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5장

새벽기도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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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의 재회

지난 주 수요일때 말씀 드렸던 것처럼 저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기독교 기숙사 학원에서 1년간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요, 거기가 한 특징이 아예 휴대폰 사용도 할 수가 없고, 게다가 새로 들어온 학생은 못해도 8주간은 집에 한번 들를 수도 없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가족이랑 떨어져지내본 적이 처음이었는데 그냥 몸만 떨어진게 아니라 심지어 연락도 일체 못하다 보니까 이게 굉장히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짧은 휴가를 얻어서 2박 3일 정도 집에 돌아갈 수 있었는데, 처음 부모님이랑 연락도 없이 떨어졌다가 다시 만나니까 그렇게 눈물이 막 나오더라구요. 제가 평소에 워낙 무뚝뚝하고 부모님과 대화도 잘 안하고 그랬는데 그렇게 우는 모습을 보시고 많이 놀라셨다고 이야기하신게 기억이 납니다.

내러티브

오늘의 본문말씀인 창세기 45장도 그런 가족간의 재회, 요셉이 드디어 스스로가 누군지를 밝히고 형제들과 감동의 재회를 하는 장면인데요, 보시면,
먼저 요셉이 자신을 시중드는 사람들 앞에서 도저히 그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모두 물러나라!”라고 시종들을 물립니다. 그리고서는 형제들에게 자신이 누군지 말하고서는 파라오 왕의 궁에도 들릴 정도로 큰 소리로 우는데요,
말하기를 “제가 요셉입니다!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계시다구요?”하니까 형제들은 “뭐, 뭔소리를 하는거야?”하면서 어리둥절 해있는데, 요셉이 다시 말하죠, “부디 이리 가까이 오십시오” 하니까 그제서야 형제들이 조금씩 요셉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하는 말이
“제가, 제가 바로 형님들이 이 이집트 땅으로 팔아넘긴 그 동생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자책하지도 걱정하지도 마십시오! 여러분들이 저를 이곳에 팔아넘긴 것은 하나님께서 수많은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저를 이곳에 먼저 보내셨습니다!” 라고 하면서 “이 땅에 지금까지 흉년이 든지 2년 째가 됩니다. 그런데 앞으로도 5년 동안은 밭을 갈지도 못하고 거두지도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이 땅 가운데 보내신 것은 하나님께서 큰 구원을 베푸셔서 형님들과 자손들의 목숨을 지켜주려고 하신 것입니다. 정말 저를 이리로 보내신 것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이땅 가운데 보내셔서 파라오 왕의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집안의 최고 어른이 되게 하시고, 이집트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습니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토로합니다.
