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들이 빠지는 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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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0:6-18
사사기 10:6-18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저희를 수요예배 자리에 불러주시고,
주 앞에 마음을 모아 예배드릴 수 있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너무나 큰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눈앞의 고통을 피하려는 마음으로 주님을 찾았고,
문제 해결만을 구하며 주님을 수단처럼 여겼던 연약함이 있었습니다.
죄의 결과는 괴로워하면서도,
정작 죄 그 자체에 대해 돌이키지 못했던 저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사랑하는 참된 믿음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죄의 굴레에서 저희를 건지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시고,
오늘 말씀을 통해 참된 회개와 새 삶의 결단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주님, 열방과 이 나라를 붙들어주시기를 원합니다.
전쟁과 여러 고통 속에 있는 열방, 특히 이스라엘과 중동 지역에 있는 전쟁 가운데, 하나님의 평화와 자비가 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이 나라 역시 주님의 손에 붙들리기 원합니다.
남북간의 긴장 관계 가운데에, 평화로운 통일이 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악한 정권으로 인하여, 큰 고통 중에 있는 북한의 동포들을 주님께서 기억하여 주옵소서.
주님 이 시간 우리 광혜교회를 두고 주님 앞에 간구합니다. 연약한 지체들, 특히나 병상중에 힘들어하는 지체들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할 수 있도록 도우시고,
특별히 다가오는 유권사님 간 이식 수술 가운데에도 주님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조집사님과 유권사님 모두다 건강히 모든 수술의 절차를 주님께서 붙드셔서, 잘 회복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다가오는 여름 사역들 가운데도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대학생 대회를 시작으로 청년부 수련회, 여름성경학교 가운데
성령의 임재와 영적인 열매가 풍성하게 맺히게 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말씀 앞에 우리가 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우리의 마음에도 주님의 음성이 들려지게 하셔서
말씀 따라 믿음으로 결단하며 선택하는 삶이 되게 도와주옵소서,
이 모든 기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은 ‘죄인들이 빠지는 굴레’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전하겠습니다. 여러분 삼일간 평안하셨습니까? 우리 옆에 있는 지체와 이렇게 한번 인사할까요? 하나님만 사랑합시다. 우리가 정말로 이렇게 살기를 원합니다. 참 세상을 보면, 사랑할 것이 많은 세상입니다. 좋아보이는 것도 많고요, 누리면 행복해 보일 것도 많아 보이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 가운데에서, 정말로 진심을 다해 하나님만을 사랑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의 복된 삶이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여러분 사람이 “왜 같은 실수를 똑같이 반복할까?”라는 생각을 해보신적이 있으십니까? 다르게 질문해볼게요. 여러분들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합니까 안합니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실수를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아니에요. 우리 역시 똑같은 실수를 무수히 반복합니다. 이렇게 말하는거죠. “내가 또 왜이랬지..?”라는 말 말입니다.
예를 들면 그런거죠. 제가 최근에 밤만 되면, 막 출출한거에요. 그래서 애들이 자고 나면 막 간식거리를 찾아헤메는거죠. 그런데 자주 밤에 먹으니깐 어때요. 일어나면 속이 더부룩하고 배도 나오는 것 같고 건강도 안좋아지는 것 같은거에요. 그래서 내가 오늘부터 야식, 어떤 간식도 안먹으리라고 다짐을 합니다. 그런데 또 집에 맛있는 간식이 있어요. 그럼 또 꺼내 먹는거죠. 그러면 또 그 날 다짐을 합니다. 오늘은 절대로 안먹으리. 또 먹어요.
또 하루는 그렇습니다. 오늘 하루는 정말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막 저녁먹을 시간이 되면 몸이 피곤하거죠. 그런데, 또 밤이 되면요, 말짱합니다. 그리고 또 늦게 잠이들고 다음 날 피곤하게 생활을 하는거에요.
