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처럼 춤을 추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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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중고등부>
역대상 15:25-29
“다윗처럼 춤을 추면서”
2025. 6. 22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도 이 아침에 함께 예배드리기 위해 모인 여러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환영합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온 것을 기뻐하면서 춤을 춘 내용인데요. 다윗이 왕이면서도 백성들 앞에서 춤을 췄어요.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팔짝팔짝 뛰면서 춤을 추고 뛰어 놀았어요. 왜냐하면 너무 기뻐서. 하나님의 언약궤가 오랫동안 하나님의 성막을 떠나 있었거든요. 성경의 기록에 따르면 20년 이상을 언약궤가 떠나 있었어요.
그런데 왜 언약궤가 떠나 있었는가 하면, 블레셋이 언약궤를 뺏어간 거예요. 사무엘상 4장을 보면, 그 기록이 있거든요.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전쟁을 했는데, 첫번째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패배하고 4천 명이 죽었어요. 그래서 백성들이 충격을 받고, 왜 우리가 졌는지 피드백을 합니다. 왜 졌지?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하나님이 안 도와줘서 진 것 같은 거예요. ‘당연히 이길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이 안 도와주셔가지고 우리가 졌다.’
그래서 백성들이 어떻게 하냐면, 언약궤를 전쟁터로 가져오자는 결정을 내려요. 언약궤가 여기 있으면, 하나님이 어쩔 수 없이 우리를 도와주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한 거죠. ‘하나님, 우리가 또 지면 이거 언약궤 뺏길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셔야겠죠~?’ 이렇게 잔머리를 굴리고, 언약궤를 가져와요.
그런데 어떻게 됐을까요? 져버렸어. 하나님이 안 도와주셨어. 왜 안 도와주셨을까? 백성들이 싸가지가 없잖아. 처음에 전투에 졌으면, 당연히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부르짖어 기도를 해야 되는데, 그게 아니라 마치 하나님을 협박하듯이, 언약궤를 들고 왔어. ‘언약궤 뺏기기 싫으면 이기게 해주세요~’ 이러면 도와주고 싶다가도 도와주기가 싫지. 그래서 그냥 냅둬버렸어요.
사무엘상 4장 10절, 11절에 보면 전쟁의 결과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어요. “블레셋 사람들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 명이었으며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첫번째 전투 때는 4천 명이 죽었는데, 이번에는 몇 명이 죽었어요? 3만 명. 거의 8배 가까이 죽었죠. 그만큼 엄청난 패배를 한 겁니다. 병사들도 엄청나게 죽고, 결국에 언약궤까지 빼앗겼어요. 사실은 전투에 진 것보다 언약궤를 빼앗긴 것이 더 큰 손실이죠. 병사는 다시 모을 수가 있지만, 언약궤는 다시 만들 수가 없거든요. 오직 하나밖에 없는 거예요.
이때 언약궤가 블레셋으로 옮겨졌다가 여러 장소를 옮겨다닙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되는데, 곧바로 성막으로 돌아오지 않고, 계속 다른 곳에 머물러 있었어요. 제가 이 언약궤의 이동경로를 만들어 봤는데요. 굉장히 많은 곳을 돌아다녔죠. 이 기간을 다 더하면 20년이 넘어요. 거의 21년 정도 되거든요.
여기 보면, 언약궤가 본래는 실로에 있었어요. 실로에 있는 하나님의 성막 안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이 뺏어갔죠. 그래서 블레셋 땅 아스돗으로 옮겨졌는데, 거기서 계속 나쁜 일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가드로 옮겼다가 또 에그론으로 옮겼어요. 전염병이 생기고 안 좋은 일이 일어나니까, 하나님의 저주가 임했다고 생각하고, 계속 언약궤를 다른 곳으로 토스하는 거예요. ‘야, 너희가 갖고 가. 아니야. 너희가 갖고 가.’ 계속 다른 데로 떠넘겨.
그러다가 도저히 안 되겠으니까 아예 그냥 이스라엘에게 돌려줘버리자, 하고 유다 지파의 땅인 벧세메스로 옮겨갑니다. 그런데 어떻게 옮겨 갔느냐, 수레에다가 실어갔어요. 수레를 하나 새로 만들어가지고, 거기에다가 언약궤를 싣고, 소 두 마리가 수레를 끌고 갔어요.
