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흥망성쇠에서 흔들리지 않는 방법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23 views
Notes
Transcript

요셉의 인생(어릴적 꿈)

요셉은 야곱의 자녀 중 일곱번째 자녀로 그의 노년에 라헬의 아들로 태어난 인물입니다. 그는 형제들 중에 가장 사랑을 받는 아들이기도 했습니다. 야곱은 직접 아들 요셉에게 채색옷을 입혀주기도 했죠. 이러한 야곱의 편애로 생긴 형제들 사이에 갈등은 요셉으로 하여금 애굽으로 가게되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사랑을 받았던 그가 미움을 받는 자리에 가게 된 것이죠.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였을 때에 형제들과의 갈등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야곱은 그 꿈을 듣고 간직했지만 형들은 요셉을 상인들에게 팔아 넘겼습니다.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은 그곳에서 노예 시장에 있다가 보디발의 집에 다시 팔려가게 됩니다. 그의 인생이 점점 바닥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후 보디발의 집에서는 가정 총무가 되어 재산을 관리하는 위치 까지 높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높임을 받은 요셉, 그 요셉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고 그 집의 안주인, 보디발의 아내는 그를 유혹했습니다. 바로의 친위대장인 보디발의 아내가 이런 행동을 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요셉은 이 일을 거절하다가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보디발의 가정 총무로, 그의 집의 재산을 관리하는 자로 높임을 받았던 그가 다시 낮아진 것이죠. 당시 간음은 중범죄였다고 하니 사실이 아닌 모함이라도 그가 죽지 않도 감옥에 갇힌 것 만으로도 다행이었을 것입니다.

꿈으로 흥하고 꿈으로 망한다(관원장의 꿈)

바로의 꿈

그로부터 2년 후 이제는 바로가 꿈을 꾸었습니다. 애굽의 통치권을 가진 최고 권력자 바로는 꿈으로 인해서 매우 근심하고 번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사람을 보내어 애굽의 모든 점술가와 현인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하지만 바로의 꿈을 해석하는 자가 없었죠. 꿈의 내용이 어려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도 해석을 하려하지 않고 꺼리는 이유는 해석을 했다가 죽임을 당할 것이 두려워서 였을 겁니다. 그렇게 바로의 번민이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았으나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은 2년이 지난 옛날 사건을 떠올리게 됩니다. 요셉이 꿈을 해석했던 사건이죠.
11절과 13절의 일부를 제가 읽겠습니다. “하룻밤에 꿈을 꾼즉 각기 뜻이 있는 꿈이라 그가 우리의 꿈을 풀되 그 꿈대로 각 사람에게 해석하더니 그 해석한 대로 되어 나는 복직되고 그는 매달렸나이다.”
바로는 요셉을 찾았습니다. 그가 자신의 꿈을 분명 해석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요셉에게 찾아온 기회(바로의 꿈과 그 해석)

요셉은 수염을 깎고 그의 옷을 갈아입고 바로에게 들어갔습니다. 멀끔한 청년에게 어떤 신비한 능력이 있겠습니까. 어떠한 치장이나 꾸밈이 없이 바로의 앞에 선 요셉은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라고 하며 자신이 꿈의 해석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꿈을 해석하실 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바로의 꿈에 대해서 듣게 됩니다. 바로의 꿈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강가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그 뒤에 또 흉하고 마른 다른 일곱 암소가 나일 강 가에서 올라와 그 소와 함께 나일 강 가에 서 있더니 그 흉하고 마른 소가 그 아름답고 살진 소를 먹었다.” 이것이 바로의 첫 번째 꿈이었습니다. 이어서 바로는 다음 꿈을 이야기합니다. “다시 잠이 들어 꿈을 꾸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후에 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그 가는 일곱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켰다.”
이 두 가지 꿈을 듣고 요셉은 바로에게 그 꿈을 해석합니다. “그 꿈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신 것입니다. 애굽 땅에 일곱 해 큰 풍년이 있겠고 후에 일곱 해 흉년이 들므로 애굽 땅에 있던 풍년을 다 잊어버리게 되고 이 땅이 그 기근으로 망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속히 이 일을 행할 것입니다.” 여기 까지 놓고 보면 요셉은 특별한 해석을 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저 꿈이 보여주는 모습을 그대로 말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중심에 누가 있었는가 보면 하나님이 있습니다. 요셉의 관점은 술 관원장의 꿈이나 바로의 꿈이나 모두 하나님을 중심으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가 바라보는 인생관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흥망성쇠에서 흔들리지 않는 방법

