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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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찬송가 301장, 486장
어제부터 야곱이그의 죽을 날이 다가와서 마지막으로 유언을 하는 장면을 보고 있습니다.
혹시 살면서 유언장을 받아보거나 누군간의 유언을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유언장을 써보신 경험이 있으신가요? 저도 누군가의 유언장을 받아 본 경험은 없지만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이 유언처럼 깊이 남아있습니다.
저의 외할아버지는 참 억척스러운 삶을 사신분이세요. 가문으로만 보면 김수로왕의 직계손으로 좋은 가문이지만 어느가정보다 유교 사상을 중심으로 제사와 전통을 중요시하는 가문이었어요. 그런데 선교사가 조선에 들어오면서 고조할아버지가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셨고, 복음을 받아 들이신 이후 집안은 큰 혼란을 겪습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중에 교회를 지키다가 교회 목사님과 함께 증조할아버지가 순교를 당하시는 일이 있었어요. ‘순교’라는 단어가 대단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일제강점기 시기에 아버지 없이 외할아버지는 어린나이에 집안의 가장이 되셨습니다. 거기다가 한국전쟁도 겹치면서 힘든 시기를 보내시면서 직계손이지만 믿음을 지킨다는 이유로 직계손으로 누리는 문중의 모든 특권도 내려놓으셔야 했어요.
그런데 그런 외할아버지를 보면서 시대와 상황이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지킬 수 있고, 삶으로 살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숨이다하는 마지막 시기가 와서 온 가족이 어버이날때 모였는데 그때 저에게 하신 말씀이 하나님 잘 믿어라 라는 말씀이었어요. 많은 이야기 그중에서 그 말씀 하나가 아직도 가슴에 박혀서 힘든 상황이 와도 “그래도 하나님 잘 믿어야지”라는 힘을 줍니다. 그리고 그 말처럼 다른 건 몰라도 앞으로 하나님은 잘 믿고 살겠구나 라는 확신을 줍니다. 이처럼 유언 이라는 것은 참 중요한 역할을합니다.
예언적 유언
예언적 유언
오늘 말씀도 이스라엘이/야곱이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 병상에서 마지막 유언을 하기위해서 아들들을 모아 놓고 한사람 한사람을 향해서 유언을 하는 장면입니다. 1절에보면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
야곱이 아들들을 향해서 불러 모이라라고 하고 2절에도 모여 들으라, 2절 마지막에도 들을지어다라고 하면서 임종이 얼마 남지 않은 야곱이 아들들을 향해서 아주 중요하게 할말이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 시대 문화에서 임종 전의 유언은 단순한 작별 인사나 정리 이상의 의미를 가졌습니다. 자녀들을 축복하고, 때로는 유산을 분배하며, 그들의 앞날을 바라보는 매우 엄숙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야곱의 유언은 그 이상의 무게를 가집니다.
“후일에 당할 일”을 알려준다는 그의 말처럼, 이 말씀은 단순한 유언이 아니라 예언적 선언입니다.
야곱은 각 아들의 성품, 과거 행적, 그리고 장차 그 후손에게 일어날 미래까지도 한 사람씩 예언적으로 선포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단순한 유산 분배나 축복이 아니라, 이스라엘 12지파의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12명이나 되는 아들들에게 어떤 유언을 남견는지 함께 보겠습니다.
12아들의 유언
12아들의 유언
📍 르우벤 – 끓는 물 같은 장자 (49:3–4)
📍 르우벤 – 끓는 물 같은 장자 (49:3–4)
야곱이 제일 먼저 불러낸 아들은 장남, 르우벤입니다.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이 말 듣고 르우벤은 무슨 생각했을까요? 이 말이 처음엔 칭찬 같아요? 기력의 시작! 위풍! 권능! 그런데 갑자기 "끓는 물 같아서 탁월하지 못하다."라고 말하죠. 충동적인 성격을 가졌다는 말인데요.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라는 말처럼 아버지의 첩 빌하와 잘못된 관계를 맺었던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야곱은 그 죄를 기억하고 있었고, 르우벤은 장자이지만 장자의 권리들/ 더나아가 제사장 직분과 통치 권세를 잃게 됩니다. 그래서 장자이지만 장자로서의 역할을 하지못합니다.