그래서 벧세메스에 도착을 했는데, 벧세메스 사람들이 언약궤가 신기해서 언약궤 뚜껑을 열어봤어. 그러면 안 되는데, 뚜껑을 열고 안을 들여다 봤어요. 그래가지고 70명이 죽었어요. 뚜껑을 열어서 봤다는 이유로. 하나님의 언약궤가 단순한 궤짝이 아니거든요. 하나님이 임재하신다는 엄청난 의미가 담긴 거룩한 성물이에요. 그래서 본래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성막 지성소 안에 보관되는 거거든요. 지성소는 대제사장이 1년에 딱 한번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야. 그런 곳에 보관된다는 것은, 그 정도로 언약궤가 소중하다는 거죠.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언약궤를 궁금해 할수밖에 없어요. 대제사장만 볼 수 있는 거잖아. 다른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못 봐. 그런데 그런 대단한 언약궤가 우리 마을에 왔다고 하니까 궁금하잖아. 언약궤가 어떻게 생겼을까? 가서 보니까 금으로 덮여가지고 반짝반짝하고 너무 멋있어. 그러면 과연 그 안에는 뭐가 들었을까? 궁금하니까 열어서 본 거예요. 그래서 70명이 죽습니다.
70명이 죽으니까 두렵잖아요. 그래서 이 언약궤를 그 다음에 기럇여아림으로 옮겨요. 정확히는 기럇여아림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으로 옮겨놓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곳에서 20년 동안 머물렀어요. 그러니까 사실상 블레셋에 있었던 기간은 몇 개월밖에 안 되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기럇여아림에 있었던 거예요. 기럇여아림도 유다 지파의 땅이었거든요. 그런데 그냥 거기 계속 머물고, 성막으로 옮겨지지를 않았어요. 왜냐하면, 무서우니까. 언약궤 안에 들여다 봤다가 70명이 죽었잖아요. 그래서 혹시라도 나도 죽을까봐, 사람들이 옮길 생각을 안 해요. 그렇게 20년 동안 사람들이 언약궤를 방치하는 거예요.
그러다가 나중에 다윗이 왕이 되고 나서야 마침내 언약궤를 옮겨오는 겁니다. 다윗이 왕이 되어서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사 갔죠. 그때 성막도 예루살렘으로 옮겼어요. 그래서 언약궤를 본래 있었던 실로가 아니라 예루살렘으로 옮겨오게 됩니다.
여러분, 그런데 언약궤가 왜 중요할까요? 언약궤가 중요한 이유는 언약궤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었기 때문이에요. 언약궤가 이렇게 생겼거든요.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고, 순금으로 덮었어요. 그리고 이 안에는 3가지가 들어있는데,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 아론의 싹난 지팡이, 언약의 두 돌판. 이렇게 3가지가 언약궤 안에 들어있어요. 이 3가지는 각각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데, 만나는 하나님의 돌보심을 의미하고, 아론의 지팡이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의미하고, 언약의 돌판은 하나님의 언약을 의미해요.
종합해보면, 하나님이 백성들을 택하시고, 그들을 돌보시고, 그들과 언약을 맺으셨다는 겁니다. 굉장히 중요한 의미죠. 그런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 언약궤 위에 임재하신다는 거예요. 언약궤 뚜껑에 천사 두 명이 있는데, 이 천사들의 이름이 케루빔이에요. 케루빔. 이것을 우리 성경에서는 ‘그룹’이라고 번역을 했어요. 걸그룹이 아니고, 케루빔을 그룹으로 발음해서 번역을 한 거죠. 어쨌거나 이 두 그룹 날개 사이에 하나님이 임재를 하시는데, 바로 이런 식으로, 이렇게 날개 사이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모습으로 생각을 한 거죠.
그래서 이 언약궤 뚜껑을 하나님의 발등상이라고도 불러요. 하나님의 발판, 발등상. 하나님이 발로 밟고 서계시니까 그렇게 부르는 거예요.
