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8장 1-21절 “어느 편에 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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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민 목사 기드온 시리즈6
1.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삿6:1-16)
2. 네 안의 우상을 제거하라 (삿6:17-28)
3. 눈높이를 맞추시는 하나님 (삿6:28-40)
4.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보리떡 (삿7:1-15)
5. 기드온과 300이 외칠 때 (삿7:15-25)
6. 어느 편에 설 것인가 (삿8:1-21)
7. 예수 안에만 소망 있네 (삿8:22-35)
어느 편에 설 것인가? (삿8:1-21)
1. 심판의 기준
제가 군대에 입대 할 때, 아버지께서 하셨던 충고가 있었습니다. “군대에 가면 줄을 잘 서야 한다!” 였습 니다. 저는 그 때까지 줄을 선다 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군대에 훈련 을 받고 식당에 줄을 서게 되었을 때, 줄을 서는 것의 중요함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섰던 줄이 배식 에 실패한 줄이어서 제가 배식을 받아야 할 때, 밥이 다 떨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정말이지 허탈했습니다. 단지 줄을 잘못 서서 밥을 먹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난 후에 저는 줄을 잘 서는 것의 중요함을 다 양한 방식으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사회는 학연과 지연 등의 인맥이 중요한 결정의 요건이 되는 사 회였기 때문입니다. ‘줄을 선다’는 “어느 편에 설 것인지를 정하라!”는 의미입니다. 아군과 적군으로 나누는 것이고, 우리 편에게 특혜를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줄을 서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도 등장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둘로 나눕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말입니다. 그리고 아주 선 명하게 그 둘에게 전혀 다른 결론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를 향하, “너는 어느 편에 설 것인 가?”를 묻고 있습니다. 부디 우리 성도님들의 선택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택이기를 소원합니다.
우리는 사사기에 나오는 기드온 이야기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기드온 이야기의 중심 에 있는 기드온과 300명이 어떻게 전투에서 이기는 지를 봤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관계를 새롭게 했습니 다. 그들 안에 있는 우상을 제거했고, 미디안 진영을 향해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 ‘말도 안 되는 숫자’였음 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거는 모험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그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 실 것을 믿지 못했다면 도무지 할 수 없는 전투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서 싸우셨습니다. 미 디안 연합군은 쫓겨 달아났고, 13만 5천이었던 그들은 이제 1만 5천명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기드온과 300명을 이스라엘의 ‘마중물’로 삼아 하나님의 일을 행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전쟁이 어떻게 끝나는 지를 보려 합니다.
2. 에브라임 지파의 시위 (1-3)
오늘 본문에서 먼저 등장하는 사건은 ‘에브라임 지파의 시위’입니다.
8:1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
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찌 됨이냐 하고 그와 크게 다투는지라 2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 행한
일이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3 하
- 48 - 나님이 미디안의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으니 내가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가 한 것에 비
교되겠느냐 하니라 기드온이 이 말을 하매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풀리니라
요단강 서편에서의 전투가 끝나고 이제 동편으로 넘어간 적들을 쫓아야 하는 상황에 갑자기 기드온과 함 께 싸웠던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기드온을 향해 항의를 합니다. 내용은 이 전쟁을 시작할 때 왜 우리를 불러서 함께 하지 않았느냐는 내용입니다. 에브라임은 이 사안에 대해 그냥 항의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1절 하반부에 보면 “크게 다투는지라”가 있는데, 이것은 무력을 염두에 둔 표현입니다. 그 들은 칼을 들어 기드온과 함께 한 자를 칠 것까지를 고려하며 이렇게 항의했던 겁니다.
