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 II

우리의 죄, 하나님의 샬롬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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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alm 51:1–15 NKRV
1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2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3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5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6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내게 지혜를 은밀히 가르치시리이다 7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8 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소서 9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13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14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15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우리의 죄 하나님의 샬롬 마지막 시간입니다.
지난 주에 이어 시편 51편을 중심으로 회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다시 노래하는 다윗

여러분, 다윗은 누구보다도 자신의 인생을 망가트린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아내가 아닌 여자를 사랑했고, 그 여인과의 불륜을 숨기기 위해 여인의 남편이면서 자신에게 충직했던 우리아를 죽이는 범죄를 저지릅니다.
하지만, 선지자 나단에 의해 다윗의 죄는 드러나게 되죠. / 나단의 지적 앞에 다윗은 철저하게 무너져 내립니다. / 정신을 차리고 나니 자신이 저지른 죄악이 너무나 끔찍했던 것이죠. / 상상도 못할 죄책감과 수치심이 그를 짓눌렀을 것입니다. / “내가 무슨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나는 왕으로서 다스릴 자격이 없어”/ 자기 연민에 빠지기도 했을 겁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더더욱 괴로웠겠죠. / 그렇게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기를 좋아했던 다윗인데 / 죄로 인한 하나님과의 단절로 인해 다윗은 노래하지 못했을 겁니다. / 예배하지 못했을 것이고, 기도하지 못했을 겁니다. / 시편 51편은 그 다윗의 괴로움이 그대로 묻어 나옵니다.
하지만, 시편 51편 마지막을 보면 다윗은 다시 하나님을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회복의 노래

그래서 시편 51편은 망가져 있는 인생들에게 다시 노래할 수 있다고 말하는 시편입니다.
아무리 인생이 망가지고, 죄로 인한 수치와 상처가운데 있을지라도 회복될 수 있다라는 것이죠. / 그래서 시편 51편은 회복의 노래이기도 합니다.
혹시 여러분들 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노래와 기도, 예배가 멈춘 분들이 있습니까? / 나의 잘못과 실수로 말미암은 깊은 죄책감 가운데 계신 분들이 있나요?
그렇다면, 시편 51편은 바로 여러분들을 위한 것입니다.

회복이 필요하지 않아도

반대로 나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 “나는 그 정도까지의 죄인은 아니지”
하지만, 시편 51편은 이러한 사람들에게 경고합니다. /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불리웠던 사람이 이 정도까지 무너졌다면, 당신도 얼마든지 무너질 수 있다”
그러니 여러분 나는 괜찮다고 장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타이타닉이라는 초호화 여객선을 만든 사람들은 장담했습니다. ‘이 배는 신도 무너트릴 수 없는 배다’ / 지난주에 얘기한 타이탄도 마찬가지입니다. “타이탄은 가장 안전한 잠수정이다”라고 장담했습니다. / 하지만, 이 오만함은 끔찍한 결과를 불러오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 ‘나는 괜찮다. 나는 무너지지 않는다?” / 죄는 그 방심한 틈으로 반드시 들어올 겁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나는 언제 어디서든 넘어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편 51편은 더더욱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시편인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변화되기를 원하죠.
하지만, 회개해도 또 다시 반복적으로 죄를 짓습니다. / 변화가 없는 겁니다.
하지만, 시편 51편은 진정한 회개가 무엇이고, 진정한 변화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반복해서 회개의 네 가지 단계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 그렇다고해서 완전히 똑같은 반복은 아니고요. / 각 단계를 새로운 각도로 바라보고자 합니다.
‘왜 똑같은 내용을 또 하나?’라는 마음이 들 수 있겠지만, 그만큼 회개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 바라기는 오늘 설교가 여러분에게 반복 학습이 되어서 회개의 개념이 마음 깊이 새겨지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다시 일으킬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시선으로 죄를 바라보라

지난주 보았듯이 회개에는 네가지 단계가 나옵니다.
첫번째는 하나님의 시선으로 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 4절에서 다윗은 “주의 목전에서”죄를 지었다라고 말합니다.
Psalm 51:4 NKRV
내가…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
하나님의 보시는 방식으로 자신의 죄를 바라본 것이죠.

