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앞에서 나의 인생을 노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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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봉독
성경봉독
1 엘리사가 이전에 아들을 다시 살려 준 여인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서 네 가족과 함께 거주할 만한 곳으로 가서 거주하라 여호와께서 기근을 부르셨으니 그대로 이 땅에 칠 년 동안 임하리라 하니
2 여인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행하여 그의 가족과 함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땅에 칠 년을 우거하다가
3 칠 년이 다하매 여인이 블레셋 사람들의 땅에서 돌아와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호소하려 하여 왕에게 나아갔더라
4 그 때에 왕이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 게하시와 서로 말하며 이르되 너는 엘리사가 행한 모든 큰 일을 내게 설명하라 하니
5 게하시가 곧 엘리사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린 일을 왕에게 이야기할 때에 그 다시 살린 아이의 어머니가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왕에게 호소하는지라 게하시가 이르되 내 주 왕이여 이는 그 여인이요 저는 그의 아들이니 곧 엘리사가 다시 살린 자니이다 하니라
6 왕이 그 여인에게 물으매 여인이 설명한지라 왕이 그를 위하여 한 관리를 임명하여 이르되 이 여인에게 속한 모든 것과 이 땅에서 떠날 때부터 이제까지 그의 밭의 소출을 다 돌려 주라 하였더라
서론
서론
우리 인생의 많은 경험들
가장 기뻤던 순간이 언제인가?
가장 슬펐던 순간이 언제인가?
질문 - 이러한 인생 경험의 의미가 무엇인가?
오늘 본문
한 여인에 관한 이야기
20년 가까운 인생 이야기
그 인생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그 의미를 살펴보기 원한다.
본론
본론
아들의 탄생과 죽음 부활을 경험한 수넴 여인
아들의 탄생과 죽음 부활을 경험한 수넴 여인
열왕기하 8 장의 이야기는 앞의 4장부터 이어지는 이야기이다.
4장 8절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8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에 한 귀한 여인이 그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하였으므로 엘리사가 그 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갔더라
시대적 배경
북이스라엘
엘리사 선지자가 사역하던 시기
정치적 종교적으로 많이 어수선한 시기
수넴에 사는 한 여인
한 귀한 여인
귀하다 = 크다
사회적인 지위가 높고, 경제적으로 부유했다.
그뿐 아니라 신앙심도 깊었다.
엘리사의 수넴 방문 소식을 들은 수넴 여인
엘리사
엘리야의 뒤를 이어 북이스라엘에서 사역한 선지자
갈멜산을 중심으로 순회하며 사역
수넴에도 방문
수넴 여인이 엘리사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함
간권하다 = 강하게 요청하다.
극진하게 식사대접을 했다는 뜻
9절을 보면
이 여인은 남편에게 엘리사에 대해 말하기를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 내가 안다”라고 말한다.
엘리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하고 그를 섬긴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람을 섬긴 것이다.
한번으로 그친 것이 아니었다.
엘리사가 수넴을 지날 때마다 그를 대접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자기 남편에게 청하여
엘리사가 잠시 머물러 쉴 수 있는 전용 공간도 마련했다.
담 위에 작은 방을 만들고
침대 - 누워 쉴 수 있도록
의자 - 앉아서 사역할 수 있도록
책상 - 글을 쓰거나 기도할 수 있도록
촛대 - 어두울 때 밝게 비출 수 있도록
그녀는 진심으로 하나님의 사람을 섬겼다.
형식적이거나 적당히가 아니었다.
마음을 다해 섬겼다.
우리도 수넴 여인의 섬김의 본을 잘 배우기 원한다.
수넴 여인에게도 부족함이 있었다.
사회적으로 귀하고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신앙심도 깊은
사람들 눈에는 부러울 것 없고 부족함 없어 보이는데…
어떤 부족함인가?
자녀가 없었다. 아들이 없었다.
남편은 늙었다.
아마 남편과 나이 차이가 좀 있었던 것 같다.
