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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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250장
스바냐를 소개하면서 히스기야의 현손이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그다랴의 손자요 구시의 아들이라고 소개합니다. 4대까지 이야기합니다. 히스기야, 아마랴, 그다랴, 구시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히스기야 아마랴 그다랴 구시 대개 저 글자는 하나님과 관련된 단어입니다. ‘야’=야훼
히스기야는 야훼께서 강하게 하셨다
아마랴는 약속
그다랴= 위대
전부 하나님과 관련된 이름입니다.
그렇다면 구시는 조금 다릅니다. 구시는 ‘구스’입니다. 스바냐의 아버지는 구스 땅으로 이주하여 살았던 사람일수도 있고,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구시의 아들이라고 하면 이방적인 느낌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정통성을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스바냐를 소개하는데 구시의 아들이라고만 소개하면 뭔가 가문이 안 좋은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까지 소개해서 스바냐도 정통 유대인이다라는 것을 인정시켜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스바냐의 뜻은 무엇일까요? ‘야훼께서 감추셨다’는 뜻입니다. 그 이름 속에 메시지가 이미 담겨 있습니다. 환난 날에 야훼께서 백성들을 위험으로부터 감추어주셨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또는 여호와께서 쌓아두셨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것을 쌓아두셨냐면 백성들의 죄를 쌓아두셨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두 가지 의미가 다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감추시기도 하시고 또한 숨겨진 죄들을 밝히시기도 하십니다. 그래서 12절에 보면요. “여호와께서는 등불로 두루 찾아 벌하리니”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감추어진 죄를 등불을 들고 두루 찾아내시며 벌하신다는 것입니다. 정신이 바짝 드는 말씀입니다.
그 다음에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 시대라고 말합니다. 요시야 시대는 아시리아가 멸망하기 직전의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절대 강국이었던 앗시리아의 세력이 약화되던 시대였습니다.
아직은 바베론이라는 나라가 별로 크게 등장하지 않았던 때입니다. 요시야, 히스기야는 종교개혁을 단행했던 왕들이었습니다. 요시야는 임금이된 지 18년이 되자 개혁을 단행합니다. 성전을 수리하다가 율법책을 발견합니다. 그 율법책을 임금에게 가져다 줍니다. 훌다가 율법책을 보고 예언을 합니다. 그것을 듣고 요시야가 참회합니다.
그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잘 모르고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했던 것에 대한 회개를 합니다. 그래서 온 나라에 개혁을 명령합니다.
우상을 숭배하던 사람들에게 우상숭배를 멈출것을 요구하고 여러가지 조치를 취합니다. 바알과 아세라 목상을 불사르고 일월성신을 섬기던 숭배를 불살라버립니다.일월성신을 섬긴다는 것은 5절에 나오는 “하늘의 뭇 별에게 경배하는 자들”입니다. 중동의 우상 문화였던 별을 숭배하는 우상숭배를 말합니다.
또한 드마림을 폐하고, 산당도 폐하고, 아스다롯과 그모스와 밀곰의 산당들을 모두 파합니다. 사람들이 더이상 다른 종교를 갖지 못하도록 단행을 합니다.
요시야 시대 때 사람들이 우상숭배를 했지만 동시에 하나님께 제사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긴 것이죠. 혼합주의입니다. 이 혼합주의는 오늘날 우리 안에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동시에 다른 것을 목표로 부릅니다.
하나님이 내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도 신앙이지만 더 깊은 신앙은 하나님이 나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해주시기를 바라는 것이 더 깊은 믿음입니다. 그 자리까지 성장해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힘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거룩한 삶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먹을 것이 있으면 너 혼자만 먹지 말고 나눠먹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힘듭니다.
이처럼 나 중심적으로 신앙생활하면 이것도 혼합주의와 같습니다. 내가 목표하는 것을 우상으로 삼는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내 유익을 구하는 것이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24에 보면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종교인중에서도 두 주인을 섬기는 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이름만 부를 뿐이지 하나님을 위하여 살거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나의 목표를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하나님이 도구화 되어버린 것입니다.
내가 도구가 되어야 하는데, 내가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하는데 하나님이 나를 위한 종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우상입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잘되고자 하는 목표를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는 종교가 우상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땅의 것만 구하면서 살아간다면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우상숭배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땅의 것을 위해 더욱 살아가고, 음행과 더러움과 정욕과 악한 욕망과 탐욕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깎아내리는 일이고 헛된 일을 도모하는 자입니다.
Colossians 3:5 NKSV
5 그러므로 땅에 속한 지체의 일들, 곧 음행과 더러움과 정욕과 악한 욕망과 탐욕을 죽이십시오. 탐욕은 우상숭배입니다.
탐욕은 우상숭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내 탐욕을 추구하는 자들은 우상숭배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 절에 “이런 것들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내립니다.”이렇게 나옵니다. 우상숭배는 다른 것 아닙니다. 아예 하나님을 믿지 않고 우상에게 절하는 자들이 우상숭배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으면서 동시에 내 탐심을 이루려고 하는 종교인이 우상숭배자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누구보다 자신의 욕심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구하지 않고 자신의 일만 이루려고 기도합니다. 우상숭배입니다.
우리도 회개하기 원합니다. 내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보다 내 뜻을 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세상의 일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의 이름을 팔아가며 기도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봅니다.
박영선 목사님의 하나님의 열심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기독교는 윤리나 도덕을 지키는 것도 아니고 이방 종교처럼 내 지성을 다했으니 이제 내가 원하는 것을 달라고 하는 종교는 더욱 아니다. 그러면 우상 숭배가 된다. 나는 하나님이 원하는 것으로 만들어지는 존재다. 그것이 우리에겐 아픔이고 고난이다. 그러나 이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신앙은 내가 원하는 것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나를 만들어가시는 것입니다. 그 과정 가운데 우리에게는 고난도 있고 징계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 영광을 찬송하게 되는 존재가 됩니다.
선지서들을 보면 항상 멸절하신다고 합니다. 스바냐도 계속 멸절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진노를 말씀하시고 모든 생명을 진멸하신다고 계속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모든 선지서들의 끝을 보면 찬송으로 끝이납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우리를 다시 돌아오게 하시는 부르심입니다. 멸절이 끝이 아니라 우리를 회개하게 하시고, 성숙하게 하시고, 마침내 칭찬받고 찬송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 앞에 먼저 회개가 있어야 하고요. 나의 우상들을 내려놓고 나를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깊은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는 세상의 것을 자꾸 따라갑니다. 내 욕심을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우상을 파하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시고,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여도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기뻐하는 순결한 자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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