죄를 포장하는 능력

인간의 탁월한 능력 중에 하나가 무엇이냐면, 악을 포장하는 능력입니다. / 끔찍한 일을 저질러 놓고는 ‘어쩔수 없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포장하는 겁니다.
여러분, 사진을 찍을 때 각도가 중요하죠? / 더 잘보이게 나오는 나만의 각도가 있습니다. / 단점을 감추고, 최대한 좋아 보이게 만드는 각도죠. / 그런데, 이걸 다르게 생각하면 이건 현실을 감추는 탁월한 능력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거 단지 사진 얘기가 아닙니다. / 나치는 한 민족을 완전히 말살하고도 “역사적으로 정당하다”고 말했습니다. / 오늘날 열강들이 서로에게 미사일을 쏴 올리면서 정당하고 말합니다. / 자신들의 과오를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겁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윗은 “그래. 내가 죽인 건 아니지, 우리는 암몬 사람들의 손에 의해 죽었잖아. 어파치 전쟁에서 죽을 목숨이었어” / 만약 다윗이 우리아의 죽음의 의혹에 관한 청문회를 했다면 온갖 변명을 해댔을 겁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이러한 것들을 너무나 많이 봐았죠. / 천인공노할 죄를 지었음에도 뻔뻔한 태도를 보이는 이들 / 이들은 절대로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죄를 합리화하기 시작하면요, 어떤 죄든 정당화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심지어 타노스도요 / 인류의 절반을 핑거스냅으로 날리면서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 자신의 사명을 다했다라고 말하잖아요.

절대적 기준이 없다면

어떤 인류학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악이 될 수도 있고, 선이 될 수 있다” / 어떤 문화에서의 끔찍한 일이 다른 문화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문화 상대주의를 주장한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어떤 인터뷰어가 이 사람을 인터뷰하면서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 “당신은 모든 문화가 상대적이라면서, 왜 아프리카에서 여성이 억압당하는 것에 대해 분노하십니까?”
실제로 이 인류학자는 아프리카 지역에서 수백년간 전통문화로 이어져 온 여성 할례에 대해 목소리를 내며 분노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 그런데 이 질문을 듣자, 대답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그렇죠. / 절대적인 관점이 없으면, 어떠한 것에도 분노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말인즉슨, 절대적인 관점이 없다면, 인생의 죄의 문제, 악에 대해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 모든 것은 다 상대적이니깐요.
다윗은 이것을 알았습니다.
자신의 관점으로는 얼마든지 자신의 죄에 대해 합리할 수 있음을 알았던 거에요. / 그래서 다윗이 한 일은 “하나님의 기준, 하나님의 관점으로” 죄를 본 것입니다.
성경 말라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재물을 모은 것을 두고 내 것을 도둑질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이 나옵니다. /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언제 주의 것을 훔쳤다고 그러십니까?”라고 억울함을 토로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은 어떠합니까? / 하나님은 우리를 ‘재물의 주인’이 아니라 ‘청지기’로 부르셨습니다. / 즉, 재물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입니다. / 그런데 재물을 나누지 않고,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사용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것을 횡령한 것이라는 겁니다. / 관점이 완전히 다른 것이죠.
그래서, 나의 관점과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으로 죄를 봐야 올바른 회개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상대화되는 이 시대 속에서도 절대적인 하나님의 기준을 붙드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2. 죄를 인정하라

두번째 다윗이 한 일은 ”변명하지 않고 죄를 인정하고 책임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내 죄악, 내 죄과”라고 반복적으로 말합니다./ “내가 잘못”이라는 것이죠.
새삼스럽지만, 요즘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보기 힘든 것 같죠. / 다들 빙빙 둘러서 말하지, 자신이 잘못했고 자신의 책임지겠다는 말, 듣기 힘든 것 같습니다.
6절에서 다윗은 말합니다.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십니다”
Psalm 51:6 NKRV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
다윗은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고백하는 겁니다. / “하나님, 상황 핑계되지 않겠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원해서 죄를 지은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탓하지 않겠습니다. 전적인 나의 책임입니다.”
예를 들어 회사에 취직하는데, 이력서에 한줄 정도 사실이 아닌걸 썼다고 칩시다. / 그러면 속으로 이렇게 핑계했겠죠. / “한 줄인데 뭐. 괜히 그대로 썼다가 이 어려운 시기에 취직도 못하고, 더 힘들어졌을거야”
하지만, 다윗은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 “제가 여호와께 범죄했습니다. 저는 정직함보다 돈을 원했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시기보다 삶의 안정감을 원했습니다. 이로 인해 어떠한 결과가 오더라도 받아들이겠습니다” / 중심의 진실함이죠.
그런데, 우리는 왜 그토록 내가 틀렸다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걸까요?
여러분, 다윗은 어떤 핑계도 대지 않고,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죄를 인정하고 고백했습니다. / 나의 죄를 완전히 인정하고 드러내야, 완전히 죄를 제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반쪽짜리 회개, 부분적인 회개가 아니라 완전한 회개를 함으로 죄로부터 깨끗이 돌아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3. 죄를 슬퍼하라

