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21장 1-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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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절 입니다.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이스르엘에 포도원이 있어 사마리아의 왕 아합의 왕궁에서 가깝더니 
그 후에 이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후 라는 것은 20장에 기록된 두 번에 걸친 아람과의 전쟁 입니다. 
하나님은 이 전쟁에서 북이스라엘이 승리하도록 도우셨습니다. 
하지만 아합은 아람왕 벤하닷을 살려줘 익명의 선지자로 부터 하나님의 심판의 예언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승리임에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고 자랑하고 임의로 행동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 아합은 또 다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는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탐냈습니다. 
왕은 사마리아를 떠나 이스르엘 지역에 세워진 궁에 거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궁 근처에 있는 포도원을 매입하고자 합니다. 
왕은 포도원을 매입하여 채소 밭을 만들고자 합니다. 
채소밭은 아마도 왕의 휴식처로써의 정원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세속적 입장에서는 왕의 이런 행동이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특히 좋은 값을 지불하여 나봇의 포도원을 매입하고자 하는데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율법상 왕의 이런 행동은 불법 입니다. 
이스라엘에서 땅은 오랜 광야 생활과 피 흘리는 전쟁을 통해 주어진 곳입니다. 
이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은 땅 주인인 하나님으로 부터 세 들어 사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율법에 그 누구도 땅을 매매 하거나 양도해서는 안된다고 하십니다. 
특히 안식년과 희년의 법은 사람 뿐만 아니라 땅의 휴식과 땅의 회복에 대한 법이기도 합니다. 
또한 포도원은 이스라엘을 상징하기도 하며, 이스라엘 전통적 생업 기반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신명기 20장 6절 입니다. 
6. 포도원을 만들고 그 과실을 먹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그 과실을 먹을까 하노라
이 법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수고한 대가를 단 한번도 누리지 못하고 죽는 불행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두번째는 포도원이 갖는 경제적 비중과 대표성이 있기 때문 입니다. 
다시 1절을 보시면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포도원이 있다고 합니다. 
당시 이스르엘은 수량이 풍부한 샘이 있었던 비옥한 땅입니다. 
그 곳에서는 농사도 잘되고 최고 품질의 농작물이 재배 되었던 곳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땅을 하나님이 뿌리시다. 하나님이 풍요를 주신다 라는 뜻으로 이스르엘이라 이름을 붙였습니다. 
포도원의 주인인 나봇의 이름의 뜻 또한 열매들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농부에게 지어진 가장 좋은 이름과 뜻 입니다. 
하나님의 풍요와 허락의 장소에서 이스라엘의 가장 대표적인 포도원을 가꾸는 나봇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속에서 평안과 풍성함을 누리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나봇의 이러한 평화와 풍요는 욕심과 비열한 음모와 거짓과 협작으로 가득찬 아합과 이세벨에 의해 완전히 박살 나게 됩니다. 
나봇은 자신의 포도원을 요구하는 왕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열왕기상 21장 3절 입니다. 
3.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하니
나봇은 이 땅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에 땅의 소유보다 자신은 여호와의 신앙으로 그것을 거절 합니다. 
나봇의 신앙고백으로 아합의 불신앙과 대조되어 그의 탐욕을 드러냅니다. 
그렇게 머리를 싸매고 누워있는 자신의 남편을 본 이세벨은 자초지종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더 충격적인 너무나도 악한 계획을 세우는데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는 거짓 사실을 성읍의 장로와 귀족에게 보내고 
불량자 두 사람을 매수하여 그것을 거짓증언하게 하였습니다. 
결국 이세벨의 악한 의도대로 나봇은 성읍 밖으로 끌려나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리고 아합은 나봇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포도원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이세벨이 나봇의 포도원을 취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팔았다는 것입니다. 
10절을 보시면 네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게 하라 고 합니다. 
자신의 욕심과 욕망과 평안과 안정을 위해서 너무나도 쉽게 하나님의 이름을 팔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욕심과 욕망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고, 사용하여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세벨만 문제 입니까? 
아합도 문제 입니다. 
나봇이 당당하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금하신다는 말로 거절 합니다. 
그렇다면 이미 수도 없이 하나님의 징계를 들을 아합은 마음으로 접어야 합니다. 
하지만 왕궁으로 돌아와 침상에 누워 식음을 전폐하고 근심하고 답답해 합니다. 
그리고 무슨 이유인지를 묻는 이세벨에게 정말 중요한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의 조상들에게 주신 땅을 팔지 않는다는 말을 빼고 
나봇이 땅을 안판다고만 이야기 합니다. 
자신의 욕망과 야욕을 위하여 그들의 입에 담겨져 있는 것은 거짓 뿐입니다. 
우리의 입은 우리의 마음을 대변합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나 자신에 대한 욕망과 탐욕이 가득차 있으면,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거짓과 속임수 뿐입니다. 
그리고 머리 속에는 온통 탐욕과 욕망을 채우기 위한 계획들 뿐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얻기 위해 사람을 속이고, 조작합니다. 
그렇기에 두번째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잘못된 지도자로 인해 모든 백성이 함께 타락한다는 것입니다. 
그 땅에 엘리야와 같이, 앞서 살펴본 대신 오바댜나 여호와의 신앙을 지키는 자들 그리고 조용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나봇과 같은 자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여로보암 때 부터 우상숭배로 타락하였습니다. 
왕의 조서를 받고 성읍에 사는 장로와 귀족들은 진위여부 판단도 하지 않고 집행해 버립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직 권력과 자신의 욕망만 존재할 뿐입니다. 
여로보암으로 부터 시작한 타락은 아합의 때에 이르기 까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욕망에 가득찬 지도자 한사람으로 부터 시작하여 무너져 내렸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의 심판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러 사용하고, 자신의 욕망과 욕심의 도구로 여호와의 이름을 입에 담는 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며, 말씀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살아나며, 주님의 십자가 앞에 뜻앞에 우리의 악함과 탐욕을 못박아 참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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