결혼한지 꽤 되었지만 가업과 유업을 이을 자녀/아들을 얻지 못했다.
남편은 점점 늙어 자녀를 나을 가망이 더욱 사라지고 있다.
이 수넴 여인의 오랜 소원, 기도제목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너무 흘러버려 이제는 포기하고 기대를 접은 그런 소원이었다.
어찌보면 자족하며, 주어진 현실을 인정하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엘리사는
지극 정성으로 자신을 섬기는 그 모습에 감동한다.
그런 수넴 여인에게 엘리사는 아들을 약속한다.
16절 말씀이다.
16 엘리사가 이르되 한 해가 지나 이 때쯤에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하니 여인이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하니라
수넴여인에게는
꿈같은, 거짓말같은 약속이다.
이미 포기한 꿈이었다.
그런데 정말 그 일이 현실에 이루어진다.
수넴 여인이 임신하여 일년 뒤에 아들을 낳은 것이다.
얼마나 기뻤을까
내 인생에 이런 날이 오다니…
아이가 무럭무럭 잘 자란다.
누어있던 아이가 뒤집는다.
기어다닌다.
걸어다닌다.
뛰어다닌다.
아이가 자라고 커가는 것을 지켜보는 그 기쁨과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제 말도 제법 잘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추수할 시기였다.
아버지는 일꾼들과 함께 아침 일찍 밭으로 나갔다.
이 아이도 그곳에 구경가고 싶어한다.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웠겠는가?
그런데 아이가 밭에 온지 얼마 안 있어 머리가 아프다고 이야기한다.
“내 머리야 내 머리야”
아버지는 자신의 일꾼에게 시켜 아이를 어머니에게 데려가게 한다.
수넴 여인은
아들을 자신의 무릎에 앉혔다.
머리를 쓰다듬으며 토닥거려주었을 것이다.
괜찮아, 괜찮아.
분명 기도도 했을 것이다.
하나님, 우리 아들 낫게 해 주세요.
그런데 아들이 죽고 만다.
아직 하루가 채 다 지나기 전, 한낮 정오게 그렇게 되고 만다.
엄마의 품에서 숨을 거두고 만다.
몇 살이나 되었을까? 유치원, 초등학교 1-2학년?
생각해 보라
자신의 품에서 숨을 거두는
아들의 모습을 지켜 본 어미의 심정이 어떠할지.
인생에 있어서 가장 가슴아픈 경험이었을 것이다.
불가능하다 여겼던 아들을 낳던 날이
인생에 있어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면
그 아들의 죽음을 지켜보던 이 날이
인생에 있어 가장 괴롭고 고통스러운 순간이었을 것이다.
이 절망의 순간에 수넴 여인은 무엇을 하는가?
21-22절 말씀이다.
21 그의 어머니가 올라가서 아들을 하나님의 사람의 침상 위에 두고 문을 닫고 나와
22 그 남편을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사환 한 명과 나귀 한 마리를 내게로 보내소서 내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달려갔다가 돌아오리이다 하니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만나러 간다.
달려갔다가 돌아오겠다고 한다.
죽은 아들은 엘리사의 침대 위에 두고
정황을 보니 남편에게는 아들의 죽음을 이야기하지 않은 듯 하다.
오늘이 안식일이나 초하루 같은 특별한 날도 아닌데
엘리사를 만나러 간다고 하니 이상했지만 아내의 요청에 허락한다.
수넴에서 갈멜산까지는 약 26km 정도 거리이다.
도보로 걷는다면 한 시간에 4km, 6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
그런데 여인은 이 거리를 달려간다.
나귀에 타고 자기 사환에게 멈추지 말고 달려가라고 한다.
점심 직후에 출발했다면 오후 늦게 갈멜산에 도착했을 것이다.
쉬지 않고 갈멜산에 도착한 수넴여인은 엘리사를 만난다.
