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21장 17-2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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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때로는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 속에서 악인이 잘되고 거짓이 세상을 지배하는 모습을 볼 때 하나님의 공의가 어디 있는가를 질문 할 때가 있습니다.
너무나도 완벽하게 아합과 이세벨의 계획은 성공했고, 그들은 곧장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불의한 일 가운데서 그 누구도 소리를 내거나, 바로잡을 인물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 일로 인해 곧장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여야 하는데 전혀 그럴 기미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현실의 절망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사람이 바로잡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만이 왜곡되고 모순된 현실을 바로잡을 것임을 보여주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였습니다.
19절 입니다.
19. 너는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하셨다 하고 또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였다 하라
그런데 이 말씀을 보면 흡사 재판장에서 판결문의 형태와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아합과 이세벨의 재판장으로 서 계십니다.
그들의 모든 악행을 판단하시고 그들에게 적법한 징계를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아합이 나봇의 무고한 피를 흘렸기 때문에, 그에 합당한 심판을 내리시겠다고 하십니다.
때로는 왜 하나님이 무고한 피를 흘리게 하시는지, 이 상황을 그냥 보고만 계시는지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 모든 것을 보고 계시면, 심은 데로 거두게 하시는 공의의 하나님 이심을 드러내고 계십니다.
지금 당장의 심판이 없다고 교만해서도 안되며, 지금 당장의 축복이 없다고 좌절하고 낙심해서도 안됩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공의 앞에 정직하게 말씀을 따라 충성되이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엘리야는 곧장 아합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엘리야를 보자마자 아합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렇습니다.
20절 입니다.
20. 아합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 대적자여 네가 나를 찾았느냐 대답하되 내가 찾았노라 네가 네 자신을 팔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아합은 엘리야를 보자마자 내 대적자여 라고 합니다.
불을 내리시고, 비를 내리신 하나님을 경험했으면서도
누가 진정 하나님이며, 또 그 분의 종인가를 분명히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엘리야를 나의 대적자 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합의 눈과 마음은 여전히 자신의 탐욕과 욕망으로 가리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탐심과 욕망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합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많은 은혜와 기적을 경험하게 하셨지만, 악한 자는 하나님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사실 아합에게 엘리야 라는 선지자가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큰 은혜입니다.
옆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합과 이세벨은 그것을 받아들일 마음도 생각도 없습니다.
우리도 아합과 이세벨 같은 자가 얼마든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졌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것 뿐만 아니라 기도의 제목들도 응답해주시고, 삶의 방향들의 인도해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잊어버린채 여전히 나의 욕망과 탐욕을 위해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신 것을 잊어버리고, 벤하닷을 살려주는 아량을 베푸는척 하며 사악함의 탈을 쓸 수 있고,
비를 내리신 하나님의 사람을 죽이려 할 수 있는 자 입니다.
만약 아합이 엘리야를 나의 대적자 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참 선지자로 생각했다면 상황은 좀 더 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탐심과 자기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날 마음이 없는 아합이 여호와 하나님께 들을 수 있는 말은 결국 엄중한 하나님의 심판 뿐입니다.
그래서 21절에서 26절은 아합의 집에 내려질 하나님의 심판이 선언 됩니다.
그런데 아합과 이세벨에 대한 심판의 선언 가운데 우리는 타락에 대해 누가 더 큰 책임이 있느냐를 생각하게 됩니다.
특히 25절 을 보시면
25. 예로부터 아합과 같이 그 자신을 팔아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자가 없음은 그를 그의 아내 이세벨이 충동하였음이라
이세벨이 아합을 충동하고 선동하였기에 주도권을 쥐고 있는 이세벨이 더 악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죄를 다 드러나게 하십니다.
충동질에 선동 당한 아합을 불쌍하다 하지 않으십니다.
이는 지도자의 타락으로 인해 온 공동체가 타락한 것에 대하여 그 공동체가 불쌍하다고 이야기 하지 않으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세벨의 충동질에 아합은 얼마든지 거부할 수도, 돌이킬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죄악을 선택한 이유는 결국 자신의 탐욕 때문입니다.
북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아닌 바알을 섬기는 이유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하나님을 택하고 여호와의 신앙을 지켜나갔던 자들도 있음을 우리에게 앞서 말씀 하여 주셨습니다.
여러분, 죄 앞에 핑계는 없습니다.
누구 때문이라고 아무리 말하여도 하나님은 결국 그 죄를 지은 사람에 맞는 벌을 내리십니다.
그것이 누구 때문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죄로 이끈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또다른 벌이 있을 것이고,
거기에 동조하여 탐욕과 죄악의 정욕을 따른 우리에게도 합당한 벌을 내리십니다.
그러므로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도록 지혜를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지 않는 소망이 없는 그 곳에서도,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죄로 부터,, 불의로 부터 지켜 나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것을 구할 때 꾸짖지 않으시고, 후하게 베푸실 지혜와 은혜를 받아 누리시면서,
우리의 삶의 뿌리를 죄가 아닌, 악한 자들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스스로를 돌이켜 보며 나의 마음과 생각을 지킬 수 있도록,
불의한 자들과 함께 하지 않는 지혜를 더 하여 주실 수 있도록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붙들고 살아가는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