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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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과 배터리
로봇과 배터리
제가 초등학생 때 방과후 수업을 선택해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체육과 관련해서 탁구나 축구 동아리 수업 같은 것도 있었구요, 아니면 여러가지 만들기 수업도 거기 있었는데요, 저를 딱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가 스포츠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서 보통 남자아이는 축구같은 걸 많이 하는데 저는 로봇을 만드는 수업에 들어갔습니다. 지금도 좀 기억나는 것이 부품을 조립하고 나사를 조이고 풀고, 코딩이라고 해서 이 로봇에게 이걸 누르면 이렇게 움직이고 저걸 누르면 저렇게 움직이고 하는 것들을 넣어서 정말로 로봇 하나를 만들어서 움직이는 수업이었습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까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아직도 그 때 만들었던 물건들이 더 업그레이드 되서 나왔더라구요.
그런데 제가 하루는 아주 열심히 머리를 써서 로봇을 완성을 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소위 좀 똘기가 넘치는 아이여서 선생님이나 아이들한테 “쟤는 진짜 또라이야”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요, 저렇게 자동차처럼 잘 다니다가 남의 로봇을 발견하면 망치같은 걸로 후두려패는 로봇을 만들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로봇을 완전히 다 만들고 코딩도 다해서 이제 작동만 하면 되는데 안 움직이는거예요. 아니 이게 대체 웬일인가? 나는 제대로 만들었는데 대체 뭐가 문제지? 라고 해서 울먹울먹거리면서 선생님한테 도와달라고 하는데, 선생님이 딱 보시고, “얘! 밧데리 집어넣는 부품을 아예 붙이지도 않고 로봇이 굴러가겠니!”라고 하셔서 그제서야 배터리를 담당하는 부품을 완전히 까먹은 게 기억이 납니다. 다행히 이후에 배터리를 잘 집어넣어서 열심히 저보다 어린 아이들 로봇을 때리고 다니는 로봇을 완성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떤 전자기기던지 작동을 하려면 전기가 필요합니다. 그 전기를 공급해주는 것이 보통 배터리로 하거나 아니면 코드를 꽂아서 공급해주는데요, 이것이 없으면 겉으로는 멀쩡해보여도 전혀 작동할리가 없는 것이 바로 전자기기지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마치 배터리와 같은 것이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멀쩡해 보이는 사람인데, 이것이 없어서 죽은 것이나 다름없게 만드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영, 성령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배터리와 같은 분이십니다. 아무리 겉으로는 신실해보이는 사람이라도 성령님이 함께 하지 않으시면 그것은 죽은 믿음의 죽은 그리스도인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함게 읽은 본문말씀은 에스겔 선지자가 본 환상을 기록한 말씀인데요, 이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의 영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배터리와 같은 생명을 불어넣어주시는지 함께 알아보고자 합니다.
에스겔은 누구인가
에스겔은 누구인가
먼저 에스겔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하는데요, 에스겔은 주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에서 활동했던 다른 예언자들과는 달리 바벨론에서 포로로 끌려간 제사장의 아들이었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시작한 사람입니다.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초닷새라
갈대아 땅 그발 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에스겔서의 처음 부분에서는 에스겔이 누구인지에 대한 정보들이 등장하는데요, 여기서 서른번째 해 라고 하는 것은 어떤 역사적인 사건의 서른번째 해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곧 삼십 세 이상으로 오십 세까지 회막의 일을 하기 위하여 그 역사에 참가할 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라
다만 민수기에서 레위 지파의 제사장이 봉사하는 나이가 삼십세부터 50세까지라고 언급하는 것으로 봐서 아마도 제사장인 부시의 아들인 에스겔의 나이, 제사장으로 일할 나이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을 이야기하는 구나 정도로 추측할 수 있구요.