여기까지가 머리로 하는 단계고, 다음 두 단계는 가슴의 영역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회개는 차갑고 무감각한 감정이 아니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참된 회개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불타고, 그분을 거스른 죄에 대한 슬픔으로 불타는 마음에서 나온다” - 조나단 에드워즈
즉, 회개에는 감정적인 열기가 있어야 한다라는 것이죠.

하나님의 사랑을 기초로 한 슬픔

다윗은 머리로 죄를 인지하고 인정하는 것을 넘어 죄를 슬퍼합니다.
그런데 다윗의 이 감정은 단숨히 후회하거나 자책하는 감정이 아닙니다. /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벌내리실까? 두려움의 감정이 아닙니다.
1절에서 다윗은 고백합니다.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Psalm 51:1 NKRV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인해 슬퍼하고 괴로워합니다.
여기서 ‘인자’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로, 히브리어로 ’헤세드’입니다.
‘헤세드’는 한마디로는 설명하기가 어려운 단어인데, ‘변함없는 사랑’, ‘언약적 사랑에 기초한, 절대 끊어지지 않는 사랑’을 뜻합니다.
다윗은 회개할 때 이 사랑을 떠올린 겁니다. / 그러면서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떠올렸을 겁니다.

헤세드: 언약적 사랑

출애굽기 32장을 보면 황금송아지 사건이 나오죠.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집트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스라엘을 끄집어내죠. /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를 금새 잊고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우상을 숭배합니다. /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Exodus 32:10 NKRV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언뜻 보면 하나님이 포기하신 것처럼 보이죠. / 그런데, 여러분 한번 잘 생각해보세요. / 하나님께서 정말로 이스라엘을 버리실라고 이 말씀을 하신 걸까요?
가끔 부모님이 말 잘 안듣는 자녀들을 향해 이렇게 말할 때 있죠. / “니 인생 니가 책임져, 니 맘대로 해, 이제 너랑 상관하지 않을거야”/ 그렇다고 우리가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잖아요? / 부모의 이 말은 자식을 향한 애절한 사랑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10절을 히브리 원어를 보면 “나를 놓아줘라” “이제 좀 쉬게 해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 “나의 변함없는 사랑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나를 배반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언약으로 묶여 있다. 나의 심정과 마음은 그들과 묶여있다. 나는 그들을 놓을 수 없다”
너희는 나와 끊어질 수 없는 언약적 사랑으로 묶여있다라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여러분 놀랍지 않나요? / 무한하신 하나님은 얼마든지 우주를 리셋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실 수 있습니다. /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폐기 처리 안하시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신다라는 것이죠.
여러분, 내 자녀가 아무리 속을 썩인다 해도 그 아이가 나의 자녀라는 사실은 끝까지 변함이 없습니다. / 부모와 자식은 혈연이라는 끈끈한 끈으로 묶여있기 때문입니다. / 하지만, 부모의 사랑이라는 것도 한계가 있죠.
하지만, 이보다 더 탄탄하고 끊어지지 않는 사랑이 무엇입니까? “헤세드” 언약적인 사랑,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Psalm 27:10 NKRV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여러분, 끊을 수 없는 영원한 사랑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인줄로 믿습니다.
창세기 15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며, 쪼갠 짐승 사이로 지나가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냐면, “내가 이 짐승처럼 쪼개지더라도 반드내 내가 너를 축복하겠다” 쉽게 말해 피의 맹세를 한 것이죠. / “니가 실패하더라도, 나는 끝까지 약속을 지킬 것이고, 너와 너 자손들을 축복할 것이다“
다윗은 바로 이 헤세드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우리는 다윗이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다라는 것을 아십니까?
그것이 무엇입니까?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을 피흘리시기까지 지키겠다는 분명한 증거죠. / 바로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말씀하십니다. / “나는 너에게 모든 죄의 형벌을 쏟아부을 것이다. / 그 고통은 너무 커서 너의 몸과 영혼이 쪼개지게 될 것이다. / 그래야 그들이 살아날 수 있다.”
그러자, 예수님은 대답합니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결국 예수님은 순종했기 때문에 버림을 받으셨죠. / 왜? 우리와의 사랑의 언약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이 죄인인 우리를 사랑의 언약으로 묶으신 것입니다.
다윗은 이 사랑을 떠올린 것이죠. /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은혜를 베푸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사랑, 이것이 헤세드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언제나 완전한 사랑을 꿈꿉니다.
‘진정한 사랑이라면, 이래야지’ / 거래적이고 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나를 끝까지 품어주는 사랑.
우리는 그 사랑이 너무나 필요하고, / 그래서 그 사랑을 찾아 헤매지만, / 사랑을 주는 것도 사랑을 받는 것도 실패할 뿐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성경은 말합니다. ‘결코 실패하지 않는 사랑이 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그 사랑을 받기 위해 자격을 갖추라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기독교의 복음은 다릅니다. / 그 사랑이 자격없는 우리는 먼저 찾아왔다라고 말합니다.
아직 그 사랑을 만나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믿음으로 그 사랑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인생을 살아왔든, 실패더미 가운데 있는 여러분의 인생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붙드실 것입니다.
다윗은 철저하게 무너진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떠올린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은혜를 바라볼 때,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4. 죄를 버리라