어쨌거나 그래서 이 언약궤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다윗 이전까지는 언약궤를 되찾으려는 시도가 없었어요. 다윗 전에 사울이 왕이었잖아요. 사울은 언약궤를 신경도 안 썼어. 그러다가 다윗이 왕이 되어서 마침내 언약궤를 옮겨오는 겁니다.
그런데 다윗이 한번에 옮겨 온 게 아니에요. 먼저 한번 실패를 하고, 두번째에 옮겨 온 겁니다. 첫번째는 실패했어요. 왜 실패했을까요? 실패한 이유는 언약궤를 옮기면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언약궤를 얼른 옮겨오는 데만 정신이 팔려서, 지켜야 할 걸 안 지켰어.
아까 블레셋이 언약궤를 뺏어 갔다가 이스라엘에 돌려줬다 그랬죠. 그때 블레셋이 언약궤를 어떻게 옮겨갔다 그랬어요? 수레를 만들어서 거기에 싣고 갔다 그랬잖아요. 이 내용이 사무엘상 6장 7절에 있어요. “여호와의 궤를 가져다가 수레에 싣고…”
수레에다가 실어 갔어. 그런데 다윗이 똑같이 따라해요. 역대상 13장 7절 봐볼까요? 다윗이 어떻게 옮겼는가? 보니까,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블레셋이 한 그대로 다윗이 따라했어요. 언약궤를 수레에 싣고 가버렸어. 이렇게 하면 안 되거든요. 언약궤는 어떻게 옮겨야 하냐면, 어깨에 메고 옮겨야 돼요. 수레에 싣는 게 아니라, 사람이 어깨에 메고 가야 돼. 그것도 아무나 멜 수가 없어요. 오직 레위 지파만이 멜 수가 있어. 그것도 모든 레위 지파가 되는 게 아니라, 레위 지파 중에서 고핫 자손만이 멜 수가 있어요.
민수기를 봐 볼까요? 민수기 4장 15절에 보니까, “…고핫 자손들이 와서 멜 것이니라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라 그들이 죽으리라…” 고핫 자손들이 어깨에 메야 돼. 다윗이 이것을 안 지킨 거예요. 이것이 첫번째 잘못된 것이고.
두번째 잘못된 것도 있는데, 그것은 언약궤를 만졌다는 거예요. 지금 이 말씀에 성물을 만지면 죽는다 그랬죠. 성물이 언약궤를 말하는 거거든요. 이거는 만지면 안 돼. 만지면 죽어요.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법이야. 하나님의 법은 무조건 지켜야 돼요. 그래서 실수로라도 만지면 안 돼. 아까 벧세메스에서 사람들이 언약궤 열어가지고 안을 들여다봤다가 70명이 죽었잖아요. 이것도 하나님의 법을 무시했기 때문에 죽은 거예요.
다윗이 첫번째로 언약궤를 옮길 때, 웃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언약궤를 만져버렸어. 그런데 일부러 만지려고 만진 것은 아니고, 갑자기 수레가 흔들려서 언약궤가 떨어질까봐 떨어지지 말라고 잡은 거예요. 이거는 나쁜 맘으로 한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웃사가 그 자리에서 즉사했어.
여러분, 웃사가 죽을 정도로 잘못했나요? 언약궤 떨어지지 말라고 잡은 건데, 이게 그렇게 잘못한 거야? 우리가 볼 때는 잘못한 게 아닌 것 같죠. 그런데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잘못이라는 겁니다. 역대상 13장 10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화를 내셨거든요. 역대상 13장 10절에 보니까,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듦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치시매 그가 거기 하나님 앞에서 죽으니라” 아멘.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웃사가 언약궤를 만진 것 때문에, 여호와께서 엄청나게 화가 나셨다는 거예요. 왜 그렇게 화가 나셨을까? 바로, 하나님을 무시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너무 친숙하게 여기다보니까, 언약궤를 그냥 보통 물건처럼 대하는 거예요. 하나님은 이것이 화가 나시는 겁니다. 내가 했던 명령 중에 지키는 게 하나도 없잖아. 수레에다 실어버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만져버리고. 아무리 좋은 의도로 한 행동이라 하더라도, 법도에 맞지 않으면 잘못된 거예요.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 돼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행동해야 됩니다. 내가 생각했을 때 ‘이렇게 이렇게 하면 되겠지?’ 이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이것을 먼저 생각해야 된다는 겁니다.