에브라임의 이러한 반응은 사실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미디안의 압제는 7년간 계속되었고 그 동안 에브라임은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전하지 않았습니다. 또 기드온이 사방으로 사자들을 보낼 때 그 사자들이 분명 에브라임 지파에게도 갔었는데 그 때도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기껏 하나님께서 미디안 연합군 을 혼란스럽게 만들어서 서로를 치게 만드시고, 놀라 도망가던 패잔병들을 강나루를 지키고 있다가 잡은 것 입니다. 가장 위험한 순간에 함께 한 적이 없던 자들이고, 어찌보면 가장 안전한 때까지 보고 있다가 나중에 참전하여 공을 세운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지금 기드온에게 ‘왜 처음부터 우리를 부르지 않았느냐’며 거세게 항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에브라임 지파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이스라엘 안에서의 지위 때문이었습니다. 에브라임은 숫자적으로 이스라엘 열두 지파 가운데서 가장 많은 유다지파 다음으로 많은 두 번째 지파였습니다. 그들은 기드온이 속한 베냐민 지파와는 비교할 수 없는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던 자 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늘 첫 번째 지파인 유다 지파에 대한 경쟁의식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가장 작은 지파가 미디안 연합군을 쫓아내 버렸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참전해서 적장을 잡기는 했지만, 마치 식사가 끝난 자리에서 설거지를 한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만년 넘버2의 자존심이 상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 은 기드온과 300명이 미디안 패잔병을 추격하려는 것을 막고 지금 자신들의 상한 자존심을 토로하며 위협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기드온은 어떻게 할까요? 가장 위험한 자리에 섰던 기드온, 가장 어려운 전투를 승리로 바꾼
기드온이 이 상황에서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가장 안전한 자리에 숨어 있다가 이미 한 쪽으로 기울어진 상 황에 등장해서 전공을 차지한 에브라임, 거기다 아직 전쟁이 끝난 것도 아닌 상황에서 찾아와 무력으로 시 위하는 에브라임이 어떻게 보였을까요? 저는 기드온이 할 말이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기드온 은 에브라임과 싸우지 않습니다. 그리고 에브라임의 필요를 정확하게 알고 그 필요대로 반응해 주고 있습니 다. 기드온은 에브라임 사람들이 사용하는 속담을 언급합니다.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 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무슨 뜻일까요? 에브라임에서 가장 쓸모없는 것이, 자신이 속한 베냐민 지파 아비에
- 49 - 셀 집안의 ‘가장 좋은 것’보다 낫다입니다. 자신을 낮추고 에브라임을 높였습니다. 에브라임이 듣고 싶은 바 로 그 이야기를 하면서 굽신거린 것입니다. 이에 대한 에브라임의 반응이 3절의 마지막입니다. “그들의 노여 움이 풀리니라” 예, 그들은 즐거워하며 떠났습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 안에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 같은 분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주지 않으면 분노하시는 분입니다. 내가 한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받은 상, 세상 에서 얻은 지위를 그대로 교회 안에 가져와서 교회 안에서도 그렇게 대우 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기 가 생각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 될 만큼 대우해주지 않으면, 이 교회 이 사람들은 다 개념이 없는 곳이 됩 니다. “내가 누군데 나를 이렇게 대하나!”입니다. 사사기의 표현대로 ‘크게 다투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교회가 건물을 올리거나 무슨 물건을 들이게 되면 반드시 그곳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이름이 새겨진 것들은 절대 없애면 안 됩니다. 그걸 옮기면 사단이 납니다. 나를 무 시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런 성도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 것일까요? 기드온은 그들을 받아주었습니다. 자랑하라고 하 고 있습니다. 그들의 수준에서는 그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인정한 것입니다. 이걸 전문 용어로 하면 뭘까 요? “ 우 쭈 쭈 ~ ”입니다. 너무 낮은 수준에 있는 이들이기 때문에 일단은 얼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직 싸워야 할 전투가 남아 있는데, 우리 안에서 굳이 이 문제로 싸울 필요가 없는 까닭입니다. 성도 여러분, 에 브라임은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영적 아이였습니다. 어떻게도 도와서 함께 데려가야 하는 이들입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참아주고 인정해주고 지지해주며 어떻게든 함께 가려 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안에 다양한 수준의 영적인 성숙을 가진 이들을 보며, 오래 참음과 온유함으로 – ‘기다려 줄 수 있는 사랑이’ 나
날히 더해 가기를 축원합니다.