우리가 사로잡힌 지 스물다섯째 해, 성이 함락된 후 열넷째 해 첫째 달 열째 날에 곧 그 날에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시되
에스겔은 50세가 되어서 제사장 일을 내려놓아야하는 사로잡힌 후 25년 후까지 말씀을 전한 예언자이자 제사장의 역할도 담당했다는 것을 저희가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다시 1-3절 말슴을 보시면 바벨론의 그발 강 가에서 사로잡혀있는 중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셨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때가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지 오년째가 되는 날이라고 하는데요,
여호야긴 왕이 포로로 끌려간 것이 대략 기원전 597년이라고 하니까 에스겔이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한 것은 대략 기원전 593년 정도로 볼 수가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성전이 파괴된 것이 586년이니까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약 6년 전에 소명을 받고 말씀을 전하기 시작한 것으로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그발 강 가 라고 하는 곳은 명확하게 어떤 강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구요,
이에 내가 델아빕에 이르러 그 사로잡힌 백성 곧 그발 강 가에 거주하는 자들에게 나아가 그 중에서 두려워 떨며 칠 일을 지내니라
델 아빕이라고 해서 백성들이 사로잡혀있던 장소를 이야기합니다. 이 델 아빕이라고 하는 말은 홍수의 폐허도시, 그러니까 홍수로 인해서 떠밀려온 쓰레기들로 만들어진 폐허라고 하는 뜻입니다. 유다 왕국에서 포로로 잡혀온 백성들을 아마 전쟁이나 홍수로 파괴된 장소에다가 배치를 시켜서 거기를 재건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수도 있구요, 아니면 바벨론이라고 하는 홍수를 만나 휩쓸려서 정착한 곳, 이라는 뜻으로도 볼 수가 있습니다.
이 장소는 생각보다 유명한 장소입니다. 시편에서도 등장하는 장소인데요,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여러분 혹시 이 노래 알고 계십니까? “By the rivers of Babylon, there we sat down. Ye-eah we wept, when we remembered Zion.”
이 노래가 바로 이 시편에서 나온 가사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아마 “다들 이불개고 밥먹어~”라고 기억하실 수도 있고, 야구 좋아하시면 “롯데의 강민호~”라고 기억하실 수도 있는데요, 노래 자체는 굉장히 신나는 팝송이지만, 가사에 해당하는 시편은 마치 홍수에 떠밀린 쓰레기처럼 바벨론의 강가에 앉아서 시온 산, 예루살렘을 기억하면서 울었다는 내용입니다.
이처럼 에스겔은 가장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백성들과 함께 지냈던 포로로 사로잡힌 예언자였고, 그 가운데서 말씀을 전한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말씀 이전까지는 다른 예언자들과 같이,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이다! 속히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라는 말씀을 전해왔는데요,
우리가 사로잡힌 지 열두째 해 열째 달 다섯째 날에 예루살렘에서부터 도망하여 온 자가 내게 나아와 말하기를 그 성이 함락되었다 하였는데
에스겔이 사로잡힌지 열두째 해, 예루살렘 멸망 이후 한 1-2년 뒤에 결국 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에스겔에게 도착하게 됩니다.