또 어떤 사람은 늘 지각하는사람이 있습니다. 약속시간에 맞추지 못해서, 늦게가면 얼마나 민망해요. 그래서 집에돌아가는 길에 다짐을 합니다. 다음부터는 꼭 10분 일찍 나와야지. 그런데 어떻게 되요? 또 똑같이 그게 반복이 됩니다. 미리 준비를 안하는거죠. 이게 참 다른 모양으로 있을 수 있겠지만, 사람이라는게 그래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경우가 너무 많죠.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요? 우리가 과연 몰라서 그럴까요? 아니에요, 대부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말입니다. 무엇이 잘못이고, 어떻게 행동했어야 하는지 알고 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알면서도 또 그렇게 행동하고, 알면서도 또 그 길을 가고, 또 똑같은 실수 속에 빠져드는 것이 우리의 모습인거에요. 물론 지금은 야식 안먹고 있습니다. 또 언제 먹을지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이 딱 그런거죠. 지금 사사기 말씀을 보고 있는데요, 사사기에는 큰 영적 싸이클이 돈다고 했죠. 쉽게 말하면 이것 역시 실수의 반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면서, 죄악을 저지릅니다. 그럼 하나님이 어떻게 하세요? 이방민족의 압제에 넘기십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 힘든거죠. 큰 고통과 괴로움에 빠집니다. 그럼 너무 힘들어서 막 부르짖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사사를 세워주십니다. 그리고 그 사사를 통하여 이방민족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해주십니다. 그 사사가 살아있을 동안에는, 평화가 유지됩니다. 그런데 또 살만해지면요,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죄악을 저지릅니다. 이 싸이클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똑같은 실수를 계속해서 반복하는거죠.
그런데요, 사사기를 가만히 읽다보면, 이것은 반복될 뿐만이 아니라요, 어떻게 되냐면, 점점 더 악화되어져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습관이, 같은 실수의 반복이, 계속적으로 일어나면서요, 그들은 점점 더 무뎌지고요, 하나님 앞에 더 큰 죄악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그렇다면 반복되는 이 상황 가운데, 하나님은 어떤 마음을 가지셨을까요? 질문해볼게요.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실래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교훈을 함께 살펴보길 원합니다.
첫번째로는 6절 말씀입니다. 우리 함께 읽어볼게요.
“6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들의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를 버리고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어떻게요?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했다. 늘 사사기 말씀에서 이야기하는 이 악은 무엇입니까?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이 6절 말씀에 근거하면요, 무슨 신을 섬겼대요? 많이도 나오지요. 바알, 아스다롯, 아람의 신, 시돈의 신, 모압의 신, 암몬 자손의 신, 블레셋 사람들의 신을 섬겼다. 바알과 아스다롯은 이 가나안 땅에 전통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슨 신도 섬겨요? 아람의 신, 아람 이라는 나라는, 이스라엘 북서쪽에 있엇고요, 시돈의 신, 북쪽 지역, 암몬과 모압신, 동쪽, 블레셋, 남쪽, 즉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는 온갖 나라들의 신들을 누가 섬겨요? 이스라엘이 섬겼대요.
지금 이 모습은요, 이제는 단 한 민족의 신이 아니라, 주변 모든 나라의 신들을 죄다 섬기고 있는거에요. 그러니깐 이 죄의 굴레 가운데, 상황이 더 악화되고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제 단순히 하나의 우상이 문제가 아니라, 완전히 영적 혼합주의, 영적 무정부 상태에 그들이 들어섰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게 참 아이러니한 모습이에요.
많은 신들을 섬기면 어떻게 되야되요? 더 풍요로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더 행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더 평안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 결과는 아니에요. 더 많은 우상과 신들을 섬기며 살면 더 좋아질 것같았기 때문에 그들은 그렇게 했지만요, 그 결과는 압제이자 고통 그 자체 였습니다. 7절에 보면요, 그들은 암몬과 블레셋 사람의 손에 팔려졌고요, 18년동안 큰 고통과 압제를 당하게 됩니다.
가만히 사사기 말씀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부분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사들을 보면요, 옷니엘이라는 사사가, 아람 왕에게서 이스라엘을 구합니다. 에훗은요 모압과 암몬에서 구해요. 삼갈은 블레셋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합니다. 드보라는 가나안 족속에게서 이스라엘을 구해요.