3. 숙곳과 브누엘의 불참 (4-9)
에브라임과 관련된 문제는 일단락되었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이들과 함께 더 싸우는 것은 어렵다고 판 단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와 함께 한 300명만 데리고 요단 동편으로 탈출에 성공한 미디안 패잔병을 추격 하고 있습니다. 4절부터 17절까지의 이야기는 그 추격전에서 일어난 이스라엘 민족들과의 갈등의 내용을 담 고 있습니다. 먼저 4-9절을 보면, 요단 강 동편에 있는 숙곳과 브누엘이라는 곳에서 추격하는 기드온과 300명의 ‘도움 요청에 반응하지 않음’과 ‘그 두 성읍을 향한 기드온의 저주’가 나옵니다.
8:4 기드온과 그와 함께 한 자 삼백 명이 요단 강에 이르러 건너고 비록 피곤하나 추격하며 5 그가 숙곳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를 따르는 백성이 피곤하니 청하건대 그들에게 떡덩이를 주라 나는 미디안의 왕들인
세바와 살문나의 뒤를 추격하고 있노라 하니 6 숙곳의 방백들이 이르되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네 손
- 50 - 안에 있다는거냐 어찌 우리가 네 군대에게 떡을 주겠느냐 하는지라 7 기드온이 이르되 그러면 여호와께서
세바와 살문나를 내 손에 넘겨 주신 후에 내가 들가시와 찔레로 너희 살을 찢으리라 하고
기드온과 300명은 계속해서 미디안을 추격하여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그런데 너무 피곤했습니다. 여기 나 와 있는 피곤은 육체적인 피로를 의미하는 것이지만 먹을 것이 없어서 생기는 피로함이기도 합니다. 기드온
은 한 시라도 빨리 미디안의 패잔병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의 왕을 치고 싶었습니다. 다시는 이스라 엘을 위협할 수 없도록 미디안의 뿌리까지 잘라버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쉴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진격을 위해 먹을 것도 충분히 준비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이 갓 지파의 성읍 숙곳에 떡을 요청했 던 겁니다. 문제는 그 숙곳의 지도자들의 반응입니다. 그들은 기드온과 함께한 이들이게 떡을 내어주지 않습 니다. 그들은 6절을 통해 말합니다.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네 손 안에 있다는거냐 어찌 우리가 네 군 대에게 떡을 주겠느냐” 고대 전쟁에서는 전쟁에 승리한 자가 자신의 전과를 증명하기 위해, 적군의 머리나 손을 잘라서 보여주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지금 숙곳 사람들은 ‘세바와 살문나’의 손을 가져오지도 않은 주 제에 우리에게 떡을 제공하라고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대답을 한 것입니다. 떡을 줄 수 없고, 주지 않
겠다는 선언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기드온과 300명의 사기에 영향을 미쳤을까요? 지금 이 300명은 죽어라 고생 하고 있습니다. 잠도 못자고, 밥도 못 먹고 싸우고 있습니다. 잠간 쉬지도 못했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이스 라엘의 원수를 제거하겠다는 마음으로 이제까지 달려왔습니다. 가는 길에 동포의 성읍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반가운 마음으로 그 성읍에 끼니를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문전박대를 당한 것입니다. 깊은 탄식이 곳 곳에서 터져 나오고, 원망이 터져 나왔을 것입니다. 여러분, 배가 고프면 화가 나는 겁니다. 거기다 지금 이 스라엘 민족을 위해 재대로 쉬지도 못하고 여기까지 달려왔단 말입니다. 당연히 밥은 먹을 수 있을 줄 알았 습니다. 그런데 밥도 못 먹게 된 것입니다. 사기가 바닥까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기드온은 급히 다음 성읍 ‘브누엘’로 갔습니다. ‘망대’라는 이름의 성읍으로 국경에 있어서 이방민족들의 침입으로 이스라엘의 국경을 지키는 성이기도 했습니다. 2시간쯤 걸어 이 성에 도착해서 기드온은 동일한 말을 하고 동일한 요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요청에 대한 반응마저 숙곳과 동일했습니다. 그들은 기드온과 일행을 향해 비아냥거렸고, 떡을 내어 놓지 않았습니다. 기드온과 300명은 브누엘에서도 아무것도 얻지 못 하고 나와야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미디안과의 전쟁에 승리하며 기드온과 300이 인정을 받고, 기드온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에 평화가 임하면 될 것 같은 상황인데, 이 이야기 속에 ‘숙곳과 브누엘’의 이야기는 왜 들어 있는 것일까요? 멋있게 끝나도 될 것 같은데, 별로 은혜롭지 않은 이야기는 왜 있는 것일까요? 사사기의 저자는 지금 우리 에게 이스라엘 안에 있지만 이스라엘이 아닌 자들이 누구며, 그들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