마른 뼈의 환상
마른 뼈의 환상
오늘 본문 말씀은 예루살렘이 함락한 소식을 들은 에스겔에게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환상입니다. 아마 교회를 오래 다니신 분들에게는 익숙한 말씀이기도 할 거에요. 바로 마른 뼈가 살아나는 환상인데요,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에스겔이 환상 중에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하나님의 영으로 어느 골짜기에 데리고 가셨는데, 거기에 그냥 사람 뼈가 한 가득있고, 또한 굉장히 말라 비틀어진 뼈들이었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사실 이렇게 뼈가 골짜기에 가득한 상황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닙니다. 아무리 지금으로부터 대략 2600년 전의 일이라고는 하지만요, 이 때도 사람을 장례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땅에 묻거나 화장을 하거나 아니면 고대에는 풍장이라고 해서 땅에 묻지는 않고 시신을 정성스럽게 땅 위에 두어서 자연스럽게 풍화되도록 하는 장례도 있었는데요, 이렇게 골짜기에 뼈들이 가득하다는 것은 제대로된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죽은 이들, 아주 큰 재앙이 닥쳐서 그렇게 됐거나 아니면 전쟁이 일어나서 그곳에서 죽고 버려진 이들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아까전에 바벨론 강가에서 포로로 있었다라고 하는 표현이 마치 홍수에 떠밀린 쓰레기와 같은 곳에서 유다 백성들이 있었다고 말씀드린바 있습니다. 바로 이 말라비틀어진 뼈들은 의심할여지 없이 그렇게 홍수처럼 떠밀려가는 재앙,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성전이 파괴되고,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거기서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물어보십니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사람아, 이 뼈들이 도대체 살아날 수가 있겠느냐?” 거기에 에스겔은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대답하지요.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그리고서는 하나님께서 이 모든 마른 뼈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말씀인고 하니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께서 이 뼈들에게 힘줄을 뻗히게 하고 살을 입히고 피부를 덮고, 생기를 불어넣어서 다시 살아나게끔 하겠다, 또 그 때가 되면 비로소 나 여호와가 너희의 하나님인줄 너희가 알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그래서 정말로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까 뼈들이 덜그럭 덜그럭 움직이면서 서로 연결되고, 힘줄과 살과 피부가 생겨서 생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보시면 그 속에 생기가 없었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여기서 이 생기라고 하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루아흐(רוּחַ)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원래는 바람, 이라고 하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바람이라는 뜻 뿐만 아니라 영, 생기, 그리고 성령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사람의 루아흐는 영혼이고, 하나님의 루아흐라고 하면 성령이 되는 것이죠.
이 생기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부터 불어넣으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으셨을 때에 비로소 사람이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처럼 아무리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피부가 덮여도 그 속에 생기가 생기기 전까지는 사실 살아있는 상태라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번엔 생기를 향해서 말씀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생기로 하여금 이 죽은 자들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는 말씀이시죠. 그 말씀대로 전했더니 생기가 들어가서 살아나게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어선 자들을 보니 아주아주 큰 군대였다, 라고 말씀하시는데요. 이 군대는 꼭 반드시 군사적인 의미로서의 군대라고 하기 보다는 전쟁을 나가는 군대와 같이 아주 많은 수의 사람을 이야기합니다.
이들이 누군고 하니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하나님께서 이 뼈로부터 살아난 극히 큰 군대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사람들이 말하기를 “우리는 아주 말라 비틀어진 뼈같이 소망도 없고 아주 다 싸그리 멸절된 족속이야!”라고 이야기한다고 하시면서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한즉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말씀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족속으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마치 죽은 것 같은, 도저히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말라 비틀어진 뼈같은 너희들을 무덤에서 나오게 하리니 너희가 내가 너희 하나님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라고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에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 나의 영을 너희 속에 두어서 살아나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를 고국 땅으로 돌아가게 할 것이니 내가 이 일을 말하였고 또한 이룬 줄을 너희가 알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이 없으면.
성령이 없으면.
사실 오늘 말씀은 유명한 만큼이나 아주 이해하기 쉬운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통해서 하시는 말씀은 아주 명확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스스로가 말라비틀어진 뼈와 같이 우리는 죽었다 소망이 없다, 멸망한 민족이다 라고 하고 있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그 뼈에 살이 붙게 하시고 또한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고향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고 거기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하신 줄을 알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유심히 들여다 보시면 하나님께서 총 세번의 대언을 말씀하십니다. 첫번째 대언에서는 뼈에 힘줄과 살과 피부가 붙는 것, 두번째 대언에서는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살아나게 하시는 것, 마지막 대언에서는 하나님께서 무덤을 열고 나오게 하셔서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니 살리실 거면 분명 한번에 살리실 수 있는 하나님이신데 왜 이런 단계를 거쳐서 꼭 말씀하셨어야 했을까요?