하나님 중심의 인생관

요셉이 야곱의 일곱번째 아들로 태어난 것부터 바로의 꿈을 해석하는 사건까지 그의 인생을 반복적으로 따라가는 패턴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고난과 형통”입니다. 요셉의 인생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어쩜 이렇게 산길처럼 험하고 구부러진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하지만 그 중심에 누가 계신가 보면 하나님이 있었습니다. 위기의 순간에서 하나님이 그를 지키시는 것을 볼 때에 그가 누구를 의지하고 있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은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도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창세기 39장 2절과 3절에서는 요셉에 대한 보디발의 평가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리고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의 인생을 통해서 우리는 어떻게 인생의 흥망성쇠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교훈을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인생에 나타난 흔들리지 않는 인생의 비결을 세 가지 정도 정리하면서 성도님들과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1. 하나님 중심의 인생관을 가져야 한다.

첫 번째로 하나님 중심의 인생관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삶에서 나 중심적으로 생각을 펼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사람은 하루에 수천 수만가지의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생각을 많이 한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고민한다는 것입니다. 고민을 많이 한다는 것은 그만큼 걱정과 염려가 많고 흔들린다는 것이죠. 그런데 나 중심적으로 생각을 펼치는 것은 그 인생이 흔들리기를 바라지 않더라도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줍니다. 이에 오늘 성경은 요셉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렇게 시사합니다. 모든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의식한 듯 보입니다. 우리는 삶을 직접 해석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해석이 하나님께 있다고 고백함으로 나 중심의 인생관이 아닌 하나님 중심의 인생관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중심의 인생관을 가지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점이 유익한가?
하나님 중심의 인생관을 가지면 고난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최고 권력자 바로의 앞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그가 내세운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 해석하신다는 것입니다. 그의 인생관은 그의 인생을 해석했고 하나님 중심의 인생관은 결국 바로의 꿈을 해석함으로 애굽 전역과 애굽 주위의 온 나라까지 구원하였습니다. 이렇듯 우리도 고난 앞에서 하나님을 중심으로 인생을 바라볼 때에 나의 인생을 구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않는 다른 사람의 인생, 곧 세상 염려와 고난에 빠진 이웃까지도 구원하는 유익을 얻고 유익을 나누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인생관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 사람의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친구와 닮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 인생을 바라보는 눈이 만들어집니다. 인생관은 곧 가치관이기도 합니다. 이런 인생관은 가족을 통해서 친구를 통해서 학교나 교회나 직장 동료에게서 배우게 됩니다. 이렇게 배운 것이 세상을 살아가며 맞닥뜨리는 모든 상황에서 선택을 하는 눈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에게 배워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가장 좋은 친구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보여주신 삶과 그 삶을 대하시는 태도 그리고 관계하시는 방식을 통해서 우리는 참 선생이자 참 친구되시는 예수님께 인생을 바라보는 눈, 바로 인생관을 배우시기를 소망합니다.

2.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한다.