- 51 - 한 것입니다. 본문은 “누가 하나님 나라 백성이냐?” 는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누가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게 될 하나님 나라 백성일까요? 문제가 많고 어리긴 하지만 에 브라임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에브라임은 문제가 많기는 하지만 이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미디안과 피를 흘리며 싸웠습니다. 미디안과 전투에서 흘린 피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피가 그들이 하나님 백성임을 증명합니다. 숙곳과 브누엘은 어떻습니까? 요단강 동편에 있던 갓 지파의 성읍입니다. 분명 야곱의 열두 아 들 가운데 한명인 갓의 혈통입니다. 혈통으로 보면 하나님 나라 백성이 맞습니다. 언어도 문화도 외형도 같 은 민족이 맞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할 ‘하나님 나라 백성’이 아닙니다. 왜 입니까? 그 들은 이 전쟁을 위해 그 어떤 것도 내어 놓은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피 흘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도망하는 미디안 군대와 왕에 관하여 알고 있었지만 성문을 열고 그들을 추격할 생각이 없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추격하고 있는 하나님의 군대를 위해 한끼 양식도 대접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 전쟁을 위한 그 어
떤 댓가도 치루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하나님 백성이 아닌 이유입니다.
성도 여러분,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손님과 주인이 나뉘어집니다. 별 문제가 없을 때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 움직이는 사람이 주인입니다. 가정도 교회도, 하나님 나라도 그 렇습니다. 사사기의 저자는 지금 이 숙곳과 브누엘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 나라 안에 있는 ‘하나님 백성이 아닌 자’를 찾아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자들을 향해, “너희는 누구냐?” 묻고 있습니다. 멋 진 고백이나 눈물을 흘리는 찬양으로 우리가 누구인지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종교성이 가득한 삶의 방식과 태도로 우리를 증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그 분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네가 한 희생이 무엇이 냐’ 묻고 계십니다. 우리 주님 앞에 보여드릴 수고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주님 때문에 상한 ‘깨어진 마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너는 누구냐?” 물으실 때, 그 주님 앞에 보여드릴 ‘그리스도의 흔적’이 있는, 그래서 당당하게 그분 앞에 서서 “저는 당신 편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우리 모든 성도되시기를 축
원합니다.
4. 숙곳과 브누엘을 향한 심판 (10-17)
아무것도 먹지 못한 기드온 일행은 패주한 미디안 연합군의 진영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는 만오천명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이스라엘 진영을 벗어났기에 안심하고 진영을 정비하며 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쉬고 있던 미디안에게 기드온과 300명이 들이닥쳤습니다. 그리고 왕 세바와 살문나가 기드온에게 잡 혔습니다. 전투는 끝났고, 미디안의 위협은 사라졌습니다. 성경은 의도적으로 이 사건에 대해 많은 것을 기 록하지 않습니다. 300 : 15000 도 보통 전쟁은 아닙니다. 1:50입니다. 절대 승리를 말할 수 없는 전투였습 니다. 그러나 이 300명은 이미 1:450에서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싸
움에 참여했고, 그 결과 두 왕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일어나는 숙곳과 브누엘을 향한 심판입니다.