그러니깐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이 어느 나라의 신 즉 블레셋의 신, 암몬의 신, 다른 나라의 신들을 우상을 숭배할 때마다 결국에는 그 나라가 이스라엘을 압제하게 되는 현상을 보여줍니다. 이번에는 이스라엘이 암몬과 블레셋의 신들을 우상숭배에 더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암몬인들과 블레셋사람들에게 억압을 당하도록 넘겨집니다.
또 한가지 볼 부분은요, 이 우상숭배가 그들을 종살이로 나아갈 뿐 아니라, 종살이 역시 우상숭배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가만 생각해보세요. 어느 나라가 이스라엘을 억압하고 괴롭게하고 압제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나라의 신들을 당연히 미워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그 나라가 압제하면요, 그 고통과 비극에도 불구하고, 그 억압과 문제를 초래한 우상들을 더 숭배합니다. 이것은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의 굴레입니다.
죄로 인하여 고통을 당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냐면요, 해결책 역시 죄에서 찾습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인생의 가치와 목적을 사람의 관계에 있다고 해봅시다. 예를 들어 연애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다가 연애에 실패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어떤 생각이 들어요? 다른 더 좋은 사람을 찾아야 해, 더 좋은 남자가, 여자가 필요해라고 생각해요. 또 한 가지 어떤 사람의 인생의 목적이 돈이라고 해봅시다. 돈을 쫓아서 열심히 살아가다가, 큰 실패를 경험합니다. 그러면 문제를 뭐라고 생각해요? 내가 더 돈을 쫓지 못했구나, 내 간절함이 부족했구나라고 생각하는거에요. 이게 세상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역시 똑같이 이렇게 생각한다는게 문제인겁니다. 우리의 문제가 우상숭배 자체인데, 그 실패의 원인을 우상을 충분히 숭배하지 않은 것이라고 본다는거에요.
여러분 이 우상숭배라는 죄는요 옛날에만 있는 죄가 아닙니다. 우리는 흔히 그런 생각을 할지 모릅니다. 요즘도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이 있어? 그런 신상을 모셔놓고 절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라면서요. 우리와 먼 이야기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니에요. 지금도 똑같아요 우리의 문제와 고통은 거의 대부분 우상숭배로부터 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의 것으로부터 만족과 안녕과 행복을 얻으려는 그 마음, 하나님이 아니라, 내 인생을 책임져줄 것 같은 사람과 세상의 조건을 의지하는 마음, 그 마음의 본질이 바로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사사기에서 계속해서 이 죄악에 대해 말할 때에요. 우상숭배와 연결을 시킵니다. 뭐 미움? 시기? 질투? 탐욕? 사실 죄의 본질은 우상숭배일지 모릅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들을 더 사랑하는 마음이지요. 우리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리석은 반복적 죄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 모릅니다.
“아니 어떻게 저렇게까지 우상을 섬기나?” “저렇게까지 했으면 이제는 좀 정신차릴만 한데” 그런데 이 말씀 앞에 정직하게 서보면요, 우리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는, 바알이나 아스다롯 같은 이름을 가진 우상은 없을지 몰라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더 기대고, 더 사랑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 우리는 때로 돈을 하나님보다 더 신뢰합니다. 아닐까요? 실제로 그래요.
– 때로는 인정받는 것, 사람의 평가, 사회적 성공이 우리 마음의 중심을 차지합니다.
– 그리고 그걸 얻기 위해 여러가지 것들을 양보하고 타협합니다. 가정도, 예배도, 말씀도, 기도도, 주님을 위한 봉사와 헌신은 너무나 쉽게 양보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뒷전으로 쭉 미룹니다.
그리고 그 우상들이 우리에게 고통을 주고, 지치게 만들고, 우리의 삶을 휘청이게 하는데도,
그 고통 속에서 돌아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집착합니다. “내가 더 노력해야 했어”, “내가 더 잘했어야 했어” 하며 해결책을 또 거기에서 찾습니다.