27-28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27 산에 이르러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그 발을 안은지라 게하시가 가까이 와서 그를 물리치고자 하매 하나님의 사람이 이르되 가만 두라 그의 영혼이 괴로워하지마는 여호와께서 내게 숨기시고 이르지 아니하셨도다 하니라
28 여인이 이르되 내가 내 주께 아들을 구하더이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 하니
이 수넴 여인의 마음과 영혼이
얼마나 고통과 괴로움 가운데 있는지 잘 드러난다.
아들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아들의 죽음을 지켜보는 고통도 겪지 않아도 되는데 하는
원망 섞인 절규를 듣게 된다.
우리는 때때로
내가 원하지 않는 인생의 경험을 하게 된다.
피하고 싶은 경험
나한테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경험
내가 예상한 것 이상으로 더 안좋은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이보다 너 나쁜 상황은 없다 생각했는데, 더 악화된 상황을 경험하기도 한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 것일까?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지금 수넴 여인이 바로 그런 상황인 것이다.
엘리사는 이 말 속에 담긴 뜻을 바로 알아챈다.
아들이 죽었구나.
자신의 사환인 게하시에게 자신의 지팡이를 쥐어 주고
빨리 수넴에 가 그 아들의 얼굴에 갖다 놓으라고 말한다.
하지만 수넴 여인은 엘리사 곁을 떠나지 않으려고 한다.
여인의 완강한 태도에 엘리사가 직접 아이를 보기 위해 수넴으로 향한다.
아마 오후 늦게 출발해 밤 중에 도착했을 것이다.
가 보니 어린 아들이
싸늘한 시신이 되어 자신이 가끔 자던 그 침대에 눕혀져 있다.
게하시가 엘리사의 말대로 그의 지팡이를 아이 얼굴에 놓았지만 반응이 없었다.
엘리사는 무엇을 하는가?
33-34절이다.
33 들어가서는 문을 닫으니 두 사람 뿐이라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고
34 아이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의 입에, 자기 눈을 그의 눈에, 자기 손을 그의 손에 대고 그의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죽어 싸늘하게 식은 아이의 몸에 온기가 돌아온다.
엘리사는 내려 와서 집안을 돌아다니다가 한번 더 아이 위에 올라 엎드렸다.
그러더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를 하며 눈을 떴다.
기적이 펼쳐진다.
죽었던 아이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엘리사를 통해 하나님이 죽은 아이를 살리신 것이다.
분명 죽음 그 자체는 고통과 괴로움이다.
하지만 죽음은 죽음 그 자체로 끝이 아니다.
죽음은 찬란한 부활을 경험하기 위해 지나가야 하는 과정인 것이다.
죽음의 경험이 없다면 부활의 경험도 없는 것이다.
엘리사는 수넴 여인을 불러 아들을 데리고 가라고 말한다.
여인은 살아난 아들을 보게 된다.
절망과 괴로움이 환희와 기쁨으로 바뀌게 된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경험했던 그 기쁨과는 차원이 다른
가슴벅참과 감동을 경험하게 되었을 것이다.
정말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이 생명의 주인이시라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하고 체험하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여인은 엘리사의 발 앞에서 땅에 엎드려 하나님의 사람에게 절한다.
그리고 다시 살아난 아들을 안고 그 방을 나가게 된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도 있는 줄 믿는다.
지금 혹시 죽음과 같은 절망과 고통의 시간을 경험하고 있는가?
그 시간을 지나 부활의 기쁨을 누리게 되기를 축복한다.
나라가 멸망당하고 바벨론 포로로 끌려온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가?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나에게 주어진 절망과 고통의 시간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될 은혜의 시간인 줄 믿는다.
이렇게 놀라운 은혜를 경험한 수넴 여인의 감동스런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몇 장을 건너가 8장에 다시 등장한다.