📍 시므온과 레위 – 잔인한 기계들 (49:5–7)
📍 시므온과 레위 – 잔인한 기계들 (49:5–7)
다음은 시므온과 레위죠. 형제라고 표현하는데 기질적으로 유사하다는 말입니다. 특히 이들은 세겜에서 디나의 문제로 대량 학살을 일으켰고 노략질 했던 형제들입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이건 진짜 무서운 말이에요. 아버지가 아들들에게, “나는 너희와 함께하고 싶지 않다.”고 한 거죠.
그리고 실제로 이 예언은 성취돼요. 시므온 지파는 가장 약한 지파가 되고, 레위 지파는 독자적인 기업을 갖지 못하고 전국에 흩어져 살아갑니다.
🙋♂️ 적용: 그래서 “우리의 분노도 정당한 분노도, 폭력으로 가면 죄가 됩니다. 하나님은 정의를 원하시지만, 복수는 하나님께 속한 거예요." 그래서 시므온과 레위는 약한 지파가 됩니다.
📍 유다 – 사자의 지팡이를 받은 자 (49:8–12)
📍 유다 – 사자의 지팡이를 받은 자 (49:8–12)
이제 분위기가 사뭇 달라집니다. 야곱의 말투도 바뀌어요. 유다를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8절/형제의 찬송이 될지라…10절에/ 규/ 홀(笏)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고…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정리하면 이거예요. “유다야, 너는 자손이 왕이 될 거야. 그리고 네 후손 중에 메시야가 오실 거야!”
사자의 새끼, 통치자의 지팡이, 실로/메시야를 말하는데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예언입니다.
🙋♀️ 적용: 유다는 원래 흠 없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도 요셉을 팔자고 제안했고, 며느리 다말 사건도 있었죠. 하지만 그는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 되었고, 결국 ‘왕의 길’을 물려받습니다.
✅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도 보시지만 돌이키고 회개하는 방향을 보십니다." 부족하고 실수했지만, 회개하고 돌아와서 책임지는 것을 보십니다. 그럴 때 유다의 지파를 통해서 오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평화를 우리가 누리게 될 것입니다.
📍 스불론 – 바다와 무역의 길 (49:13)
📍 스불론 – 바다와 무역의 길 (49:13)
스불론에 대한 유언을 하는데
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리니 그 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의 경계가 시돈까지리로다
라고 하면서 해변이 등장합니다. 이후에 스불론 지파는 직접적으로 해변에 거주하지는 않지만 스불론은 해상 교역로 근처에 자리를 잡게 됩니다. 시돈이라는 도시가 무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것들인데 이후 스불론 지파는 많은 물건과 사람을 오가게 하는 중계자 역할을 감당합니다.
🙋♂️ 적용: 야곱의 아들들이 참 다양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뽑아 ‘왕’이 되게 하신다면, 또 어떤 사람을 ‘연결자’로 부르셨어요.
📍 잇사갈 – 성실한 일꾼 (49:14–15)
📍 잇사갈 – 성실한 일꾼 (49:14–15)
그다음 잇사갈은 성실한 일꾼입니다.
14절에 “건장한 나귀로다.. 토지를 보고 아릅답게 여기고... 압제 아래에서 섬기리로다.”
라는 말씀을 보면 건장한 나귀 처럼 힘은 있지만 압제 아래에 있어서 주도적이지 못했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땅을 좋아했지만 결국 일꾼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역사상 잇사갈 지파는 지배 계층을 형성하지 모사고 육체적인 일과 납세의 의무를 담당하는 상태가 되는 것을 유언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 단 – 작지만 강한 독사 (49:16–17)
📍 단 – 작지만 강한 독사 (49:16–17)
그다음 단인데 단을 이야기할 때는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 같이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단은 길섶/길 가장자리의 뱀이고, 샛길에 독사로다…”라는 이중적인 예언을 합니다.
단 지파는 땅이 크지 않았어요. 하지만 유언에 맞게 작지만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자가 됩니다. 예를 들어 삼손!이 있는데, 그는 단 지파 출신으로 혼자 블레셋을 상대한 사람이었죠.