이것이 바로 죄의 굴레입니다. 죄로 인해 고통을 받으면서도, 그 해결책을 다시 죄에서 찾는 것. 이 굴레에 빠지면요, 죄를 멈출 수 없고, 점점 악화된 상황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것은
반복될 뿐 아니라, 악화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 혹시 지금도 내가 놓지 못하는 우상이 있다면,
그것이 지금 나를 지치게 하고, 괴롭게 하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고 있다면, 하나님 앞에 정직히 내려놓을 수 있는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가만히 생각해보세요. 그것을 내려놓는다고 해서요 죽지 않아요. 그거 없다고 해서, 우리 인생 무너내리지 않습니다. 아등바등 끈질기게 붙잡고 있는 그 손을 놓고,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가 진심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의 죄를 진짜 문제로 보아야 되고요, 그리고 그 죄에서 하나님은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우리는 고통의 원인을 죄로 보지 못하면, 우리는 결국 죄를 해결책 삼게 됩니다. 하지만 고통의 뿌리가 죄라는 것을 보기 시작할 때, 우상숭배라는 것을 알게 될 때에, 우리는 비로소 진짜 회개로, 진짜 회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 우상이 아니라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우리의 인생의 참된 목적이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두번째 입니다. 죄인들이 벗어나지 못하는 죄의 굴레는 또 어떤 것이 있을까요? 오늘 본문 13-14절 말씀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3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니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리라14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 너희의 환난 때에 그들이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 하신지라
이스라엘 백성이요 심한 압제를 당하자 어떻게 반응합니까? 똑같죠.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10절 보세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
아주 정확하게 회개처럼 보입니다. 자신들이 했던 잘못이 우상숭배임을 인정합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바알을 섬겼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범죄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떻게 반응하셨죠? 13절,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니,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않겠다.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 그 신들이 너희를 구원하도록 하라.라면서 하나님은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이게 뭐냐면요, 이게 죄의 굴레입니다. 아까말했듯이 이 싸이클이 사사기를 지배하고 있는거죠. 만약에 그들이 회개해서 하나님이 사사를 세워 구원을 받아요. 그럼 또 어떻게 할거에요? 뻔히 보이죠? 다시 죄를 범할 거에요.
하나님이 이렇게 단호하게 그들의 요청을 거절하시는 이유는 무엇이냐면, 그들의 속마음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부르짖음과 회개는요, 정말로 죄에 대한 돌이킴, 통렬한 회개가 아니라, 단지 지금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일시적 요청일 뿐임을 아셨던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메시지는 다르게 표현한다면 이런거에요. “그래 너희의 이 부르짖음이 난 뭔지 안다. 너희는 그저 바알에게든지, 나에게든지 도와 달라는 것이지? 가서 너희들이 택한 바알에게나 가서 구해라”라고 말하고 계시는거에요.
여러분 사사기 안에 돌고 있는 그 영적 사이클은요 결코 기계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자판기입니까? 회개라는 동전을 넣으면, 용서라는, 구원이라는 상품을 줘야 되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용서하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을 구원하시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단순히 회개라는 동전을 넣어서요? 천만에요.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맺은 그 언약, 즉 관계 때문에 그들을 구원하시는거에요.
이스라엘의 모습을 가만히 보세요, 그들은 정말로 죄 자체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지금 회개하고 있는게 아니에요. 그들은 죄의 결과에 대해 유감이었을지는 몰라도요, 죄에 대해 정말로 유감은 아니었어요. 죄자체가 밉고 싫어서가 아니라요, 그 고통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하나님께 부르짖는거에요. 그들의 모습은요 우상숭배에서 돌아서는 방식조차 우상숭배스럽게 돌아서는 거죠.
우상의 본질이 뭔지 아세요? 사람들이 왜 우상을 섬길까요? 정말로 우상자체를 위해서요? 천만에요. 우상의 본질은 철저하게 나를 위한 것입니다. 우상은 단지 나의 소원을 성취하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는 이유는요, 바로 나 때문이에요. 나를 잘되게 하지 않는 우상은 필요가 없는거죠. 그들이 아주 정성스럽게 우상에게 많은 것들을 갖다 바치는 이유가 뭐에요? 심지어는 몰렉이라는 우상에게는요, 자기 자식까지 제물로 바쳤대요. 이게 뭐에요. 이 만큼 지극정성을 보였으면, 내가 보인 정성보다는 훨씬 더 배로 나에게 돌려주라는거죠.