여기서 잠시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셨다, 라고 하는 말은 정말 양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되었다는 뜻은 아니구요, 이집트에서 쓰이는 여러 칭호 중에, “신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칭호가 있는데요, 바로 파라오의 궁정에서 일하는 관리와 특히 제사장을 칭하는 호칭입니다. 제사장이나 관리는 파라오 왕에게 조언하고 이런저런 국가 정책과 관련한 일들을 상담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치 아들이 아버지에게 상담을 하는 것처럼 이집트의 거의 신처럼 여겨지는 파라오의 아버지처럼 조언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요셉은 자신의 말을 이어가는데요, “이제 어서 아버지께로 가셔서 아들인 요셉이 하는 말이라고 이렇게 전달해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저를 이집트 온 나라의 주권자로 삼으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지체하지 마시고 어서 이집트로 내려오십시오. 고센 땅에서 지내시면서 저와 가까이 계실 수 있습니다. 아들들과 손자와 양과 소와 모든 재산을 가지고 함께 오시길 바랍니다. 아직 흉년이 5년이나 더 지속되니, 제가 여기서 아버지를 모시겠습니다. 이곳에서 지내시면서 아버지와 딸린 식구들 모두가 아쉬운 것 하나 없도록 제가 잘 섬기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려주십시오. 보십시오! 지금 형님들께 말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요셉입니다. 제 동생 베냐민도 자기 눈으로 저를 보고 있습니다. 제가 여기 이집트에서 누리고 있는 이 모든 부귀영화와 보신 것들을 어서 아버지께 말씀드리고 빨리 모시고 내려오십시오.,”
그러고서는 자기 동생 베냐민을 막 얼싸 안고 울고, 베냐민도 울면서 요셉의 목에 매달립니다. 형들과도 하나하나 다 입맞추면서 부둥켜 안고 울고 그제서야 형들이 요셉과 말을 주고받았다고 합니다.
여기서 파라오도 이 소식을 전해듣고 신하들과 함께 크게 기뻐하면서 말하죠. “그대의 형제들에게 나의 말을 전하시오. 부친과 가족들을 이곳에 데리고 오시오. 이집트에서 가장 좋은 땅을 드릴 터이니 그 기름진 땅에서 나는 것을 누리면서 살수있다고 전하시오. 또 어린 것들과 부인들을 태우고 와야하니 수레도 여기서 여러대를 가지고 올라가서 아버지를 데리고 오시오. 또한 굳이 모든 물건들을 다 가지고 올 필요가 없소. 이 이집트의 모든 좋은 것들이 그대들의 것이 될터이니 버릴 물건들은 미련없이 버리고 오시오”
그렇게 그래서 이제 정말로 요셉은 파라오가 말한대로 수레도 여러대 내주고 먹을것도 마련해주고, 새 옷을 한벌씩 주는데, 베냐민에게만 특별이 은돈 삼백과 옷 다섯벌을 주었다고 합니다. 참 아이러니 하지요. 원래 이 모든 이야기가 요셉이 옷 한벌을 아버지에게서 받은 것으로 시작되었는데, 이제는 요셉이 누구에게 옷 몇 벌을 줄 수 있는지 선택할 수 있는 총리의 자격으로서 옷을 나눠줍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드릴 예물도 더 챙겨서 떠나는 그들에게 “아이고 형님들, 또 가면서 너 때문에 동생이 팔렸다드니 싸우지들 말고 편안하게 가셔요”라고 말하며 배웅합니다.
이제 이 말을 형제들이 아버지인 야곱에게 전하는데 야곱이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고 어리벙벙하고 있다가 저기 멀리 본 적 없던 수레가 들어오고 나니까 그제서야 정신을 차려서 “내 아들 요셉이 살아있다니! 내 죽기전에 내 아들을 만나봐야지!” 하는 것으로 오늘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재림