하지만 이 말에는 경고도 있습니다. 뱀, 독사—그렇게 좋은 동물은 아니죠. 실제로 단 지파는 사사기 18장에 보면 이스라엘에서 최초로 우상을 세운 지파로 기록되고 있고, 요한계시록 7장에서는 12지파 명단에서 빠져 있습니다.
🙋♀️ 적용: 지파가 "크다고 다 좋은 게 아니고, 작다고 다 괜찮은 것도 아닙니다. 작지만 강한 독사같은 단지파는 결국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는 지파가 됩니다.
📍 갓 – 계속 싸우고 다시 일어나는 지파 (49:19)
📍 갓 – 계속 싸우고 다시 일어나는 지파 (49:19)
갓 지파는
갓은 군대의 추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
갓 지파는 요단강 동쪽, 적들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살게 돼요. 그래서 늘 계속해서 싸움에 노출되지만, 그들은 적에게서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추격하는 지파가 됩니다.
🙋♀️ 적용: "계속해서 유언을 보고있는데 이유언은 하고 가나안 땅에 정복 전쟁의 순간까지 그리고 그 이후까지 말씀하고 있어요. 늘 전쟁해야하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이 갓에게 하신 말씀은 단 하나였어요.—‘넌 다시 일어설 수 있다.’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추격하면 되니까요" 나아가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 아셀 – 기름지고 풍성한 지파 (49:20)
📍 아셀 – 기름지고 풍성한 지파 (49:20)
갓지파가 전쟁에서 끝까지 추격하는 자였다면 아셀과 납달리는 풍요로운 지파입니다.
20절에 “아셀에게서 나는 먹을 것은 기름진 것이라…”
아셀은 나중에 비옥한 지역을 받게 돼요. 풍성한 식량, 기름진 땅, 좋은 환경—축복의 모델 케이스죠. 실제로 아셀 이름 자체가 ‘행복, 풍요’를 뜻하기도 합니다. 야곱의 유언에서도 "왕의 수라상을 차리리로다"(창 49:20)라고 나올 만큼 농업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잘 흘려보냅니다.
🙋♂️ 적용: "하나님이 주신 풍요는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아셀 지파처럼 누군가에게 공급하고 흘려보낼 때, 그것이 진짜 복입니다." 아셀지파는 그것을 누리고 흘려보낼 줄 아는 지파입니다.
📍 납달리 – 날쌘 암사슴, 아름다운 목소리 (49:21)
📍 납달리 – 날쌘 암사슴, 아름다운 목소리 (49:21)
납달리 지파도 야곱이 축복했던 지파입니다.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놓인 암사슴”: 히브리 원어로 보면 ‘자유롭게 풀려난 사슴’이라는 뜻입니다. → 민첩하고 아름다우며 자유로운 존재, 생명력과 순발력의 상징입니다.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말, 노래, 시, 선포 등 영향력 있는 언어 능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 실제로 사사기 4–5장에서 납달리 지파의 바락(드보라와 함께 전쟁 지휘)이 등장하며, 전쟁의 승리를 노래하는 찬송시(사사기 5장)를 남깁니다.
🙋♀️ 적용: 납달리는 크지 않은 조용한 지파였지만, 중요한 순간에 민첩하게 반응하고, 사람들을 일으키는 ‘말의 능력’을 가졌습니다. 이들은 자기 지파만 살리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를 일으키는 회복의 목소리를 내는 지파가 되었어요. 또한 예수님의 많은 사역도 납달리의 땅, 갈릴리 지역에서 이뤄졌습니다.
저희도 그렇죠. 세상의 많은 말을 할 수 있지만 우리가 세상에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복음의 목소리죠. 12지파 안에서 그것을 이룬 지파가 납달리 지파입니다.
📍 요셉 – 가장 풍성하고 복된 자 (49:22–26)
📍 요셉 – 가장 풍성하고 복된 자 (49:22–26)
그리고 요셉을 보면
“요셉은 무성한 가지라…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요셉의 활이 도리어 굳세며… 25절에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요셉은 야곱이 가장 사랑했던 아들이죠. 오랜 고난, 형들에게 버림, 억울한 감옥생활… 하지만 결국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집니다.