여러분 우리도 한번 생각해보아야됩니다. 하나님을 우상처럼 여기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을요, 그저 내 문제의 해결을 위한 도구나 수단으로 여기고 있진 않습니까? 나는 하나님을 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내게 주실 뭐가 있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이 내게 주실 뭐가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그게 뭐 문제의 해결일 수도 있고요, 세상의 것일 수도 있고요, 심지어는 구원이라고까지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결국은 내게 주실 그 무엇이 우리가 섬기고 있는 진짜 궁극적인 신이라는 말입니다.
이게 참 비참한 관계입니다. 필요한 것을 얻어내려는 관계말입니다. 예를 들어 저희 아이들이 저 보고 맨날 아빠만 보면 뭐만 얻어내려고 하면 아빠는 어떨까요? 서운하죠. 아빠가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사람은 맞지만요, 아빠와 자녀의 관계는 그런 관계만이 아니지요. 그것은 사랑의 관계요, 인격적 교제가 있는 관계인 겁니다.
하나님과의 우리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분이 맞지만요, 그분과 우리의 관계는, 우상처럼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문제해결 도구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 자체를 정말로 사랑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실 무언가 때문에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죄라서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십니까? 아니면 그저 내가 안고있는 고통과 어려움 때문에 회개라는 것을 도구로 사용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요, 기도를 하면서도, 순종을 하면서도,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내게 복주시겠지라는 거래적이며 계산적인 신앙에 빠져있다면요, 그것은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또 다른 죄의 굴레에 빠져 있는 우리의 모습인 것이죠.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들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신앙이, 참되고 바른 관계 가운데 세워지길 원합니다. 하나님을 문제 해결의 도구로 즉 우상처럼 여기는 신앙이 아니라, 우리 참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그분께 나아가는 그런 참된 믿음이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이 죄의 굴레에 빠진 사람들을 하나님은 어떻게 여기실까요? 16절 말씀을 보면요 같이 읽어볼게요. “자기 가운데에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여러분 하나님이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내가 너희를 구원하지 않겠다. 그런데 16절 후반절에 뭐라고 그래요? 하나님이 이스라엘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마음에 근심하셨대요.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반족된 죄의 굴레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들의 회개에는 진심이 없었고, 하나님은 그것을 분명히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십니다.
마음에 근심하셨다라는 표현은요, 그들이 회개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이 변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들은 여전히 악하고, 연약하고, 또 넘어지고 또 실수를 할 것을 아시면서도, 하나님은 그들의 어려움을 보시고 근심하신 것입니다.
근심이라는 이 마음을 묵상하면서요, 이것은, 단순한 안타까움을 넘어선 마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식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못하는 사랑의 무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을 여전히 자녀로 보고 계셨고, 그들이 처한 고통에 마음 아파하셨던 것입니다.
결국 이 마음은 누구로 인하여 완전히 보여지게 됩니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하나님의 마음은 완전히 우리에게 보여졌습니다. 사사기의 싸이클은 변함없이 계속됩니다. 이 악순환, 죄의 굴레를 끊어낼 수 있는 것은, 사사들 중 그 누구도 아니었고, 어떤 인간 지도자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끊임없는 인간의 죄악과 가식적인 회개 앞에, 최종적인 구원을 계획하셨고, 그 구원의 중심에는 바로 예수님이 서계십니다.
예수님은 이런 끔찍한 죄인들을 위해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로 나셨고, 우리의 죄값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부활하심을 통하여, 이 죄와 죽음의 권세를 완전히 끊어내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진짜 회복, 은혜로 주어지는 구원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여전히 연약하고, 때로는 거짓된 회개를 할 때도 있습니다.
