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리적 위치상 외침이 잦았던 나라였습니다. 북쪽으로는 오랑캐의 침입이, 남쪽으로는 왜구의 침략이 끊이지 않았고, 전날까지만 해도 함께 지내던 이웃들이 하루아침에 죽거나 끌려가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또한 지배층의 권력다툼으로 정변이 일어날 때마다 무고한 백성들이 화를 당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해방 이후 현대 한국사를 돌아보면 6.25 전쟁, 4.19 학생혁명, 5.16 군사 쿠데타, 5.18 민주화운동, IMF 외환위기, 그리고 지난 12.3 내란까지 수많은 격동기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온 우리에게 "안녕하세요?"는 단순한 인사가 아닙니다. 그래서 "안녕하세요?"는 "지난 밤을 지내면서 아직 살아계세요? 오늘도 무사하게 지내고 계세요?"라는 간절한 마음이 담긴 인사가 바로 "안녕하세요?"였던 것입니다.
성경에도 "평안하세요", "평안히 가라"는 인사가 자주 나옵니다. 이것도 단순한 격식적 인사일까요? 아니면 더 깊은 의미가 있을까요?
오늘 야고보서 본문에도 "평안히 가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참된 평화가 무엇인지, 성령의 열매 양선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가짜 평화와 진짜 평화를 구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야고보서 2장 1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야고보서 2:16 NKRV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여기에 가짜 평화의 모습이 나옵니다. "평안히 가라"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당시 사람들이 헤어질 때 주고받던 일반적인 인사였습니다. 히브리어로는 "샬롬"이라고 하지요. 참 좋은 인사입니다.
우리도 매주 광고 때마다 이런 인사를 나누지 않습니까? "주님의 평화가 당신과 함께 하길 바랍니다." 바로 이 샬롬의 인사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말은 아름답게 하지만 구체적인 도움은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고 말만 하고, 정작 그 몸에 쓸 것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가짜 평화들이 있지 않습니까? 교회에서 "평안하세요"라고 인사는 나누지만, 실제 관계에서는 냉담한 경우가 있습니다. "괜찮다, 괜찮다" 하면서도 속으로는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고요.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지혜가 있습니다. 옛 성현들도 이런 것을 경계했습니다. 공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왈 고자 언지불출 치궁지불체야" 라고 하셨습니다. "옛 사람이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은 몸소 실천함이 말에 미치지 못할 것을 부끄러워함이다"라는 뜻입니다.
함부로 말을 앞세우고 실천은 없어서 주변을 실망시키는 사람이 많은 세태에 한 번쯤 곱씹어볼 성현의 가르침입니다.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겸손한 신앙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진짜 평화는 무엇일까요? 17절에서 야고보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평화도 마찬가지입니다. 행함이 없는 평화는 죽은 것입니다.
참된 평화는 말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돌봄의 행동으로 실현되어야 합니다. "평안히 가라"고 말한다면, 정말로 그 사람이 평안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때로는 이런 모순에 빠지지 않습니까? 주일에 예배드리고 "평안하세요"라고 인사하면서도, 집에 가서는 그 사람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하는 경우가 있기도 합니다. 기도할 때는 "사랑하는 형제자매"라고 부르면서도, 실제로는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 경우도 있고요. 이것이 바로 행함이 없는 믿음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진짜 평화는 다릅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관심과 사랑이 있을 때, 그것이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제 참된 평화를 추구하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작은 것에서 평화를 시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야고보서 2장 1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야고보서 2:15 NKRV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야고보가 들고 있는 예는 아주 구체적이고 일상적입니다.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 상황입니다. 거창한 평화 운동이 아닙니다. 눈앞에 있는 작은 필요들입니다.
평화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농사일로 지친 가족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 몸이 불편한 어르신께 작은 관심과 도움을 드리는 것, 이웃의 작은 어려움에 마음을 쓰는 것, 이런 것들이 평화의 시작입니다.
양선(善)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6월에 함께 나누고 있는 성령의 열매가 양선입니다. 우리의 작은 선함의 실천이 참 평화를 만들어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을 공동체에서 평화를 만들어가려면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진정으로 "평안히 가라"고 인사한다면, 그 사람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평안을 빌어주는 마음이라면 그 사람에 대해 뒤에서 수근거릴 수 있겠냐는 것이죠. 평안을 빌어주는 마음과 뒤에서 수근거리는 마음 사이에는 모순이 있습니다. 정말로 그 사람의 평안을 바란다면,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 하고, 그 사람의 필요를 살펴야 하고, 그 사람과의 작은 오해나 갈등을 키우지 않고 화해로 이끄는 지혜를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한 사람의 작은 평화의 행동이 가정과 마을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큽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이웃에게 따뜻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 그것을 본 다른 사람들도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됩니다. 한 가정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 모습이 자녀들에게 전해지고, 또 다른 가정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다른 의견이 있어도 평화롭게 대화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나이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달라도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진정한 평화입니다.
야고보는 14절에서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라고 물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유익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행함이 있는 믿음, 실천이 있는 평화는 놀라운 유익을 가져다줍니다. 우리 마음도 편안해지고, 관계도 좋아지고, 공동체도 건강해집니다.