그는 혼자 잘된 게 아니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다"라고 표현합니다.
‘담을 넘는다’는 건, 경계를 넘어선다는 뜻입니다. 요셉은 자기만 잘된 게 아니었어요.
총리가 되어서 애굽을 살렸고, 기근중에 형제들을 살렸고, 그와중에 아버지 야곱의 가족 전체를 살렸습니다. 자기 상처 위에서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사람, 그게 요셉이에요.
🙋♂️ 적용: 그래서 "저희의 인생도 요셉처럼 담을 넘는 가지 되시길 소망합니다.
나만 잘 사는 게 아니라, 이 복이 부모님에게, 친구에게, 다음 세대에게 흘러가야 진짜 복이에요.
요셉은 가장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가장 풍성한 자가 됩니다. 저희 모두가 그런 자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 베냐민 – 뜯는 이리, 밤까지 싸우는 자 (49:27)
📍 베냐민 – 뜯는 이리, 밤까지 싸우는 자 (49:27)
마지막으로 베냐민인데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고, 저녁에는 나누리로다.”
사실 이것만 보면 ... 베냐민 지파는 나쁜 지파같습니다.
유다는 사자, 납달리가 암사슴이라면 막내인 베냐민은 ‘이리’입니다
하지만 이건 용맹하고 전략적인 전사를 의미해요.
이리는 무섭고 공격적이지만, 생존력 강하고 단결력 있는 동물입니다. 야곱은 베냐민이 민첩하고 강한 전사적 성향을 가진 지파가 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사사기의 베냐민 지파의 전투력은 괴장히 강했고, 초대 이스라엘 왕 사울도 베냐민 지파 출신이었죠.
🙋♀️ 적용: 싸워야 할 때 싸울 줄 아는 지파가 베냐민 지파였습니다. 막내지만 할때는 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믿음의 마지막 장면
믿음의 마지막 장면
이렇게 12아들들에게 축복을 마친 후, 마지막 장면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
여러분, 이것이 바로 믿음 안에서 죽는 자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파란만장했던 인생—형을 속이고 도망쳤던 청년, 라반의 집에서 일했던 젊은 가장,
요셉을 잃고 가슴 치던 아버지의 모습까지 굴곡진 인생이었지만 야곱은 마지막에는 믿음으로 죽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하나님 언약을 믿고 직접 산 가나안 땅 첫 소유지인 막벨라 굴에 들어갑니다. 애굽에서의 풍요보다, 언약의 땅에서 죽기를 택한 신앙의 모습이죠.
야곱은 막벨라 굴을 언급하며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누구의 뒤를 따르고 있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야곱의 마지막이 하나님의 언약 위에 선 평안한 죽음이었고, 49장은 다음 세대로 믿음을 전달하는 장면입니다. 오늘 말씀처럼 저희도 ‘믿음의 다음 장면’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되어서 복된 유언을 남기고 믿음을 전수해주는 자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기도하겠습니다 ]
사랑의 하나님,
어제부터 저희는 야곱의 마지막 유언을 묵상하며, 그의 인생 끝에서 드러난 믿음의 깊이를 배웠습니다.
야곱은 실수도 많고, 상처 많은 사람이었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고 떠났습니다.
애굽의 풍요가 아니라, 언약의 땅 막벨라 굴을 택했던 것처럼,
저희도 세상의 성공보다 하나님의 약속의 방향을 선택하게 하옵소서.
야곱의 유언은 아들 한 명, 한 명을 향한 예언이 되었고,
그 말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믿음의 유산이 되었습니다.
주님, 저희도 그런 유산을 남기길 원합니다.
고난 중에도 요셉처럼 담을 넘게 하시고, 회개의 자리에서 유다처럼 다시 일어서게 하시고,
납달리처럼 아름다운 복음의 소리를 내게 하시며, 갓처럼 다시 일어나 추격하는 믿음을 주소서.
오늘 우리도 언약을 품고 살아가게 하시고, 마지막에는 믿음으로 숨을 거두는 자,
그리고 믿음을 남기는 자가 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야곱처럼, 저희의 마지막이 믿음의 다음 장면이 되기를 소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