두 번째로 인생의 흥망성쇠에서 흔들리지 않는 방법은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앞서 요셉이 하나님 중심의 인생관을 가지고 바라보았기에 요셉은 자신이 스스로 해석하는 과오를 범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주관하심을 바라보고 이해할 때에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께서 무슨 뜻을 가지고 계신지 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언제 구해야 하는가
(쉬고) “언제 어디서나”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소한 일부터 큰 일까지 모두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과정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가 우리를 인도하시고 동행하시고 그의 뜻에 따라 세상을 운행하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내 인생이 아무렇게나 흘러가고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도하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이 상황을 통해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고자 하십니까? 하고 물으며 그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아마도 요셉이 술을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하고도 2년간의 옥살이를 하면서 하나님 내가 왜 이곳에 갇히게 되었습니까? 하며 그분의 뜻을 구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은 무엇이 유익할까요?
사람은 미래를 볼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에 내가 어떤 경험을 할지 완벽히 준비할 수 없습니다. 하늘의 날씨를 완벽히 예측할 수 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날 슈퍼 컴퓨터로 계산을 한다고 해도 컴퓨터 마다 다른 정답을 이야기 합니다. 기상청도 백퍼센트 미래를 예측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면 우리는 미래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시간 밖에서 우리를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시간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시간이 하나님을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에 살아가는 우리는 지금 시간의 밖에 있는 미래의 일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은 나는 절대 알 수 없는 일들을 대비하는 유익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생활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구별된 습관에서 만들어집니다.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분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루 하루 살아가는 삶에서 주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은 그 날의 어떤 어려움이 찾아와도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시작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 방향을 잘 설정하면 뒤에 어디로 가야하는지 헤매지 않습니다. 인생의 네비게이션을 하나님께 매일 고정시키면서 하루의 길을 걸어가면 어떤 길로 걸어가도 주님을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에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그날에 모든 기도 까지도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게 합니다. 주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주님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시나요?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이러한 기도는 절망스러운 고난의 순간에도 이겨낼 힘을 얻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나에게서 나오는 내면의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터 나오는 모든 것이 우리가 고난을 이겨내는 비겨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매일의 삶 속에서 나의 소리와 나의 생각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그 분의 음성으로 가득 채우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3.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적절히 행해야 한다.

세 번째로 인생의 흥망성쇠에서 흔들리지 않는 방법은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적절히 행하는 것입니다. 요셉을 보면 바로의 꿈을 해석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해석은 곧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구한 즉시로 요셉은 그에 맞는 적절한 대안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주신 통찰입니다. 이 일로 요셉이 총리가 되어 7년 동안의 풍년에 곡식을 모아 7년의 흉년 동안 애굽과 온 나라와 그의 가족을 구원하였다는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는 바로의 꿈을 듣는 즉시 하나님의 해석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가만히 다가올 재앙을 지켜본 것이 아닙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재앙의 전조인 꿈을 통해서 앞으로 다가올 어려움에 지혜롭게 대비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요셉은 구원의 통로가 되었고 하나님은 요셉을 택하셔서 애굽의 통치권을 가진 총리로 세우심으로 온 땅이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있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적절히 행하는 것은 무엇이 유익할까요?
사람간에 대화를 하며 소통을 하는 것은 관계를 만듭니다. 건강한 관계로 맺어진 사이는 서로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서로의 말을 듣지 않는 관계는 어떤 것인가? 일방적으로 소통하거나 자신의 말만 내세우는 것입니다. 또 소통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상대의 말을 듣고도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상대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또 하나님과 소통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적절히 행하지 않는다면 그 관계는 건강한 관계라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건강한 관계 안에서 올바른 소통이 이루어집니다. 소통이 잘되는 관계는 어떤가요? 더 깊은 관계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적절히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더욱 깊은 교제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와 가장 가깝다면 고난에서도 형통에서도 그분과 함께 있기에 흔들리지 않는 유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의 흥망성쇠에서 창조주 하나님과 더욱 가까이 지내며 고난과 형통 그 어디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여정을 걸어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스도 중심적 마무리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라고 합니다. 요셉의 모습은 그리스도의 모습을 연상하게 합니다. 요셉이 총리가 된 나이는 30세 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신 나이와 같습니다. 요셉이 자신의 나라가 아닌 타국 애굽에서 고난을 당하며 길을 걸어간 것은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신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성육신 하심으로 영광의 자리에서 내려오셨습니다. 사람의 몸을 입으신 하나님이신 성자 예수님은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이기도 하셨고 사람들에게 핍박과 고난을 당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성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흔들리지 않고 구원을 이루는 그 길을 걸어가셨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사 십자가 고난 받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가 걸어가신 길은 형통 보다는 고난이 더 많았지만 성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겟세마네의 고백처럼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심으로 구원의 언약을 성취하셨습니다.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요셉의 삶을 통해서 우리는 인생의 흥망성쇠에서 흔들리지 않는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이 땅에서 경험하는 것이 고난 뿐일지라도 바울은 우리에게 현재은 장차 올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고 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