왕 앞에 서는 수넴 여인
왕 앞에 서는 수넴 여인
8장 1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1 엘리사가 이전에 아들을 다시 살려 준 여인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서 네 가족과 함께 거주할 만한 곳으로 가서 거주하라 여호와께서 기근을 부르셨으니 그대로 이 땅에 칠 년 동안 임하리라 하니
이 여인이 살던 수넴을 비롯한 북이스라엘 땅에 기근이 임하게 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
이 기근 가운데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해
이 수넴 여인과 그 가족에게 미리 그 사실을 알려주고
기근을 피할 수 있는 곳에 가서 지내게 하신다.
살 던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다.
만약 이 여인이 믿음이 없었다면
엘리사의 말도 그대로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의 사람을 신뢰했다.
그 말씀에 순종했다.
살던 곳을 떠나
이방인의 땅 블레셋 사람들의 땅에 가서 살게 된다.
집과 밭과 같은 부동산은 그대로 둔 채
가져갈 수 있는 재물과 귀중품 같은 동산을 들고 가
그것을 팔아 지냈을 것이다.
한 해, 두 해가 지나고 일곱 해가 지났다.
엘리사가 말한 7년 기근이 지나간 것이다.
수넴 여인은 가족과 함께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7년 동안 집을 비운 사이 어떤 일이 벌어졌겠는가?
내 집에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밭도 다른 사람들이 경작하면서 자기 땅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고향에 돌아왔지만 가족이 살 집과 곡식을 얻을 밭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문맥을 살펴보면
지금 이 여인의 남편은 죽고 없는 것 같다.
4장에서 수넴 여인의 남편이 나이가 많다고 이야기했다.
가뭄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남편이 없을 수도 있고,
블레셋에 머무는 7년 동안 남편이 죽었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지금 이 수넴 여인과 그의 아들은
고아와 과부인 것이다.
이들을 보호해 줄 남편과 아버지가 없다.
아들의 나이도 10대 초반이나 10대 중반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남의 집에 들어와 살고 있고
남의 땅에서 농사 짓고 있는 사람들이
힘없는 이들을 무시하고 집과 땅을 내놓지 않는 것이다.
너무 억울한 일이 벌어졌다.
하소연 할 데가 없다.
고향에 돌아왔지만
삶의 터전을 다 빼앗겨서
어린 아들과 함께 살 길이 막막한 것이다.
결국 여인은 자신의 이 억울함을 왕 앞에 이야기하고자 한다.
여기서 수넴 여인은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7년 가뭄을 피하게 해 주신 하나님이
이런 어려운 일을 겪지 않도록 상황을 미리 잘 만들어 주실 수는 없는가?
왜 이렇게 막다른 길까지 몰고 가실까?
블레셋에서의 타향 살이도 참 쉽지 않았는데
고향에 와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인생 참 힘들다…
하나님은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실까?
그런데 하나님은
이 수넴 여인의 인생에 여전히 함께 하고 계셨고
이 여인을 통해 놀라운 일을 이루기 위해 계획하고 계셨다.
그 타이밍을 조율하고 계셨다.
바로 왕 앞에서 그의 인생 이야기를 노래하게 한 것이다.
이 수넴 여인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왕 앞에 나아갔을 때
왕은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중이었다.
다름 아니라 엘리사의 사환이었던 게하시였다.
왕은 게하시를 초대해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행한 놀랍고 큰 일들을 듣고 싶어했다.
이에 게하시는 엘리사가 행한 여러 큰 이야기들을 들려 주었을 것이다.
그 중에 가장 하이라이트가 무엇이겠는가?
죽은 사람을 살린 이야기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는 자신이 엘리사의 지팡이를 들고 행했던 것도 있으니
얼마나 신이 나서 그 이야기를 했겠는가?
열정적으로 그 이야기를 하는 중에
누군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왕을 찾아온 것이다.
게하시는 자신의 이야기가 중간에 끊긴 것에 조금 못마땅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게 누구인가?
그 수넴 여인이 아닌가?
그의 옆에는 죽었다 다시 살아났던 그 아들도 함께 있었다.