또 죄의 굴레에 빠져 실수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회개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심령이 진실하기만을 원하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굴레를 끊고, 진정한 자유와 평안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도 이 예수님 안에서, 주님께서 주신 참 자유와 평안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들 되길 소망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이스라엘처럼 우리는 반복합니다. 그런데 그 반복 속에서도 하나님은 그 사랑의 끈을 놓지 않으시고 우리를 향해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 마음이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게 하셨고, 우리는 그 이름 안에서, 더 이상 굴레에 묶인 죄인이 아니라, 자유함을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오늘 이 은혜 앞에, 다시 결단해야 합니다. "주님, 이제는 반복된 이 죄의 굴레를 끊고, 주님만을 따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 붙잡고 살겠습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남은 한 주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찬송가 268장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 통성기도 인도멘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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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기도제목: 죄의 굴레를 끊고 참된 회개로 나아가게 하소서
(본문 요약 포함 – 사사기 10:6-9)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다시 우상들을 섬기며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은 그들을 블레셋과 암몬 사람들의 손에 넘기셨고,
그들은 무려 18년 동안 압제와 고통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문제의 원인이 자신들의 우상숭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오히려 더 많은 우상에게 기대고 의지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죄의 굴레입니다.
죄로 인해 고통을 당하면서도, 그 해결책을 다시 죄에서 찾는 모습.
오늘 우리의 삶에도 이런 모습이 있는지 돌아봅시다.
우리 안에도 아직 놓지 못한 우상, 여전히 기대고 있는 세상의 무언가가 있다면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고백하며, 죄의 굴레를 끊을 수 있는 은혜를 구합시다.
이 시간 이렇게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저도 이스라엘처럼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죄의 결과는 싫어하면서도, 죄 자체를 미워하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이 시간 저의 내면을 살펴주시고,
진정으로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이키게 하여 주시옵소서.
죄의 굴레를 끊고, 오직 하나님만 붙드는 믿음을 주옵소서.”
우리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 통성기도 인도멘트 2
🙏 통성기도 인도멘트 2
두 번째 기도제목: 하나님을 우상처럼 대하지 않도록, 참된 사랑과 인격적 관계를 회복하게 하소서
(본문 요약 포함 – 사사기 10:10-14)
본문 10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르짖으며
“우리가 범죄하였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단호히 거절하시며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않겠다,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가서 부르짖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의 회개는 진정한 회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죄 자체가 미워서가 아니라,
그 죄로 인해 자신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 괴로워서 하나님께 매달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판기가 아니십니다.
회개라는 동전을 넣으면 용서라는 상품이 나오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마음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이 시간 기도할 때,
우리가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을 돌아보며
하나님 자체를 사랑하고, 인격적인 관계로 주님과 동행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이렇게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제 안의 동기를 살펴주옵소서.
제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이 주실 무언가만을 바라고 있는지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거래적 신앙이 아니라,
진심과 사랑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함께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 통성기도 인도멘트 3
🙏 통성기도 인도멘트 3
세 번째 기도제목: 교회와 여름 사역, 연약한 지체를 위해
이 시간에는 우리 교회와 사역, 그리고 연약한 지체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7월 2일에는 유권사님의 간 이식 수술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수술 과정 가운데 은혜로 함께하시고,
권사님의 건강과 회복을 친히 붙들어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또한 7월에는 대학생 대회,
7월 말에는 청년부 수련회,
8월 초에는 여름성경학교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우리 교회 다음세대와 청년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로워지고,
영적으로 회복되고 헌신하게 되는 은혜의 시간 되도록 기도합시다.
이 모든 준비 과정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충만하도록 간구합시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유권사님의 수술 가운데 주님이 함께하여 주시고,
권사님의 몸과 마음을 강건케 하여 주옵소서.
다가오는 여름 사역들 가운데 주님의 은혜와 지혜를 더하여 주시고,
모든 준비와 일정, 담당자들의 수고 위에 기름 부어 주시옵소서.
다음세대가 말씀 위에 세워지고, 청년들이 주님 앞에 헌신하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함께 주여 한번 부르고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