네번째, 죄를 미워하고 버리는 겁니다.
C.S.루이스의 영광의 무게를 보면 루이스가 말합니다.
“우리는 무한한 기쁨을 준다해도 술과 섹스와 야망에만 집착하는 냉담한 피조물입니다. 마치 바닷가에서 휴일을 보내자고 말해도 그게 무슨 뜻인지 상상하지 못해서 그저 빈민가 한구석에서 진흙 파이나 만들며 놀고 싶어 하는 철없는 아이와 같습니다“ - C.S. 루이스
여러분 그래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아름답고도 찬란한 바다가 우리 마음에 펼쳐지면요. /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 만족하려고 했던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초라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 진짜 기쁨을 경험하게 되니깐, 가짜를 더이상 찾지 않게 되는 겁니다.

구원의 기쁨 회복

다윗은 스스로 괴로워하며 물었을 겁니다.
“나는 왜 밧세바를 원했을까? 왜 내 마음 안에 거부하기 어려운 강한 끌림이 있었을까?”
“나는 어째서 우리아를 죽음으로 내 몰았던 걸까?
그리고나서 다윗은 고백하죠. “구원의 기쁨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보통 우리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구원의 기쁨을 잃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잃었기 때문에 또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하는 겁니다.
“하나님, 저는 주님의 변치 않는 사랑을 잊었습니다. / 그 사랑이 내 마음 깊은 곳에 기쁨이 되지 못했습니다. / 당신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히지 못했기에 저는 죄를 지었습니다. / 내 안에 주님을 향한 감격과 기쁨이 사라졌습니다. / 주의 구원의 기쁨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왜 우리는 죄를 미워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반복된 죄를 짓는 것일까요?
단순히 죄책감만을 가지고 자신을 찌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날 보고 엄청 실망하시겠지? 난 이제 벌 받게 될거야”
여러분, 이건 왜 내가 죄를 지었는지도 모르고, 자신을 자책할 뿐입니다. / 이러한 회개는 잠시 죄에서 벗어나지만, 언젠가 다시 돌아옵니다. / 그러면 또 자신을 자책하죠 / 회개하면, 회개할수록 자신을 미워하게 됩니다.
하지만, 십자가 구원의 능력과 아름다움이 내 영혼을 비추게 되면, 구원의 기쁨이 회복이 되죠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내 안에 있는 죄의 위력이 힘을 잃기 시작합니다. / 내가 아니라 죄를 미워하기 시작합니다.
루이스가 말했듯, 바다 같이 넓은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면, 진흙탕에서 가지고 논 진흙이 얼마나 초라한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죠.
다윗은 깨달았을 거에요. / “내가 그분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고, 다른 것에 마음을 두었구나. /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두고, 밧세바의 사랑을 원했구나 / 내가 그분의 품이 아닌, 그녀의 품을 원했구나.”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기쁨, 예배의 기쁨을 잃어버리고, 다른 것으로 나의 만족과 기쁨을 삼고 있지는 않습니까?
광활한 바다를 외면한채, 진흙탕 속에서 진흙을 가지고 노는 아이가 여러분의 모습이 아닌가요?
“다시는 진흙가지고 놀지 않을거야”라는 결단만으로 부족합니다.
눈을 들어 바다를 바라보세요. / 바다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세요. / 하나님의 아름다운 사랑이 여러분 마음 가운데 쏟아져 들어와야 합니다. / 그 아름다움이 여러분의 진짜 기쁨이 되어야 해요.
“하나님, 십자가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과 그 아름다움의 빛을 내 영혼을 비춰주옵소서. 그리하여, 내 영혼에 있는 헛된 소망과 두려움, 모든 죄악들이 떠나가게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할 때 죄가 미워지기 시작하고, 죄로부터 떠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구원의 기쁨을 회복할 때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파도와 같이 넘치는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기쁨이 여러분 영혼 가운데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매일 회개하라