다윗은 처음에 그것을 지키지 않았어요. 그래서 언약궤를 옮기는데 실패합니다. 그리고 3개월 뒤에 다시 두번째로 언약궤를 옮기려고 합니다. 이제는 자기가 실패한 이유를 알았기 때문에 철저하게 하나님 말씀대로 행동했어요. 역대상 15장 2절을 보면, 다윗이 아주 철저하게 준비하는 모습이 나오는데요. 역대상 15장 2절 다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다윗이 이르되 레위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궤를 멜 수 없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택하사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영원히 그를 섬기게 하셨음이라 하고”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제 정확히 알고 있죠. 레위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궤를 멜 수 없다. 이제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행하도록 명령해요. 모든 절차를 하나님이 명령하신 그대로, 철저하게 지킨 겁니다. 그리고 누구도 언약궤를 함부로 여기지 않고, 정말 하나님을 대하듯이 두렵고 떨림으로 대했어요.
그래서 마침내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옮겨오게 됩니다. 이것을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뻐했어요. 20년 동안 떠나있던 언약궤가 마침내 돌아왔구나. 20년 동안 하나님의 임재가 없었는데,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임재하시겠구나. 이게 너무 기뻐서 다같이 노래를 하고 악기를 연주하고, 잔치 분위기였어요.
이때 다윗이 너무 좋아서 춤을 춰요. 오늘 본문 29절에 기록이 돼있는데요. “여호와의 언약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춤추며 뛰노는 것을 보고 그 마음에 업신여겼더라”
다윗이 춤을 추고 막 뛰어놀았어요. 너무 좋아서. 한번 실패하고, 두번째에 성공했는데, 단순히 언약궤를 옮겨온 게 기쁜 게 아니라,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이 기쁜 거예요. 마치 잃어버렸던 가족을 되찾은 것처럼, 하나님의 임재를 모시게 된 것에 대한 감격. 그 감격이 춤으로 폭발되어 나온 겁니다.
그래서 무아지경, 무슨 춤인지도 몰라. 그냥 춰. 디스코, 셔플, 브레이크 댄스. 백덤블링 하고. 그런데 그때 한 사람은 기뻐하지 않았어. 다윗이 춤 추는데, ‘저게 뭐 하는 짓거리여?’ 하고 업신여긴 사람이 있었어. 그게 누굽니까? 다윗의 아내 미갈이죠.
다윗이 왜 기뻐하는지, 백성들이 왜 즐거워하는지 이해를 못해. 언약궤가 언약궤지. 저게 온 게 그렇게 좋은 거야? 만지면 죽는다는데, 그런 무서운 걸 뭐하러 가져와? 이해가 안 되죠.
그리고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왕이 백성들 다 보는데 춤을 춘다는 것도 이해가 안 돼. 체면 상하잖아. 쪽팔리게 저게 뭐하는 짓이야? 업신여겨.
뿐만 아니라, 지금 미갈이 어디 있어요? 궁궐 안에 있어. 안에서 창문으로 보고 있는 거예요. 백성들은 다 밖에서 노래하고 즐거워하는데, 혼자 궁궐 안에서 나와보지도 않아.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언약궤가 오는데, 싸가지가 없는 거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아. 오면 오는 거지.
여러분, 같은 백성이면서도 이처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있어요. 오늘날에도 그래요. 같은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있어. 하나님을 정말 경외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교회는 다니는데, 하나님을 별로 생각하지 않고 예배도 나왔다가 안 나왔다가, 눈 떠지면 가고, 안 떠지면 그냥 자고. 분명히 같은 신앙의 사람인데 마인드가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있어요. ‘그냥 한번씩 예배만 드리면 되지, 예배가 그렇게 중요한 거야?’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거예요. 마치 미갈처럼.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체면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내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러면서도 그게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 그리고 하나님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업신여기고, 비웃는 사람.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죠.
우리는 다윗과 같이, 한번 실수했더라도 반성할 줄 알고, 그 뒤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철저히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전심으로 하나님만 바라보고, 내 생각, 내 자존심, 내 체면 다 내려놓고, 다윗처럼 춤을 추면서 기쁨으로 주를 즐거워 할 줄 아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