- 52 - 8:14 숙곳 사람 중 한 소년을 잡아 그를 심문하매 그가 숙곳의 방백들과 장로들 칠십칠 명을 그에게 적어
준지라 15 기드온이 숙곳 사담들에게 이르러 말하되 너희가 전에 나를 희롱하여 이르기를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네 손 안에 있다는 거냐 어찌 우리가 네 피곤한 사람들에게 떡을 주겠느냐 한 그 세바와 살문나
를 보라 하고 16 그 성읍의 장로들을 붙잡아 들가시와 찔레로 숙곳 사람들을 징벌하고 17 브누엘 망대를
헐며 그 성읍 사람들을 죽이니라
기드온은 숙곳과 브누엘을 잊지 않았습니다. 숙곳을 향해 가며 그 숙곳에서 자신들에게 떡을 주지 않기로 결정했던 지도자들의 명단을 확보합니다. 77명의 명단을 확보한 그는 숙곳에 가서 그들에게 저주했던 대로 ‘들가시와 찔레로 징벌’했습니다. 또한 브누엘에서 가서는 그 망대를 헐어버리고, 얼마의 사람을 죽였습니다. 들가시와 찔레로 ‘징벌했다’에서 징벌의 원어적 의미는 ‘타작’입니다. 낱알을 얻기 위해 도리깨로 곡식을 치
는 것입니다. 가시가 있는 채찍으로 그 성읍의 장로를 치는 아주 고통스러운 징계를 내렸다는 것입니다. 또
브누엘을 상징하는 ‘망대를 헐었다’는 것은, 더 이상 이스라엘의 국경을 지키는 망대로서 역할을 할 수 없게 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과정에서 막았던 사람들 중 일부를 죽인 것으로 보입니다. 승리한 기드온은 그냥 숙곳과 브누엘을 지나가지 않고, 그가 입을 열어 저주했던 그 저주를 그대로 이들에게 행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다소 잔인해 보입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 싶기도 합니다. 기드온의 뭔가 원 수를 갚는데 너무 심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다음 주에 살펴보겠지만 기드온에 게도 지금 심각한 문제가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오늘은 그 기드온의 문제를 살펴보기보다 이 사건 자체가 오늘 우리에게 주고 있는 교훈을 중심으로 정리해 봐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기드온의 심판이 뭘 보여주는 것입니까? 하나님 나라를 위해 피 흘리지도 떡을 나누지도 않았던 자들의 ‘결국’입니다. 그들은 미디안이 심 판을 당한 후에 미디안의 멸망과 함께 멸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이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요단 동편 갓 지파에게 배분한 땅에 거하는 것 이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언어나 문화가 그들을 심판으로부터 건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 해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은 자’에게 남은 것은, 단지 ‘승리를 경험하지 못한다’가 아니라, 세상을 심판하시
는 날 함께 망한다 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나눔교회 성도 여러분,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괜찮은 게 아닙 니다. 내가 어떤 직분을 가지고 있어 괜찮은 것도 아닙니다. 교회에 출석하고 등록교인으로 이름이 기록되어 있어서 안전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한 수고와 희생 그리고 허비가 없었다면,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들어 보여드릴 수 있는 그것’이 없다면, 아직 우리는 ‘하나님 편에 속한 자’는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 성도님 들의 삶 가운데, 주님을 위한 내어드림이 이야기들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 그것들을 들어보이심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지나가는 은혜를 누리실 수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 53 - 5. 세바와 살문나를 향한 심판 (18-21)
숙곳과 브누엘에 대한 심판이 끝났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사로잡은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입니다. 기드온은 이들을 잡아 한가지를 심문한 후에 죽이고 있습니다.
8:18 이에 그가 세바와 살문나에게 말하되 너희가 다볼에서 죽인 자들은 어떠한 사람들이더냐 하니 대답
하되 그들이 너와 같아서 하나 같이 왕자들의 모습과 같더라 하니라 19 그가 이르되 그들은 내 형제들이며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니라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만일 그들을 살렸더라면 나도
너희를 죽이지 아니하였으리라 하고 20 그의 맏아들 여델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들을 죽이라 하였으나 그 소
년이 그의 칼을 빼지 못하였으니 이는 아직 어려서 두려워함이었더라 21 세바와 살문나가 이르되 네가 일어
나 우리를 치라 사람이 어떠하면 그의 힘도 그러하니라 하니 기드온이 일어나 세바와 살문나를 죽이고 그들
의 낙타 목에 있던 초승달 장식들을 떼어서 가지니라