하지만,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 회개 이후가 중요한데요.
하나님의 관점으로 죄를 보고 / 죄를 인정하고 / 죄를 슬퍼하고 미워할 때, 삶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 1절부터 9절까지 회개한 다윗은, 10절부터가 회개 이후인데요. / 이렇게 고백합니다.
Psalm 51:10 NKRV
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하나님, 단순히 저의 행동이 아니라 저의 본성을 변화시켜주옵소서, 죄를 미워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기뻐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 그리고, 이어 고백합니다.
Psalm 51:11 NKRV
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이 고백은 하나님의 임재를 거두지 말아달라는 고백이죠. / 이것은 지속적인 회개를 말합니다. / 우리는 보통 크게 잘못했을 때 하는 것이 회개라 생각 하고, 회개는 한번 하면 끝이라고 생각하죠.
존 스토트 목사님은 “기독교의 기본 진리”라는 책에서 회개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을 때, 베드로가 말하죠. / “어떻게 예수님이 저의 더러운 발을 씻기십니까?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 그러자 예수님이 대답하십니다 / “내가 너를 씻기지 않으면 너와 상관이 없다”
그러자, 베드로는 참 단순해죠. / “발 뿐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십시요” /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John 13:10 NKRV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
이게 무슨 말이냐면,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죄사함을 받아 단번에 의롭게 되죠. / 이것은 마치 온 몸을 목욕하는 것과 같은 겁니다.
우리 교단에서 세례를 할 때는 머리에 물을 뿌리지만, 침례교는 완전히 물에 들어갔다 나오죠. / 나는 죽고 예수로 살아난다. / 죄에서 씻김받은 새로운 삶을 보여주는 외적인 상징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목욕은 다시 할 필요가 없습니다. / 이미 온 몸이 깨끗하기 때문입니다. / 세례를 한번만 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하지만, 존 스토트 목사님은
우리는 죄의 먼지로 가득한 세상을 다니기 때문에 우리의 발은 매일 더러워지죠. / 그래서, 온 몸을 씻을 필요는 없지만 매일 발은 씻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매일 더러워진 발을 씻든 우리는 지속적으로 회개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틴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날마다 회개하는 삶”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하루 넘어졌다면 회개하시고, 내일 넘어지면 또 회개하십시오.
낙심하고 실패했을 때 회개는 여러분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말할겁니다.
“목사님, 저 오늘 하루 완벽했어요. 회개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도 회개하십시오. / 내가 오늘 하루를 잘 살았다는 교만을 회개로 꺾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회개하는 삶이 복된 삶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하는 거에요.
Psalm 51:14–15 NKRV
14 …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15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이 고백은 “날마다 죄를 멀리함으로, 주님의 임재 안에 주님을 찬양하는 예배자의 삶을 살아가겠습니다”라는 고백인 것이죠.
여러분, 이렇게 하나님 앞에 참된 회개를 할 때, 잃었던 예배의 기쁨, 찬송의 기쁨이 회복될즐 믿습니다. / 그래서, 우리 모두의 삶이 하나님의 임재가 떠나지 않는 인생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다윗은 용서 받았지만, 죄의 결과는 평생 그와 함께 했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의 가정사를 보면요. 머리가 아픕니다. / 형제간의 복수와 아들 압살롭과 아도니야의 반역, 가정 안에 분열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죄 용서를 받았다고 해서 죄의 결과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 예수님의 족보를 보게 되면 놀라운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Matthew 1:6 NKRV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여러분, 다윗의 여러 아내, 여러 자녀들이 있었어요 / 근데 왜 하필 하나님께서는 밧세바 사이에서 태어난 솔로몬을 선택하시고, 메시야의 계보를 잇게 하신 걸까요?
우리 생각 같아서는 죄와 실패로 얼룩진 것들은 잘라버리고 / 아예 새로운 플랜으로 다시 시작할거 같은데, 그렇지 않죠.
여러분, 이것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방식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에서 절대로 플랜 B를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 여러분의 인생이 실패로 얼룩져 있다고 여러분을 버리고, 다시 새롭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죠.
오히려 내가 넘어진 그 자리, 나의 연약함, 수치와 실패를 사용하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인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내 사랑하는 자녀들아. 너희가 죄를 지으면 반드시 결과가 따를 것이다. 오랜 시간동안 죄의 결과로 인해 고통받을거야.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는 너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 나에게는 플랜 B는 없다. / 나에게는 오직 너 뿐이다. / 내가 너를 너무나 사랑하기에 너의 실패조차도 플랜 A로 만들 것이다.
그러니, 죄를 절대로 가볍게 여기지 말아라. / 죄는 나를 슬프게 하고, 너의 삶에 고통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아 나는 이제 끝났어, 나는 내 인생을 망쳤어, 하나님의 계획은 내 인생에서 떠났어” / 절대로 이렇게 말하지도, 생각하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획은 플랜 B가 없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의 계획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은 말합니다.
어떠한 죄도 가볍지 않다. 모든 죄는 우리를 멸망에 이르게 한다. / 하지만, 참으로 회개하는 자를 멸망시킬 수 있는 죄도 없다.
여러분, 위대하고도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의 죄를 덮고도 남을 것입니다. / 그 사랑 앞에 나아오십시오. / 절대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아멘.
그래서 이 시간 함께 기도할 때에
하나님, 죄를 합리화하지 않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죄를 봄으로 회개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내 죄를 감추려는 유혹에서 벗어나 주의 목전에서 죄를 범했다고 정직하게 고백하는 회개자가 되게 하옵소서.
심판의 두려움이 아니라 끝까지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함으로 죄를 슬퍼하게 하시고, 죄를 미워하고, 죄를 버리게 하소서.
하나님, 내 속에 정한 마음과 정직한 영을 주셔서 죄를 미워하고 버림으로 날마다 주의 임재 안에서 기뻐 노래하며 찬송하는 하나님의 사람 되게 하옵소서.