우리 중앙교회 성도들이 먼저 작은 평화를 실천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셋째, 하나님은 "평화를 삶으로 증명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야고보서 2장 1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야고보서 2:18 NKRV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나는 행함으로 나의 믿음을 너에게 보이리라" 이것이 핵심입니다. 평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이 아닌 행함으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19절을 보면 흥미로운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귀신들도 믿고 떨지만, 그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머리로만 아는 것과 삶으로 사는 것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평화가 어떻게 증명될까요? 21절에서 야고보는 아브라함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것은 단순한 순종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완전한 평화 관계에서 나온 온전한 신뢰였습니다. 의무감이나 억지로가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에서 나온 행동이었습니다.
우리의 평화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억지로, 의무감으로 하는 평화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평화로운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평화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평화를 이루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말로만 평화를 외치는 사람이 아니라 삶으로 평화를 보여주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20절에서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이를 향하여 "아아 허탄한 사람아"라고 했습니다. 허탄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의무감으로 하던 신앙생활이 점점 하나님과의 평화로운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기쁨이 됩니다. 성령의 열매 양선이 우리 안에서 익어가는 과정입니다.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는 "해야만 한다"는 마음이 앞섰을 것입니다. 예배도 드려야 하고, 기도도 해야 하고, 봉사도 해야 하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기꺼이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바뀌어갑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을수록, 그 사랑에 대한 감사함으로 자연스럽게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신앙의 성장입니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의무가 아니라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평화를 만들어가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억지로 하는 친절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사랑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평화를 증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사명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설교를 시작할 때 "Are you still alive? 아직 안 죽 살아계세요?" 우리의 "안녕하세요?"가 담고 있던 간절한 마음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입니다.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진심 어린 관심과 사랑의 표현이어야 합니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작은 평화의 실천이 있기를 바랍니다. "평안히 가라"는 인사를 진심으로 전하십시오. 그리고 정말로 그 사람이 평안할 수 있도록 작은 관심과 도움을 베푸십시오. 성령의 열매 양선이 여러분 안에서 익어가도록 하십시오.
참 평화를 만들어가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랑하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우리를 당신의 말씀 앞으로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참 평화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신 은혜가 고맙습니다.
주님, 우리가 얼마나 자주 말과 행함이 다른 사람들이었는지요. "평안하세요"라고 인사하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불편함을 품고 살았습니다. 이런 우리의 모순된 모습들을 아시면서도 여전히 사랑해주시는 주님 앞에 고개를 숙입니다.
이제 우리를 새롭게 빚어주소서. 작은 것에서부터 평화를 일구어가는 사람들로 만들어주소서. 농사일로 지친 가족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고, 어려운 이웃의 필요를 외면하지 않으며, 갈등이 있는 곳에 화해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지금도 총성이 그치지 않는 이스라엘과 이란의 땅을 기억해주소서. 전쟁의 공포 속에서 떨고 있는 어린아이들,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울고 있는 어머니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옵소서. 미움의 악순환을 끊어주시고, 그 땅에도 당신의 평화가 강물처럼 흘러가게 하옵소서.
하나님, 이 시대의 교회들을 깨워주소서. 말로만 평화를 노래하지 않고, 우리의 삶으로 평화를 증명하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분열된 곳에 다리를 놓고,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며, 절망하는 이들에게 소망의 빛을 비춰주는 주님의 손과 발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중앙교회가 이 작은 마을에서부터 평화의 향기를 퍼뜨리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성령의 열매 양선이 우리 마음 밭에서 무르익게 하시고, 억지로가 아닌 감사함으로, 의무감이 아닌 기쁨으로 이웃을 섬기는 사람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통해 이 땅에 당신의 평화가 한 방울씩 스며들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헌금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주님의 평화가 당신과 함께 하길 바랍니다"**라는 샬롬의 인사를 나누며 예배드릴 수 있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참된 평화는 말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현되어야 함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드리는 헌금도 단순한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평화로운 관계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표현이 되게 하옵소서.
십일조를 드리신 _______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인정하고 첫 열매를 드리는 이 믿음의 헌신을 통해 더욱 큰 복을 허락해 주옵소서.
감사헌금을 드리신 _______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행함으로 나타나는 이 아름다운 고백을 기뻐 받아주옵소서.
선교헌금을 드리신 _______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평화가 확장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이 헌금을 통해 복음이 전해지게 하옵소서.
생일감사헌금을 드리신 _______ 성도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소중한 생명의 날들을 기념하며 드리는 이 감사의 마음을 기뻐 받아주옵소서.
또한 주정헌금, 구역헌금, 성미, 그리고 다양한 봉사로 섬겨주시는 모든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헌신이 작은 것에서 시작되는 평화의 실천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이 헌금들이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 이웃들을 돌보는 일에 사용되게 하시고, 우리 교회를 통해 이 지역에 참된 평화가 임하게 하옵소서.
성령의 열매 양선이 우리 안에서 익어가게 하시고, 말로만 평안을 빌지 않고 삶으로 평화를 증명하는 성도들이 되게 하옵소서.
마지막으로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의 삶과 건강을 축복해 주옵소서. 농사일로 수고하시는 분들의 몸을 건강하게 지켜주시고, 어르신들을 평안 가운데 보호해 주옵소서. 각 가정에 하나님의 평화가 충만하게 하시고, 모든 일상이 감사와 기쁨으로 채워지게 하옵소서.
**"아직 살아계세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서로를 돌보며, 참된 평화를 만들어가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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