오늘 말씀은 이제 그간의 요셉이 고생하고 했던 이야기와 형제들을 시험하는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이집트의 총리로서 형제들과 재회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전까지의 말씀은 일종의 테스트를 형제들에게 행했던 것이죠. 지난주에 이주혜 전도사님이 말씀 전했던 것처럼 유다는 형제들 중에서도 특히 요셉을 팔아넘기고자 제안했었다가 이제는 바뀐 모습으로 변화되어서 오히려 스스로가 남을 대신해서 옥에 갇히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모습을 통해서 요셉은 이 형들이 이전처럼 동생을 팔아넘길 형들이 아니라 정말 동생을 사랑하고 아껴서 몸을 내던질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죠. 달리 이야기하면, 요셉이 스스로를 나타내었을 때, “형님들! 제가 요셉입니다!”라고 밝힐 때에 형들이 자신을 사랑할지 아닐지도 미리 알 수 있었을 겁니다.
이런 사랑의 확인은 저희의 일상에서도 자주 나타납니다. 여러분 혹시 남자들의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드는 여자들의 질문이 뭔지 아십니까? 여자들의 이 말만 들으면 남자들이 뇌를 100% 가동한다고 합니다. 바로 “내가 어디가 좋아?”라는 질문입니다. “얼굴이 이뻐서”라고 대답하면 “나보다 더 이쁜 사람 만나면 그 사람한테 갈거야?”라고 할 수도 있고 “마음이 이뻐서”라고 하면 “그럼 내 얼굴은 안 이쁘다는 거야?”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어떻게 답하지? 인간의 모든 신체부위를 다 언급하면서 예쁘다고 해줘야하나? 그렇다고 오장육부가 예쁘다고 할 수도 없고”라는 고민에 휩싸이게 만드는 질문이죠.
이 질문의 이유는 간단합니다. 예쁘고 말고가 중요하다기 보다는 “나를 사랑하느냐”가 궁금해서 질문하는 것이고 다른 어떤 요인이 있어서보다 “그냥 너니까 좋아”라는 마음을 전하는게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저희들에게 이렇게 사랑을 확인하십니다. “너 나 사랑하니?”하시면서 말이죠.
형들에게 있어서 요셉은 죽은 사람이나 다름 없습니다. 본인들이 그냥 보낸게 아니라 노예로 팔아넘긴 만큼 다시 만날일이 없을 사람이고, 특히 아버지는 형들이 죽었다고 말한만큼 정말로 죽은 아들이나 다름 없을 겁니다. 그런데 오늘 요셉이 마치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처럼 형들 앞에 나타나서 너무나도 반갑게 맞아주고, 또 자신이 주권자로 있는 땅에 초대를 합니다.
오늘 이야기는 예수님의 부활을 떠올리게 합니다. 형들의 시기와 질투가 요셉을 노예로 만들었고, 죽은 아들로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죄가 예수님을 십자가로, 종된 모습으로,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형들 앞에 나타난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제자들 앞에 복된 부활의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또한 요셉은 형들의 사랑을 시험하기 위해서 여러번 왔다갔다 하게 만들었고 또한 그 가운데 사랑의 시험을 그들가운데 내었고, 예수님께서도 저희들의 삶 가운데에서 많은 사랑의 시험을 우리들에게 주십니다. 때로는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묻는 “내가 어디가 좋아?”라고 하는 질문처럼 굉장히 짖궃은 시험이 될 때도 있습니다. 정말 견디기 어려워서 믿음이 흔들릴 정도로 큰 시험이 다가올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저희를 싫어하셔서 그러신 것이 아니라 저희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싶으셔서 그러실 때가 참 많은 것이죠.
그리고 요셉이 형들의 사랑을 확인하고서는 눈물을 흘리며 반갑게 그들을 맞아주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저희의 사랑을 확인하시고 후에 이 땅에 다시 찾아오실 때에 저희들을 아주 반갑게 맞아주실 것입니다.

결론

그래서 오늘 함께 읽은 말씀을 통해 이렇게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는 저희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들이 있다면 그것을 잘 견뎌내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녀로 다시한번 거듭날 수 있도록, 시험을 견뎌낼 힘과 사랑을 주시기를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셨기 때문에 어려움이 닥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하시기 때문에 어려움이 생기는 것임을 기억하고 헤쳐나갈 용기를 위해서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저희 주변에 그렇게 시험당하는 지체들이 있다면 그분들을 한분한분 기억하시면서 기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유다가 원래는 동생을 팔아먹으려고 했다가 오히려 동생이 잡혀갈걸 대신하는 중보자로 나타난 것처럼, 저희도 누군가를 위해서 함께 기도해주는 중보자가 되어야합니다. 혹시 어려움 당하는 주변 이웃이나 성도분들이 계시다면 함께 기도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요셉이 형들을 너무나도 반갑게 맞이해준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다시 오시는 그날에 저희를 너무나도 반갑게 맞이해주실 것을 오늘 말슴을 통해서 보는데요, 그날까지 달려가는 그길에 형들이 요셉 앞에서 동생인 베냐민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처럼, 저희도 주님다시오시는 날까지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데 더욱더 힘쓰는 자가 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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