찬양

주여 우린 연약합니다 우린 오늘을 힘겨워합니다 주 뜻 이루며 살기엔 부족합니다 우린 우린 연약합니다
주여 우린 넘어집니다 오늘 하루 또 실수합니다 주의 긍휼을 구하는 죄인입니다 우린 주만 바라봅니다
한없는 주님의 은혜 온 세상 위에 넘칩니다 가릴 수 없는 주 영광 온 땅위에 충만합니다
주님만이 길이오니 우린 그길 따라갑니다 그날에 우릴 이루실 주는 완전합니다
여호와께 돌아가자 우린 돌아서도 그는 변치 않네 여호와께 돌아가자 우린 넘어져도 그사랑 영원하네
기도제목
1. 내 실패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소서
하나님, 내 인생이 실패 가운데 있어도 / 완전하지 않은 인생이지만
완전하신 하나님이 여전히 내 삶을 붙드셔서 주님의 뜻을 이루실 줄로 믿습니다.
나를 두렵게 만들고,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정죄감은 예수 안에서 떠나갈지어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끝나지 않았음을 믿음으로 선포합니다.
하나님, 포기하지 않게 하시고, 내 실패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3. 내 안에 구원의 기쁨을 회복시켜 주소서
주님, 죄로 인해 무뎌진 내 마음에 다시 주의 기쁨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예배의 감격, 찬양의 기쁨을 다시 누리게 하소서. 내 입술이 주님을 다시 노래하게 하소서.
5. 하나님의 임재가 떠나지 않는 삶 되게 하소서
성령님, 나를 떠나지 마시고,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살게 하소서.
죄를 이기며, 정결한 마음으로 주 앞에 살아가게 하소서.

봉헌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오늘도 우리의 심령을 말씀으로 깨우시고,
무너진 마음을 다시 일으키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다윗처럼 죄 가운데 무너졌던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사랑하시며
다시 노래하게 하신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구원의 기쁨을 회복시켜 주셔서, 주님만을 찬송하고 예배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오늘 목장모임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주님, 오늘 드리는 이 헌금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삶을 주님께 드리는 고백입니다.
저희의 죄를 덮으시는 주님의 ‘헤세드’ 사랑에 응답하여,
감사와 순종으로 이 예물을 드립니다.
받아주시고, 주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하여 아름답게 사용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축도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날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기를 힘쓰며, 구원의 기쁨과 감격, 즐거움으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이곳에 모인 청년들에게 항상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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