게하시는 깜짝 놀라 이 사실을 왕에게 이야기한다.
저기 저 여인과 아이가 바로 제가 말한 그 여인과 아들입니다.
저 아이가 죽었다 다시 살아난 그 아이입니다.
놀랍지 않은가?
이것이 하나님의 타이밍이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이다.
아마도 왕은 게하시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편으로는 엘리사가 참 위대한 선지자이구나 생각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 그랬을까?
게하시가 과장을 섞은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들었을 수 있다.
그런데 눈 앞에 바로 그 당사자와 증인이 나타난 것이다.
왕은 수넴 여인의 입을 통해
게하시가 한 이야기를 다시 들었을 것이다.
수넴 여인은 그 동안 자신이 살아왔던 인생 이야기를 쭉 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섬긴 것
포기했던 아들을 낳게 된 것
어린 아들이 갑자기 죽게 된 것
그 아들을 엘리사가 다시 살린 것
엘리사를 통해 가뭄을 피해 타향에 가서 7년을 산 것
남편을 사별하고 어린 아들과 힘들게 살아온 것
고향에 돌아왔지만 집과 전토를 빼앗겨 살 길이 막막한 것
그 호소를 위해 왕 앞에 왔는데 게하시를 만난 것
이 인생 스토리를 들으며 왕은 무슨 생각을 했겠는가?
이 여인은 또 인생을 회고하며 무슨 생각을 했겠는가?
인생 가운데 함께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보게 되지 않겠는가?
인생의 고비 고비마다 함께 하신 하나님
생명의 주인이고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고백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이 인생 스토리를 다 들은 왕은
이 여인과 어린 아들을 위해
한 관리를 임명해 이 여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여인이 다시 소유할 수 있도록 해 준다.
그 뿐 아니라 7년 동안 이 여인의 밭에서 나온 것들도 계산해서
다 여인이 돌려받을 수 있게 해 준다.
고아와 과부의 인생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신 것이다.
여기까지가 20년 가까운 이 수넴 여인의 인생 이야기이다.
어찌 보면
이 여인이 경험한 인생의 모든 시간은
지금 이 왕 앞에 서기 위해 준비한 시간이었다.
개인의 경험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왕 앞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하신 큰 일을 증언하고 고백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었다.
우리의 인생도 그러한 줄 믿는다.
내가 인생을 살면서 경험하는 여러 일들의 의미가 어디 있을까?
그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해야 한다.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세상 사람들 앞에 증언하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내 인생의 의미인 것이다.
결론
결론
왕 앞에 선 바울
왕 앞에 선 바울
바울을 부르신 예수님의 뜻
15 …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바울의 인생
임금들 앞에서 예수님과 복음을 전하기 위해 택함 받은 예수님의 그릇
참 많은 인생의 풍파를 경험한 바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감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서 붙잡힌 후 가이사랴에 오게 됨
아그립바 왕 앞에 선 바울(행 25-26장)
갈릴리 지역을 다스리던 분봉왕
자신의 삶의 간증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과 복음을 전하는 바울
29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로마 황제 앞에 서기 위해 로마로 향하는 바울(행 27-28장)
11 …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다)…..
우리도 우리 인생을 노래할 날이 온다
우리도 우리 인생을 노래할 날이 온다
베드로 사도의 권면
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이 수넴 여인의 인생에 함께 하신 하나님이
지금 이 순간 우리 각자의 인생에도 함께 하고 계신 줄 믿는다.
우리의 삶을 세심하고 인도하신다.
때로는 기쁨도 때로는 슬픔도
때로는 행복도 때로는 절망도 경험하겠지만
그 모든 순간에 하나님은 여전히 함께 하고 계신다.
어느날 사람들이 나의 인생 이야기를 물을 때가 올 것이다.
그 때 우리는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
내 삶에 역사하신 하나님을 고백하는 은혜가 있기 원한다.
내가 만난 하나님을 증거하기 원한다.