이것은 오늘 말씀에서 너무나도 중요한 것이 바로 생기, 다른 말로는 영이기 때문입니다. 뼈에서 힘줄과 살과 피부가 돋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불어넣어주시는 생기가 없으면 그것은 제대로 살아있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정확히 이야기하면 유다 백성들도 보세요. 사실 예루살렘과 하나님의 성전이 그들한테 있다고 한들 그 안에서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순종하지 못한 모습으로 하나님께서 수많은 예언자들을 그들에게 보내셔서 회개하라, 회개하라 라고 말씀하셨는데도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가 마른 뼈와 같이 포로로 사로잡혀서 홍수에 떠밀린 쓰레기와 같은 취급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아무리 뛰어난 육체를 가지고 있다고 한들 그 안에 영이 없으면 그것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아주 유명한 말씀이죠, 인간의 죄로 인해서 나타나는 결과는 사망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육체의 사망도 이야기하지만 영혼의 사망, 즉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임을 또한 이야기하는 것을 저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망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지요, 이어지는 말씀에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다른 말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우리가 사망에서 구원을 받고 영생할 것이라는 것이 가장 기초적인 저희의 믿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지 간에 이 믿음으로 죄에서 사망에서 구원받는 다는 것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바로 그냥 “예수님 믿습니다”라고 한 마디만 하면 바로 구원이 완성되서 무슨 천국행 티켓을 받아 가는줄 아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거예요.
오늘 본문말씀에서도 본 것처럼 아무리 뼈에서 살이 돋아난다고 해도 생기가 없으면, 영이 없으면,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우리 가운데 없으면 그것은 산 사람이 아니라 죽은 사람이나 다름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사도 바울은 이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오리라고 말씀하신 성령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교회에 출석하고, 때로는 일하고, 때로는 기도하고, 때로는 말씀읽고, 때로는 찬양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정말 성령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라 뼈에서 살만 붙어있는 죽은 사람이나 다름 없다는 것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교회에 나와서 “주여 주여”하는 육체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구원이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 지니라, 라고 하신 말씀처럼 영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만이 성령충만하여 예배드리는 사람만이 죽음에서 살아난 사람, 죄에서 구원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믿음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봉사하고 섬기는 손길이 귀하지만 그냥 시켜서 하는 것이나 불쌍해서 봉사하는 것은 믿음의 역사가 아닙니다. 바로 성령의 능력과 확신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믿음의 역사입니다.
찬양을 한 곡 하더라도 그냥 악기와 멜로디에 따라서 노래만 부르는 것과 성령을 사모하여서 찬양하는 것은 다릅니다. 말씀을 한 구절을 읽더라도 그냥 옛날 사람의 글로 읽는 것과 성령으로 우리에 말씀하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다릅니다. 기도를 하더라도 주문을 외우듯이 “주여 주여” 방언한다고 “렐렐렐레”하는 것과 성령충만하기를 구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의 나라와 그의 뜻을 구하는 기도는 다릅니다. 그냥 교회에서 으레 하는 봉사와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나가는 믿음의 역사는 다릅니다. 노래는 육체고 찬양은 영입니다. 글귀는 육체고 말씀은 영입니다. 주문처럼 외는 말은 육체고 기도는 영입니다. 봉사는 육체고 믿음의 역사는 영입니다.
결론
결론
성령강림 후 두번째 주간이 지나고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후에 제자들은 성령이 충만하여 복음을 선포하고 모이기에 힘쓰고 나누기에 힘썼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을 목격하고 성령을 기다리고 기도하기에 힘써서 성령을 선물로 받은 그들은 육체의 것에 눈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우리를 살아 숨쉬게 하시는 것,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마지막으로 대언하게 하셔서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고국으로 돌아가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영생과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믿음의 역사를 이뤄나갔습니다.
오늘 예배에 나온 저희들은 어떻습니까? 완전히 말라붙은 뼈처럼 영과 육이 모두 죽은 사람과 같았다가, 노래를 부르고 글을 읽고 말을 하고 봉사하는 육체를 얻은 것에서 그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여러분과 저 가운데에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저희를 살아나게 하시는 역사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뼈에서 육체를 얻은 것에서 만족하지 않고 성령을 소멸하지 않고 영적인 삶을 이어나가기를 소망합니다. 썩어없어질 육체의 것에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를 살리시는 성령의 역사와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고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너희를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알리라” 하신 말씀처럼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는 그날까지 날마나 성령의 능력으로 믿음의 역사를 함께 이뤄나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