“너희가 다볼에서 죽인 자들은 어떠한 사람들이더냐?” 기드온이 두 왕에게 질문합니다. 두 왕은 대답합니 다. “그들이 너와 같아서 하나 같이 왕자들의 모습과 같더라” 이 대답을 들은 기드온이 말합니다. “그들은 내 형제들이며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니라” 기드온은 직접 두 왕을 죽였습니다. 기드온은 말합니다. “만일 그들 을 살렸더라면 나도 너희를 죽이지 아니하였으리라” 라고 말입니다. 세바와 살문나가 죽는 가장 직접적인 이 유는 ‘다볼에서 왕자들의 모습 같은 자들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학자들 대부분은 이 본문에서 미디안의 왕 세바와 살문나가 기드온의 형제들을 죽였기 때문에 기드온이 이렇게 집요하게 추격하여 그들의 피의 보복을 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기드온은 자 신의 사적인 복수를 하기 위해 300명의 하나님께서 추린 인원들을 데리고 전투한 게 됩니다. 저는 이 300 명의 사람들은 절대 그런 목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되면 안된다 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움직이는 것은 곳 하나님께서 앞서 싸우시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기드온의 사적 보복을 위해 이렇게 싸우신다는 생각 을 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 해석을 받아들이기 가장 어려운 부분은, 다볼이 므낫세 지파가 사는 곳이 아니었다는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이 부분에 있는 미디안 왕에 의해 죽임을 당한 ‘왕자들의 모습’ 같은 자들 은 누구였는지를 확인하게 되면 이 부분을 통한 적용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다볼에서 죽임 당한 자들의 외
형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들이 너와 같아서 하나 같이 왕자들의 모습과 같더라” 세바와 살문나가 이스라엘에 침공해서 얼마나 많은 이들을 죽였겠습니까? 그런데 다볼에서 죽였던 자들에 대한 기억은 너무도 선명합니다. 그들은 이스라 엘의 수많은 ‘다른 이들’과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고귀한 품격, 왕자의 품격”이 느껴 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왕이 왔습니다. 왕족도 따로 없습니다. ‘왕자의 품격’이 느껴지는 그런 집안을 찾는 것도 어렵습니다. 죽임 당한 자들은 고관대작들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도대체 어떤 자들
- 54 - 이기에 ‘왕자의 풍모’를 지닐 수 있었을까요? 힌트는 그들이 지금 자신들의 눈 앞에 있는 ‘기드온 같은 사람 분위기가 풍기는 자들’이었습니다.
기드온이 누구입니까? 하나님께 사명을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에 순종해서 자신의 집에 있 는 우상을 찍어버렸던 여룹바알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이 원조 여룹바알 기드온의 이야기는 온 이스라엘을 영적인 잠에서 깨운 이야기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수많은 여룹바알들이 나탔습니다. 하 나님의 부르심 앞에 반응해서 우상을 부쉈던 믿음의 사람들 말입니다. 믿음이 없던 세바와 살문나의 눈에 기드온과 그 자신들의 손에 죽임을 당했던 다볼의 사람들이 비슷해 보입니다. 왜입니까? 같은 믿음을 가지
고 같은 싸움을 싸우고 같은 사명으로 움직였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에 눈에도 자신의 손에 죽임을 당했던 자들은 다른 이들과 달랐습니다. “왕자들과 같은 위엄 : 당당함”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죽이기를 머뭇 거렸습니다. 뭔가 큰 잘못을 하고 있는듯한 느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다볼에서 죽임당한 이들의 얼굴을 기 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왕자들과 같은 얼굴”이 지금 자신의 눈 앞에 있는 ‘기드온’에게서 보였습 니다. 다볼에서 죽임당한 그들은 참된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진 자들, 참된 신자들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이스라엘에는 왕이 없습니다. 아니 왕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친히 왕이신 나라 가 이스라엘입니다. 그런데 이 곳에 왕자들이 나타났습니다. 누구입니까? 왕이신 우리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 르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참된 성도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지금 기드온을 통해 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참된 성도들의 원하는 푸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 의 원한을 갚으시는 분이십니다. 성도가 이 땅에서 잠간 세상에게 상하고 다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대로 끝나지 않습니다. 끝까지 하나님께서 쫓아가셔서 당신의 정의를 이루십니다. 당신의 자녀들을 위해
보복하신 하나님께서 여기 우리 성도님들의 삶의 모든 억울한 것을 풀어내시기를 축원합니다.
6. 어느 편에 설 건가?
6: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6:14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약속하신 바를 이루신 하나님 ~~. 그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그분 편에 서는 자가 되기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